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40화 (141/161)

< 광끼 -140 >

거리에서 펼치는 음악.

그것은 상당한 중독성이 있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난감해하던 것도 이제 사라졌다. 역시 사람이란 적응이 빠른 동물이었다. 이제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렇게 온전히 음악과 교감을 즐길 수 있게 되니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난 성우였다.

‘방구석 음악보다 백 배 좋다.’

물론 이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에게 보여지는 반응은 실력과 비례했다.

만약 그가 차를 타고 지나치며 봤던 버스커 정도의 실력이었다면? 지금 같은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맘때쯤 성우의 일과는 단순했다.

낮에는 빈둥거리다 저녁이 되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브로드웨이에 걸려있는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성우는 한국에 있는 주이호 단장과 작두의 단원이 생각났다. 그들과 함께 이곳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막연한 꿈이었다.

가장 처음 그가 연예계에 투신했을 때.

최종 목표로 삼았던 곳이 바로 여기 브로드웨이였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던 브로드웨이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곳에서 공연하는 게 불가능하다 여겨지진 않았다. 성우는 그런 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야야! 늦었다.

성우는 시계를 바라봤다.

그러자 벌써 8시 30분이었다.

시간에 맞춰서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가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는 매일 그를 기다리는 팬들 때문이었다. 저녁 9시만 되면 어김없이 센트럴 파크 주변에 나타나는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둘러 나가야겠네.”

“또 나가시는 거예요? 매일 나가면 안 피곤해요?”

“재미있으니 가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며칠 내내 함께했더니 손에 착 감기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손에 익숙하게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의 설정상 이 기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물려진 유산 가운데 하나였다. 당연히 세월의 흔적은 물론이고 절대 어색하면 안 되는 물품이었다.

“그러다 아놀드에게 들키면 잔소리 엄청날 텐데.”

“안 들키면 되지. 너 입 조심해.”

“제 입 무거운 거 아시잖아요. 혹시라도 찾으면 운동갔다고 할께요.”

“아니야. 운동한다고 하면 택견 알려달라고 찾으러 다닐게 분명해.”

일단 우현은 자신의 편이었다.

같은 방을 쓰고 있으니 처음부터 포섭해야 했다. 매일 저녁 기타를 들고 나가는데 녀석에게 안 걸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우현은 그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거기 잠시 스톱!”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성우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야 했다.

고개를 돌리니 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상태로 아놀드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따돌리고 나가려는 성우를 붙잡아 의기양양해 보였다.

“아···아놀드 씨.”

“혼자 어딜 가시나요?”

“브로드웨이에 공연 예약해 놓은 게 있어서요.”

“공연 보러 가시는 분의 복장은 아닌데요.”

아놀드는 성우의 옷차림을 지적했다.

구질구질한 후드티에 기타로 추정되는 가방까지 메고 있었다.

당연히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여기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놀드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아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버스킹하는 것까지는 안 말릴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앞으로 절대 혼자 나가지 마세요.”

“감시받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자꾸 이러시면 아예 이쪽 방으로 옮겨오겠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양호할 수 없었다.

대신 하나의 조건을 아놀드에게 걸었다. 그것은 공연할 때 최소 10m 이상은 떨어지라는 요청이었다. 아놀드는 그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았지만, 기나긴 설득 끝에 합의했다.

“아이쿠! 늦었다.”

*

그 시각.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JFK).

비행기에서 내린 남자 한 명이 서둘러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뭐가 그리 바쁜지 총총 걷는 걸음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바로 성우가 출연 예정인 [버스커]의 음악 감독 짐 하트였다.

“크라운 플라자 호텔로 가주세요.”

그가 탄 택시는 곧장 출발했다.

호텔까지 가는 뉴욕의 밤거리는 제법 막혔다. 짐은 시계를 연신 바라봤다. 혹시 자기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잠들지 않았을까 살짝 걱정되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성우에게 전화했지만, 그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짐은 굉장히 조초해 했다.

오죽하면 택시를 모는 기사가 흘깃 뒤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음악 감독으로서 준비를 마쳐야 하는 프리 스튜디오의 데드 라인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최종 리스트를 뽑지 못한 상태였다.

“이 곡이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그의 가방 속에 든 CD와 핸드폰.

그 안에 이번 영화에 사용될 무려 20곡의 샘플이 들어있었다. 하나같이 유명 작곡가와 작사가가 참여한 곡이었다. 보통 영화에 사용되는 곡이 10곡 남짓한데 이처럼 많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뭐가 더 좋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 직면한 짐은 뉴욕으로 날아와야 했다. 지금은 직접 노래를 부를 성우의 의견이 필요했다. 보통 다른 영화였다면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담감 때문에 그게 쉽지 않았다. 이 영화 한 편에 오랜 친구인 서전트 감독의 운명이 달

려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요금은 70달러에요.”

“나머지는 팁이에요.”

짐은 백 달러 지폐를 냈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곧장 호텔 안으로 향했다. 딱히 짐도 없기에 움직이는데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안에 들어선 그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막상 도착했지만, 성우가 머무는 방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렉스를 통해 어렵게

매니저인 요한과 연락해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음악 감독 짐 하트입니다.”

“성우 형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이시죠?”

요한의 얼굴은 무척 수척했다.

어딘가 아파 보이는 그를 보고 짐은 난처했다.

쉬는데 방해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일이 우선이었기에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우 씨를 만나려고 왔는데 연락이 안 돼요.”

“혹시 약속을 따로 안 잡으셨나요?”

“네. 원래는 이틀 후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연락도 못 하고 바로 왔어요.”

“일단 같이 올라가시죠.”

요한은 앞장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짐이 들어섰고 엘리베이터는 그들이 머무는 층을 향해 빠르게 올라갔다. 요한이 성우의 방 앞으로 가서 벨을 누르자 우현이 고개를 내밀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어! 요한이 형. 벌써 그렇게 움직여도 돼요?”

“손님이 왔는데 정이 형이 영어가 안 되잖아.”

“그럼 저를 부르시지.”

“성우 형 왜 전화를 안 받아?”

요한의 질문에 우현은 멈칫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요한이 업무에 복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니저였다. 그런데 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요즘 싸돌아다니는 것이 성우였다. 혹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잠시 고민하던 우현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지금 형 없는데요. 조금 멀리 나갔어요.”

“도대체 말도 없이 어디 갔는데?”

“그건 제가 말하기 좀 곤란하네요. 아! 아놀드 씨와 같이 나갔어요. 전화 안 받으면 아놀드한테 하시면 돼요.”

그 말을 듣고 요한은 짐작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성우를 한두 해 보는 것이 아니기에 감이 딱 온 것이었다. 최근에 저녁을 먹고 난 뒤 쏜살같이 사라지는 이유가 분명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핸드폰을 꺼내 아놀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를

마친 요한은 짐을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 당장 만나셔야 하는 건가요?”

“급한 거라 그래요. 부탁할게요.”

“그럼 센트럴 파크 남쪽의 그랜드 아미 플라자쪽으로 가세요. 거기 있다고 하네요.”

“거기서 도대체 뭘 하는데요?”

“일단 가보시면 알 거예요.”

요한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그리고 혹시 길이 어긋날지 몰라 아놀드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걸 받아든 짐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벌써 잠자리에 들었으면 어쩌나 고민했던 그였다.

20분 후.

짐은 곧장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주변을 살폈지만, 성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웠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가 애타게 찾던 성우였다. 그제야 짐은 그가 왜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지 깨달

았다.

“뭐야. 버스킹하고 있었어?”

그는 성우의 재능이 뛰어나다 여겼다.

하지만 이처럼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버스킹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는 영화였다. 그가 하고 있는 공연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서자 꽤 많은 이들이 성우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모두 성우의 진짜 정체는 모

르는 것 같았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성우는 한국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는 평소 좋아하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였다. 이제 마지막 20대를 지나치고 있는 그에게 많은 생각을 주는 노래였다. 그가 이번에 버스킹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 노래의 인기가 제법 좋다는 것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이해하는 것 같

았다.

그러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아직 캘리포니아에 있어야 하는 짐 하트 음악감독이었다. 그는 말없이 사람들 틈에 서 있었다. 성우가 노래를 부르며 살짝 손을 흔들자 관객의 시선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덕분에 그의 얼굴은 제법 빨개졌는데 그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렇게 오늘의 거리 공연은 끝났다.

짐을 발견했을 때가 마침 마지막 곡을 부르고 앙코르를 부른 찰나였다. 대부분 아쉬움에 한 곡 더 해달라 요청했지만, 성우는 내일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기타를 등에 둘러멨다.

“짐!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내일모레잖아요?”

“곡 선택이 너무 힘들어. 나 좀 도와줘야겠어.”

“얼마나 좋은 곡을 많이 만들었길래 그래요?”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엄청 기대되는데요.”

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삽입되는 곡들은 자신의 노래였다.

그가 직접 부르고 또 앨범으로 나올 예정이었다. 전에 U-Bro 당시에는 유일한 그 녀석을 보조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주도해야 할 때였다. 그런 그를 보고 짐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일단 한 번 들어 봐. CD는 호텔로 돌아가서 줄게.”

“좋죠. 저기 잠시 앉을까요.”

“그러자.”

한적한 곳에 놓인 벤치.

그곳에 앉아 성우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느 사이 둘 옆에는 아놀드가 다가왔다. 성우는 간단하게 둘을 인사시키고 곡에 집중했다.

총 20개의 트랙.

그 가운데 성우의 몫은 14개였다.

나머지는 영화에 참여하는 다른 배우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성우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연주와 가이드가 얹힌 그 노래들을 신중하게 들었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니 짐이 고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칠 노릇이네요. 이걸 어떻게 골라내요?”

“그렇지?”

“시나리오대로 찍으면 많아야 7곡이죠?”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로 영화에서 부르는 곡은 다섯 곡 정도야.”

하나하나가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영화가 아니라 콘서트 영상이 될 것 같았다. 하나당 2~3분씩 잡아도 10곡이면 대충 런닝 타임의 30%가 된다. 잠시 고민하던 성우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음악은 듣는 사람이 중요하죠.”

“그렇지.”

“그럼 저희가 고르지 말고 이 자리에서 들려주고 사람들이 고르게 하죠.”

“영화 찍기도 전에 음원을 공개한다고?”

“저작권 등록만 해놓으면 걱정할 거 없죠. 깜짝 공연으로 슬쩍 영화 홍보도 좀 하고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영화의 제작비가 상당히 오버했다. 유명 작곡가와 작사가의 작품이라 곡당 비용이 억대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모두를 사오면 음악 작업으로 허용된 비용을 한참 벗어났다.

짐은 그게 문제라 지적했다.

그러자 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같이 성우의 마음에 쏙드는 곡이었다. 이른바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었다.

“나머지 곡은 제가 살게요.”

< 광끼 -14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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