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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28화 (2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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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흑흑....'

은은하고 아름답게 빛나며 돌아가는 회전목마 속에서 수화는 그렇게 한참동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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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난 진아는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창호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선배....날 위해...하루종일 옆에 있어주셨어...'

그렇게 살며시 창호의 뺨을 어루만지는 진아.

그리고는 창호에게 뽀뽀하려는데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선배..."

"내가 깜빡 잠 들었네... 속은 이제 어때? 괜찮아?"

"네... 푹 자고 나니까... 다 나은 것 같아요...헤헤."

"다행이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는 창호, 흠칫 놀란다.

'벌써... 시간이...!!!'

"진아야. 나 이제 가봐야겠어."

"선배... 나.. 혼자 집에 가도 돼요. 급한 일 있음 먼저 가 봐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

"네에. 그렇다니깐요? 저 이제 쌩쌩한 거 보이시죠? 헤헤"

"알았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가방을 챙겨 재빨리 병실 밖으로 뛰어 나오는 창호.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아내고는 핸드폰을 확인해본다.

'부재중 전화 20통...'

[저 지금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예요. 빨리 와서 같이 놀았음 좋겠당!]

[오빠. 나 놀래킬려구 그러는 거죠? 유치한 장난은 안 먹혀요.헤헤.]

[오빠.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윤창호씨.. 보고싶어요..아주 많이...]

그리고 혼자서 놀이기구를 타며 씩씩하게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전송한 수화.

'오빠. 나 오빠 말대로 멋진 여자 될려구 혼자서도 이렇게 잘 놀구 있어요. 어때요? 멋있죠? 저요.. 오빠의 여자친구로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여자가 될 거예요. '

'수화야..!!!'

재빨리 전화를 거는 창호.

'지금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 집에 들어 갔으려나..? 근데 얘는 왜 핸드폰 충전도 안 하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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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없는 얼굴로 캔디랜드 밖을 빠져 나가는 수화.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자 뛰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수화는 기운 없이 그저 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 수화. 많은 좌석들이 텅텅 비어있는 채로 출발하는 버스.

멍하니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는 수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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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에 계속 수화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창호. 여전히 꺼져 있다. 참다 못해 메세지를 보내는 창호.

[수화야. 너 지금 어디야? 이거 보면 전화좀 해줘.]

연락이 계속 안 오자, 수화의 집으로 향하려던 창호.

'아. 아니지... 지금 집에 찾아간다고 해도... 내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혹시... 화 많이 난 건 아니겠지?? 하아..... 아무리 그래도.... 연락 한 통이라도 해줄걸....'

창호는 비겁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내일 수화한테 연락이 오면 일이 이제야 해결이 되었다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연락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 해야겠다. 그러면 수화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연락이 안와서 바로 집으로 와서 많이 안 기다렸다구... 오히려 내 집안일에 대해 걱정해주기 시작하겠지...'

비겁한 자신만의 예상 답안을 만들면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씻어버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창호였다.

창호는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씻지 않고 진아의 수발을 들어주느라 꼬질꼬질해진 창호의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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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 내리는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수화.

쏟아져 내리고 있는 비가 수화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다.

라디오에서는 마침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가 다가도록...마지막 달력을 넘기도록...너는 결국 오질 않고...새해만 밝아서...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울었어...'

그 노래 속 주인공이 꼭 자신인 것만 같아 소리 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수화.

'...니가 올때까지 나에겐 아직... 12월이라고.'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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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화창한 날씨다.

창호는 아침부터 일어나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음. 이제 곧 있으면 수화한테 연락오겠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가서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을 확인하면.. 아무 메세지도 오지 않았다.

"어라? 오늘은 왜 모닝 문자를 안 보냈지...? 설마..... 어제 많이 기다렸던 건 아니겠지??"

창호는 갑자기 조바심이 나 문자를 빠르게 보내기 시작했다.

[수화야. 어제 많이 기다렸어? 오빠가 미안해. 어제 집안 일 때문에.. 연락 못했어. 우리 이따 만날까? 이거 보면 꼭 전화 줘. 알았지?]

창호는 문자를 보내놓고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명 착한 수화는 자신의 사과에 이내 괜찮다고 할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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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의 집.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들오들 떨며 침대에 누워 있는 수화. 열이 나는지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다.

어젯 밤 비를 흠뻑 맞아 감기 몸살에 걸려버린 수화.

"으...으으.. 추워..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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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오늘은 우리팀이 이겼으니까. 약속대로 맛난 거 쏴라." - 종현

한국대 축구장에서 같은 과 남자들끼리 오전 일찍부터 축구 시합을 한 종현.

"그래야지. 아아, 난 언제 종현이 자식한테 밥 얻어 먹냐? 맨날 지구 앉았어. 어쨌든 가자. 밥 먹으러. " - 상훈

"야, 근데 이제 한국대 밥집은 지겹지 않냐? 맨날 똑같은 데만 가고.. 주말에는 좀 벗어나자. 엉?" - 대산

"그럼 옆으로 넘어갈까? 신화여대 앞에도 맛있는 거 많다던데." - 상훈

"얌마, 뭘 신화여대까지 넘어가냐. 그냥 한국대 앞에서 먹고 일찌감치 헤어지자. 나 이따 약속있어." - 종현

"오오. 종현이 이 자식 너 여친 생겼냐??" - 상훈

"누군데. 누군데. 응?" - 대산

"여친은 무슨. 그냥 아는 동생이다." - 종현

"야, 암튼 신화여대로 넘어 가자!!" - 상훈

신화여대 쪽으로 향하는 종현과 학교 친구들.

15분 정도 걷다보니 신화여대 보인다.

"이야. 신화여대 오랜만에 오네~ 지난 번에 소개팅한 영문과 김모양 참 예뻤는데.." - 상훈

"근데 왜 잘 안 됐어? 그렇게 예쁘면 사귀지 그랬냐?" - 대산

"내가 부담스러웠나봐. 아무래도 한국 최고의 대학교인 한국대에 다니고 있고. 뭐. 생긴 것도 이만하면 미남이고. 뭐하나 빠진 게 없으니까.. 여자들이 나를 좀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지. 그래서 너무 잘나도 문제라니까?" - 상훈

"얌마,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라 그냥 니가 싫었던 거 같은데?" - 대산

"나도 대산이의 의견에 동의를 살~짝 얹어봅니다." - 종현

"뭐?? 이자식들이!!" - 상훈

장난을 치며 걷다보면 어느새 신화여대 앞 밥 집에 도착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밥집으로 들어가는데 종현만 안 들어가고 있다.

'신화여대 오니까.. 수화 생각이 나네...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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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얘는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안되겠다."

수화의 연락을 기다리던 창호는 못참겠는듯 전화를 걸어본다.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어! 충전 했나 보네. 받아라 한수화.'

하지만 신호음이 계속 울리고 있지만 받지 않는 수화였다.

한번 더 전화를 해보는 창호. 하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아... 삐져도 단단히 삐졌나? 아니면... 화장실 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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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울리고 있는 수화의 핸드폰 벨소리.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는 일어설 힘도 없이 침대에서 바닥으로 기어가다시피하여 충전중인 핸드폰을 잡는다.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

수화가 받기도 전에 끊겨버리는 전화.

힘이 다 빠졌는지 그대로 다시 바닥에 엎어져 버리는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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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무적기계과의 건재를 위하여!" - 상훈

"위하여!!!" - 다같이

구호를 외치고는 원샷을 하는 기계과 학생들. 낮부터 술판을 벌리고 있다.

그때 종현의 핸드폰 진동음 울린다. '엄마인가?' 하고 확인해보면 '수화'다.

재빨리 전화받는 종현.

"여보세요?"

"............"

"여보세요? 수화야. 왠일이야?"

"............으으....으으.."

"수화야.. 여보세요??"

"......흑흑......흑..."

수화의 울음 소리가 틀림 없었다.

"수화야! 너 무슨 일 있는거야??"

"흑...." 하고 끊기는 전화.

종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밖으로 뛰어나간다.

"얌마!! 갑자기 어디가!! 야!! 종현아!!"

뛰어나가는 종현의 뒷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는 대산과 상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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