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54화 (155/161)

< 광끼 -154 >

재촬영은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성우가 옛 인연 때문에 올라선 무대에서 보인 퍼포먼스 덕분이었다. 블링의 멤버인 미소와 함께 선보인 ‘트러블 메이크’는 이른바 대박이었다.

국내를 비롯한 국외까지도 출렁였다.

블링의 소속사가 올린 콘서트 현황 영상 클립은 오튜브에서 급상승 1위까지 올라섰다. 그 영상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수백만 단위를 쉽게 돌파했다.

[미인과 뱀파이어.]

둘에게 이런 별명도 붙었다.

대부분의 시청자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일단 가장 언급이 많이 되는 것은 성우의 춤 솜씨였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수준 또한 매우 높았다. 그가 배우라는 것을 모르고 본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신인 가수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버스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물론 당시 촬영된 무대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니 제작사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소문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하나같이 그때 보았던 성우의 무대를 극찬했다. 그와 함께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아지고 있었다.

[개봉 예정작 : 리리랜드의 감독 서전트가 만든 ‘버스커’를 보는 3가지 포인트]

[주말엔 이 영화 : 뉴욕의 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움을 노래한 ‘버스커’]

[새영화 : 버스커...미국인과 한국인 사이 그 애매한 위치의 이민자 이야기]

[동화 속 꿈을 노래하던 리리랜드와 현실 속 비극을 노래하던 버스커 사이의 간극.]

덕분에 개봉 예정일마저 바뀌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때 개봉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성우도 물론 그 의견에 동의했다. 편집도 재촬영된 내용만 바꿔치기만 하면 되는 마무리 단계였다. 그 외의 프로덕션 작업 대부분이 끝난 상태였다. 개봉관을 급하게 확보하는 일은 힘들었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홍보 일정이 문제였다.

전 세계를 다니며 홍보할 시간이 부족했다.

애초에 월드 투어라는 큰 그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다닐 수는 없었다. 홍보를 하면 할수록 월드 박스오피스의 규모가 달라지니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성우는 개봉까지 한 달 동안 미친 듯이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북미를 돌아다녔다.

거의 배우를 갈아 넣는 수준의 스케줄이었다.

그 미친 일정을 마친 이후에 성우는 진심 피곤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그와 함께 다녔던 또 다른 출연자인 조동주를 비롯해 홍보 직원까지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성우는 한국에서 올리고 있는 빌딩은 물론이고 브로드웨이에 올리기로 확정한 연극의 각본조차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한 달.’

성우가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그 심정은 요한과 최정도 똑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마침내 그 고난의 행군도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개봉일이 다가온 것이었다.

*

LA 외곽 지역의 작은 영화관.

객석을 다 다 합쳐봐야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반도 안 되는 규모의 그곳은 오늘 새로운 영화가 걸렸다. 그 영화의 이름은 ‘버스커’였다.

객석의 가장 뒷자리.

그곳에는 동양인 몇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제법 비장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상영관에 들어오는 어떤 이들도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만약 그 정체를 알았더라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잠시 후 시작 예정인 영화의 주인공.

성우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상영 첫날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한적한 외곽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객석은 제법 많이 비어 있었다. 개봉일이 바뀌며 정말 어렵게 개봉관을 잡은 버스커였다. 그래도 성우와 서전트 감독의 이름값 덕분에 200개관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작품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아크로의 경우에는 시작부터 개봉관이 천여 개가 넘어갔다. 제작사의 덩치와 파워에서 큰 차이가 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첫 주의 흥행 성적에 따라 순식간에 개봉관의 수가 바뀌는 구조라 아직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은근히 느껴지는 불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아직 이른 시간이잖아. 더구나 평일인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조금 있으면 채워질 거예요.”

최정과 요한.

둘은 성우를 달래주었다.

이번 영화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성우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또 흥행에 따라 적지 않은 러닝 개런티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총 흥행의 4.5%.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과거 서전트 감독이 기록한 흥행만큼만 성공한다면 성우에게 떨어지는 금액이 1,8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200억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한국에서 워낙 크게 판을 벌인 그인지라 그 런닝 개런티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때 성우의 핸드폰이 잠깐 울렸다.

진동이 온 느낌에 꺼내 보니 카카톡이 와 있었다. 카카톡을 보낸 이는 지난달 할리우드 볼에서 같이 공연을 했던 블링의 미소였다.

[미소 : (사진 첨부) 저 ‘버스커’ 예매했어요. 동생들이랑 내일 보러 갈 예정인데 완전 기대 중!]

성우는 한참 말없이 그것을 바라봤다.

최근 그녀의 연락은 무척 잦은 편이었다. 그 무대를 끝낸 이후에 블링의 멤버들은 그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아이돌한테 번호를 준 것은 처음인 성우였지만, 설마 연락을 할까 싶었다. 그냥 예의상 받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거의 이틀에 한 번 이상은 카카톡이 왔다.

대부분 안부를 묻거나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오는 그 메시지를 성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헷갈렸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옆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최정이 손을 뻗었다.

그는 순식간에 성우의 손 안에 있던 핸드폰을 빼았아갔다. 평소 성우라면 그렇게 뺏기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딴생각에 빠져 있던 탓에 방어할 수 없었다. 그걸 쥔 채로 최정은 이죽거렸다.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연애에 관련된 거는 우유부단한 거야. 내가 대신 답장 써줄까?”

“제가 뭘 어쨌다고요. 어서 내놔요.”

“누군 속이려고. 너도 이 친구한테 맘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살갑게 좀 대해.”

“서로 바쁜데 뭐 만날 시간이라도 있겠어요?”

“연예인들이 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다 알아서 잘 하더라.”

요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카카톡을 보지 않아도 뻔히 무슨 말인지 알았다. 성우가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티가 났다. 워낙 평소에 그런 일이 없었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성우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 자체가 신기한 그들이었다.

이미 같이 보낸 시간이 6년이 되어갔다.

그동안 오히려 연애는커녕 썸도 한 번 안 탔던 성우였다.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연애 세포가 죽은 상태의 연예인을 관리하는 것이 편하기는 했다. 괜히 뻘짓하고 다니는 녀석들에 비하면 정말 편하게 관리하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너무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많았다. 여자를 멀리해야 하는 종교적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했다.

“당장 답장 보내. 며칠 전처럼 읽씹하지 말고.”

“그때는 엄청 바빴으니 그렇죠. 알겠으니 어서 이리 줘요.”

“내가 옆에서 지켜본다.”

그렇게 말한 이후.

최정은 핸드폰을 돌려줬다.

성우는 다시 카카톡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간단하게 답을 주기로 했다. 최정의 말처럼 읽고 씹어버리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성우 : 활동하느라 바쁠 텐데 고마워.]

[미소 : 오빠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당연히 가서 봐야죠. 그리고 우리가 공연했던 무대도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요.]

[성우 : 편집된 거 보니까 잘 나왔더라.]

[미소 : 다행이네요. (웃음 이모티콘)]

카카톡 반응 속도 0.1초.

미소는 성우가 카톡을 쓰자마자 답을 해줬다.

그것을 보며 성우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와 이렇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었다. 4차원적이지만, 활달한 미소의 성격 덕분에 웃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성우 : 나 모니터하려고 지금 영화관에 와 있는데 시작하네. 나중에 다시 톡 줄게.]

[미소 : 어멋! 알겠어요.]

[성우 : 한국은 지금 자정 넘었지? 좋은 꿈 꿔.]

성우는 그렇게 보낸 이후.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 본 요한과 최정은 소리 낮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동안 객석은 상당히 많이 차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의 초반.

묵직하게 내려앉은 분위기.

비 오는 거리를 배경으로 음악이 흘렀다.

이번 영화에서 몇 안 되는 군무가 들어간 장면이지만, 성우는 촬영 당시를 잊을 수 없었다. 저 장면을 찍기 위해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반나절 가까이 춤췄다. 하지만 당시 불평할 수 없는 것이 무려 50명이 함께 손발을 맞춰야 했다. 그들 모두 자신 못지않게 고생했던 씬이었다.

그 덕분일까?

상영관 내에서의 분위기는 제법 좋았다.

일부 관객은 소리죽여 손뼉까지 치며 리듬을 타는 듯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소음이 났지만, 크게 거슬릴 수준은 아니었다. 성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역시 이번 영화는 음악을 빼면 앙꼬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저녁.

성우는 호텔을 나서지 않았다.

전에 아크로를 개봉했던 그 날과 분위기는 비슷했다. 한국에서 개봉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영화인데 개봉 당일에 느껴지는 조마조마한 감정은 똑같았다. 당시에 기록했던 그만큼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개봉 첫날 성적이 어떨지 궁금함을 참고 그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될까요?”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아까 오전에 영화관에서 빈자리도 제법 있었잖아.”

“원래 이런 영화는 뒷심이 있잖아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영화는 글로벌 흥행이 중요했다.

특히 한국과 아시아가 그 중심이 될 것이었다.

과거 서전트 감독이 내놓은 영화도 북미를 제외하면 한국이 흥행 1위였다. 아직 그쪽에서 정확한 소식은 안 들어왔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을 거란 예상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이올렛 엔터의 강 대표였다. 그는 마침내 ‘버스커’가 개봉한 한국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압도적인 예매율 1위.

심지어 개봉 첫날 조조부터 표가 없었다.

더구나 시사회를 통해 먼저 이 영화를 보았던 평론가들의 평점도 상당히 높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기에 종종 나쁜 평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수준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소식을 들은 성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봐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제 북미 성적만 확인하면 될 텐데. 렉스는 아직 연락 없지?”

“아마 저번처럼 직접 소식을 가지고 호텔로 오지 않을까요.”

“휴우··· 안 되겠다. 요한아 룸서비스로 술 좀 시키자.”

“안주도 필요하죠?”

“물론이지.”

성우의 말에 요한은 수화기를 들었다.

능숙하게 그가 룸서비스를 시킨 이후에 호텔 방안은 적막이 흘렀다. 오롯이 홀로 쾌활한 것은 유부밖에 없었다. 녀석은 뭐가 기분이 그리 좋은지 호텔의 방에서 방으로 계속 뛰어다녔다. 그런 녀석의 우다다를 보며 두부는 핀잔을 주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긴장감은 많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띠잉~!

벨 소리가 울렸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룸서비스인 줄 알았지만, 그가 문을 여니 렉스가 서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머리 위 정수리까지 땀이 차 있었다. 요한이 문을 열자 그는 그 틈으로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우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표정으로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아마 나쁜 성적이었다면 그가 이곳까지 직접 왔을 리가 없었다. 그의 성격상으로 그런 소식은 전화로 끝냈을 것이다. 이미 렉스의 성격 정도는 파악한 성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렉스는 뜸을 들이다 외쳤다.

“기다리던 성적 나왔어!”

< 광끼 -154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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