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애증의 관계 =========================================================================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에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 수화
"기회되면 또 봐요. 근데 우리 왠지.. 또 만날 것 같지 않아요?" - 성준
"어머, 어머. 얘네 뭐야.. 우리 셋 다 동갑이거든요? 그러니까 낯 간지럽게 존댓말 쓰지 말구 반 말 하시지요?" - 민아
그러자 수화와 성준, 수줍은 듯 웃는다.
그때 저 멀리 클럽에서 진아와 창호가 나오고 있다. 진아는 술에 취한 듯 창호의 품에 안겨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수화.
그런 수화의 표정을 쫓아가는 성준.
"아무튼 우리 셋이 조만간 또 모이자. 아, 맞다. 나는 31일날 뉴욕가는데. 아무래도 그 전에는 출국준비해야해서 좀 바쁠 것 같은데... 어쩌지?" - 민아
"그럼.. 수화씨랑 나랑 둘이서 만나지 뭐.." 수화의 눈치를 살피며 민아의 말을 받아치는 성준이었다.
"야, 하성준. 너 수화한테 반했냐? 그래도 그렇지 중학교 동창한테 이래도 되는겨?"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성준에게 장난치는 민아.
수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창호와 진아가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수화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민아
"응? 아.. 아냐.. 오늘 즐거웠어 민아야. 덕분에 기분도 좋아졌구." 수화가 웃으며 말했다.
"휴우.. 그래. 기분 좋아졌다니 다행이다. 아무튼.. 그 일.. 잘 해결되길 바라구.. 내년에는 더 좋은 일만 있을거야." - 민아
"그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먼저 가볼게. 오늘 늦게까지 술도 마셨구.. 조금 피곤한 것 같아." - 수화
"잠깐만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 성준
"아녜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민아야 나 갈게." 민아에게 인사하고 성준에게도 목례를 하고는 재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그 자리를 뜨는 수화.
그런 수화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성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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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택시 안의 창호와 잠든 진아.
잠든 진아를 무릎에 뉘어 놓고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던 창호, 수화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몇 번 신호음이 걸리더니 안내 음성 멘트가 나온다.
'하.. 얘는 왜 안 그러던 짓을 하고 그러지..?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별 수 있겠어? 이러다 내일 아무일 없던 듯이 전화해서는.. '오빠 어제 그렇게가서 미안했어요.' 하겠지 뭐...'
창호는 수화의 이런 행동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수화가 그렇게 쉽게 자신을 포기하고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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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의 수화.
창호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계속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멍하니 '울오빠♥' 라고 적힌 화면만 바라보다 어느새 눈에 눈물이 가득 맺힌다.
'오빠는... 나한테 왜 그랬던 걸까...? 오빠는... 정말 미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이렇게 전화할 거면서... 왜 나를 잡지 않았던거야...'
수화의 마음 속은 창호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찼지만 한 편으로는 그동안 창호와의 즐거웠던 추억들도 동시에 떠올라 마음 속은 알 수 없는 것들로 뒤범벅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수화는 더이상 우유부단한 창호를 견딜 수 없었다. 사실은 그러한 창호를 견딜 수 없다기 보다, 창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창호는 자신의 자존심을 챙겨가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자만심에 뒤돌아서 떠나는 수화를 일부러 붙잡지 않는 등 수화가 내미는 작은 기대 하나하나를 다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함박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창 밖의 아름다운 한강을 바라보면서 서서히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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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아침.
창호는 아침마다 오던 수화의 모닝 메시지가 오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수화, 삐지는 거 참 오래가네.'
창호는 문자를 보내보려다 마음을 이내 고쳐먹었다.
'아냐, 이런 일로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면 지는거야. 또, 그렇게 하면 내가 잘못한 게 되는 거잖아? 그래도 수화한테 아무일 없단 듯이 연락오면.. 앞으론 좀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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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수화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핸드폰을 확인해보지만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은 것에 이내 실망을 하고는 핸드폰을 집에 그대로 둔 채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나간다.
조깅을 하는 수화는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그래... 오빠 마음은.. 딱 그 정도였던거야. 진아와 나를 저울질할 만큼... 어쩌면 진아를 더 좋아했던 걸지도 몰라...'
수화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수화는 핸드폰을 꺼놓은 채로 두통약을 한 알 먹고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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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을 돌고 있는 창호.
웃고는 있지만 자꾸 수화가 마음에 걸리는 창호였다.
그때 핸드폰 알림 울린다.
'역시 니가 그럼 그렇지!' 하며 신나게 핸드폰을 확인하는 창호.
[선배. 어제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용..ㅜㅜ 크리스마스인데 나랑 같이 있어주지... 나 삐질고야!] 진아의 문자에 크게 실망하는 그였다.
진아의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꽂아 넣는데, 다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또다시 반갑게 확인하는 창호, 진아의 문자에 이내 또 실망을 하고 만다.
[흥. 그래두 어제 선배랑 크리스마스 보내서 넘넘 즐거웠어용. 근데 선배가 집에 가버려서 넘 아쉽당..ㅜㅜ 이따가 시간되면 우리 얼굴 봐요!] 뭐 때문인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한 창호는 핸드폰을 진동모드로 바꿔버린다.
'집에 찾아가볼까...? 하... 아냐. 걔네 집에 찾아가면 내가 뭐가 돼?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끝까지 수화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 무너지는 것에만 급급해하는 창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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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가 잠에서 깨자, 어느새 크리스마스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흐릿했고 눈이 쌓이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온통 하얬다.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빛 하늘은 수화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수화는 평소에 맑은 날보다 약간 흐릿한 날씨를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때문에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티비에서는 온통 성탄 특선 영화들을 틀어주고 있었고 수화는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달래기 위해 영화를 틀어놓고 영화에 집중해보려 애썼다.
수화는 혹시라도 창호에게 연락이 올까 기대하는 마음때문에 핸드폰을 꺼버렸지만 영화보는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켜 보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좌절감과 함께 마음이 찢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수화는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켜보기로 결심했다.
그때,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안도의 느낌과 기대감이 뒤섞인 수화는 문자를 단숨에 확인해본다.
하지만 그것은 창호의 것이 아니라 성준이의 문자였다.
[어제 잘 들어갔어요? 창 밖을 봐요. 눈이 오고 있어요.]
수화는 순간 성준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역시 아까처럼 아무 것도 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면 자신의 기분은 정말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 같았다.
수화는 이렇게 바보같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역시... 나는 오빠한테 아무 것도 아니었던 거야....'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우는 수화였다.
창호를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감과 자존감만 더 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화에게 아무런 답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당장 어떻게 이 감정을 추스려야 할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수화는 두터운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칭칭 둘러감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성준의 말대로 하얀 눈이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을 맞고있자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집 앞 거리들은 창호와 함께 걷던 추억들을 생각나게 했다.
수화네 집 근처 어디를 가도 창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묻어나 있었다.
그때는 아름다웠다. 창호에 대한 수화의 마음도.. 어쩌면 창호의 마음도..
아름다웠던 그때 그 추억들에 가슴이 아려오는 수화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구슬프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