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39화 (140/161)

< 광끼 -139 >

New York City (NYC)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한때 미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엄청나게 큰 도시다. 지금은 워싱턴에게 수도의 역할을 넘겼지만, 경제와 문화의 수도는 아직 뉴욕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경제의 중심지 월 스트리트.

문화의 중심지 브로드웨이.

도심의 여유를 즐기는 센트럴 파크.

한때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타임스퀘어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 자유의 여신상.

그 모든 것이 이 도시에 있었다.

성우는 공항에 내려 숙소로 향했다.

그의 두 눈은 도시의 풍경을 담느라 바빴다. 그런 그에게 아놀드가 말을 걸었다.

“뉴욕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맞아요. 저번에 홍보 투어 때 이곳 뉴욕에는 오지 않았거든요. 아놀드 씨는요?”

“저도 자주 왔던 거는 아니에요. 업무차 서너 번 정도가 전부였죠.”

하긴 땅 넓이가 엄청났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거리가 약 4천 km.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의 열 배 정도 되는 수치였다.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망정이지 승용차로는 횡단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그들이 탄 택시가 붉은 신호등을 받아 멈췄다.

“이곳도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네요.”

“캘리포니아도 만만치 않지만, 중심부 기준으로 보면 여기보단 낫죠.”

“그러게요.”

성우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건물 귀퉁이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기타를 하나 들고 있는 그는 뭔가를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우가 창문을 내리려고 하자 아놀드가 만류했다.

“위험하니까 내리지 말아요.”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매번 그러기도 미안했다.

그도 나름 자신의 일을 완수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대신 음악이 들릴 수 있도록 살짝 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자 그 남자의 노랫소리가 작게나마 들렸다.

[What if we let them fall behind~]

듣자마자 누구 노래인지 알 것 같았다.

남아프리카 출신에 트로이 시반의 YOUTH.

몇 년 전에 발매된 이 노래는 청춘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성우도 종종 듣는 노래라 반가웠다. 하지만, 정작 이 곡을 커버하는 버스커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듣기에 굉장히 민망할 수준의 음악이었다. 성우가 창문을 올리려던 찰나에 택시가 다시 출발했다.

-조금 실망이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저건 좀 아니다. 귀가 고통스러운 기분이었어.

‘막귀 주제에.’

사실 두부의 음악 취향은 좀 독특했다.

조선 시대 사람답게 창이나 마당극 이런 걸 좋아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메탈 같이 강렬한 음악을 선호했다. 반면에 성우는 재즈와 일반적인 팝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때부터 둘은 음악 이야기를 했다.

두부와 함께 나누는 대화에 아놀드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한참 말없이 밖을 보는 성우를 흘깃 본 그는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정체되는 도로를 그렇게 달리니 마침내 호텔이 보였다.

Crown Plaza.

호텔 건물은 무척 높았다.

성우가 이곳을 점찍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이 주변이 뉴욕의 중심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걸어서 1km 가면 센트럴 파크가 있었고 한 블록 너머에는 도시를 관통하는 브로드웨이가 나왔다. 둘은 택시에서 내려 짐을 꺼내 로비로 향했다. 그러자 최정이 그를 반겨주었다.

“왔어?”

“요한이는요?”

“방에서 쉬고 있지. 오전에 이 근처 병원에 다녀왔더니 피곤한가 봐.”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퇴원하기는 했지만, 당분간 종종 병원에 오가야 했다. 덕분에 잠시 그를 케어하는 역할은 공백이 있었다. 우현이 그 자리를 메꿔주려 노력해도 그게 가능할 리는 없었다. 녀석도 배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방은 괜찮아요?”

“당연히 좋지. 하루에 쓰는 돈이 얼마인데.”

“그런 거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요.”

하지만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방 하나의 하루 숙박 요금이 50~60만 원이 넘어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3개를 빌린 상태였다. 성우와 일행 그리고 경호 인원까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뭐 하루 이틀 머무는 것이라면 모를까.

적지 않게 호텔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구나 영화를 촬영하려면 적어도 몇 개월 이상 뉴욕에 있을 그들이었다. 그걸 최정이 상기시켜 줬다.

“촬영 시작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숙소 알아볼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러면 다행이고. 너 요즘 씀씀이가 너무 커.”

“제가 언제 쓸데없는 과소비 한 적 있나요.”

성우도 할 말은 있었다.

최근 병원비며 나가는 돈은 제법 많기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근처 호텔 대부분이 이곳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유부였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하는 숙박을 거부하는 호텔도 제법 많았다.

“알았어. 우현이가 먼저 체크인해놨으니 바로 올라가서 쉬어. 여기 키카드.”

“고마워요. 저녁은 나가서 먹을 거죠?”

“요한이 상태 보고 괜찮으면 그러자.”

최정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키를 가지고 숙소로 올라갔다.

다른 이들의 방은 성우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었다. 하나는 요한과 최정이 쓰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경호원들이 쓰는 방이었다. 성우의 룸메이트는 우현이 되었다. 그가 들어서자 우현과 유부가 동시에 반겨주었다. 성우는 유부를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늦으시길래 길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뉴욕이 복잡하긴 하더라. 길도 많이 막히고.”

“저 운동하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우현은 알겠다며 문을 열었다.

어차피 호텔 안에 간단한 운동 시설이 있기에 녀석은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등을 돌려 나가는 우현을 성우가 불러 세웠다.

“조금 있다가 저녁 먹으러 갈 거니까 너무 오래 있지는 마.”

“어차피 몸만 잠깐 풀고 올라올 거에요.”

“그래.”

“아차! 형 방에 기타 하나 가져다 놨어요. 감독님이 이번 촬영에 쓸 거라고 전해달라고 하던걸요.”

“기타를?”

그렇게 말하고 녀석은 사라졌다.

성우는 옷도 벗지 않고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무척 낡아 보이는 갈색 기타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손때가 제법 탄 그런 기타였다. 적어도 자신의 나이보다 많을 것 같았다.

성우는 그것을 집었다.

그리고 가볍게 현을 뜯었다.

그러자 제법 마음에 드는 음색이 흘러나왔다. 조율도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신나게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호텔이라 참아야 했다. 당장 10분만 연습해도 클레임이 들어올 것이 뻔했다.

어쩌면 숙소보다 연습실이 급했다.

촬영까지 남은 기간은 3주에 불과한데 기타를 연습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이거는 제작진과 상의를 해봐야 할 문제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성우는 아까 본 버스커가 떠올랐다. 해결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나도 해볼까?”

*

그날 저녁.

센트럴 파크 부근.

어둠이 내려앉은 조용한 거리에 기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차분하게 현을 뜯으며 연주하는 음악은 잔잔한 연주곡이었다. 제법 솜씨가 좋았지만, 발길이 바쁜 뉴요커들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제이미도 마찬가지였다.

퇴근하는 길이던 그녀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잘 버틴 것 같았지만, 내일이 벌써 두려워졌다. 최근 대형 로펌에 인턴으로 입사한 그녀였다. 문제는 회사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최근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오늘 하루가 또 지나가는구나.”

허무함이 밀려왔다.

회사의 부품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야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인턴들의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무척 치열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노래는 감미로웠다.

그녀는 뭐에 홀린 듯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관중도 없이 가로등 아래에서 홀로 공연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다른 악기나 스피커도 없이 기타만 들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어]

영어는 아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음과 느낌은 무척 좋았다. 뜻은 모르겠지만, 위안을 주는 그런 힘이 있었다. 제이미는 그 자리에 서서 노래를 청취했다.

3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노래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 그 여운을 즐기다 박수를 쳤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약간 뻘쭘했지만, 좋은 노래를 들은 이후에 그냥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제 무대를 즐기는 유일한 관객이시네요.”

“조금 부담되는데요.”

“편하게 들어주세요. 제가 첫 버스킹이라 아직 레퍼토리가 미완성이에요. 혹시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신가요?”

후드티를 눌러쓴 남자.

그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말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너 없는 일이지만, 처음 버스킹을 나선 거라면 살짝 이해가 되기는 했다. 심지어 날도 어두워진 지 오래인데 선글라스까지 쓴 상태였다. 과연 자신이 보이기는 할까 의문이 들었다. 제이미는 잠시 고민하다 노래 제목 하나를 떠올렸다.

“혹시 Lost moon 가능한가요?”

“영화 ‘어게인’에 삽입된 노래 맞죠?”

“네. 가능하시면 부탁드릴게요.”

남자는 싱긋 웃었다.

너무 예쁘고 황홀한 미소였다.

이목구비로 봤을 때 아시아계로 보였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제이미는 과연 이 남자가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궁금했다. Lost Moon은 그녀가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쥬크 박스는 어서 일해라.

후드티를 눌러쓴 남자는 성우였다.

처음에 연주를 시작할 때는 무척 난감했던 그였다. 길거리를 걷는 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았던 탓이었다. 확실히 버스킹이라는 행위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무관심 속에서 홀로 헤쳐나가는 것은 멘탈이 확실히 강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도 있었다.

첫 곡을 부른 이후에 관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성우는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했다. 첫 곡이 한국 노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그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But are we all lost moon~ Trying to light······]

Lost Moon.

이 노래는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노래 중간에 나오는 가성이 키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남자 가운데 그 정도의 가성이 가능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우가 그 부분에 도달하자 하나뿐인 관객인 제이미마저 긴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우는 보란 듯이 해냈다.

과거의 그라면 절대 불가능한 영역대였지만, 무사귀가 남겨준 능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노래가 점차 흐르면 흐를수록 관객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성우는 그 눈빛이 가지는 의미를 익숙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평소 팬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종종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팬 하나 추가요!

두부는 또 호들갑을 떨었다.

성우는 그런 녀석의 말을 무시하며 노래를 마쳤다. 그리고 곧장 같은 영화에 나왔던 다른 O.S.T를 불렀다. 그 영화의 노래 대부분은 성우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촬영하는 영화와 무척 비슷한 부분이 많아 공부할 겸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영화에 들어가는 노래가 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성우는 그런 바람이 있었다.

물론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서전트 감독과 짐 하트 음악 감독이 함께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마 그들 둘이라면 이 노래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귀에 익숙한 노래 때문일까?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성우는 그런 그들을 위해 여러 노래를 연달아 불렀다. 때로는 기타를 연습할 겸 연주곡도 골랐는데 나름 호응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성우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공연에 그렇듯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른 비틀스의 곡까지 완창한 그는 고개를 숙여 관객에게 인사했다. 어느덧 관객은 제이미를 포함해 십여 명 이상은 되었다. 늦은 시간 한적한 센트럴 파크임을 고려하면 나름 선방한 셈이었다.

“휘이익~!”

“멋져요. 혹시 앨범 살 수 있을까요?”

“한 곡만 더 해줘요.”

“이름이 뭐예요?”

성우는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였다.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아크로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금방 탄로 날 것이 분명했다. 대부분 그를 애칭인 ‘미티어 (Meteor)’라 부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했다. 성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친구의 이름을 팔기로 했다.

“한국에서 온 유일한입니다.”

*

성우의 버스킹이 끝난 이후.

한국에서 자숙의 시간(?)을 가지던 유일한은 이상한 일을 겪었다. SNS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한두 개는 잘못 남긴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댓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자기는 간 적도 없는 뉴욕에서 버스킹 공연을 잘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 범인이 성우인지도 모르고 일한은 버럭 화를 냈다.

“도대체 누가 내 이름을 팔고 다니는 거야?”

< 광끼 -13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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