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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63화 (63/103)

00063  애증의 관계  =========================================================================

인천공항.

"민아야, 잘 다녀와. 맛있는 것두 많이 먹구 공연도 많이 보구." 웃고 있지만 조금은 서운한 표정의 수화

"그래. 수화 너두 혼자있다구 대충 때우지 말구 한 끼 먹더라두 제대루 챙겨먹구." 수화가 걱정되는 눈빛의 민아.

"응. 당연하지. 그래두 다행이다. 마지막 날이라두 볼 수 있어서..."

"그러게. 이번해는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두 번이나 더 보게 됐네...." 씁쓸한 표정을 짓는 민아였다.

그런 민아를 바라보며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짓는 수화였다.

민아는 그런 수화가 안쓰럽게 느껴져 수화를 안아주고는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수화야. 내년에는 진짜 좋은 일만 있을거야. 이번해에 있었던 안 좋은 일들 다 털어버리구. 새롭게. 우리 새롭게 다시 출발하자. 응?"

"응. 그러자." 민아를 보며 웃고 있지만 어느새 눈에 눈물이 조금 맺힌 수화.

그때 뉴욕행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온다.

"수화야, 나 이제 가봐야겠다. 잘 지내구. 가서두 자주 연락할게. 수화 너두 안부 자주 전해주구."

"응. 민아야.. 잘 다녀와!"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었다.

게이트에서 사라져가는 민아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 한 방울을 떨구는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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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창호네 집.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는 창호.

'훗. 역시 난 잘생겼다니까. 머리를 조금만 만졌는데도 이렇게 멋지다니. 뭐 평소에도 멋지지만.'

수화와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설레는 창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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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 해지고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이 밝아왔다.

창호는 수화와 함께 보신각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하였고, 수화는 묵묵하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광화문은 타종 행사를 보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창호는 광화문역 앞 커피숍에 먼저 도착하여 핸드폰으로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표를 2장 예매했다.

'훗. 종 치는 소리 듣고, 기차타고 정동진가서 새 해를 맞이하면 딱이겠군.' 이렇게까지 데이트 장소를 준비해온 자신을 보며 감동받을 수화의 표정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창호였다.

그때 창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수화였다.

"어. 도착했다구? 나도 광화문." 전화를 받으며 커피숍 밖을 나서는 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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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하철 역 앞.

"수화야!" 역 앞에 서 있는 수화를 보며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가는 창호였다.

"아... 오셨어요?" 기운 없는 표정의 수화.

"응. 근데 수화 너. 오빠한테 그래도 되는거야? 어떻게 엠티때도 연락 한 통도 없냐? 오빠 완전 실망했어." 조금은 화난듯한 말투의 창호.

"..죄송해요." 그런 창호를 보며 '역시.. 오빠는 달라진 게 없구나.' 생각하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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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트리가 설치되어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음식점.

"이번에 갔다 온 온천. 엄청 좋더라. 수화 너도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래요? 좋았겠네요.."

"그러니깐. 누가 오빠말도 지지리 안 들어서 그렇지 뭐." 빈정대는 말투의 창호.

"........." 숟가락을 들다가 멈칫하는 수화였다.

그때 창호의 핸드폰 진동 울린다. 진아였다.

[선배. 이따가 우리 종 치는 거 같이 봐요. 네?]

창호는 수화가 볼세라 핸드폰을 재빨리 집어들었다.

밥을 먹는 척 하지만 그런 창호의 동작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있는 수화였다.

"잠깐만. 부모님한테 연락와서." 능숙하게 거짓말하는 창호.

"네. 괜찮아요."

괜찮다는 수화의 말에 식탁에 팔을 괴고 여유롭게 문자를 하는 창호.

[오늘은 안 돼. 오늘은 부모님이랑 보내야지.]

문자를 보내고는 핸드폰을 아예 주머니에 넣어버리는 그였다.

"아. 원래 부모님이랑 타종 행사 같이 보기로 했었거든. 근데 수화가 보자고 해서.. 이렇게 나온거야. 그러니까 영광인 줄 알어. 오빠한테도 좀 잘하구." 거만한 듯 이야기하는 창호.

창호의 말에 그저 피식하고 웃는 수화였다.

창호는 오늘따라 수화가 말이 없다는 것, 그리고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저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예전처럼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때 수화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는 수화.

[수화야. 오늘 뭐해?] 성준이었다.

성준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도로 핸드폰을 식탁에 내려놓는 수화.

"아무튼... 오빠가 너 그 날 가고나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알아? 오빠가 크리스마스에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냐구." 수화를 혼내키듯 이야기하는 창호.

"......." 고개 숙인 채 그저 듣고만 있는 수화.

"그거 얼마나 예의없는 행동인 줄 알아? 어떻게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서 밥먹고 있는데 그냥 뛰쳐나갈 수가 있어? 그럼 상대방은 어쩌라는거야."

"...죄송해요.."

"그리고 오빠가 더 실망한 건. 그렇게 가고나서 미안하다고 연락도 한 번 안 한 거야. 그거 얼마나 나쁜 행동인 줄 알아? 다른 남자였으면 바로 헤어졌어. 오빠도 너 같이 행동하는 애는 처음봤지만, 그래도 오빠니까 봐준거야. 알아?"

"......."

"수화 니가 연애를 많이 안 해 봐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오빠가 말해두는 건데. 상대방한테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하는거야. 괜히 자존심 세워서 옆에 있는 사람만 잃게 될 수도 있는거라구. 이거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거야. 오빠니까 가르쳐주는 거라구. 그러니까 오빠한테 고마워해. 이런 오빠가 어딨냐?"

그러자 어색하게 한 번 웃어보이는 수화였다.

"알았어, 몰랐어? 이럴 때 '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하면서 대답해야지."

수화는 순간 창호의 말에 정말 자신의 잘못인건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분명히 잘못한 건 창호쪽이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그것을 숨기고 자존심에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한 것도 창호였다.

하지만 수화는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답답함때문에 자신을 꾸짖고 있는 창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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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보신각에 도착한 두 사람.

이제 새 해가 밝기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수화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창호. 하지만 수화의 손은 영혼없는 듯 그저 힘 없이 붙잡힘을 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 그거 알어? 종이 울릴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대."

"...오빠는... 무슨 소원 빌고 싶은데요?"

"음... 오빠는... 수화가 내 년에는 오빠 말 잘 들었으면 좋겠는 거? 그럼 수화는 어떤 소원 빌고 싶어?"

"...글쎄요.."

"치. 그렇게 대답하면 오빠 서운하지. 그럼 이렇게 소원 빌어. 내 년에는 오빠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해달라구."

쓴 웃음을 짓는 수화.

가수들의 공연이 끝나고 새해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새 해가 오기까지 단 1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떠오르면 우리 모두 다같이 카운트 다운을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 진행자

어느새 새 해가 오기까지 30초밖에 남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 곁에 있는 사람들과 새 해를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들뜬 표정이었다.

창호 역시 환한 표정으로 새 해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수화는 그 소리와 동시에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올 해가 가기 전에... 마음 아프지만... 정리해야 해...'

그때, 10초 카운트 다운을 진행자와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저... 오빠...." 창호가 잡은 손을 풀며 앙 다문 입술을 어렵게 여는 수화.

"응?"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뭐?" 자신이 잘못들은것인가 재차 물어보는 창호.

"헤어져요. 우리... 저... 오빠랑... 이제... 헤어질래요..."

수화의 말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새 해를 축하하는 듯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창호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멍하니 수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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