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41화 (142/161)

< 광끼 -141 >

센트럴 파크의 외곽.

평소라면 한적한 분위기였을 곳이었다.

대부분 이 시간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산책 또는 잠시 짬을 내 조깅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온갖 스피커와 악기.

그것들이 공원 한쪽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 행인들은 그걸 보고 그냥 지나쳤다. 그냥 무관심이면 다행이었다.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오히려 인상을 썼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업무에 방해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두워질 무렵.

퇴근하는 이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악기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악기를 잡고 서둘러 공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체크를 시작했다.

“췍췍! 마이크 테스트.”

“기타 소리 안 들리네요. 조금 더 올려줘요.”

“이쪽 스피커 하울링이 약간 나는데 체크 부탁합니다.”

“오케이. 저는 준비 끝났어요.”

악기를 잡고 있는 세션.

그들은 생각보다 빨리 준비가 끝났다.

애초에 세팅이 워낙 잘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소 어수선한 준비 과정은 몇 분간 이어졌다. 그 과정이 끝나자 그제야 중앙에 세워진 마이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브라운색의 곱슬머리인 그녀는 자연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녀를 본 이들은 곧

장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 저 여자는 케이티 아냐?”

“와··· 케이티 블라이즈가 왜 여기서 공연을 하지?”

“대박! SNS에 올려야지.”

“아니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케이티 블라이즈.

그녀는 지난해 미국내 여자가수 가운데 탑 클래스로 올라선 가수였다. 앨범 판매량만으로 따지면 10위권 이내에 들어갈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도시의 카네기홀도 아닌 센트럴 파크 앞에서 버스킹을 한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주변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렸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자 그녀는 [Sweet Day]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은 작년에 많은 인기를 누린 대표곡 가운데 하나였다.

[Sweet Day~ Sorry I Never told you]

잔잔한 그녀의 음색.

그리고 세션의 탄탄한 연주 실력.

그 두 가지가 합쳐지자 상당한 시너지를 불러 모았다. 사실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곳에 비하면 무척 열악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의 표정은 벌써 푹 빠진 것처럼 보여졌다.

한 곡을 마친 이후.

그녀는 가볍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물론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대부분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또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녀는 자신의 두 번째 노래를 시작했다.

[Sweet Day] 못지않게 인기를 얻은 곡이었다. 그 노래를 마칠 무렵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광장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이 깜짝 콘서트를 찍고 있었다. 노래를 마친 이후에 케이티는 그런 그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

다.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왜 여기서 노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네!”

“평소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 부탁 때문이에요. 덕분에 제가 처음으로 버스킹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네요.”

그녀는 한쪽 구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눈을 마주친 짐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오늘 그녀가 이 무대에 오른 이유는 오롯이 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남녀 사이의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그.

둘은 음악적인 색이 비슷했다.

과거 서전트 감독의 파티 장소에서 짐 하트를 만난 후. 둘은 상당히 쿵짝이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를 뮤즈라 말하기는 어려워도 앞으로 많은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 수준은 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지난 앨범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앨범의 타이틀 곡 [Sweet Day].

조금 전에 부른 그 노래도 사실 짐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 곡의 작곡과 작사는 자신이 했지만, 상당 부분 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인연 덕분에 그녀는 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케이티는 짐에게 윙크를 보내고 다시 관객을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저는 여기까지예요. 이제 오늘 이 무대의 진짜 주인공이 나올 예정이랍니다.”

“우우~ 한 곡 더 불러줘요.”

“그러고 싶지만 아마 누군지 알면 깜짝 놀라실 텐데요.”

케이티는 그렇게 말하고 반응을 살폈다.

확실히 수많은 무대를 올라서인지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다들 궁금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네!!”

“그런데 말이죠. 올해 가장 핫한 배우가 과연 누굴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견은 분분했다.

여러 후보가 나왔지만, 꽤 많은 이들이 성우를 꼽았다. 그런 반응을 보며 케이티는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마침내 입술을 떼 성우를 소개했다.

“성우 씨 어서 나와요.”

다들 그녀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유성우라면 ‘아크로’의 주인공이었다.

액션으로 유명한 그가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과연 어떤 무대를 보일지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더구나 일부 극성인 케이티의 남성 팬들은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 그녀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성우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랐다.

야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버스킹을 하면서 심지가 제법 굵어진 느낌이었다. 그는 앞서 공연을 하면서 사람을 모아준 케이티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 너무 고마워요.”

“저 때문에 분위기가 묘해졌네요.”

“괜찮아요. 나중에 시간 되시면 짐이랑 같이 식사 한번 하시죠.”

“저 그 약속 잊지 않을 거예요. 관객들이 기다리니 저는 이만 내려갈게요.”

케이티가 내려간 이후.

성우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티를 벗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성우가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적어도 수백 명 정도는 모인 것 같았다. 일부 소수의 사람이 쏟아내던 야유는 순식간에 묻혀 버렸다.

-오~! 역시 이런 환호성이 있어야 진짜 무대지.

성우는 관객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이 무대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스태프들이 사람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선호도 조사를 통해 선곡을 완료해야 했다. 성우는 그 용도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자 자신들의 손으로 영화 삽입곡을 선정하는 말에 다들 살짝 흥분하기 시작했다. 뭔가 적극적으로 눈빛이 변하는 것 같았다.

성우는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길거리 공연이 끝난 이후.

성우는 곧장 호텔로 향했다.

14곡이나 쉴 틈 없이 불렀으니 당연히 피곤할 만 했다. 온통 땀에 젖은 성우는 샤워가 필요했다. 차가운 물줄기 아래에서 성우는 오늘 공연을 떠올려봤다.

거리에서 선보인 라이브 음악.

그것도 밴드를 이뤄 진행된 공연이었다.

평소 혼자 진행하던 버스킹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확실히 다양한 악기가 함께하니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성우는 그들과 음률을 맞추며 모처럼 밴드와 함께하는 공연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함께하는 게 더 재미있어.’

하지만 더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영화에서는 밴드가 나오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촬영 막바지가 되어서야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나올 예정이었다. 어쩌면 오늘 함께했던 세션도 그날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었다. 성우는 그 촬영이 벌써 기대되었다.

-언제까지 샤워할 거야? 음악 감독이랑 회의하러 가야지.

‘벌써 그렇게 됐나?’

-너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은 지 10분은 됐어.

두부에 말에 성우는 정신을 차렸다.

샤워 부스 밖에 걸린 시계를 보니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가능하면 오늘은 그냥 쉬고 싶었지만, 시간이 무척 촉박했다. 어서 이걸 정해줘야 촬영이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 촬영을 끝낸 이후에 음악 작업을 한다지만, 배우가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하는 이번 영화는 시작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10분 후.

성우는 짐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방안은 제법 붐비고 있었다. 다들 오늘 공연의 최종 스코어를 체크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벌써 샤워 끝냈어?”

“남자가 하는 샤워가 다 그렇죠 뭐.”

“하긴 나도 비슷해. 일단 이쪽으로 와서 앉아.”

짐은 의자 하나를 비워줬다.

성우가 그곳에 앉자 그는 리스트 하나를 보여줬다. 그곳에는 현재 집계된 스코어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게 최종은 아니라고 했다. 수백 명이 모인 곳이기에 스티커를 붙이는 판을 여러 개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Alone이 1순위네요?”

잔잔한 통기타로 부르는 노래.

그 짙은 호소력은 곡 전체가 흐른다.

성우는 전체 14곡 가운데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 시나리오의 정수만 모아 놓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짐도 충분히 동의했다. 애초에 이 곡을 의뢰하면서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그건 이미 너도 예상했던 거잖아.”

“아무래도 이게 타이틀로 가야겠죠?”

“물론이지. 이것보다 더 어울리는 노래는 찾기 어려울 거야.”

“하긴 영화 스토리에 딱 맞는 이 노래를 빼놓을 수는 없죠. 이것은 무조건 확정이네요.”

“문제는 나머지 곡인데.”

2위부터 5위.

5위부터 10위.

이 사이의 득표가 문제였다.

거의 몇 표 차이로 치열한 순위 싸움 중이었다.

최종 순위는 모든 스티커의 수를 파악한 이후에야 나올 것 같았다. 덕분에 성우와 짐은 골치가 아팠다. 덕분에 그 둘은 시나리오와 곡의 순위표를 펼쳐 놓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촬영되는 영상과 따로 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짐이 준비한 곡은 삽입할 위치가 각각 있었다.

“상위권에 있는 3번과 6번은 순위도 비슷하고 삽입할 씬도 겹치는데요. 이거는 어떻게 해요?”

“둘 다 넣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나는 버려야지. 음악 감독을 하면서 그 정도는 흔한 일이야.”

“아깝네요.”

“어차피 남는 곡들 다 사간다며.”

성우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곡 하나가 자신에게 떨어진 것이었다.

“하긴 저로서는 감사할 뿐이죠.”

“그런데 그거 사서 어쩌려고?”

“나중에 심심하면 앨범이나 하나 내볼까 해서요. 아니면 친구를 줘도 되고요.”

“너한테 들어온 거니까 아무한테나 주면 안 돼.”

“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씬 9-3에 들어가는 후보군은 다 순위가 저조한데 큰일이네요.”

“나도 그게 마음에 좀 걸려.”

중후반부에 삽입되는 노래.

그곳에 적당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짐이 준비한 곡이 두 개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둘 다 최하위권에 맴돌고 있었다. 성우가 그걸 지적하자 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 들어가는 곡은 그냥 새로 준비할게.”

“촬영이 당장 열흘 후인데 시간이 가능하겠어요?”

“서전트 그 녀석한테는 미안하지만, 평이 좋지 않은 곡인 줄 알면서 그냥 넣을 수는 없지. 그리고 이 씬의 촬영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잖아.”

“그건 감독님들끼리 알아서 조율해주세요.”

성우는 그 이상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괜히 그의 영역에 침범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문제가 되는 씬 9-3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어린 시절 자신을 홀로 두고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낡은 기타를 찾아내는 순간이었다.

낯선 세계의 던져진 현실.

아무도 내 편이 없었던 과거.

그리고 전혀 보이지 않는 미래.

그것들을 노래를 통해 투영시켜야 했다.

특히 과거에 관련된 부분은 어려웠다.

그때의 그 감정은 서운함과 야속함이 기본이 되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어쩌면 흔히 말하는 한국인의 ’한(恨)’을 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노래로 만들어?’

-한이라는 것이 말이야...

‘시끄러.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신나지?’

-그게 아니라. 그 기분을 이 친구들이 어떻게 아냐 이거지. 네가 미국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듯 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두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녀석이 하는 말을 듣고 성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에게 너무 큰 것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은근히 그 제안이 솔깃한 성우였다.

-그냥 네가 직접 곡을 만들어.

< 광끼 -141 > 끝

ⓒ l살별l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