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53화 (154/161)

< 광끼 -153 >

미국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

이곳은 할리우드 힐 바로 아래 있는 LA 필하모니 하계 공연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클래식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즈와 뮤지컬은 물론 종종 미국과 한국의 가수가 콘서트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 그 무대 위에 성우가 있었다.

그간 손발을 맞춰온 세션과 함께 부르는 노래.

그의 목소리는 아직 텅 비어있는 콘서트홀에 울리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는 것은 저녁이었고 아직은 정수리 위에 해가 있었다.

[There is no exit deep in the dark.]

[The stars fell and lost light. I walked all night in the street.]

영화에 삽입되는 노래.

그것을 부르며 성우는 잠시 후가 기대되었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저 자리가 가득 메워질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에서 온 ’블링’은 생소한 걸그룹이었지만, 그 인기는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결코 낮은 편은 아니었다.

한국 걸그룹 최초의 수식이 붙은 수많은 기록과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빌보드 200 차트에서 10위권, 핫 100 차트에서도 20위권 이내에 들고 있었다. 기존에 미국에 진출했던 이들의 최고 성적이 50위권 밖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티켓 파워도 대단했다.

이 넓은 콘서트홀의 좌석 대부분을 판매했다고 들었다. 물론 이곳의 좌석은 1만 7천석 전부를 팔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번 공연에 8천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적지 않은 수였다. 먼 아시아 나라에서 온 걸그룹이 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성우가 내심 감탄하고 있을 무렵.

그의 무대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와인색의 머릿결이 인상적인 그녀는 좀처럼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이 무대를 눈에 모조리 담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첫 곡이 끝난 직후 누군가 그녀를 뒤에서 덥석 안았다.

“미소 언니!”

“깜짝이야. 릴리 너는 왜 나왔어?”

“하도 안 돌아오니 내가 직접 찾으러 왔지. 어서 가서 리허설 준비해야 해요.”

“그래.”

알겠다는 말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좀처럼 무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눈치챈 릴리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남성이 음향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왜 미소가 이곳에 있는지 알아챘다.

“오호~ 언니 오늘 계 탔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그리고 내가 뭘 어쨌는데?”

“저 사람 유성우잖아. 언니가 엄청 좋... 아얏!”

“아주 다 들리게 동네방네 소문내지그래?”

“그렇다고 꼬집냐.”

릴리는 팔뚝을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도 다시 시작된 성우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것은 그녀 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느 사이에 다가온 나머지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와··· 대박.”

“저 실력으로 왜 배우를 해?”

“연기는 더 잘하잖아. 전에 소문 들어보니까 춤도 그렇게 잘 춘다고 하더라.”

“누가 그래요?”

“우리 안무 봐주는 한솔 선생님이 저 오라버니 소속사에 있었다고 하던데.”

“도대체 못하는 게 뭐래요?”

4명의 소녀.

특히 리더인 미소의 반응이 돋보였다.

이른바 팀의 비주얼 담당이라 할 수 있는 그녀였다.

남자 연예인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허다했지만, 그녀가 호감을 보이는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멤버들은 더더욱 성우를 눈여겨봤다.

“같이 무대에 한번 서보고 싶다.”

“언니의 소원 이뤄줄까?”

“에이 말도 안 되지.”

무대가 장난은 아니었다.

그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뒤따른다.

하나의 노래라도 허투루 준비하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연 직전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성우의 무대를 오르는 것도 더더욱 불가능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준비한 무대인데 말도 안 되었다. 하지만 릴리는 자신 있게 웃었다.

“내일이면 언니 생일이잖아. 선물로 내가 노력 좀 해볼게. 나만 믿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당장 30분 후부터 리허설인데 미소는 큰일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머지 멤버를 데리고 대기실로 향할 뿐 릴리를 잡지는 않았다.

잠시 후.

성우의 대기실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그가 막 바이올렛 엔터에 들어갈 무렵. 안무를 봐주었던 안무 트레이너 구한솔이 이곳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먼 미국에서 보니 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거죠?”

“너는 예전 그대로구나.”

“에이~ 그러는 형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회사로 옮기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쪽에 계셨군요.”

“요즘에는 블링이들 안무를 짜주고 있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무대를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은근히 그가 짠 안무가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조금 있다가 그 친구들 리허설이죠? 안무 좀 구경해야겠네요.”

“하하. 혹시라도 보고 악평은 삼가해줘.”

“제가 뭐 그럴 실력이나 되나요.”

“너 정도면 국내에서 손꼽히지. 너보다 춤 실력이 모자란 채로 데뷔한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데.”

한솔의 그 말은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미 데뷔한 아이돌이나 연습생들 가운데 성우만큼 재능이 넘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 실력을 보여주지 않는 성우가 야속할 정도였다. 사실 그 때문에 그가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 애들이 너 리허설하는 거 보고 완전 빠져버렸더라.”

“고마운 이야기네요.”

“그래서 말인데 그 친구들이 콘서트에 게스트로 잠시 나와줄 수 없냐고 물어보더라고.”

“얼굴만 비추면 되는 건가요?”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사실 더한 것을 요청해도 해줘야 했다.

그들이 협조해준 덕에 재촬영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고마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한솔의 말에 성우는 안색을 굳혔다.

“댄스요?”

“왜 예전에 ‘트러블 메이크’이라고 그 노래 기억나?”

“물론 알죠. 제가 군대 있을 때 그 노래만 나오면 아주 난리도 아니었죠.”

“그럼 대충 안무는 기억하고 있겠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성우는 곧바로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그건 못한다고 정색했다. 괜히 남의 무대를 망치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솔은 굉장히 절실해 보였다.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남자 상대역으로 올라가기로 연습한 소속사 녀석이 화장실에서 나오지를 않아. 해외에 처음 나왔다는데 물갈이하는 거 같아.”

“아직 공연 시간도 꽤 남았는데 괜찮아지겠죠.”

“그것만 믿고 기다리다가 사고 나면 어쩌냐. 이번이 얘네들 첫 해외 공연인데 제발 이번 한 번만 부탁 좀 하자.”

한솔은 무척 절실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을 보니 성우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런 그에게 한솔은 1~2시간만 배우면 충분하지 않냐는 말을 덧붙였다. 성우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겠어요.”

*

해가 떨어진 직후.

‘버스커’의 재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성우와 세션이 연주하는 음악은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객석 중간중간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들의 정체는 성우도 나중에 알았다.

그의 팬카페 ‘페르세우스’에 가입한 팬들이었다. 성우가 이 공연을 연습하며 올린 SNS를 보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 같았다. 그들은 성우의 노래에 가장 열정적으로 반응했고 그만큼 공연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촬영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우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객석에서 큰 환호성이 터졌다.

서전트 감독의 표정을 봤을 때, 제법 그림이 잘 나온 것 같았다. 촬영할 기회는 딱 1번에 불과했지만, 실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만족할만한 무대였다. 성우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멘트를 이어갔다.

“그럼 이번 무대의 진짜 주인공을 소개하겠습니다. 블링!”

그는 소리높여 외쳤다.

그러자 무대 전면에서 화려한 불꽃 터졌다.

그와 동시에 전주가 흘러나오며 무대 뒤에서 네 명의 여인이 뛰어나왔다. 그것을 본 성우는 무대 옆으로 빠져나왔다. 여기까지가 그가 해야 할 역할의 끝이었다.

빈틈이 없는 군무와 중독성 강한 멜로디.

왜 그녀들의 노래가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지 알 것 같았다. 성우는 멍하니 그 무대를 보다가 첫 곡이 끝난 이후에야 대기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스태프는 갈아입을 옷부터 내밀었다.

“메이크업 수정하시고 20분 후에 들어가실 거예요.”

트러블 메이크.

그 노래까지 끝내야 진짜 끝이었다.

그러나 성우는 그 무대를 앞두고 무척 긴장했다. 조금 전에 끝냈던 무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그런 감정이었다. 사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미소라는 이름의 여인.

그녀 때문에 성우는 부담되었다.

리허설에서 겪은 그녀의 관능적인 모습은 대단했다. 오죽하면 이미 말라 죽은 것 같았던 성우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정말 모처럼 느낀 그 미묘한 감정 때문에 리허설을 하면서 NG도 상당히 많이 냈다.

엉덩이에 손을 대는 장면.

서로 끌어안고 속삭이는 장면.

초밀착 하는 그런 안무 포인트마다 성우는 입술이 말라왔다. 계속 프로답게 일하자며 되뇌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 순간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성우도 남자였다.

-완전 여우네. 여우야.

두부마저 인정할 정도였다.

어쨌든 눈을 딱 감고 무대에 오를 셈이었다.

어쩌면 그에게도 큰 도전이 될 무대였다. 지금까지 연기 생활을 하면서 그런 끈적거리는 연기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 순간 성우는 오기가 들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3분 후에 시작됩니다. 무대 뒤로 이동해주세요.”

때마침 무대 화장도 끝났다.

진한 아이쉐도우에 약간 창백한 얼굴까지.

마치 관능미가 넘치는 뱀파이어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성우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무척 낯설었지만, 또한 안도가 되기도 했다. 마치 마스크를 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닌 느낌.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퇴폐적인 관능미를 오늘 제대로 한 번 뿌려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가 평소 전혀 보여주지 않았던 매력이었다. 약간 거만해 보일 그런 눈빛을 뿜어내며 그는 무대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를 미소가 서 있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제가 오히려 부탁드려야죠.”

“편하게 말 놓으세요.”

“나중에 봐서요. 하하. 이번 무대에서는 아까처럼 실수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성우의 말에 그녀는 웃었다.

사실 성우 못지않게 미소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연예계를 꿈꾸던 그녀였다. 그것은 미소와 같은 그룹의 동생들도 모두 알 정도였다. 방안을 꾸며 놓은 성우의 온갖 굿즈부터 영화 포스터 등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오히려 제가 실수 안 하면 다행이죠.”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희 차례네요. 가실까요?”

성우는 손을 내밀었다.

마치 에스코트하는 듯한 성우의 몸놀림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약속되어 있던 입장 세레모니였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둘이 무대 위에 나타나자 콘서트홀은 술렁거렸다. 설마 둘이 이렇게 같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멋! 이번 무대는 같이 하는 거야?”

“뭐지 둘이 엄청 잘 어울리는데.”

“꺄아아~ 대박!”

팬들의 함성이 잠잠해지기 전.

트러블 메이크 특유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휘파람과 함께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성우는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한국에서 온 이들은 어떤 노래인지 알아채고는 곧 환호성을 보냈다. 이 무대가 어떻게 꾸며질지 상상이 된 듯했다.

[휘이히히~ 휘이휘휘~]

성우는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나쁜 남자의 삐딱함과 함께 치명적인 매력.

그것을 숨김없이 보여주자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정작 큰 환호성이 나온 것은 안무가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농염한 몸놀림으로 춤을 추는 미소.

그녀를 더듬는 듯한 안무는 착시 효과를 일으켰다. 다들 그의 나쁜 손에 웅성거렸지만, 성우는 결백했다. 남들이 보면 오해할 정도여도 그의 손바닥은 미소의 살결에서 0.5cm의 공백을 두고 있었다. 그래도 안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것이 많았다. 그 모습에 다들 자지러졌다.

평소 보여주던 모습을 깨는 순간이었다.

성우 못지않게 미소도 언제나 발랄한 소녀 같은 모습만 보였다. 그러나 콘서트가 가지는 묘미가 여기 있었다. 활동할 때 TV로 보여주던 모습을 깨는 순간 팬들은 환호한다. 그렇게 그 무대는 엄청난 반응과 함께 국내를 비롯해 국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성우와 미소. 둘의 환상적인 케미가 돋보이는 무대]

[블링 미국 콘서트에 나타난 유성우, 그 인연은 어디부터?]

[화끈하고 쌔끈한 무대! 8천 팬을 열광시키다.]

[콘서트를 관람한 팬들이 뽑은 최고의 순간은 ‘트러블 메이크’]

[유성우의 첫 열애설? 과연 그 소문은 과연 진짜일까?]

[올해 가장 섹시한 무대로 뽑힌 미티어(성우의 미국 별명)의 황홀한 무대!]

< 광끼 -15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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