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의 요상한 판타지-1화 (1/103)

00001  신입생 환영회   =========================================================================

수화는 여자들만 있는 이기적인 여대 생활에 싫증이 났다.

선배가 이끌어 주는 것도 없고 아프다고 해서 관심가져주는 학우들도 없으며 수업이 끝나면 그저 허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외로웠다. 그나마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모여서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학교 앞 맛집 탐방을 하고, 또 시험기간이면 함께 도서관에서 밤을 새며 새벽에 컵라면을 나눠 먹었던 친구들이 모두 휴학을 해버렸다.

수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난 후 혼자서 터덜터덜 학교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던 '산책 연합 동아리 회원 모집'이 수화의 눈에 띄었다.

'연합 동아리라...!'

연합 동아리는 수화가 속해 있는 신화여대와 그 옆에 있는 학교인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인 한국대와의 연합

동아리였다. 평소 한국대를 동경해왔던 수화는 동아리 모집 포스터를 사진으로 재빨리 찍은 뒤

학교 앞 자취집인 원룸으로 향했다. 자취집으로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포스터에 적힌 이메일 주소로

수화의 대략적인 프로필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났을까...

노트북에서 이메일 알림이 울리자 수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축하합니다. 산책 동아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신입생 환영회가 있을 예정이니 꼭 참석하여 주세요'

수화는 설렜다. 순간 남녀공학이었던 수화의 고등학교 생활이 떠올랐다.

반에 있는 남자들이 수화의 생일 날 사물함에 꽃과 선물들을 가득 넣어놓았던 순간,

남 학우들에게 고백을 받았던 순간, 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남학생들과의 유쾌했던 인사들.

하지만 여대에 오고 나서 수화는 이미 남자에 대한 감을 잃었다.

그리고 여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저 형식적으로 말과 행동을 아끼며 친구들과의 관계를 겨우 유지해 왔다.

수화는 그저 자신의 본성대로 행동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왔던 것이었다.

그렇다. 수화는 '남녀공학형' 인간이었다. 본성대로 행동하는 수화를 남학생들은 흥미있어 하고 귀여워 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매력의 수화를 여초인 여대에서 귀엽게 봐줄리가 없었다.

그래서 수화는 형식적인 여대형 인간이 되어갔던 것이었다.

같은 여학우들에게 소외되지 않으려고 일도 똑부러지게 해왔다.

덕분에 강박증을 소유하게 된 완벽주의자의 수화였다. 하지만 수화는 그런 것을 참 스트레스라고 여겨왔다.

수화는 대학교를 남녀공학으로 갔어야 했다고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를 다시 들어갈 수는 없으니 남자들이 있는 '연합 동아리'라도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었다.

수화는 신입생 환영회에 학교에서만 주구장창 입었던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었다.

자취집을 나서 학교 앞에 있는 보세가게들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예쁜 원피스를 샀다.

수화는 줄곧 보세가게에서 저렴하지만 고급스러워 보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잘 찾아내는

센스가 있었다. 물론 백화점에서 몇 십만원짜리 옷들을 턱턱 살 수 있는 그런 형편도 안되었지만.

이윽고 토요일이 왔다. 신입생 환영회의 장소는 한국대 근처의 어느 술집이었다.

수화는 자취집에서 원피스를 입어보고는 전신 거울 앞에서 자태를 뽐내 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대 근처로 향했다. 그러나 한국대 근처의 술집들은 미로같아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화는 4시 30분 정도에 출발하여 5시까지 도착했어야 했는데 이미 시간은 5시 2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화는 뭔가 자신만이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외감이 들었다.

혹시나 자신이 늦어서 동아리 가입이 거절될까봐, 이미 다들 친해지고 있는데 자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할까봐 이런저런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수화는 핸드폰을 들어 사진첩에서 자신이 찍었던 포스터를 찾았다. 그 곳에서는 연합 동아리 회장 '윤창호'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화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여보세요?" 수컷 냄새가 풀풀 풍기는 굵직한 목소리였다.

"아, 저... 신입생 환영회 가고 있는 중인데요... 아까 도착했는데 길을 못찾고 있어서요..." 수화는 자신도 모르게 툭툭 던지던 말투를 정돈된 여성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지금 어디 계신데요?"

"음... 지금... 한국대 공학관 쪽인데요..."

"그럼 공학관 앞에 계세요. 지금 제가 데리러 갈게요."

전화를 끊고 공학관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수화.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남학생 뿐이었다. 수화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남자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인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화는 자신이 쑥쓰러움을 이기려고 도도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쑥쓰러워하는 여자를 남자들은 안 좋아한단 말이야. 좀더 당당하게.'

고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왠지 익숙치 않은 풍경이었기 때문에 수화는 저도 모르게

등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얼굴에서 행여나 땀이 흐를까 걱정되어 술집가들을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받은 전단지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길 건너에서 두리번거리며 수화가 있는 쪽으로 뛰어오던 남학생이 있었다.

수화는 자기도 모르게 그 남학생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르지 않은 어느정도 단단한 체구.

그리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남자다움. 멀리서부터 오는 그에게 수화는 넋이 나갔다.

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수화는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다가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화는 알고 있었다. 여자가 먼저 다가가는 것보다 남자가 먼저 다가오게 하는 것이

연애에서는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윽고 창호가 길을 건너 수화에게 다가왔다.

"저... 한수화양?"

"아. 네네. 맞아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가워요. 지금 다들 모여서 신입생 환영회 진행중이거든요. 갈까요?"

"아, 네...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화는 창호의 안내로 무사히 술집에 도착했다. 시끌벅적 이미 여러 테이블을 이루어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창호는 수화를 빈자리가 있는 테이블로 안내한 후, 다시 운영진 석으로 갔다.

운영진들은 마이크를 잡고 신입생 환영회 진행을 하고 있었다.

수화는 빈 테이블에 앉았다. 둘러보니 남자 4명에 여자도 수화까지 합해서 총 4명이었다.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웃으며 인사를 던졌다.

"저희 자기 소개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다 끝났거든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적극적인 종현이 말을 꺼냈다.

"아, 저는 신화여대 재학중에 있구요. 이름은 한수화구. 과는 경제학과요.."

"어?? 저희도 신화여대 다니는데 몇학년이세요??"

"3학년이요"

"어어, 저희가 후배네요!!! 언니 반가워요 꺄아아"

테이블에 있던 여학생 3명(지윤, 동연, 혜련)은 모두 신화여대 1학년 신입생이었다.

"저는 한국대 기계과 3학년이구요, 이쪽은 다 2학년이예요" 종현이 남자들의 자기소개를 대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어두컴컴한 술집의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수화 역시 오랜만에 폭탄주를 몇 잔 마시고는 알딸딸한 상태였다.

수화 옆에 있는 여후배 3명도 수화를 선배라고 살뜰히 챙기면서 술에 취해가고 있었다.

술이 들어가자 수화는 말이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화는 어느정도 의식이 있었지만 그냥 몸이 가는대

로 생각이 그저 흐르는 대로 입이 가는 대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화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남자들에게 귀여

워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영진 석에서 운영진들이 마이크를 테스트 하기 시작했다.

"저희 이제 장소를 이동할 건데요. 같이 가실 분들은 저희 따라오시면 돼요."

"언니, 언니도 2차 가실꺼죠?"

"아,, 2차?"

수화는 순간 자신이 2차에 선뜻 가겠다고 말하면 좀 가벼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망설였다.

"언니, 그러지말고 같이 가요오!!"

"...그럴까?..." 하며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알딸딸한 것이 어질어질했다. 꼭 사물들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결국 수화가 휘청거리던 찰나, 종현이 수화를 재빨리 부축해 주었다.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아, 괜찮아요. " 그리고는 다시 휘청거리는 수화였다.

"그러지 말고.. 집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런 수화를 다시 부축해주는 종현이었다.

그러자 앞에 가고 있던 지윤, 동연, 혜련이 수화를 발견하고는 달려온다.

"어머, 언니! 술이 약하신가봐요. 얼마 드시지도 않았던것같은데..?"

"그러게요. 집에 가셔야 되는 거 아니예요??"

수화는 테이블에 있던 물 한 컵을 원샷했다. 그리고 눈을 찡그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았다.

"나, 이제 멀쩡해요. 괜찮아요."

"괜찮기는요. 언니 집이 어디에요?? 학교 근처에요??"

"응.. 학교 근처. 근데 나 진짜 괜찮아요.."

그때 신입생들의 인솔을 돕고 있던 창호가 멀리서 수화를 발견하고는 뛰어온다.

"무슨일이에요?"

"아... 언니가 너무 취해서요..."

"그럼 일찍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언니, 그러지말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요. 네?"

"근데 오늘 이렇게 가면.... 너무 아쉬울꺼 같은데.." 조금은 혀꼬인 목소리의 수화.

"이번 달에 동아리 엠티가 있어요. 그때 더 재밌게 놀면 되죠"

"신화여대 근처면 우리집이랑 멀지도 않네. 제가 데려다줄게요" 종현이 나섰다.

"아, 잘됐다. 그럼 종현이가 데려다 주면 되겠네. 나는 지금 신입생 길 안내 해야 돼서."

"그럴게요. 형. 데려다 주고 포차로 가면 되죠?"

"응. 그럼 부탁할게" 다시 신입생 인솔을 위해 뛰어가는 창호였다.

"그럼 이분들은 저기 동아리 회장님 따라가시구요. 저는 이 분 데려다드리고 이따 그쪽으로 갈게요"

"네!" 지윤, 동연, 혜련이 동시에 대답했다.

종현은 수화를 부축하고는 술 집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근데... 저렇게 언니 처음본 사람이랑 보내도 괜찮은건가?" 지윤이 멀어지는 수화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게..." 동연이 맞장구를 쳤다.

"아냐, 별일 없겠지 뭐. 한국대 저 분.. 좋은 사람 같던데?" 혜련이 해맑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신화여대의 세 명은 웃으며 창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종현은 거리에서 수화를 부축한 채로 택시를 잡고 있다. 택시가 서고 수화를 먼저 태우고는 자신은 나중에 택시에 타는 종현.

수화는 쌩쌩 달리는 택시 안에서 어지러움을 느껴 종현의 어깨에 '툭' 기대고 말았다.

그러자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종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