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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75화 (75/103)

00075  그녀의 요상한 판타지  =========================================================================

맨발로 거리에 뛰쳐나온 수화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리로 나왔지만 폭설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었고, 드문드문 불켜진 모텔만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닌 창호에게 잡히면 또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수화가 막 다른 모텔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때 호텔 밖으로 뛰쳐나온 창호가 수화를 발견하고는 사악한 미소를 짓고는 여유롭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수화가 모텔에 들어가 카운터에 대고 정신없이 외치자, 안이 보이지 않는 작은 칸막이 문을 스르륵 열며 귀찮은듯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오?"

"…지금 누구한테 쫓기고 있어요. 전화기도 없어서… 좀 도와주세요… 네?"

수화의 애절한 말에 모텔의 주인장은 수화를 카운터 바로 옆 작은 방으로 안내했고, 거기서 좀 쉬고 있으라는 말만 간단히 하고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때 문에 달아놓은 종소리가 울리며 창호가 여유롭게 모텔로 들어왔다.

"저기… 방금 들어간 여자애 남자친군데요. 몇 호죠?" 태연한 표정의 창호였다.

주인장은 그런 창호를 조금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흠… 손님이 잘못알고 오셨나본데… 방금 전에 들어온 손님은 커플이었어. 여자 혼자 온 손님은 오늘 없었다구."

"아저씨… 같은 남자끼리 왜 이러세요? 방금 여자친구 들어오는 거 다 봤는데." 창호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청년! 자꾸 무슨 말을 하는거야? 자꾸 이상한 말 할 거면 밖으로 나가!" 주인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창호는 웃으며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뭉치들을 꺼내어 주인장에게 내밀었다.

"요즘 날씨때문에 장사도 잘 안 되시고… 힘드시죠?"

그러자 갑자기 고민에 빠지는 주인장이었다.

**

작은 창고 같은 방에 덜덜 떨며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수화.

"엄마… 아빠… 흑흑……."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반가움에 자리에 일어서는 수화였다. 하지만 이내 수화의 표정은 놀람과 공포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수화야. 날씨도 추운데 신발도 안 신고 나가면 어떻게 해." 웃으며 수화에게 다가가는 창호였다.

"…오…오빠!" 덜덜 떠는 목소리로 뒤로 한걸음씩 물러서는 수화였다.

"가자. 왜 그렇게 추운데에 있어."  냉큼 다가가 수화의 손을 덥썩 잡는 창호. 수화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덜덜 떨리고 있었다.

"손 차가운 것 봐. 오빠랑 다시 가서 꼭 껴안고 몸 좀 녹이자. 응?"

창호는 수화를 끌고 모텔 밖으로 나갔고, 수화가 살려달라고 몇 번을 소리쳤으나 카운터에 들어가 침묵을 지키는 주인장이었다.

거리에서도 사람들을 애타게 찾아보았으나 폭설만 날리고 있을 뿐,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

경찰차 뒷 좌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서연과 현정.

그때 운전석에 앉아있던 경찰에게 전화가 온다.

"어. 위치 찾았다고? 태백산 근처… 어… 칸호텔? 알았어."

전화를 끊은 경찰은 곧장 차에 시동을 걸었고 두 사람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호텔? 언니가 왜 호텔에 있지? 우리한테 한 마디도 없이…." 울먹이던 서연은 황당한 듯 말했다.

"그러게……." 생각에 잠긴 현정은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호가 준 속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수화.

"수화야. 멀어진 남녀관계는 말야… 다시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줄 알아? 오빠가 오늘 보여줄게." 누워 있는 수화의 위로 올라오는 창호.

"오…오빠… 우리… 그냥 말로 해요. 저… 지금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네?" 울먹이며 수화가 애원했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튕기는 지 몰라.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하고 싶으면 하고싶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수화의 입술을 정신없이 덮치는 창호였다. 수화는 본능적으로 피하느라 몸부림을 쳤고 창호는 그런 수화를 강하게 힘으로 제압했다.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수화가 막 소리를 지르려 하자, 수화의 입을 막는 창호였다.

"수화야 쉿. 니가 소리지르는 거 때문에 옆방에서 찾아왔나보다. 누가 들으면 내가 너 때리는 줄 알잖아. 그러니까 조용히 하자."

창호는 노크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수화의 입을 막고 있었다. 소리가 잠잠해지자 다시 수화의 몸을 탐하기 시작하는 창호였다.

그때 문이 '쾅'하고 부서질 듯한 소리가 나며 동시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너 거기서 꼼짝말고 있어!!" 경찰은 총을 들고 다가가며 창호를 위협했다.

뒤에 서 있던 서연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듯 입을 가리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고, 현정은 자신이 속으로 그렸던 예상과 맞아떨어져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경찰은 이내 창호를 제압했고, 서연은 속옷 차림의 수화에게 뛰어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수화는 서연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고, 서연은 그런 수화를 꼬옥 안아 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언니…." 그런 수화를 감싸주며 서연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현정은 수화가 안정을 찾으면 같이 경찰서로 와달라는 경찰의 안내사항을 전해받고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계속되는 서연과 현정의 위로에 수화는 안정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너희들이 오지 않았다면… 난… 흑……."

그런 수화를 안아주며 입술을 꾹 깨무는 현정이었다.

수화는 서연과 현정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경찰서에 도착했고 경찰은 피해자보호실로 수화를 안내했다. 창호는 이미 피의자 조사실로 이동되어있는 상태였다.

그가 피의자조사실에서 뛰쳐나가 한바탕 수화를 찾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경찰서가 한때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경찰의 제압으로 인해 이내 잠잠해졌다.

수화는 사건 경위를 경찰에게 말해주었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잠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옆에서 위로해주던 서연은 창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많이 놀랐을, 그런 창호에게 끌려가 감금되었을 불쌍한 수화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수화는 다음날 눈이 그치고 날이 밝는대로 서연, 현정과 함께 서울로 돌아갔고, 태백까지 한달음에 쫓아온 창호의 부모는 창호의 상태를 보고는 그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한국대 커뮤니티와 한국대 신문에는 창호에 대한 기사가 헤드라인에 올랐다.

[한국대 윤모 학생, 타학교 학생 성폭행해.]

또한 이 사건은 한국대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까지 삽시간에 퍼졌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뉴스에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최고의 명문대라는 한국대, 과연 앞으로도 명문대라고 불릴 수 있을까.]

한국대 학생들은 학교의 이름을 더럽힌 윤모 학생이 누군지 궁금해졌고, 소문과 소문을 통해 누군지 이내 밝혀냈다.

***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던 수화는, 핸드폰 진동벨이 울리자 밖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도서관 밖으로 나오며 전화를 받는 수화.

[수화언니. 저예요. 현정이.]

"아, 현정아…. 잘 지냈지?"

[네… 요즘… 좀 어떠세요?]

"난 괜찮아… 처음에는 좀… 생각이 났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미소를 띠며 수화가 대답했다.

[저 그동안…제가 괜히 기사를 내서 언니를 더 힘들게 한 건 아닌지… 자책도 많이 했어요…]

"아냐. 그건 내가 허락한 일인걸 뭐. 괜찮아."

[그래도 언니 덕분에… 데이트 폭력이 이슈화 돼서… 사람들의 인식이 벌써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 피해 받는 여성들도 당당하게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구요.]

현정과 통화를 마친 수화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가방을 챙겨 학교 밖으로 나갔다.

***

강의실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는 진아, 루리를 보고 웃으며 인사한다.

"언니! 오랜만이예요!"

"정진아." 화난 표정의 루리, 진아의 뺨을 한 대 후려갈긴다.

"언니…??" 영문 모르는 표정으로 루리를 보는 진아.

"너… 그동안 우리 속였더라?"

"네?"

"한수화. 원래 그새끼 여자친구라며. 니가 아니고. 알고보니까 니가 뺏은거라며? 그래서 그동안 엄한 사람 피해자 만들고.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느라 좋았어?"

"그…그게……"

"니가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그렇게 된 수화가 불쌍하지도 않니? 네 거짓말때문에 나까지 죄인된 기분이라고!! 근데… 넌 웃음이 나와?"

아무말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아였다.

"윤창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더라? 니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윤창호가 한수화때문에 정신병원까지 갔단다. 궁금하면 한 번 가보든지!!"

"…언니!!!" 루리를 불러보는 진아였지만, 화난 루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창호선배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다구…?'

갑자기 가슴이 막 떨려오기 시작하는 진아였다.

***

신화여대 앞 로데오 거리를 걷고 있는 수화. 그때 누군가 수화를 부른다.

"언니!!!" 서연이었다.

"서연이 왔어? 오늘 너무 춥다. 그치?" 수화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네. 언니 우리 오늘 따뜻한 거 먹어요. 제가 알아놓은 데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수화와 서연은 학교 앞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의 조명은 조금 어두우면서도 은은했다. 수화가 좋아하는 조명이었다.

서연은 수화가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하며 말을 꺼냈다.

"참. 언니 썸남분이랑은… 어떻게 지내요? 잘 만나고 있어요?"

"썸남?" 수화는 성준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그 날 이후 성준에게 연락 한 통이 없었다.

"그냥… 바쁜가 봐. 요즘엔 연락 안 해…." 수화가 아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래요? 그 분이랑은… 인연이 아니었나봐요. 그래도 더 좋은 인연 올 거예요. 아참, 언니. 저 오랜만에 페이스북 들어갔는데 어떤 잘생긴 남자가… 저한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막 그러는거예요…근데 진짜 어이없는게 자기소개같은 것도 안 하구 다짜고짜 막 전화 번호좀 알려달라고 그러는 거 있죠?"

"그래? 서연이 네가 진짜 마음에 들었나보다."

"언니, 이거 봐봐요." 서연은 자신이 받은 어이없는 메세지를 수화에게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수화 역시 서연의 말에 어이없어하며 화면을 보는데… 그 어이없는 남자는 다름아닌 성준이었다.

"…하성…준?"

"언니 혹시 아는 사람이예요? 이 사람 프로필 보니까 한국대 학생이던데. 근데 아무래도 저희 동아리 사람은 아닌 거 같거든요.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동아리에서 본 적이 없어서…."

수화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남자의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하지만 그 남자는 명백하게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하성준이었다.

당황하는 마음으로 메세지를 보낸 날짜를 보니 수화가 태백에 있던 날이었다.

'…그럼… 내가 서연이랑 셀카찍은 걸 보구… 서연이한테… 마음이 생겨서 연락했던건가…?'

수화는 그동안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성준의 연락도 조금은 기다렸었다.

'그래…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아… 죽을 것처럼 좋아한다고 할 땐 언제고… 마음이 금새 변해버린다니까… 역시… 마음 열어주지 않길 잘했어… 마음을 열었다면 그때처럼… 또 상처받았겠지…….'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 성준에게 전화를 해볼까 말까 망설이다 이내 금새 성준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렸었던 수화였다.

닫혔던 마음이 성준으로 인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었지만 이내 다시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리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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