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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50화 (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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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오빠랑.. 술 한잔 하고 싶어요."

자신의 품에 안겨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수화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창호였다.

하지만 당장 죽겠다며 힘없이 말하는 진아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수화야... 오빠가 아까.. 교수님.. 만난다고 했잖아? 술은 내일 먹자. 야구 다 보구. 응?"

"안 돼요. 가지 마요. 네? 오빠앙.." 창호의 팔에 매달리는 수화였다.

'우리 애교쟁이 수화... 계속 이렇게 수화랑 있고 싶다.. 근데 지금 진아한테 안 가면 또 죽느니 어쩌니 할 텐데... 어떻게 하지?...' 갈등되는 창호였다.

"오빠. 나랑.. 같이 있어줄꺼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창호를 바라보는 수화.

"수화야. 미안해. 아무래도... 교수님이랑 약속한 거라.. 가봐야겠어. 대신에 내일 좀 일찍보자. 응?"

그러자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수화였다.

"수화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화를 바라보는 창호.

고개 숙이고는 말 없이 한숨을 쉬어보이는 수화였다.

"수화야.. 오빠가 간다고 하니까.. 많이 서운한거야? 아님.. 다른 일 때문에 그러는거야?"

"그냥... 요즘 고민도 많구... 혼자 사니까... 부모님도 보고싶구... 좀.. 외로워서 그런가봐요...헤헤.. 아.. 오빠 바쁘시면 가두 돼요. 전 괜찮아요.. " 애써 웃어보이는 수화였다.

"아냐. 이렇게 눈물까지 흘리는 거 보면...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왜 말 안 했어... 오빠한테 다 털어놓지.."

"알잖아요.. 저.. 힘든 일 남한테 잘 안 털어놓는 거..."

"허.. 수화야. 내가 남이야? 오빠 서운하다.."

"아니.. 그게 아니구.."

"수화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지 몰랐어. 수화는 오빠를 항상 의지하고 믿는 줄 알았는데."

"당연히 오빠 믿죠. 알잖아요.."

수화의 말에 덥썩 수화를 끌어안는 창호.

"오빠..."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수화.

"오빠만 믿어. 힘든 일 있으면 오빠한테 다 털어놔. 혼자 그렇게 끙끙대지 말구."

"네... 알았어요.. 앞으로 오빠한테 더 많이 의지할게요... 그래도.. 되죠?"

"당연하지. 수화는 내 껀데. 내 꺼는 내가 지켜."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수화였다. 그리고 창호에 대한 약간의 원망감도 녹아내려 없어지는 것 같았다.

수화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눈물을 흘렸고 창호는 그런 수화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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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지 빈 강의실에서 이리갔다 저리갔다하는 진아.

'선배. 왜 이렇게 안 오지..? 지금 오고 있는건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내는 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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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품에 안겨 있는 수화.

수화는 울었던 탓인지 눈이 피로해 눈을 감고 있다.

그때, 창호의 휴대폰 진동 울린다.

눈을 감고 있는 수화를 조심히 살펴보고는 핸드폰을 확인해보는 창호다.

[선배... 어디예요... 선배 너무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더이상 힘들어하기 싫어요...]

당황한 창호.

'어떻게 하지.. 이러다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건 안 돼.. 막아야 돼..!!'

"수화야." 수화를 조심스레 깨우는 창호.

"..네?" 덜 떠진 눈으로 창호를 바라보는 수화.

자신을 믿으며 바라보는 수화의 눈빛이 너무나 순수해서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창호였다.

"오빠랑... 같이 학교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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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 커피숍 앞에서 수화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지금 가고 있으니까.] 진아에게 답장하는 창호.

수화가 커피숍에서 나오면 손을 마주잡고는 한국대로 향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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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기계공학과 과방.

"수화야. 오빠. 교수님 잠깐만 뵙고 올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네. 오빠. 천천히 오셔도 돼요."

수화에게 씨익 웃고는 과방을 나서는 창호.

창호가 나가자마자 장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어. 장미야."

[수화야. 어떻게 됐어? 오빠랑 같이 있니?]

"응. 아니."

[응? 같이 있다는 거야, 아님 같이 없다는 거야?]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어.. 근데.. 오빠가 지금 교수님 잠깐 뵙고 온다구 하구 나갔어."

[너 지금 어딘데?]

"아, 여기.. 나 기계공학과 과방에 있어.."

[진짜? 대박. 나 안 그래두 지금 거기 지나는 중인데. 내가 그 쪽으로 갈게 수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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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 건물 밖으로 나와 핸드폰을 재차 확인하며 긴장된 듯 빠르게 걷고 있다.

"아.. 얘는 왜 전화를 또 안 받아. 하아.." 한숨쉬는 창호.

그때, 건물 밖으로 나오는 창호를 발견하는 장미.

수화에게 가지 않고 창호의 뒤를 밟기 시작하는 장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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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관 건물로 들어서는 창호.

익숙한 듯 성큼성큼 계단을 두 개씩 오른다.

그 뒤를 창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따라가고 있는 장미였다.

'교수님? 교수님은 개뿔.. 이 건물에는 교수님이 안 계신다구..!!'

장미는 창호가 경영관에 들어서자마자 교수님이 아닌 진아를 만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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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빈 강의실 문을 조심스레 여는 창호.

강의실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다.

그런데, 바닥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진아였다.

"진아야!!!"  진아에게 달려 가는 창호.

창호가 진아를 안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는 진아.

"선..배...왜.. 이제야 왔어요.. 나.. 진짜 죽을만큼 힘든데..." 눈물 흘리는 진아.

"미안해... 늦게 와서... 근데... 나는 이제 니가 나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배..제가 부담스러우면... 그냥 선배 눈에서 사라질게요... 근데 나는.. 내가 이렇게 사라져도... 선배가 날 슬퍼해줄까..? 그 생각뿐이예요..."

"진아야... 당연히 니가 내 눈에서 사라지면... 슬플꺼야... 가슴아플거구... 그러니까 그런 소린 하지 마. 응?"

"선배... 안아주세요...."

그러자 한숨을 푹 쉬고는 진아를 안아주는 창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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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리창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장미.

'허... 그럼 그렇지... 아주 꼴깝들을 떨어요..'

계단을 내려가며 전화를 거는 장미.

"어. 수화니?"

[응. 근데 너 왜 안 와?]

"나 지금 어마어마한 걸 목격했거든. 수화 너 마음 단단히 먹구 지금 경영관으로 퍼뜩 뛰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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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전화를 받은 수화는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경영관을 찾아갔다.

경영관에 도착하자 1층에 장미 서 있다.

"장미야!"

"어. 왔어?" 떨떠름한 표정의 장미.

"근데 경영관은 왜?"

말 없이 한숨 쉬는 장미.

"장미야아. 왜 그러는데 응?"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수화였다.

"지금 이 건물 4층에 누가 있는지 알아?"

"...설마.....맞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장미였다.

장미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있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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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품에 안겨있는 진아.

"선배. 가지 마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가지 마요.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줘요. 선배없는 삶은..진짜 지옥일거야."

머릿 속이 뒤죽박죽 엉켜 있는 창호. 한숨만 쉴 뿐이다.

"선배. 수화언니랑.. 헤어지긴.. 할 거 예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하...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니요... 선배.. 수화언니 정리하구.. 나한테 완전히 오기로 했잖아요.. 선배도 나 없음 안 되잖아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진아의 말처럼 진아가 없으면 허전할 것만 같은 창호였지만, 창호는 헷갈렸다. 진아가 세컨드로서 허전한 것인지, 아니면 수화보다 더 좋아하는 것인지.  진아를 좋아하긴 하지만 최근. 그리고 오늘.. 역시 수화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확실히 드는 창호였다. 하지만 그런 진아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는 흐느껴 우는 진아.

"선배... 선배가 했던 말..!!! 다 거짓말아니지..??! 그 약속... 늦게라도 지킬거지...!?! 응..?!! 말해 봐..!! 말해보라구..!!" 창호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진아.

그런 진아를 말리며 마음이 아파져오는 창호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아예... 처음부터 받아주지 말 걸 그랬어... 그럼...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텐데....'

그때 창호의 핸드폰 진동벨 울린다. 수화였다.

창호는 핸드폰에 떠 있는 수화의 웃는 사진을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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