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새로운 시작 =========================================================================
레스토랑 주차장.
수화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성준은 그런 수화보다 잽싸게 먼저 내려 수화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고마워..." 성준의 친절이 영 불편하기만한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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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로데오 거리.
진아와 창호가 팔짱을 낀 채로 걷고 있다.
"선배! 우리... 오랜만에... 술 한잔..할까용?" 젖은 눈빛으로 창호를 바라보는 진아.
"...그럴까? 하아.. 그래... 술먹자. 술마시자."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좋은 생각이라는 듯 대답하는 창호.
어느 치킨집으로 들어가는 창호와 진아.
"근데 진아 넌.. 왜 그렇게 날 선배라고 깍듯이 불러? 오빠라고 불러도 되는데." 자리에 앉으며 창호가 말했다.
"그냥요. 선배라는 단어가.. 왠지 좋잖아요. 뭔가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기분? 그런데... 선배랑 저는 그 선을 넘어서.. 왠지 선배라는 말이 더 매력있는 거 같아요." 얼굴이 붉어지는 진아.
"뭐... 나도 나쁘진 않아. 혹시나 니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근데 니가 편하면 됐지 뭐."
진아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수화 생각이 나는 창호였다.
그러면서 창호는 마음속으로 진아와 수화를 계속해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수화랑 사귀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긴장감을 즐기며 만났던 진아였고, 그런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자신이 정말 진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수화와 헤어지고 진아와 진지하게 만나려고보니 진심으로 진아를 좋아한 것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창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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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재즈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는 조명이 조금은 어두운 은은한 불빛의 레스토랑.
벽에 명화들이 걸려져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고급스럽고 아름답게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수화가 자리에 앉으려 하자, 웨이터가 의자를 빼주려 한다.
"아, 제가 할게요." 웨이터가 비켜서자, 수화의 의자를 빼주는 성준.
"괜찮은데..."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에 앉는 수화.
"여기 내가 좋아하는 곳이야. 부모님이랑도 자주 왔었구." 웃으며 말하는 성준.
"아... 그래? 분위기 좋다.. 나 이런 은은한 조명 좋아하는데."
"그래? 역시 너랑 나랑 통하는 게 있네. 나도 너무 밝은 것보다는 약간 어두운 조명이 좋더라. 분위기있구."
앞에 앉아 있는 창호와 너무나 다른 성준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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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생각에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창호.
"선배.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마셔요? 적당히 마셔요. 네?" 창호와 보낼 밤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진아.
"으... 몰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이.. 땡기냐..." 쓴 웃음을 지으며 술을 마시는 창호.
그러자 진아가 창호의 옆자리로 간다.
"선배.." 창호의 눈을 바라보고는 입을 맞추는 진아.
창호는 그저 진아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수화 생각에 거침없이 진아의 입술을 덮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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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수화와 성준이 마주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수화 너는 좋아하는 음악이 뭐야? 어떤 음악 좋아해?"
"나는.. 재즈? 재즈 음악이 분위기 있고 좋더라.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음악도 좋구."
"아, 차이코프스키! 나 예전에 뉴욕에서 호두가기 인형 발레 공연 본 적 있는데. 그때부터 내가 발레를 좋아하게 됐거든."
"아, 정말?" 눈이 뚱그레지는 수화.
"응. 아.. 그러고보니까.. 한국에서도 호두까기 인형 공연 하던데. 몇 월까지더라? 아직 끝나진 않았을텐데... 같이 보러갈래?"
"아... 그래... 기회되면..." 어색하게 웃는 수화.
"수화 넌.. 방학인데.. 어디 안 가? 뭐.. 여행 계획같은거라도 있어?"
"음... 아직... 근데 너무 아쉬워서... '내일로'여행이라도 갈까 생각중이야."
"그래? 재밌겠다. 갈 꺼면 나도 같이 가자."
"뭐? 성준이.. 너랑.. 나랑.. 둘이?" 당황한 수화.
"너무 이른가? 뭐.. 수화 네가 불편하다면... 나중에.. 친해지면 그때 가지 뭐."
그런 성준을 보며 기막히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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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텔방으로 진아가 창호를 부축하며 들어오고 있다.
"으...선배.. 그러니까.. 제가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힘든 표정으로 창호를 부축하며 방으로 들어오는 진아.
진아가 창호를 침대에 슬쩍 내려놓자마자 스르르 침대로 떨어지는 창호.
그런 창호 곁에 누워 창호의 얼굴을 바라보는 진아.
"....화야.." 술에 취해 중얼거리는 창호.
"네? 선배.. 뭐라구요?"
"...미안해.. 오빠가... 잘못..했어.."
"치. 선배가 잘못한 거.. 뭔지 알긴 알아요?"
삐진 척 하며 창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진아, 창호의 품에 덥썩 안긴다.
그러자 창호 술에 조금 깬 듯 진아를 꽉 껴안는다.
"선배..." 더욱 창호의 품에 안기는 진아.
창호, 진아의 등을 어루만지다가 키스를 하려고 진아의 얼굴을 매만진다.
그러자 창호의 두 눈에 들어온 진아의 얼굴.
'...수...수화가 아니잖아...!!!'
진아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보는 창호.
"선배.. 왜 그래요??" 황당하게 창호를 바라보는 진아.
"...미안....미안...."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창호는 주섬주섬 옷과 가방을 챙겨 모텔방을 빠져나간다.
침대에 주저앉아 황당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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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과 수화가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레스토랑 앞 쪽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어떤 여자가 노래를 부르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는 두 사람.
"수화야... 너 피아노 잘 쳐?"
"피아노? 음.. 어렸을 때.. 체르니 40번까지 쳤는데... 워낙 어릴 때라... 다 까먹었어.." 쑥쓰러운 표정의 수화.
"그래? 나도 그런데. 난 제일 잘 치는 게 젓가락 행진곡이야."
"어. 진짜? 나둔데!!!"
"우리..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저기. 앞에 나가서 피아노 치기 할래?"
"응? 여기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난 싫어... 내가 피아노치면... 사람들이.. 다 비웃을거야..." 입을 삐죽이며 고개숙이는 수화.
"그래도 해보자. 내가 지면... 내가 사람들한테 비웃음당하는 거.. 구경하면 되잖아."
"뭐? 어떻게 그래..." 어이없는 수화.
성준의 꼬드김에 가위바위보를 하는 두 사람.
혼신의 힘을 다해 두 손을 깍지끼고는 운을 점쳐보는 수화.
"가위바위보!!!!"
결과는 수화가 이겼다.
"와!!!!" 안도의 함성을 지르는 수화, 순간 사람들이 쳐다보자 조용히 다시 표정 관리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졌네." 머리를 긁적이는 성준.
"자, 그럼 너의 젓가락 행진곡. 보여줘."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는 성준을 바라보는 수화.
그러자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준.
성준이 점점 멀어져가자, 초조해지는 수화였다.
"야..야!! 하성준!! 진짜 가?? 가지마!!! 안 쳐두 돼!!! 야!! 아..이게 무슨 망신이야.. 왜 저러니 쟤..."
수화가 떨리는 손을 입술로 꾹 깨물고는 당장이라도 성준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성준은 피아노 앞에 도차한 상태였다.
"아...어떻게 해... 어떡해..." 입술을 깨물고 불안한 눈빛으로 성준을 바라보는 수화.
피아노에 앉아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떠나고는 성준이 그 자리에 앉는다.
피아노를 치기 전에 수화를 바라보고 씨익 웃는 성준.
수화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고 얼굴은 이미 새빨개져 있었다.
성준이 피아노에 두 손을 올리고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하며 떨리던 수화의 얼굴이 멍하니 성준에게로 고정되었다.
성준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라디의 I'm In Love'를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연주라고 느끼는 듯 은은한 미소로 성준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