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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156화 (157/161)

< 광끼 -156 >

사랑하기 좋은 날.

그런 날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이 추운 겨울에도 그런 날만의 매력이 있었다.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 성우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달콤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 차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을까 싶은 나날이었다.

“오빠!”

“응.”

“나 커피 마실 건데. 오빠 것도 타다 줄까요?”

미소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성우가 고맙다며 볼에 뽀뽀를 해주자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미소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 웃음 때문에 성우가 이렇게 빠져든 것일 수도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머그잔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모락모락 피어오는 김과 함께 퍼지는 풍성한 커피 향은 무척 좋았다. 성우가 뜨거운 잔에 입을 대고 살짝 마시자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원두니 뭐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랑 함께하냐의 문제였다. 그가 행복한 미소를 띠며 커피를 마시자 미소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가 타주는 커피가 가장 맛있지?”

“캡슐 커피가 다 똑같지.”

“에~ 표정은 그게 아닌데. 솔직히 말해봐요.”

“아하하하. 항복!”

미소는 그의 품으로 안기며 간지럼을 태웠다.

성우는 커피라도 쏟을까 싶어 서둘러 항복을 외쳤다. 그녀는 그제야 품에서 떨어져 옆에 앉았다. 하지만 이내 우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성우도 그 의미가 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네요.”

“어쩔 수 없지.”

“그냥 빈말이라도 잡아주면 안 되나?”

“다른 멤버한테 폐 끼칠 수 없잖아.”

“치이···”

미소는 입을 뿌루퉁하게 내밀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귀여워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굴리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귀여워 성우는 어쩔 줄 몰랐다.

“이제 나가야 하는데 화장 지워지게 뭐에요.”

“귀여운데 어떻게 해.”

“췌··· 내가 참겠어요.”

“나도 맘 같아서는 한두 달쯤 더 쉬고 싶다.”

성우 역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한 달 짜리 촬영에 불과했지만, 유니버스 시리즈도 들어가야 했다. 그것 때문에 최근 몸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덕분에 미소와 함께 4박 5일의 여행을 와서도 홈트(집에서 하는 운동)에 매진하던 그였다. 덕분에 살짝 희미해지던 그의 복근도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언제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을까요?”

“글쎄 그게 가능할까?”

“뭐에요. 이 부정적인 반응은!”

“이미 데뷔한 이상 사람들 눈을 피하기는 어려우니 그렇지. 그리고 우리 둘 다 인기 없는 그저 그런 수준은 아니잖아.”

연예인들의 연애.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특히 성우는 해외 활동이 무척 많았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장거리 연애는 가소롭게 느껴질 그런 거리였다. 그나마 미소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간도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하지만 단체 행동을 하는 그녀이기에 홀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다.

이럴 때를 보면 성우는 아이돌을 안 하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바이올렛 엔터에 처음 갔을 때 아이돌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굉장히 골치 아팠을 것 같았다. 그때 미소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 그룹 탈퇴할까? 그럼 이렇게 감질나게 만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에이 그러지 마. 나 처제들한테 혼나.”

“그러겠죠?”

블링의 다른 멤버.

성우는 그들을 처제라 불렀다.

자매처럼 지내는 그룹 멤버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때론 그녀들이 부담될 때도 있지만, 숨겨가며 연애하는 둘을 응원하는 지원군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들의 소속사에서는 이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겨우 해외 진출에 성공한 해였다.

그런데 리더격인 미소가 연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갑갑한 노릇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미소 입장에서도 트집 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가기 전에 처제들 선물이나 잔뜩 사자.”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니면 후배라도 소개해줄까?”

“크크큭. 아마 실장님이나 사장님이 이 소리를 들었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걸요.”

둘은 한참 그렇게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서서히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성우는 시계를 슬쩍 한 번 보고 일어서야 했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미소는 공항에서 매니저인 최재윤과 함께 귀국할 예정이었다.

“매니저한테 줄 선물 다 챙겼어?”

“물론이죠. 그런데 이거 선물이 아니라 뇌물 아닌가?”

“그런데 둘이 잘 지냈을까. 걱정되네.”

“하하. 그래도 재윤이와 요한 씨. 두 매니저가 은근히 잘 맞는 거 같던데 걱정하지 마요.”

성우는 마지막으로 통나무 집을 한 번 살폈다.

혹시 놓고 가는 뭔가가 없나 봐야 했다. 그들이 있는 이곳은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도 상당히 먼 아이슬란드였다. 짐을 찾으러 다시 오기는 힘든 그런 곳이었기에 더 신경 쓰였다.

둘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렌트했다.

함께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성우가 나름 신경 쓴 것이었다. 특히 이브날 함박눈이 올 때는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그토록 성우와 두부가 보고 싶어 하던 오로라도 마침내 볼 수 있었다.

하늘 위를 수놓는 초록빛의 신비함.

성우는 오로라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주 오래된 일본 드라마에서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던 대사가 뜬금없이 생각날 정도였다. 물론 그 못지않게 두부와 미소 둘 다 무척 좋아했다.

“아~ 한국에 돌아가면 여기 엄청 그리울 거 같아요.”

“나도 그래.”

“나중에 우리 이런 곳에 집 짓고 살까요?”

“이거 혹시 청혼이야?”

“그럴 리가요!”

미소의 얼굴은 발개졌다.

성우는 이제는 와인색이 아닌 검은색이 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심 속으로 답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두부는 긴 침묵을 깼다. 녀석은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야! 언제까지 여기 서 있을 건데. 안 갈 거야?

‘아직 시간 남았다. 계약 깰 거야?’

-나 갑갑해 죽을 거 같아.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데?

‘비행기 탈 때까지 입 다물고 있기로 했잖아. 아니면 소원 안 들어준다.’

성우의 말에 두부는 잠잠해졌다.

그가 이번 여행을 오면서 내민 조건은 단순한 것이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성우는 녀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로 했다. 아직 뭘 해달라 직접 말한 것은 없기에 조금 불안했지만, 덕분에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그였다.

“자! 현실 세계로 돌아가죠.”

미소는 씩씩하게 외치며 현관을 열었다.

그녀는 그에게 보라는 듯 활기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지붕 위에 쌓여 있던 사람 머리통만 한 눈덩이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지만, 뒤늦게 따라 나간 성우는 무사하지 못했다.

퍼어억!

머리 위로 떨어진 눈 뭉치.

그것은 순식간에 성우를 새하얀 눈사람으로 만들었다. 오전까지 계속 오던 눈이라 단단하게 얼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것을 본 미소는 웃음보가 다시 터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두부는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풉! 그거 쌤통이닷!

*

두부의 소원.

그것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 쉽게 이뤄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시상식에서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라 밝히며 네 이름을 불러 달라고?’

그것도 오스카상이란다.

녀석이 말하는 그 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이었다. 정식 명칭은 아카데미 상. 과연 그걸 죽기 전에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그곳에서 아시아인이 상을 받은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남우 주연상.

자신이 이번 영화로 받을 수 있는 부문은 그것이었다.

이번에 버스커가 상업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평도 좋았다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있었다. 노미네이트(후보 지정)만 되어도 성공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두부가 말한 수상 소감은 상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다른 상은 안 될까?’

-미국에서 가장 큰 상이 그거잖아. 난 전 세계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무슨 관종도 아니고... 낯 뜨겁게 그런 걸 바라는 거야?’

-어허! 남자치고 명예욕이 없는 사람이 있겠어?

‘네가 사람이냐.’

이런 상은 운도 따라야 했다.

과거 데카프리오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그가 남우주연상을 움켜쥐기 위해 걸린 시간이 무려 25년이었다. 그 사이에 노미네이트된 횟수만 다섯 번이 넘었다. 만약 데카프리오가 그저 그런 배우라면 납득했겠지만, 성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어린 조각 미남.

그건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였다.

데카프리오의 연기력은 진짜베기라 할 수 있었다. 어떤 영화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맡은 배역을 실감 나게 연기하는 그였다. 그런 그마저 긴 기다림 끝에 받았던 상이다. 그걸 너무 쉽게 말하는 두부의 말에 성우는 부아가 치밀었다.

‘아 몰랑! 이거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 그런 기간 없지?’

하지만 얼마 후.

성우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아카데미의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에게는 아까운 부분이 있기는 했다. 개봉 시기가 다소 애매한 탓에 골든 글러브(Golden Globe Award)에서는 아예 심사 대상에 들지도 못했다.

골든 글러브는 기자들이 뽑는 상이었다.

할리우드에 출입하는 외신기자협회에 뽑는 이 상은 일종의 전초전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상을 받는 이가 바로 직후에 열리는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었다.

“대박! 형 이러다 정말 상 받는 거 아니에요?”

“설레발 떨지 말고 좀 진정해.”

“이게 얼마나 큰 사건인데요. 한국 사람 가운데 처음인 거 같은데 아니 아시아를 통틀어 처음 아닌가?”

요한의 말에 성우는 미소지었다.

팩트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역대 수상자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이 가운데 아시아권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기쁜 소식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영화 ‘버스커’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버스커는 아카데미에서 총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역대 최다 부문 후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수였다. 언론의 예상으로는 적어도 이 가운데 4~5부문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음악 부문에 있어서는 빼박 수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음향편집상

-음향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

성우는 그 후보 목록을 보며 미소지었다.

영화를 찍으며 고생했던 스태프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담당했던 짐과 전체를 연출을 책임진 서전트 감독이 특히 기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더 기뻐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아자! 의상상도 노미네이트 되었네!”

“형도 고생 많았어요.”

“이거 내가 받는 상도 아닌데 왠지 뿌듯하네.”

“정이 형이 의상 준비 많이 도와준 거 스태프 중에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사실 최정은 의상상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안목과 코디를 눈여겨본 담당자가 컨설팅을 맡길 정도였다. 덕분에 최정은 성우의 의상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나오는 의상에 제법 공을 들였다. 일종의 부업 개념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때 최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우리 당장 턱시도 맞추러 가자.”

“그냥 전에 입던 거 입으면 안 될까요? 아직 상 받는 지도 확정된 게 없는데.”

“어차피 시상식에는 갈 거잖아. 상을 안 받더라도 레드 카펫을 밟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이건 나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무대란 말이야.”

최정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성우는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요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녀석도 최정의 편을 들었다.

“형 전에 입던 거는 좀 오래됐잖아요.”

“하긴 그거 ‘저승에서 온 차사’ 당시에 입었던 거지?”

“그냥 이번 기회에 맞춰요. 비싸 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요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할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최정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은 유명 디자이너의 숍이었다. 맞춤으로 한 벌 뽑으려고 하니 옷값만 1만 달러 가까이 나와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의 시상식 의상 가격을 들으니 이 정도의 금액은 약과에 불과했다.

몇 해 전에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배우.

그녀의 드레스 가격은 무려 200억에 달한다고 최정이 말해주었다. 물론 액세사리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지만, 상상 이상의 금액이었다.

“사실 그게 좀 과한 것이기는 했지.”

“그럼 평균은 얼마 정도인데요?”

“네가 맞추는 이거 정도는 돼.”

1만 달러의 턱시도.

성우는 그 가치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 돈이면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몇 명이나 먹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성우는 시상식 초대장을 보내야 할 곳을 정했다.

‘이번 기회에 부모님도 좀 봬야지.’

< 광끼 -15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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