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36 >
흔들리는 화면.
그 속에는 화염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불길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었다. 더구나 강렬한 비트의 음악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느껴졌다. 뭔가 비장한 분위기가 조성되니 긴장감은 더해졌다.
화염 너머.
한 남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하지만 바닥이며 사방이 불타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남자는 곧 불길을 헤치며 달려왔다. 그 장면은 한 편의 영화 같았지만, 실제 화재 현장을 담은 것이었다.
“우와아··· 형 미쳤어요?”
요한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우가 현장에 들어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급박한 곳이었는지 몰랐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성우는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손에는 뜨개질바늘이 쥐어져 있었다.
-정신 사납게. TV 볼 때는 그것 좀 그만하지.
‘싫은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뜨개질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해보니까 생각보다 재미있어.’
성우는 두부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영상을 향해 있었다. 그 역시 저 장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더구나 카메라의 앵글 역시 자신이 볼 수 없었던 각도였다.
사수인 기현우.
그의 액션캠으로 찍힌 장면이었다.
물론 종종 자신이 달고 들어간 액션캠 각도도 섞여 편집되었지만, 뭔가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보는 프로그램은 바로 [골드 타임]이었다.
월드 투어 직전 찍은 이 다큐멘터리는 어느새 하이라이트인 12번째 방송분이 방영되고 있었다. 주 2회씩 방영되다 보니 순식간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최근 이 다큐 아닌 다큐는 한국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강 대표님이 저거 보면 또 난리 치겠네요.”
“보기에는 저래도 그렇게 위험한 거 아니었어.”
“위험하지 않긴요. 저 정도면 거의 요단강 반쯤 건넜다가 돌아온 거 맞아요.”
우현도 말을 보탰다.
물론 성우도 그것은 인정하는 바였다.
당시에 불길을 뚫고 달릴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원초적인 본능만 가득했다.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모르지만, 요구조자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멈추더니 곧 12회가 끝났다.
“어! 벌써 끝났어?”
“저기서 끝내면 어떻게 해. 와~ 완전 악마 같은 편집이다.”
“저런 걸 보고 절단 마공이라고 하지. 그래야 다음 편을 또 볼 거 아냐.”
방송은 벌써 끝이 났다.
조금 전에 보기 시작한 것 같은데 흡입력이 좋았다.
이래서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재난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더구나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긴장감은 훨씬 더했다. 그때 우현이 슬그머니 성우 옆으로 다가와 왔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다음 편이 궁금하니 어서 결론부터 내놓으시죠.”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질문을 했다.
성우는 그런 그의 반응이 무척 부담됐지만, 이해되기는 했다. 당시 녀석은 미국에서 홀로 있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한국에서 촬영된 이 내용은 전혀 몰랐다.
“해피 엔딩이니 내가 여기 앉아있는 거지.”
“저 아가씨 구한 거 맞죠?”
“구하기는 했는데...”
성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과연 살아도 살아있는 것일까?
그는 품에 안아서 구했던 그 아가씨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직 혼수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을 봤는지 우현은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는 녀석이라 다행이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말을 않자 대답은 요한이 대신했다.
“생명은 구했는데 유독 가스를 많이 마셔서 아직 뇌사 상태야.”
“아하···”
“연락 아직 없었지?”
“3주 전에 제작진한테 연락받았던 것 제외하면 없어요.”
성우는 요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호전되었다는 소식은 성우 역시 듣지 못했다. 문득 궁금해졌지만, 전화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대신 조만간에 한국에 돌아가면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니 최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이것 좀 받아.”
“뭘 또 그렇게 많이 사 왔어요?”
“신상이 나왔길래 하나씩 사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이건 또 얼마짜리에요?”
“별로 안 비싸. 내가 언제 명품 사 와서 성우 코디하는 거 봤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성우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게 운전면허 좀 따요. 멀쩡한 차 놔두고 왜 그 고생을 해요.”
“난 내 다리보다 빨리 가는 거 싫어. 특히 바퀴 달린 거 완전 질색!”
“남이 운전하는 차는 잘 타면서.”
“그건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잖아.”
정이 형은 확실히 그런 것을 싫어했다.
자전거, 인라인 뭐 이런 것도 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매번 따라가기 힘들다는 말을 했더니 혼자 다녀온 최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성우는 마음이 찜찜했다.
“요한이 너는 다음부터 나 집에 있을 때는 정이 형 좀 도와.”
“제가 언제는 안 그랬나요. 오늘은 정이 형이 하도 혼자 가도 된다고 하도 그러니 못 간 거죠.”
“그래?”
“아니 정말 섭섭하게 왜 이러세요.”
요한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성우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같이 보낸 시간 동안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어이구~ 그래쪄요?”
“아 또 애 취급하신다. 저도 이제 20대 중반 넘었어요.”
“야야.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마라.”
정이 형이 그때 끼어들었다.
하긴 이 자리에서 나이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서러운 사람이 그였다. 물론 그다음은 성우였고 저 아래에 요한과 우현이 있었다. 특히 우현을 볼 때마다 성우는 조금 부러웠다.
‘내가 저 나이 때는 군대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그런데 우현 저 녀석은 왜 군대를 안 가는 거야. 면제야?
‘신의 아들인지도 모르지.’
굳이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성우는 몸이 뻐근함을 느끼고 바늘을 내려놨다. 그러자 어디선가 유부가 나타났다. 녀석은 발톱을 드러내며 그가 반쯤 완성한 뜨개질을 망치려 했다.
“이 자슥! 또 방해하려고.”
성우는 재빨리 유부를 들었다.
이제 무게가 제법 나가는 녀석은 앙탈을 부렸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녀석은 체념한 듯 몸을 늘어뜨렸다.
“어휴 이 뱃살! 유부야 이거 도대체 어쩔 거야.”
“냐아옹~!”
“다들 이 녀석한테 간식 주지 마요. 걸리면 정말 혼나.”
범인은 분명히 이 가운데 있었다.
성우는 매일 애써서 다이어트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부의 살은 절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 몰래 간식을 계속 주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 말을 듣고 최정이 움찔했지만, 미처 성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왜요?”
“조금 전에 택시 타고 들어오는데 수상한 사람들이 정문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데.”
“뭐 파파라치 그런 거 아닐까요?”
최근 파파라치가 기승을 떨었다.
전에는 얼굴을 드러내고 다녀도 괜찮았던 성우였다. 그러나 아크로를 개봉한 이후부터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딜 가더라도 적어도 한두 명 이상의 파파라치가 따라붙었다.
특히 종종 인터넷을 보면 자신이 감지하기도 어려운 먼 곳에서 찍은 캔디드 샷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최정이 봤을 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가? 조금 분위기가 다르던데.”
“어차피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잖아요. 저렇게 기다리다가 지치면 그냥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요.”
“하긴 들어오면 너 고소! 이렇게 되겠지?”
최정은 그 말을 하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짐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뒤돌아선 그는 이제 유부에게 적당히 휘둘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성우가 돌아서려고 할 때 정문 쪽에서 굉음이 들렸다.
타앙!
누가 들어도 총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현관의 유리창이 깨졌다.
분명 총알의 방향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성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엎드려!”
마침 현관 앞쪽으로 지나던 최정.
그는 옴짝달싹할 수 없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첫 총성과 함께 바로 옆 테이블 위에 있던 액자가 깨졌다. 그와 겨우 30cm도 안 되는 거리였다. 그제야 최정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서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총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타앙~! 타타타앙!
누군가 뒤에서 그를 눌렀다.
그러자 최정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성우가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리 위로 다수의 총알이 벽에 박히며 가루가 흘러내렸다. 그대로 서 있었으면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그런 순간이었다.
“위험하니까 머리 숙여요.”
성우는 그의 머리를 눌렀다.
그런 상태로 몇 초 정도 지났다.
총소리는 어느 사이에 잦아들었고 정적만 흘렀다. 그제야 총격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성우는 살짝 일어났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어둠 속에 우뚝 서 있는 정문이 보였다. 하지만 누가 총을 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저 차 한 대가 갑자기 출발하며 내는 타이어 마찰음만 들릴 뿐이었다.
“정이 형. 괜찮아요?”
“어? 나는 괜찮은 거 같아.”
“잠깐 일어나 봐요.”
최정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자 바닥에 흐르는 피가 보였다.
그걸 보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서둘러 눈으로 그의 몸을 살폈다.
어딘가 총에 맞은 것은 아닌지 걱정된 탓에 그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렸다. 다행히 총에 맞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넘어지며 액자의 깨진 유리에 긁혀 피가 나는 것이 전부였다.
“왜? 나 총 맞은 거야?”
“아뇨. 괜찮아요. 유리에 조금 긁혔는데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에요.”
“너··· 너는?”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 역시 다친 곳은 없었다.
총에 맞았는데 자신이 자각하지 못할 리 없었다. 성우는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로 최정의 팔에 난 상처를 꾹 눌렀다. 옷이 얼마짜리인지 뭐 그런 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거 꾹 누르고 있어요.”
성우의 말에 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바라봤다. 거실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때 구석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쓰러진 탁자 너머에서 우현이 천천히 기어 나오고 있었다. 우현은 성우를 발견하고는 몸을 낮춘 자세로 서둘러 다가왔다.
“우현아 다친 데 없어?”
“저는 괜찮아요. 형은요?”
“나는 괜찮아. 정이 형도 유리에 긁힌 것 빼면 괜찮고.”
우현 역시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워낙 반사신경이 좋은 녀석이니 첫 총성 이후에 잘 숨은 것 같았다. 말없이 그를 살피던 성우는 두부가 말하는 것을 듣고 한 명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네 매니저 어디 갔냐?
“요한이는 어딨어?”
성우의 질문에 우현은 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총성 이후에 요한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성우는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있어서는 안 될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들 셋은 서둘러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닥에 가느다란 핏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 붉은 피는 주방으로 이어졌다.
“요한!”
성우는 그 안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러자 냉장고에 기대어 있는 요한이 보였다.
녀석은 유부를 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부까지 챙기다니 믿을 수 없었다. 성우가 다가서자 요한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녀석의 안색은 창백한 것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조금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 잠시만 기다려 볼래?”
“형... 가지 마요.”
“어디 안 갈 거야.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성우는 요한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의 표정에는 모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우현과 최정을 향해 소리쳤다.
“911 불러! 당장!”
< 광끼 -13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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