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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43화 (4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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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미리 이렇게 얘기하는거야."

[뭔데? 무슨 일인데..응?] 장미가 걱정스러운 수화였다.

"수화 너 남자친구.. 어떤 여자랑 팔짱끼고 가더라. 설마설마했는데... 니 남자친구.. 맞아. 여동생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네..." 민망함에 말꼬리를 흐리는 장미였다.

[에이.. 아냐. 장미 네가 잘 못 본 거겠지.] 그러면서도 약간의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하는 수화였다.

"맞다니깐?! 나... 실은 사진도 찍었어.. 너한테 보여줄려구."

[...그래? 그럼... 사진 보내줄 수..있어?]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봐. 지금 바로 보내줄게."

[...응!]

한숨쉬며 수화에게 사진을 전송하는 장미.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괜히 내가 끼여드는 건 아닌지..'

.

.

.

초조하게 그 자리에 서서 메세지를 기다리고 있는 수화.

'팔짱....? 설마... 진아..? 아닐거야...아닐거야..!!'

'띠리릭'하며 수화의 메세지 알림 울리면, 기다렸다는 듯 확인하는 수화.

사진을 보면, 한국대 앞 먹자골목에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두 남녀의 뒷모습이다.

사진 속 남자는 창호의 평소 옷차림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있었고, 옆에 있는 여자는 엉덩이를 거의 가릴듯 말듯한 몸에 밀착되는 원피스를 입고 힐을 신고 있었다.

'.........오빠.. 뒷모습같기는 한데...... 닮은 사람도 분명 있으니까...아직 뒷모습가지고는...'

그때, 사진 하나가 더 전송된다.

'..........!!!!'

거리에 있는 좌판에서 거울을 보며 해맑게 귀걸이를 착용해보고 있는 진아의 옆모습. 그 옆에는 그런 진아를 귀엽게 바라보는 창호가 서 있다.

[수화야.. 괜찮..아?] 걱정스러운 장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퍼진다.

"아... 장미야. 그러고보니까... 오늘 오빠가 다음달 있을 엠티때문에 동아리 회의가 있다구 했거든... 옆에 있는 여자애는 동아리 후배야. 보니깐.. 회의끝나구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애." 떨리지만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수화.

[수화야. 아무리 동아리 후배라두... 여자친구 있는 사람한테 저렇게 팔짱끼는 건... 난 아니라고 보는데...]

"예전부터 오빠랑 그 여자애. 친오빠..동생 사이로 지냈었거든.. 그래서 그런거야..." 애써 창호의 편을 들어주는 수화.

[하.... 수화야.... 내가 보기엔.]

"장미야. 미안.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할게." 뚝 끊어버리는 수화.

.

.

.

장미, 끊어진 전화기를 보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한숨 쉰다.

"수화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아니 이젠 착한건지 바보같은 건지...." 이미 장미의 시야에서 사라져버진 두 사람이 있던 자리를 다시 한 번 보고는 무겁게 발걸음을 돌리는 장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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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멍한 표정의 수화.

'오빠가... 나한테 솔직하게 동아리 회의가 있다고 얘길 했었구... 그래서 같은 동아리 임원인 진아랑 있는 건 당연해. 오빠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구... 하지만... 팔짱을 낀 거는.... 너무하잖아...'

잠시 후에 1004번 버스가 오면.. 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버스에 타지 않는 수화.

버스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수화.

"여보...세요?"

[어. 어디야?] 태연하게 전화받는 창호.

"아.. 저 강남역이요.."

[엥? 아직도? 수업 늦게 끝났어?]

"아.........네........ 오빠는 어디예요?"

[나? 학교 앞이지. 동아리 회의가 이제 막 끝나서.]

"아... 그럼... 동아리 사람들이랑... 다같이.. 있는거예요?"

[응. 다같이 있지.]

"아..... 다같이요.... 진아랑... 단 둘이.. 있는 건 아니구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예요.... 끊을게요...." 뚝 끊어버리는 수화.

.

.

.

가로등만 몇 개 켜져있는 어느 조용한 주택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 창호.

"선배, 왜 그래요?" 멍한 창호를 보며 어리둥절한 진아.

"우리 둘이 있는 거... 수화가 본 것 같아. 아니... 지금 강남역에 있는데.. 어떻게 알았지?"

"허.. 수화언니가 우리 둘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대요?"

"몰라... 나도... 나 지금 가봐야되겠다."

"피.. 선배. 나 또 삐져요?" 입을 삐죽내미는 진아.

"오늘 계속 같이 있었잖아. 아니, 최근에 계속 동아리 핑계대고 진아 너 만나줬잖아."

"만나줬...잖아? 허.. 선배 나 만나는 거 선심쓰듯이 만나는 거였어요?" 어이 없어하는 진아.

"아니 그게 아니고... 너도 알면서 그래? 내가 수화랑 사귀는 거 알면서 너 나한테 들이댄거잖아. 그럼 이런 상황은 감안해야하는 거 아니냐구."

"치......" 눈물 글썽이며 뒤돌아서는 진아.

"아.. 왜 또 울어." 그런 진아의 손목을 잡아채는 창호.

진아, 눈물 흘리기 시작하면 마음 약해진 창호는 그런 진아를 안아준다.

"울지마....응?" 진아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창호.

"흑......선배...."

"응?"

"선배....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내 마음 아프게 할 거냐구..요.."

"진아야..."

"얼마나.. 기다려야... 선배.. 나한테 올 거예요...? 수화언니.. 언제 정리할 거냐구..요.."

"하... 진아야... 난 아직..수화랑 헤어지고 싶은 마음...없어..."

"그럼... 계속 이렇게... 나랑 수화언니.. 아니 한수화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거예요...?"

"어쩔 수 없잖아...니가 이해좀 해줘."

"그럼 선배... 애초부터 한수화 정리할 생각 없었던 거예요..? 나 만나면서....? 그럴거면...!! 나 이제 선배... 그만 만날래요...." 창호의 품에서 벗어나는 진아.

"진아야..!!" 다시 진아의 팔목을 붙잡는 창호.

"이거 놔요." 창호를 뿌리치고 가는 진아.

창호, 그대로 진아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때, 예전에 동아리MT에서 물에 뛰어드려던 진아의 모습이 생각나는 창호였다.

"진아야!!!" 달려가서 진아를 뒤에서 안는 창호.

"알았어.. 정리할게.. 대신에... 시간을 좀 줘..." 진아를 더욱 꼭 안는 창호.

어두웠던 진아의 표정은 어느새 사악하게 미소 짓는 얼굴로 변해있었다.

'훗... 역시... 선배의 선택은... 나야.'

.

.

.

버스에 탄 수화, 창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다.

어느새 수화네 집 정류소에 도착하면, 뒤늦게 급하게 버스에서 내리는 수화.

어두운 골목길을 거쳐 집 앞에 도착한 수화.

수화네 집 현관 앞에 누군가 서 있다. 창호였다.

"오빠...!"

"수화야." 어두운 표정의 창호.

"여긴... 왜.. 왔어요." 토라진 말투의 수화.

"너랑 얘기할려고. 근데.. 왜 전화를 그렇게 끊어? 니가 할 말만 하고."

"오빠... 아까... 한국대 앞에서... 진아랑 있던 거 맞죠? 거짓말.. 안 하기로 했잖아요."

"하... 그래. 설명할게. 맞아. 나 걔랑 있었어. 근데.. 단 둘이 있던 거 아냐. 잠깐 회의하다가...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걔랑 나랑 둘이 음료수 좀 사러 나온거라고."

"............."

"그러니까 오해 풀어. 응?"

"근데... 팔짱은 또 왜 껴요..."

"팔짱? 너 직접 봤어? 걔랑 나랑 팔짱 낀 거 봤냐구." 자신있는 듯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창호.

수화, 당당한 창호가 어이없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뒤적거려 장미에게서 전송받은 사진을 창호에게 내민다.

"아......" 몇 시간 전, 한국대 앞에서 자신과 진아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에 당황한 창호.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고 창호를 째려보는 수화.

"한수화. 너 이거 밖에 안 되는 애였냐?" 이내 다시 무덤덤한 말투로 돌아온 창호.

"??"

"사진은 보나마나 누가 찍어서 너한테 보내준 거 같은데...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혼자서 다 오해하고... 오빠 믿는다고 하던 거 다 거짓말이네. 그렇지?"  따지듯 이야기하는 창호.

"창호오빠...!!" 너무나 당당한 창호에게 어이없는 수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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