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동아리 MT =========================================================================
이윽고 산책 동아리 MT날이 다가왔다.
수화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가방을 간소하게 챙기고 집을 나섰다. 현재 시간은 오전 7시.
수화는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로 향했다. 청량리에서 다같이 모여서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빠. 일어났어요? 저 지금 가는 중이예요^^]
1분정도 지난 뒤에 문자가 왔다.
[응. 나는 거의 도착했어. 보고싶다. 우리 자기.]
수화는 창호의 문자를 받고는 얼굴이 빨개지며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네. 오빠. 저두 보고싶어요. 많이. 조금만 기다려요^^]
진아가 둘 사이에 개입했던 이후로 창호는 수화에게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더 잘 챙겨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MT가기 전전날까지 수화네 집과 학교 앞 MT를 오가며 한창 뜨겁게 사랑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수화는 청량리 역 앞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MT를 가는 것인지 바닥에는 여러가지 물품들이 담은 박스를 내려놓고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저기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창호를 발견하였다.
수화는 활짝 웃었다가 이내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서 적당한 미소를 머금고 동아리 무리에게 다가갔다. 수화가 표정 관리를 하는 이유는, 아직 동아리 요원들이 수화랑 창호의 교제 사실을 모르는 터였고, 창호는 진아가 신경이 쓰였었는지 아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수화는 그렇게 창호를 기다려주었고 창호는 그런 수화에게 고마움을 느껴 동아리 MT 술자리에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수화는 동아리 요원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왔어?" 창호 역시 표정관리를 하며 적당히 수화를 반겼다.
"수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만난 종현도 수화를 반겼다.
"자.. 음.. 그럼 지금 진아 빼고 다 온거지? 전화해봐야겠네.." 창호가 진아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그때 창호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진아였다.
"어, 어디야?" 창호는 전화를 받고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수화는 옆에서 창호의 표정을 보며 대충 누구의 전화인지 알 것 같았다.
'저 표정은... 보나마나... 진아겠지...'
수화는 계속해서 창호에게 눈치를 추었고 창호는 그런 수화의 눈초리를 느꼈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종현아. 진아가 길을 못 찾겠나봐. 니가 좀 데리고 와줘. 우리는 먼저 가고 있을게."
"네, 알았어요 형." 종현은 들고 있던 박스를 내려두고는 진아를 데리러 뛰어갔다.
수화는 기뻤다. 자신의 기분을 헤아려주는 창호가 너무나 고마웠다.
"가자." 창호는 수화에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동아리 인원들과 함께 경춘선을 타러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수화는 기분 좋은 웃음을 애써 참으며 창호의 듬직한 뒤를 따라갔다.
종현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진아를 찾아내려했다.
"어... 어디있지?"
"종현선배..?" 누군가 종현의 등을 살짝 쳤다. 종현이 놀라 뒤를 돌아보면 진아였다.
"어, 진아야. 가자. 지금 다들 출발했어."
"창호선배는...요?"
"아, 형은 동아리 인원들 인솔하느라고 먼저 출발했어."
"아, 그렇구나.." 진아는 시무룩했다.
"형 말고 내가 데리러 와서 서운하구나?" 종현은 장난식으로 얘기했다.
"하하. 아니예요. 어서 가요"
"근데.. 진아 요즘 왜이렇게 살이 빠진 것 같지? 얼굴이 핼쓱해졌어. 뭐 안좋은 일 있어?"
"아.. 아녜요. 그냥 요즘 과제랑 시험이 너무 많아서요."
"그렇구나.. 힘들겠네. 가뜩이나 이번에 전공으로만 21학점 듣는다며?"
"아, 네..."
종현은 진아의 표정이 신경쓰여 더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창호는 15명쯤 되는 동아리 인원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곧 있음 열차가 들어오겠다는 신호가 울렸다.
"자, 우리는 이거 탈 거니까 다들 다른데 가지 말고 잘 따라와요."
창호가 열심히 인솔할 동안에 수화는 한국대 공대생 남학생인 지훈, 선규와 신화여대 미대에 다니는 후배인 혜련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화언니, 저 아직두 우리 학교에 대해서 잘 몰라여.. 근처에 어디가 맛집인지도 모르겠구..."
"음... 인터넷치면 많이 나오던데.. 신화여대 맛집이라고 쳐 봐. 엄청 많아. 근데 나는 최근에 갔던 파스타 집이랑 돈까스집이 괜찮더라."
"아, 그래요?? 언니 저랑 다음에 같이 가요오!!"
"그래. 알았어. " 수화는 자신보다 두 살 어린 혜련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아 저두 신화여대 다니는 친구 있어서 맛 집 몇 개 아는데.. 다음에 저도 껴주세요!" 한국대 1학년 신입생인 지훈이었다.
"저두요 누나!! " 한국대 1학년인 선규도 거들었다.
수화는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이 귀여워서 웃었다.
"그래요. 시간날때 놀러와요 맛있는 거 사줄게요."
동아리 사람들을 인솔하던 창호는 멀리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수화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는 신입생 남자 2명은 전혀 질투심이 유발되지 않는 그저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창호는 내심 속으로 안심했다.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는 수화를 예쁘다 생각했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종현이와 진아가 뛰어오고 있었다.
진아는 오자마자 동아리 다른 여임원진들과 자연스레 섞였고, 종현은 수화옆에 섰다.
창호는 갑자기 질투심이 느껴졌다. 다른 남자들이 수화의 옆에 있어도 위기감을 못 느꼈는데 종현은 자신의 적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잘 다녀왔어?" 뛰어와서 이마에 땀이 맺혀있는 종현을 걱정하며 수화가 말했다.
"아, 응. 헥..헥"
수화는 곧장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종현에게 건넸다.
"고마워" 종현은 티슈로 이마의 땀을 훔쳐내었다.
열차가 도착하여 산책 동아리 사람들은 모두 열차게 올랐다.
종현은 웃고 이야기하고 있는 옆의 수화를 보며 '내가 수화를 보고싶어했구나.' 느꼈다. 종현이 술 취한 수화가 택시에서 자신의 어깨에 기댔던 이후로 무언가 수화가 참 사랑스럽고 여성스럽고 약한 여자구나. 느껴왔었다.
그 이후에는 수화가 동아리에 안 나온 날엔 종현이 나오고 종현이 바쁜 날에는 수화가 동아리 활동을 참석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
"휴우.. 나야 뭐. 학교 과제랑 쪽지시험이랑 학교 일에 정신없이 지냈지 뭐." 수화가 한숨쉬며 대답했다.
그때 열차가 급정거했다.
"아앗."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은 채로 서 있던 수화가 앞으로 넘어질 뻔 했는데 종현이 수화의 어깨를 감싸면서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다.
"고..마워.."
수화는 안다치게 도와준 종현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종현의 팔이 낯설게 느껴졌다.
창호는 그 장면을 지켜보고 이야기하고 있던 동아리 사람들과 대충 마무리짓고는 수화에게로 향했다.
"여어, 너네 뭐하는 거야?" 창호가 장난식으로 이야기하며 수화의 어깨에 감싸있던 종현의 팔을 치웠다.
"아, 형. 앞에 열차가 있나봐요.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으응. 맞아요. 나 하마터면 다칠뻔했어요."
창호는 질투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가져야 하는 것은 꼭 가져야 하는 성격이었고 대학교도 한국 최고의 한국대를 들어오기 위해 재수까지 했다. 물론 부모님의 강압적인 교육이 뒷받침 되었었지만.
창호는 수화와 종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창호는 자신의 질투심을 스스로 느끼며 오늘 꼭 술자리에서 수화와의 교제 사실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형, 우리 너무 갈라놓는 거 아니예요?" 종현이 장난치듯 얘기했다.
"응. 맞아. 갈라놓을려고 일부러 그러는거야." 창호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
"아, 형.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까 진짜 같잖아요. 무서워요. "
종현은 수화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창호가 말을 끊어버려서 더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종현은 반대편에 있는 다른 무리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디어 종현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창호는 조용히 수화와 둘 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가방에 뭐 챙겨왔어?"
"아, 이것저것요."
"갈아입을 트레이닝복도 챙겨왔어?" 창호는 내심 기대하며 말했다.
"아, 네.. 갈아입을 옷이랑 또..."
"속옷도 챙겨왔어?" 창호는 더욱 속삭이듯 수화에게 말했다.
수화의 얼굴이 갑자기 발그레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