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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150화 (151/161)

< 광끼 -150 >

성우가 꺼낸 말.

그것은 정말 뜬금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브로드웨이에 가자는 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주이호는 평소 그답지 않게 멍한 표정으로 성우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그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주이호는 그런 그를 향해 호통을 쳤다.

“두서없이 앞뒤 자르지 말고 제대로 말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자고요. 작두 멤버끼리요.”

“그게 가능해?”

“불가능해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성우는 자신 있게 말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그동안 꽤 골치 아팠던 그였다.

덕분에 자신의 빌딩을 세우는 것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홍 작가한테 시나리오를 받은 이후.

줄곧 이 계획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미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개월 동안 그는 홍 작가와 긴밀하게 연락하며 이 순간을 준비했다. 덕분에 둘이 통화한 전화는 수도 없이 많았고 메일도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 와중에 해결책을 찾았다.

그 결과가 바로 작두였다.

성우는 함께 연기할 배우가 필요했고 홍 작가는 뛰어난 연출가가 필요했다. 작두가 함께하면 두 가지의 고민 모두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물론 무대를 잡는 것부터 아직 문제는 아직 산더미 같았다. 그 고난을 헤쳐가는데 가장 적임자가 주이호였다. 하지만 그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 여기 놔두고 그냥 못가지. 매월 임대료가 얼마인데 그냥 놀려. 두 달만 쉬어도 나는 그대로 파산이야.”

“여기는 그냥 접으세요.”

“뭐?”

주이호의 표정은 험악해졌다.

자신한테 이 무대가 어떤 의미인지 성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접으라는 말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까지 어렵게 지켜온 이곳을 폄하하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성우가 하는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50석 규모의 무대를 같은 가격에 임대해드릴게요.”

“그런 곳이 어딨어. 그 정도면 지금 임대료의 두 배는 더 줘야 하는데.”

“저한테 있어요. 그런 곳이.”

“그냥 이 이야기 못 들은 거로 하자.”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 규모를 반값에 불과한 금액에 줄 곳은 없었다. 매달 수백만 원 이상의 손해를 보는 짓을 할 건물주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성우는 그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3D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여줬다.

“제가 특별히 처음으로 보여 드리는 거예요. 1년 후면 완공될 곳인데 어떠세요?”

“시설 좋네. 뮤지컬 무대라 해도 믿겠는데?”

“뮤지컬도 가능할 수준의 음향 시설도 넣을 예정이에요. 돈이 좀 많이 깨지겠지만 말이죠.”

“마치 네 것처럼 말한다?”

“5번 출구 앞쪽에 공사 들어간 곳 아시죠?”

“두 달 전부터 허물던데 왜?”

“그곳이 바로 제 빌딩이 올라갈 곳이거든요.”

그 말에 두부가 야유를 보냈다.

벼락부자가 돈 자랑하는 것처럼 들린다나? 하여튼 그의 말에 주이호는 눈만 끔뻑이며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성우가 그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자 그제야 초점이 제대로 돌아왔다.

“400평의 연극만을 위한 멀티플렉스! 완전 멋지지 않아요?”

“그걸 만들 거라고?”

“네. 설계 사무실에서 보여준 건물 외관도 보여드릴까요?”

주이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과연 건물이 지어지면 그곳의 임대가 정말 가능한지 궁금한 눈치였다. 성우는 빌딩을 짓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작두에 임대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걸 강조하며 성우는 설명을 이어갔다.

“건물에 150석 규모의 무대가 네 곳이에요. 일부러 실험적인 연극도 올릴 수 있도록 50석 규모의 소극장도 준비했어요. 그곳까지 합치면 하루에 펼쳐지는 무대가 7~8종류가 되죠.”

“상당히 크구나.”

“지상 10층에 지하 3층짜리 건물이니까요. ”

“주차 문제도 없겠네.”

“그것 때문에 지하 주차장 공사비가 어마어마해요.”

성우는 공사 견적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가 그토록 주차장 마련에 힘을 쏟는 이유는 하나였다.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오는 이들 대부분 주차 문제에 골치를 썩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더 편하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그 부분을 고려해야 했다. 주이호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술을 겨우 뗐다.

“지금 바로 답을 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성우는 싱긋 웃었다.

당장 답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신이야 브로드웨이는 이제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였다. 출연료가 문제지 출연 자체가 문제가 될 리 없었다. 하지만 극단 작두의 진출은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면 힘들 것이 분명했다.

“물론이죠. 1년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이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1년이라···”

“그리고 단원들의 의견도 물어봐 주시고요.”

“걔들이야 오히려 돈 내고 참가하라고 해도 할걸. 브로드웨이가 꿈인 녀석이 한둘이냐?”

성우도 그건 인정했다.

자신이라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해외의 유명 무대에서 겪는 경험은 돈을 주고도 배우지 못할 것들이었다.

물론 어려움도 많이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하나하나가 나중에 연기 활동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그것은 자신이 할리우드에서의 작업을 통해 충분히 느낀 것이었다.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

주이호의 연락은 금방 오지 않았다.

그의 고민은 생각보다 상당히 깊은 것 같았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이뤄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과 비슷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미국으로 가서 성공할 거란 보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도박과도 같은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사흘이 지난 후.

마침내 그의 연락이 왔다.

약간 상기된 그의 목소리는 뭔가 느낌이 좋았다. 주이호는 대학로에서 잠깐 볼 수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요한아.”

“네?”

“설계 사무실에서 준 거 챙겨라. 지금 나가야겠다.”

“대학로에 가시는 거예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부를 살피러 갔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사료를 줄 타이밍이 애매해졌다. 텅 비어버린 녀석의 식기에 사료를 쏟자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그걸 들었는지 유부는 어디선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아마 녀석에게는 세상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이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 돼냥이~ 아껴 먹고 있어.”

성우는 한 차례 유부를 쓰다듬었다.

그런 이후에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녀석은 성우가 나가는 소리를 분명 들었을 텐데 전혀 신경도 안 썼다. 눈앞에 쌓인 사료를 탐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두부가 비아냥거렸다.

-저게 돼지야 고양이야? 조만간에 배 끌고 다닐 거 같아.

‘우리 귀여운 유부한테 그러지 마라.’

-하여간 집사부터 정신 상태를 뜯어 고쳐야 해. 그래야 저 비만이 사라지지.

사실 성우도 살짝 포기했다.

녀석은 다이어트 의지가 부족했다.

와라즈에서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자연 속에서 보여준 모습을 이곳에서 바라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정글에서 1~2년쯤 살다가 나와야 할 것 같았다. 저 비만을 없애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할 것 같았다.

30분 후.

성우는 대학로에 도착했다.

그가 작두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에는 제법 많은 인원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성우와 같은 초창기 멤버인 철호, 상준이 두 형은 물론이고 혜정이 누나까지 보였다.

“다들 안 바쁘세요?”

“우리가 너보다 더 바쁘겠어?”

“누나 보고 싶지 않았어?”

“작두에 대형 폭탄을 떨어뜨린 게 너냐?”

세 사람은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성우를 둘러싸며 포옹을 했다. 갑작스러운 그 상황에 성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을 무렵. 주이호 단장이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 녀석들도 같이 가겠데.”

“같이요?”

성우는 그들을 둘러봤다.

아직 작두의 무대를 지키고 있는 상준이 형을 제외하고 철민이 형과 혜정이 누나는 소속사가 있는 배우였다. 특히 누나 같은 경우에는 한참 잘 나가고 있는데 그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네 이름 좀 팔았지. 그랬더니 실장님이 승낙해주시던데.”

“그렇게 쉽게요?”

“대신 우현이와 소속사 배우 두어 명을 꽂을 수 없을까 물어보더라.”

“그건 제가 나중에 이야기해볼게요.”

같은 회사 소속의 혜정이 누나.

그녀를 그냥 쉽게 내주지는 않을 거란 생각은 했다. 대신 유망주 몇 명을 책임지라는 이야기인데 끼워팔기를 그냥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갑은 무조건 성우와 홍 작가였다.

문제는 철민이 형이었다.

혜정이 누나와 달리 그의 사정은 복잡했다. 소속사에서는 이번 미국행을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었다.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고 혜정이 누나가 옆으로 다가와 알려주었다.

“형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어차피 계약 기간도 거의 끝나가는데 상관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첫 연극을 할 때 이 무대 위에서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기억 안 나?”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나는 그 꿈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가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성우는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돈도 없고 인기도 없는 그들이었다.

무대를 마친 이후에 이곳에서 깡소주를 마시고는 했다. 그럴 때면 종종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것이 그들을 버틸 수 있게 만들던 하나의 요소였다. 그 꿈은 작두 멤버 전체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게 이뤄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뭔가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것이었다. 철민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소속사나 그런 것은 나중에 고민할 거란 말에 혜정이 누나가 격려의 의미로 등을 두드렸다.

“우쭈쭈~ 우리 철민이 다 컸네.”

“에잇!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그래요?”

“히히히.”

성우는 그들 너머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1기를 제외한 2기부터 5기까지의 인원이 총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무대의 경험조차 아직 가져보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이른바 연기의 숙련도를 높이는 과정의 멤버였다.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데려갈 생각은 아니지?

두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무조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프로 중의 프로가 모이는 미국의 무대였다. 그런 곳에서 수준 이하의 무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미 기본기부터 경험까지 충분한 1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옥석을 골라내야 했다. 적정 수준의 출연자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반 이상은 떨궈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우는 주이호 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장님. 인원이 너무 많아요.”

“일부러 같이 갈 생각 있는 녀석들은 다 오라고 했어. 네가 직접 골라내야지.”

“제가요?”

“다들 공평하게 오디션을 볼 기회를 줄 거야. 네가 직접 심사해.”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남한테 평가를 받아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남의 연기를 보고 직접 평가를 내린 적은 없었다. 갑자기 오디션의 심사 의원이 되라는 이야기에 난처했다. 그때 작두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저기 또 다른 심사의원이 들어오네.”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홍근석 작가가 보였다.

그는 방금 이곳에 온 것은 아닌 듯 굉장히 편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낚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성우에게 주이호가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몰라서 요한이 녀석 통해서 작가님이랑 직접 통화해봤거든. 시간이 되신다고 하셔서 오늘 오디션에 초대했어.”

“설마 이것 때문에 대답을 늦게 주신 거예요?”

“미국에서 한두 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거는 아니잖아. 어제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서 반나절 내내 나를 설득하더라. 그거에 넘어갔지.”

심사의원은 셋으로 구성되었다.

성우와 주이호 그리고 홍근석이 자리를 잡자 다들 술렁였다. 갑작스러운 오디션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중에는 성우와 지난 ‘작은 행복’의 무대를 함께 했던 후배들도 보였다.

나머지 1기도 그냥 노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후배들을 위해 이번 오디션의 진행요원을 자처했다. 매년 오디션으로 각 기수를 뽑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들 세 명은 능숙하게 준비 과정을 마쳤다. 이윽고 준비가 끝나자 혜정과 상준은 상대역을 해주기로 했고 철민은 진행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때 주이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대 코앞에 앉아있던 그는 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이 장소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오디션이라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려왔다.

“자! 연극 ‘열정(Passion)’의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 광끼 -15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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