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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요상한 판타지-20화 (20/103)

00020  동아리 MT  =========================================================================

창호가 놀라 뒤를 돌아보면 진아였다.

"진아야.."

"쉿!" 진아는 창호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는 창호의 가슴팍에 폭 안기고는 창호와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었다. 창호는 그대로 얼음처럼 멈춰 서 있었다.

"선배. 잘자요."

"으..응. 너두.. 잘자."

진아는 조심조심히 여자가 있는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창호는 그런 진아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어떻게.. 여자애가..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지?'

창호는 갑자기 아까 진아와 냇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진아의 검은색 레이스 망사 속옷... 브래지어... 망사 팬티.. 그리고 옷을 벗어던지면서도 나를 꼿꼿하게 쳐다보던 진아의 섹시한 눈동자..

창호는 고개를 흔들어보았다. 뭔가 씌여도 단단히 씌인 것 같았다.

'안 돼. 나에겐 수화가 있어. 오늘 딱 한번만 흔들렸을 뿐이야. 아니 딱 한번 진아를 살리려고 응했던 것 뿐이야.'

창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동아리 원들을 더 쎄게 흔들어대었다. 아무리 해도 일어나지 않자 창호는 그저 이불을 대충 덮어주고는 1층의 남자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남자방으로 들어가니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 몇 명은 모여서 마피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종현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창호가 들어오자 눈이 마주쳤다.

창호는 종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형."

"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창호는 종현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뭔데?"

"형.. 수화랑 사귀는 거 맞아요?"

"뭐? 어..? 어.. 근데 그건 왜?"

"근데... 진아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

"진아랑? 진아는 뭐 예전부터 아끼던 동아리 후배이자 동생이지."  창호는 종현의 말투에서 뭔가 시니컬함을 느꼈다.

"확실히 하는 게 좋을거예요."

"야, 너 이 자식이.."

"내일이라도 사람들 앞에서 수화랑 사귄다고. 얘기하세요. 안 그런다면 형이 수화와 진아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뭐? 하하. 걱정마. 내일 당장. 얘기할거니깐." 창호는 자신만만하다는 듯 종현에게 웃어보였다.

어느새 대성리 MT촌에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수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에 가서 씻으려고 화장실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진아가 나온다.

"어머." 진아는 수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진아네. 잘 잤니?" 진아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좋아보였다.

'도대체 뭘 했길래 저렇게 피부가 빤질빤질 삶은 달걀 같을까.'

"아, 네." 진아는 어제 창호와 있을때 보였던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또다시 차갑게 수화를 대하고는 사라졌다.

'참나... 왜 저래 진짜...' 수화는 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부엌에서는 동아리 임원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수화는 혜련을 깨워서 같이 부엌으로 내려가 상 앞에 앉았다.

동아리 임원들은 상에 라면과 김치 음료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화도 재빨리 일어나 임원들을 도왔다.

식탁에 음식이 다 준비되고 다같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남자 방에서 창호와 종현이 나온다.

창호는 수화를 발견하고는 곧장 수화의 옆으로 가 끼어 앉았다.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수화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수화가 라면 한 젓가락을 집으면 그 위에 김치를 올려주었고 음료수를 다 비우면 또 음료수를 채워주었다.

수화는 창호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때 진아가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창호는 계속해서 수화를 챙겨주었고 사람들은 그 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형, 진짜.. 둘이 사귀어요?" 지훈이 물었다.

그러자 창호가 수화의 어깨를 꽉 안으며 말했다.

"응. 우리 사귀어."

창호는 해야할 일을 다 끝마쳤다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라면을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종현은 멀리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화의 웃는 모습과 창호의 담담한 표정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창호가 불안했다.

진아는 루리와 민주 옆에 앉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라면을 떠서 그릇에 담았다.

"정진아. 너 나 좀 보자. " 루리와 민주는 조용한 목소리로 진아에게 무섭게 말하고는 숙소 밖으로 나갔다.

.

.

"너 창호랑 잘 되가는 거 아니었어? 왜 거짓말한거야?" 루리가 따지듯 물었다.

"저... 그게..." 진아는 주눅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 니가 창호랑 잘 되가고 있었는데 수화가 중간에서 가로채갔다며?"

"언니.. 저 그게요..... 실은.. 수화언니가... 저한테..협박을... 창호오빠 포기 안하면... 으흑흑..." 진아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 그랬던..거야? 아니 우리는.. 니가 거짓말 한 줄 알고...진아야.. 울지마.. "루리는 진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니 근데 한수화 진짜 불여시네. 어쩜 이렇게 협박까지 할 수 있져? 게다가 남의 남자까지 빼앗아가고도.. 진짜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 민주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저거.. 나중에 언제 밟아줘야 겠다.. 한수화...너 딱 기다리고 있어..." 루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듯 얘기했다.

숙소에서 들어온 루리와 민주는 수화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진아는 멀리서 창호를 바라보았다. 창호는 수화의 옆자리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질투심이 났다. 진아는 재빨리 쓰러지는 척 연기를 했다.

'쿵'

진아가 바닥에 쓰러지자 루리와 민주가 진아를 잡고 흔들었다.

"진아야. 진아야!!"

동아리 부원들은 일제히 진아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창...호..선배..." 진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창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야!! 윤창호!!" 루리는 큰 목소리로 창호를 불렀고 창호가 달려왔다.

"얘 왜 이래?? 응?" 창호는 놀란 목소리로 진아를 보며 얘기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윤창호 너 진짜 뻔뻔하다. 빨리 진아 데려가서 눕히고 와!" 루리는 창호에게 명령했다.

놀란 창호는 진아를 덥썩 안고는 2층 방으로 향했다.

"진아야..진아야.. 괜찮어? "

"네... 어제.. 술도..많이 마셨구...너무... 추웠었나..봐요.. 몸살끼가.. 콜록.." 진아는 연약한 눈빛과 목소리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창호는 순간 어젯밤 냇가에서 있었던 진아와의 일이 생각났다.

'어제 그 추운날에 그렇게 벗고 있었으니... 감기 걸릴 수 밖에.. 에휴.' 창호는 속으로 생각하며 진아를 가엾게 바라보았다.

창호는 진아를 여자 방에 눕혀놓은 뒤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비어주었다.

"진아야... 따뜻한 방바닥에서 가만히 누워있다보면 괜찮아질거야... 이렇게 좀 쉬고 있어."

창호는 진아의 이불을 한번 더 덮어준 뒤 방을 떠나려 했다. 근데 그때, 진아가 창호의 팔목을 잡는다.

"선배... 조금만.. 같이.. 있어주면 안돼요?"

"그래.. 알았어." 창호는 도로 진아의 옆에 앉았다.

진아는 창호의 손을 꼭 잡았다. 창호 역시 아픈 진아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진아야.. 미안해.. 어제는 내가.. 실수했던 것 같네."

"실수..요?"

"어제 나도 모르게 그만... 너랑 잤어.. 미안.."

진아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난... 선배랑 이렇게 붙어있는 것도.. 좋아.... 그냥 내 곁에서만 떠나지 말아줘요..."

창호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진아에게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창호의 속마음 맨 바닥에서부터 바람끼가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꼭 한 사람만 좋아해야하는 법 있나. 나를 원하는 두 사람 모두에게 내 사랑을 줄 수도 있지않은가. 왜 꼭 한 사람만 사랑해야하는거지. 이렇게 나를 간절하게 원하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날 좋아해주는 사람을... 놓치기는 싫어..'

창호는 잡고 있던 진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진아는 창호가 점점 자신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선배... 나... 소원있어요... "

"소원? 뭔데?"

"저기...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요.."

진아가 가리킨 것은 방 구석에 있는 작은 다락방이었다. 문을 열면 계단이 나오고 그 나무계단을 오르면 작고 낡은 다락방이 나오는 것이었다.

창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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