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28 >
[City of start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잔잔하게 흐르는 노랫소리.
감미로운 그 목소리에 이목이 쏠렸다.
그런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라 무려 천여 명이 넘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다. 적막한 가운데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 홀린 것으로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는 바로 성우의 팬미팅 현장이었다.
여기 온 모든 이들은 그의 충성스러운 팬이었다. 그것도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행사였다. 언제나 소규모를 지향하던 성우였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미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팬카페인 [페르세우스]는 격렬하게 항의했기 때문
이었다.
### : 얼굴 좀 보여줘라~
### : 별님 보기 너무 어려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덕질해야 하나?
### : 제발 팬미팅 좀 해줘요. 플리즈~!
### : 한국에서도 활동해주시면 좋겠어요. 두 달 만에 다시 나가는 거는 반칙!
그 소식은 금방 성우에게 전해졌다.
그것을 들으니 그냥 나갈 수는 없었다.
덕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팬미팅이 준비됐다. 하지만 모두를 다 초대할 수는 없었다. 일단 갑자기 그런 대규모 팬미팅을 할 수 있는 장소를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1,000명의 팬.
그 숫자만 초대하기로 했다.
현장 여건 때문에 그게 한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우의 팬카페는 들썩였다. 지난 팬 서비스는 소규모라 거의 로또 급이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50 : 1이 넘는 추첨이 남아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어찌 보면 행운아였다.
다들 2% 남짓한 확률을 뚫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성우의 입장에서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해외에서 만 명 단위로 진행되는 것과 비교하면 적지만, 은근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노래는 마침내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3초의 정적 이후.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졌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아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성우는 기타를 품에 안으며 어둠 속에 있는 객석을 바라봤다.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곳 전체가 들썩였다.
유성우!
유성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이돌이나 가수가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연극에서 만석을 채워봐야 100명도 안 되는 규모였다. 그리고 드라마, 영화 촬영을 주로 하던 그였다. 당연히 이런 무대와 상황이 익숙할 리 없었다.
-없긴 뭐가 없어? 쌈질할 때는 신경도 안 쓰던 녀석이.
아!
딱 한 번의 경험은 있었다.
격투기 챔피언인 클라크와 함께했던 자선 경기였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때의 환호성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부담이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져도 본전인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모두의 시선은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솜털 하나마저 눈에 담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가장 앞줄은 전쟁터에 가까웠다. 그곳에는 팬들이 세워놓은 카메라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크기로 봤을 때 거의 전문가 수준의 것으로 보였다.
‘와··· 이거 장난 아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은 불빛이 파도치는 장면.
팬들이 보여주는 그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객석을 바라보는 사이에 팬미팅을 진행하는 MC가 나왔다. 하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1~2분쯤 환호성이 이어지다가 끝내 성우가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보여주자 그제야 멈췄다.
“이런 열정적인 팬미팅은 또 처음이네요. 팬들의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감사할 뿐이죠.”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번 순서는 이 자리에 오신 팬들이 직접 써주신 Q&A 순서입니다. ”
“오~ 이거는 좀 무서운데요.”
“살살 할게요. 성우 씨 이 자리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보드 하나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곳에는 팬들이 적어준 수많은 질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성우는 그곳을 눈으로 슬쩍 훑었다. 그중에는 제법 짓궂은 질문도 상당했다. MC 역시 입을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하면서도 시선은 종종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하나의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자!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미국에는 왜 다시 나가시는 거죠?”
“음··· 처음부터 곤란한데요.”
“사실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아크로]의 홍보를 위해 월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요.”
“오우! 정말요?”
“북미와 유럽 등을 다니고... 당연히 한국에도 올 예정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환호성이 일어났다.
성우는 그 반응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으로 서둘러 가는 다른 이유도 있기는 했다. 서전트 감독의 [버스커]도 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아직 계약하기 전이라 그걸 밝힐 수는 없었다. 사인을 하기 전까지 그 배역이 자신의 것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떤 거로 할까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얼마 전에 소방서에서 촬영했다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힘들지 않으셨나요?”
성우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소방관의 일은 힘들고 어려웠다.
한 사람이 가진 생명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타인의 목숨이 오가기 때문에 2주라는 촬영 기간 동안 긴장을 풀 수 있는 날은 없었다.
더구나 보고 겪은 문제도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시간에 쫓겼고 또 피로감에 찌들어 있었다. 그것은 단 한 명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했다. 성우는 그걸 강조하며 말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역시 기부 천사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요.”
“저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 많기에 그 별명은 조금 낯부끄럽네요.”
질문과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거의 20여 분 동안 온갖 질문이 나왔다.
대부분 성우의 향후 활동과 개취(개인 취향)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히 이상형에 대해 질문은 굉장히 짓궂었다. MC는 한동안 그걸로 객석의 반응을 끌어내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노란색은 평소 좋아하시나요?”
“그다지 즐겨 입던 색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조금 바뀌었죠. 입다 보니 상당히 산뜻하던데요.”
“아하하.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혹시 다음에 또 슈트를 입을 생각은 있나요?”
“아직 확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아마 한국에 있는 마벨 스튜디오의 팬들은 무척 반길 것 같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차기작의 계약은 아직이었다.
아마 이번에 개봉해서 반응을 보고 결정할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1년 이내에는 [아크로 2]의 계획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버스커]의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사실 그 계약서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성우는 그 사본을 받아서 검토 중이었다. 봄부터 촬영 계획인 이 영화의 출연비는 800만 달러(약 86억)에 런닝 개런티도 따로 있었다. 개봉 예정인 아크로의 주연이라는 이유로 렉스가 어지간히 솜씨를 발휘한 것으로 보였다.
뭐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었다.
감독과의 개인적인 친분과 개런티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아크로 시리즈도 향후 몇 년 동안 3편까지 제작하기로 계약해 놓은 성우였다. 만약 제대로 몸값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쉬거나 한국에서 활동해도 무방했다.
“성우 씨. 오늘 특별 손님이 있는데 혹시 미리 들으셨나요?”
“아니요. 저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는데요.”
“오호~ 비밀 유지가 잘 됐군요.”
“누군데요?”
“제가 말하면 재미없죠.”
그렇게 말하며 MC는 호응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의 지휘하에 팬들이 카운트를 세었다.
마침내 그 외침이 끝나자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제법 멀리 있었지만, 성우는 한눈에 그 특별 손님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할리우드의 스타 킬리안 터커! 그리고 성우 씨와 함께 촬영한 오우현 배우를 박수로 맞아주세요.”
팬들은 둘을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그런 그들에게 킬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굉장히 능숙한 반응이었다. 반면에 우현은 무척 긴장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성우는 녀석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내 킬리안의 손에 집중했다.
-유부네.
‘아이고... 그래서 아까부터 안 보였구나.’
사실 대기실까지 유부는 함께 했다.
[골든 타임]을 찍는다며 거의 한 달 이상 외박을 한 성우였다. 당연히 유부는 굉장히 삐져 있었다. 덕분에 촬영이 끝난 이후부터 성우는 녀석과 함께 거의 모든 곳을 함께 다녔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는데 무대에 올라오기 직전부터 유부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킬리안과 함께 있었던 것 같았다.
“여기 앉으시죠.”
어느 사이에 의자는 2개 더 놓였다.
그곳에 앉아 남자 네 명은 수다를 이어갔다.
물론 그 대부분은 성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한국어와 영어가 혼잡하게 섞였지만, MC의 실력이 생각보다 좋았다. 킬리안 특유의 랩과 같은 외국어도 곧잘 동시통역을 해냈다.
“아하하! 첫 만남부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완전히 제가 깨졌죠.”
“그 정도인가요?”
“오튜브에 올린 영상 못 보셨어요? 이 녀석은 완전 괴물이에요.”
킬리안은 그렇게 넉살을 부렸다.
사실 녀석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여기에 있는 킬리안은 물론이고 우현까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대여섯 명 정도는 무리 없을 정도의 실력은 있었다. 아마 막대기 하나만 쥐여줘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다.
대화는 우현에게 옮겨갔다.
녀석은 이번에 [아크로]를 함께 찍었다.
당연히 그 영화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위주로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버벅대는 것 같아 걱정했지만, 제법 말재주가 좋았다. 오히려 아기 같은 얼굴에 반한 팬들마저 생기는 것 같았다. 그건 확실히 성우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존재는 따로 있었다.
무대 위에 남자들 가운데 여심을 빼앗은 것은 유부였다. 과거에 드라마에 출연했던 필모그라피 덕분일까? 상당수의 팬은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유부는 환한 조명이 마음이 안 드는 것 같았다. 녀석은 연신 발을 치켜들어 고양이 세수를 하느라 바빴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은데 아쉽네요.”
“하하. 그러면 다음에 다시 팬미팅을 해도 나와주실 건가요?”
“언제든지요. 그런데 제가 몸값이 좀 비싼데 이 친구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킬리안의 농담에 다들 웃었다.
그와 우현이 사라진 이후에 성우는 무대에 홀로 남았다. 이제 팬미팅을 마칠 시간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좀처럼 그 끝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망부석이 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성우는 노래 하나를 더 했다.
애초에 이럴 거라 예상했던 탓에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과거에 유일한과 함께 냈던 U-Bro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그곳에 실린 [여름 아이]라는 곡이었다. 그 곡을 마지막으로 팬미팅은 끝이 났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정도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킬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팬들은 정말 위대해.”
“뭐라는 거야.”
“나는 세계 어디에서도 배우가 이런 팬미팅을 하는 곳을 못 봤어.”
“찾아보면 있을 거 같은데.”
“하여튼 부럽다. 우리 기획사는 도대체 일하는 게 맞나 궁금해.”
성우는 헛웃음만 나왔다.
사실 제대로 따지면 킬리안의 팬덤은 엄청났다.
흥행으로 따지면 그의 영화는 대단했었다. 북미 흥행 1위를 갈아치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수익은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돈으로 1조 712억을 넘었다는 말이었다. 마벨 스튜디오의 영화 가운데 단독 히어로 영화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화 한편으로 그 정도의 수익이 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반면에 자신의 영화는 아직 뚜껑을 열어봐야 했다.
-은근히 밉상이야.
‘저번에 나한테 엄청 깨져서 그렇지.’
-크크큭. 그때 볼만 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킬리안은 모처럼 성우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목검을 든 성우는 거의 무신에 가까웠다. 아무리 킬리안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요한이 다가왔다.
“마벨의 라우라 올슨 한테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왜?”
“개봉과 홍보 일정이 확정됐다고 어서 돌아오래요.”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미국행 티켓은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그는 이번에는 일행이 제법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현 그리고 자신의 스태프까지 적지 않았다. 그옆에 서 있는 킬리안을 보며 성우는 중얼거렸다.
“저 녀석의 흥행 기록을 한 번 씹어 먹어 볼까?”
< 광끼 -12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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