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불청객 =========================================================================
얼떨결에 가슴팍에 안긴 꽃다발을 받고는 창호를 바라보는 수화.
창호는 수화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수화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을 얻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우와.. 예쁘다.." 향기를 맡으며 금새 얼굴이 풀어진 수화였다.
창호는 수화의 풀어진 표정을 보며 '역시 단순하다니까...' 하며 수화의 손을 덥썩 잡았다.
수화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 역시... 오빠는 날 소중하게 생각했었던 거야...'
창호는 한국대 앞 유명한 떡볶이 집으로 수화를 데려가 먹이고는 한국대 캠퍼스를 가로질르며 학교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멀리서 "창호 선배!!" 하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산책 동아리 부회장 정진아였다.
"선배!!"
"어. 진아야. 수업 잘 들었어?"
"네. 어? 이 분은... 수화언니?"
"아, 안녕하세요.. " - 수화
"언니, 말 편하게 하세요. 제가 언니보다 훨씬 나이도 어린데. 언니 그 꽃은 누가준 거예요? 예쁘다"
"아.. 이거.." -수화
진아는 물어봐놓고는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수화의 말을 짤라먹었다.
"근데 우리 학교에는 무슨 일이에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놀러왔어. "
"선배. 저도 배고픈데.. 저도 껴주면 안 돼요?"
"근데 우리 지금 밥 먹구 산책하는 중인데. "
"아... 그럼 저도 같이 산책할래요. 그래도 되죠?"
"그러자 그럼"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은 진아랑 덥썩 같이 산책을 하게 된 수화는 엄청나게 창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오빠가 착해서 그런걸꺼야... 저렇게 착하니까..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하는거겠지. '
수화는 오빠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산책을 하다가 진아에게도 자신과의 교제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수화는 착하고 듬직하게 느껴지는 창호 옆에 딱 붙어서 산책을 했다. 그리고 창호가 진아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셋은 [진아 - 창호 - 수화] 이렇게 창호를 가운데 낀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와. 선배. 이번 해에도 역시 캠퍼스가 단풍으로 예쁘게 물들었네요.그쵸?헤헤"
진아는 활짝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창호의 팔에 딱 붙으며 말했다. 창호는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조근조근 애교있게 말하는 진아를 보며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우리 학교는 특히 가을에 더 예쁘더라. 그치?"
"네. 아..참. 신화여대는 가을에 어때요? 신대다니는 친구 있어서 학교 앞에만 가봤는데."
"우리학교도 가을에 진짜 예뻐요. 언제 한번 놀러와요. 맛있는 거 사줄게요"
"진짜요? 선배. (창호의 팔짱끼며) 우리 수업끝나구 같이 언니네 학교 놀러갈까요?"
"어, 어? 그럴까..? " 진아의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당황한 창호는 자신도 모르게 '하핫'하며 미소지었다.
수화의 표정은 점점 썩어갔지만 입은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아는 수화의 표정을 읽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창호의 팔짱을 끼며 걸어갔다.
창호는 진아와 오랜 기간동안 동아리 임원활동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었고 또 예전부터 귀여운 동생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창호는 수화가 산책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부터 진아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그때는 진아가 남자친구가 있었을 때였다. 창호와 수화가 만날 무렵 즈음에 진아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진아 역시 산책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부터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동아리 임원 활동을 하며 학교에서 자주 만난 덕분에 창호와 정도 많이 들었고 편하기도 했다. 진아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도 매일매일 보는 창호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소홀해졌기 때문이었다.
진아의 남자친구는 밤늦게 매일 진아의 집을 찾아와서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진아의 마음은 이미 창호에게로 간 뒤였다. 그리고 창호에게 다가가려고 했는데 그때 창호와 수화 둘 사이에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 진아의 마음은 창호가 수화에게 갈 까봐 조금은 다급한 상태였다.
"수화야. 저거 봐봐. 저기 건물 예쁘지? 프랑스에서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야. 중국인들이 와서 가끔 이 건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간다?"
"아, 진짜 예쁘네요. 한국대 건물들은 하나같이 다 아름다운거 같아요."
창호는 진아의 팔짱을 자연스레 빼고 수화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수화는 차근차근 자신을 위해 학교를 안내해주는 창호에게 믿음직스러움을 느꼈고 창호와 더 가까이 붙어서 진아가 둘 사이를 눈치채게끔 행동했다.
진아는 딱 붙어있는 둘을 보며 강한 질투심을 느꼈다. 창호가 수화에게 이런저런 학교 설명을 해줄때마다 끼어들어서 그 건물에 대해 알고 있었는 데도 몰랐던 것처럼 질문 세례를 퍼부어 대며 창호의 관심을 돌리기 바빴다.
그때 수화는 진아가 창호에게 관심이 있음을 직감했다. 수화는 창호가 이제 그만 진아에게 교제 사실을 밝히고 창호에게 가까기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 그리고 저기는. 우리 학교 명물이라고 불리는 '니꼴라'라는 빵집인데 "딸기초코렛파이"가 엄청 싸고 맛있어. 진아는 먹어봤지?"
"아뇨오? 저 아직 안 먹어봤어요. 먹어 보고 싶었는데.. 헤헤!"
"그래? 그럼 저기 가서 한번 먹어볼래? "
"네!"
셋은 니꼴라에 들어가서 딸기초코렛파이 2개를 주문했다.
"응? 선배는 안 드세용?"
"응, 너네 먹으라구. 난 별로 생각 없어서."
창호와 수화는 마주 앉았고, 진아는 창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와...오빠 진짜 맛있어요!" 수화는 딸기초코렛파이를 한 입 가득 물고는 맛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화의 입가에는 딸기크림이 묻었다.
창호는 수화의 입가에 묻은 딸기크림을 닦아주었고 진아는 부글부글 질투를 하고 있었다.
"선배. 아~ 하세용"
"으응? 아..." 창호는 갑작스러웠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진아가 고마웠다.
기분 좋게 파이를 먹고 있던 수화는 둘의 광경을 보고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빵집에서 나온 후 셋은 또 학교 앞 거리를 걸었다. 진아는 계속해서 창호에게 조근조근 말을 걸었고 수화에게는 질문조차 하지 않으며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러자 창호는 수화에게 갑자기 말이 적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수화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수화의 마음은 상할대로 상해있었다.
"오빠, 저 할 말 있어요.." - 수화
"응? 뭔데?" - 창호
"저기요, 자리 좀 비켜주면 안될까요?" - 수화
"왜요? 언니? " - 진아
"오빠랑 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요." - 수화
"음.. 그래 진아야. 시간도 늦었는데 먼저 갈래? "- 창호
"아뇨.. 둘이 할 말 있으면 저 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진아
"그래. 알았어. "- 창호
진아는 창호가 눈치채지 못하게 수화를 차가운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오빠... 우리 사귀는 거... 왜 얘기 안해요?"
"그게... 동아리 내에 소문이 퍼지면 니가 곤란할 것 같아서.."
"저 괜찮은데... 저 친구가 계속 오빠 팔짱끼구 딱 붙는 거.. 싫어요.. "
"아이구. (수화 머리 쓰다듬으며) 우리 수화가 질투났구나? 진아는 그냥 동아리 귀여운 후배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
"그래두요...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음... 우리 동아리가 소문이 좀 빨라서... 뒷 말도 엄청 많아. 그래도 괜찮겠어?"
"네.. 전 상관없어요.."
창호는 진아를 불러냈다.
"진아야."
"네? 선배"
"있잖아. 나.. 수화랑 사귀기로 했어"
"언니랑 선배랑요?"
"응"
"아... 그렇구나..."
진아의 표정은 약간 시무룩해 있었고 수화는 수줍게 웃었다. '이제 더이상은 오빠에게 찝쩍대지 않겠지'
진아는 잠시 말이 없더니 창호의 팔짱을 끼고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 우리 오랜만에 도서관가서 영화봐요. 네??"
창호는 수화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수화의 표정은 약간 화나 있는 듯 했다.
"진아야. 우리 사귄다구 했잖아. 팔짱같은거는 끼지 말아줘. 응?"
창호의 단호한 말투에 진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