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42화 (143/161)

< 광끼 -142 >

바닥에 널브러진 종이.

그 풍경은 무척 난잡했다.

누가 보면 도둑이 들와서 난장판을 만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방의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성우는 그 위에 엎드려 있었다.

눈만 끔벅이며 그는 멍하게 허공을 바라봤다. 그런 그에게 유부가 슬그머니 다가섰다. 녀석은 ‘집사 녀석이 미쳤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 차례 울더니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냐아옹.”

그 순간.

성우가 갑자기 몸부림쳤다.

발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격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 전혀 안 떠올라.”

유부는 깜짝 놀랐다.

녀석은 벌떡 일어서 성우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는 후다닥 달려가 자신의 보금자리에 숨었다. 아무리 봐도 집사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두부의 반응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다고 곡이 써져?

성우의 발악.

그것은 창작의 고통이었다.

직접 곡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 물론 쉽게 나오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힘들 줄은 상상도 못 한 그였다.

무사귀가 전해준 능력.

그것 가운데 작사와 작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거 그 능력을 전해준 무사귀가 나름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런데 그 방법만 안다고 노래가 갑자기 툭 튀어나올 리 없었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두부의 말에 넘어간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도 한몫을 했다. 성우는 한참이나 바닥에 엎드려 허우적거리다 일어났다. 그러자 그의 품에 붙어있던 하얀 종이가 허공에 나풀거렸다.

“성우 형. 식사 안 해요?”

그때 요한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녀석은 이제 거의 치료가 끝나 매니저 업무로 돌아왔다. 물론 성우는 더 쉬라고 강요했지만, 요한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마 자신의 치료비로 쓴 비용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너 같으면 지금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냐?”

“어차피 다른 작곡가한테도 의뢰 줬다면서요. 정 안되면 그거 쓰면 되죠. 만약 그렇다고 해도 형한테 누가 뭐라고 할 건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어쩌면 고집일 수 있었다.

요한의 말대로 그가 실패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영화에 자신이 만든 곡 하나는 넣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영화는 두 번 다시 찍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비슷한 영화와 배역은 선호하지 않는 연기자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진작 먹고 왔죠. 지금 9시에요.”

“벌써 그렇게 됐어?”

성우는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미 짙게 내려앉은 어둠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도시의 반짝이는 야경이 화려하게 빛났다. 그제야 허기가 느껴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나 성우는 중간에 엉거주춤하게 멈췄다.

-왜?

‘멜로디 라인이 왜 나오지 않는 걸까?’

-미친놈. 밥 먹으러 간다더니 갑자기 무슨 짓이야?

‘내가 시나리오에 나오는 그 외로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씬 9-3을 떠올렸다.

솔직히 그 감정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일말의 외로움은 있기 마련이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낯선 타향에 홀로 버려졌던 주인공의 그 마음을 100% 알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요한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뭐 하세요?”

성우의 눈빛은 갑자기 반짝였다.

그 심리를 잘 아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았다.

성우가 요한을 잡아다 앉히자 녀석은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의아한 눈치였다. 그런 그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네 이야기 좀 자세하게 들어보자.”

“무슨 이야기를요?”

“너 처음에 캐나다 갔을 당시의 이야기들. 내가 간곡하게 부탁할게.”

“저 지금 엄청 배고픈데요.”

요한은 까칠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성우는 살살 달래야 했다.

자신도 그렇지만, 배고플 때 건드리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성우는 웃으면서 요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요한이 소스라치며 놀라며 품에서 벗어났다.

“아야! 거기 총 맞은 데 거든요.”

“아직도 아파?”

“형이 건드리니까 그렇죠.”

“미안! 먹을 거는 룸서비스로 시켜줄까?”

“호텔 밥에 질려서 나가서 먹으려고 하는 거예요. 아니 밥 먹으러 나갈 것처럼 일어서시더니 갑자기 뭐에요?”

“그래? 그러면 일단 나가자.”

30분 후.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이후.

성우는 와인을 시켜 놓고 요한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그제야 입을 떼 이야기를 들려줬다. 요한은 중학교 시절에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당시 부모님도 함께 가려 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1년 정도를 혼자 캐나다에서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거기까지는 성우도 들어서 아는 내용이었다.

“그럼 혼자 1년 동안 있었던 거야?”

“물론 홈스테이를 해주신 현지 분이 제 보호자 역할을 해주셨죠.”

“아~ 기숙사는 아니었구나. 한국분이었어?”

“아니요. 캐나다 사람이었어요. 좋은 분이었지만, 처음에 제가 영어가 안 돼서 엄청 힘들었죠.”

요한은 당시의 여러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하지만 성우가 바라는 것은 그것과 다른 것이었다. 그 당시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외로움의 본질을 듣고 싶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요한의 표현 능력이 상당히 좋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웠어요. 그런데 침대 밑으로 꺼질 정도로 외로움이 몰려 왔죠.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어요. 어둠 속에는 저 혼자뿐이었죠. 가능하다면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러나 저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죠.”

그가 느낀 당시의 느낌.

그것은 굉장히 절절하고 또 암울했다.

삶의 질을 따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어렸고 또 연약하던 아이였다. 그제야 성우는 약간이나마 시나리오 속 주인공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성우는 순간 울컥했다.

그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해 와인잔을 들었다. 그것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하면서 녀석도 그랬는지 잔을 들어 와인을 벌컥 이며 단숨에 마셨다. 성우는 순식간에 비어버린 잔을 다시 채워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여자친구를 사귀었죠.”

“어?”

예상외의 답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요한의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었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번 영화의 가장 주축이 되는 스토리 라인이기도 했다. 물론 영화에서는 음악적인 동료와 팬 그리고 주인공을 걱정해주는 주변인들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빨리 호텔로 가자.”

“아직 와인 반이나 남았는데요.”

“들고 오든지.”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일어섰다.

간질간질한 것이 머릿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 느낌을 절대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서!”

*

이른 아침.

성우는 베개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직 잠에서 설깨어 비몽사몽 하는 와중이었다. 그것은 지난밤 옆에서 잠든 유부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발을 허공에 뻗어 발버둥 치다 다시 축 늘어졌다.

하지만 성우는 그럴 수 없었다.

어젯밤 늦게 쓴 곡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나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막바지 때는 술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 속의 감정.

그걸 그대로 음표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의 반쯤 넋을 놓고 쓴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렴풋하게 남은 기억 속에 매우 만족하며 펜을 놓았던 것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성우는 곧장 그걸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쏴아아악!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물.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까지 마친 이후에야 그는 그 악보를 찾았다. 하지만 악보는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5살쯤 된 아이가 휘갈긴 것처럼 보일 수준이었다. 거기에 유부가 지난밤에 뭘 했는지 일부분은 젖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수성펜으로 쓰지 않은 것

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상당수의 멜로디 라인은 살아 있었다.

성우는 열심히 그것을 다시 옮겨 적었다. 그리고 기타를 들어 연주를 해봤다.

따라라앙.

서정적인 핑거스타일 연주.

뭔가 느낌이 팍 오는 그런 것이 있었다.

성우는 그걸 듣고 뭔가 중간에 걸리는 곳이 없나 살폈다. 확실히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술을 먹고 쓴 곡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걸 하나하나 고쳐가다 보니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될 무렵.

마침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직 가사도 없는 그런 상태지만, 제법 마음에 들었다. 성우는 그 수정된 악보를 들고 곧장 제작진이 렌탈한 연습실로 향했다. 그가 그곳에 도착하자 짐이 그를 반겨 주었다.

“아직 연습 시간도 아닌데 무슨 일이야?”

“그러는 짐은요?”

“나는 세션들이랑 음악 작업 할 게 있어서 왔지. 작곡은 잘 되고 있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왔어요.”

성우는 악보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래도 다시 옮겨 적은 탓에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잠시 그걸 보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만족한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성우가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느낌 좋네! 그래도 연주를 들어봐야 확실히 알 것 같아.”

“아직 기타 라인 밖에 못 잡았어요.”

“지금 당장 더 넣는 것도 무리지. 어차피 영화 속에서는 혼자 독주하는 장면이 훨씬 더 많잖아.”

“그렇기는 하죠.”

“그럼 일단 들려줘 봐.”

짐의 말에 성우는 기타를 꺼냈다.

그리고 차분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짐과 약속이 되어 있던 세션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들은 말없이 성우의 연주를 듣다가 마침내 끝나자 한마디씩 던졌다.

“오! 이거는 처음 듣는 곡인데 좋네요.”

“뭔가 블루스 느낌이 강해서 무척 감미로워요.”

“가사는 아직 없나요?”

하나같이 호평이었다.

그것은 음악 감독인 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곧장 합격이라는 통보를 성우에게 줬다. 그제야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세련되게 만들어줄 편곡자 좀 찾아주세요.”

“내가 너를 좋게 보는 게 바로 이거야.”

“네?”

“자만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 말에 두부가 콧방귀를 꼈다.

상당히 차가운 반응이었기에 성우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 콧방귀의 의미는 도대체 뭐야?’

-저 녀석이 아직 너를 잘 모르나 보다.

‘닥치고 있어.’

성우는 두부의 말을 무시했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자신의 곡이 반쯤 통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직 작사의 단계가 남아 있었다. 성우는 그걸 자신이 쓸까 하다가 능력을 벗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그런 재능은 그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그 역시 짐에게

부탁했다.

“그럼 편곡자와 작사가를 알아봐 주면 되는 거지?”

“그건 짐한테 좀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노래의 완성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짐과 전문 인력의 손을 거쳐 곡은 5일 만에 돌아왔다. 그것을 받아든 성우는 확실히 전과 달라진 것을 느껴졌다. 자신이 만든 것이 날 것 그대로의 재료였다면 이제는 완벽한 요리가 된 기분이었다.

더구나 가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내용은 요한이 전해준 그 감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성우가 그걸 짐에게 말하자 그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줬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쓴 가사니 그렇지.’

성우는 무척 놀랐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노래의 가사까지 그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을 주었던 이는 한국에서도 손에 꼽았다. 그걸 눈치챈 짐은 그를 크랭크인에 초대할 예정이라 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는 크랭크인이 된 날.

성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남자를 만났다. 설마 미국에서 그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성우의 다른 크루인 요한과 최정도 마찬가지였다.

“형··· 저기 저 사람 눈에 익지 않아요?”

“나도 그런데.”

“정이 형이랑 너도 참 눈썰미가 없다. 같이 작업도 했었는데 그걸 못 알아 봐?”

“음··· 설마 홍 작가님?”

요한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로 과거에 드라마 [저승에서 온 차사]를 집필한 홍근석 작가였다. 성우는 설마 이번 영화 [버스커]를 각색한 Colley Hong이 그와 동일 인물일 줄은 몰랐다.

그 실력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유학을 간다더니 설마 할리우드로 온 줄은 몰랐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 그는 홍길동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도 우연이지 아니라 인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성우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한 남자에게 관심이 쏠렸다.

“도대체 저 작가는 정체가 뭐야?”

< 광끼 -1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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