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27화 (128/161)

< 광끼 -127 >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

성우는 병원 냄새를 무척 싫어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성우의 경우는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더했다. 무주귀 덕분에 1년 가까이 온갖 병원에 다닌 경험이 있는 그였다. 뇌신경 질환이나 그런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의심했던 탓이다. 덕분에 성우는 어린 나이에 온갖 검사를 다 받아야 했

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성우는 침상에 누워있는 한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며칠 전 화재에서 직접 구한 아가씨였다. 이제 20대 중반 정도 됐을까? 배우라 하더니 제법 예쁜 얼굴이었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성우는 이제 슬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고

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따님이 어서 완쾌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지연이도 일어나면 기뻐할 거예요.”

그 말에 뭉클했다.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코마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워낙 오랜 시간 유독 가스에 유출된 탓이었다. 화재 사고에서 질식사의 비율은 70%에 달한다. 깨어나도 유독가스 때문에 후유증이 꽤 길게 갈 것 같았다.

“금방 깨어나실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제가 드린 번호로 꼭 연락해주세요.”

“물론이죠.”

“그럼 가볼게요.”

성우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는 병실을 나와 밖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뒤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뒤따르고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성우는 서 PD와 꽤 격렬하게 말다툼을 했다.

이 장면은 찍기 싫었다.

뭔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가식적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꼭 필요하다는 말에 마지못해 허락한 성우였다. 한껏 삐딱해진 그의 옆으로 서 PD가 다가왔다. 그는 처음 보는 까칠한 성우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말을 걸었다.

“수고했어. 이걸로 촬영 끝.”

“공익 광고는 잘 나왔데요?”

“아직 편집 중이라 조금 기다려 봐.”

공익광고도 어제 촬영을 마쳤다.

덕분에 성우는 오랜만에 노란색의 슈트를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미국에서 입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서는 뭔가 쑥스러웠다. 아무래도 광고 촬영 현장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았다.

그래도 국내 최고의 CG 팀을 섭외했다.

솔직히 어떻게 나올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건 마벨 스튜디오의 계약 조건이기도 했다. 혹시 B급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 미국에 있는 라우라가 어지간히 쪼아댔던 것 같았다.

“제 출연료 기부하면 영수증 보내줘요.”

“그거는 이번주에 처리할 거야.”

“알겠어요.”

16부작의 출연료.

약 2억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그것 모두 처음에 약속했던 것처럼 기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바뀌었다. 본래 아동 복지 쪽을 생각했지만, 성우는 소방관 복지 재단에 넣기로 했다. 시민의 생명을 살리는 그들의 불편한 현실을 이번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촬영은 마이너스였다.

돈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더 쓴 것 같았다.

같이 촬영한 소방대원과 먹고 마신 회식비와 지연 씨의 병원비까지 조금 보태주니 적지 않은 돈이 나갔다. 그래도 성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날이니까.’

18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무주귀.

그 존재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걸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우가 이번 촬영을 통해 목숨을 구한 덕에 이미 무주귀는 소멸하였다. 홍지연 씨가 코마 상태인 것이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더는 무주귀가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해방감을 즐기고 있는 성우였다.

“저는 그만 가볼게요.”

“소방 학교에서 찍은 거 임시 편집본 나왔는데 먼저 볼래?”

“알아서 잘 해주시겠죠. 저 조만간에 출국할 생각이에요.”

“거기서는 방송 보기 어려울 테니 나중에 미국 주소로 방영분 CD 보내줄게.”

“그래면 저야 좋죠.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성우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차를 탔다.

그가 타자 요한은 곧바로 출발해 집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휴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도 있었다. 그것은 무주귀와 함께 종적을 감춘 두부 때문이었다.

‘간다는 말도 없이...”

느낌이 싸했다.

혹시 무사귀마저 사라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가보고 싶다던 곳도 데리고 갈 것 그랬다며 후회가 되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확실히 녀석의 빈 자리는 허전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좀 잘 해.

성우는 환청이 들리는지 알았다.

하지만 이내 종알거리는 두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우는 그저 웃음을 지으며 녀석을 반겨주었다. 도대체 뭐하느라 며칠 동안 잠잠했는지 궁금했지만, 그 질문을 지금 당장 할 생각은 없었다.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다 말해.’

-오~ 정말? 북한도 가능한가?

‘그건 불가능!’

-그럼 강화도에 잠시 가자.

성우는 그의 말을 의아하게 여겼다.

강화도라면 어딘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조금 떨떠름했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두부가 말하는 곳은 예전에 위령비를 세운 무연고자 묘지였다. 혹시 다른 곳이 아닐까 싶어 그곳이 맞냐 되물었다. 그러자 두부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같이 보낸 세월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명복이나 빌어주자.

‘아무리 그래도 나는 거기 싫은데. 너 같으면 이제 겨우 떨쳐냈는데 거길 또 가고 싶겠냐?’

-이제는 네가 들어와 달라고 해도 못 들어오니 걱정하지 마.

‘내가 그게 겁나서 그러겠어?’

-아니면 말고.

그 말에 성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괘씸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두부가 원한다고 하니 마음이 약해졌다. 성우는 곧장 요한을 불렀다. 그러자 요한은 갑자기 무슨 일이냐는 듯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왜요?”

“집 말고 강화도로 가자.”

“지금 바로요? 어딜 가시게요?”

“너 위령비 세운 곳에 안 가봤지?”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다녀왔을 때는 진수와 함께였다.

당연히 요한은 그곳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성우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그 주변에 있는 마을 회관 이름을 불러줬다. 그 주소를 찍은 이후에 요한은 유턴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가기 전에 마트 좀 들리자.”

*

2시간 이후.

성우는 위령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묵념은 무주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애써준 수많은 무사귀를 위한 것이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성우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려 백여 명의 무사귀.

그들은 성우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몸을 탐하던 무주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준 존재였다. 직접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누군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겨우 다섯.

두부까지 포함된 그 수가 전부였다.

거의 전멸했다고 말해도 무방할 수치였다.

두부의 말로는 대학생을 살렸을 당시의 타격이 가장 컸다고 했다.

“제가 드리는 술 한 잔 받으시죠.”

성우는 청주를 따라 바닥에 뿌렸다.

그의 앞에는 마트에서 사 온 온갖 먹거리가 쌓여 있었다. 그들이 생전에 뭘 좋아했는지 몰랐지만, 두부의 조언이 적절하게 있었다. 덕분에 생전 피워보지도 않은 담배까지 산 성우였다.

“콜록···”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기침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런 성우의 모습에 두부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아직 코흘리개라며 놀리는 것은 덤이었다. 하긴 평소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면 녀석도 파이프 담배 아니 담뱃대를 끼고 살았다고 했다.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피우는 거야?”

-얘들은 몰라도 된다.

“이제 28살인데 얘 취급은 이제 그만하지.”

성우는 위령비 앞에 담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자 해가 지는 것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바닷가는 그 붉은 빛을 받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저 너머가 북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땅에 가보고 싶었던 분도 있었겠지?”

-당연하지. 객사한 녀석들이잖아. 이북이 고향인 녀석도 꽤 많았어.

“가보지 못해 아쉬웠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다.

과연 두부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어딜까?

그것을 물어보자 그의 고향은 의외로 경북 청도였다. 그곳을 떠올리니 당장 떠오르는 것은 소싸움이었다. 그 주제를 꺼내자 녀석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성우는 직접 그것을 본 경험이 없기에 그저 석양만 바라봤다.

거의 20년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배가 되는 시간 동안 온갖 귀신을 품고 살았다. 이걸 누구한테 말한다고 믿어주는 이가 있을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준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 때보다 붉게 타오르던 해도 사라졌다.

바닥에 놓인 담배 역시 이미 필터까지 타들어 갔다. 오늘 본 노을은 지금껏 보았던 어느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때 서서히 걸어오며 자신을 부르는 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슬슬 돌아가시죠.”

“그래.”

“이거는 치울까요?”

요한은 물음에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위령비 앞에 놓은 음식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이내 요한의 말에 성우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사과에는 왜 이빨 자국이 있지?”

그 사이에 누가 다녀왔던 것 같았다.

성우는 미련 없이 그것을 치우자며 손을 보탰다.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여기서 나가야 했다. 괜히 다 떨쳐낸 무주귀가 다시 달라붙으면 골치 아팠다. 둘은 차에 대충 그것들을 싣고 쏜살같이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는 도대체 뭐에요?”

“공동묘지 처음 봐?”

“한국에서는 오랜만이기는 하죠. 그런데 분위기가 영~”

“하긴 미국이나 캐나다의 묘지랑은 조금 차이가 있지?”

“그렇죠.”

땅이 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우는 점점 더 멀어지는 묘지를 바라봤다. 왠지 느낌상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말의 의미는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과 비슷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까부터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두부 때문이었다.

-TV에서 봤는데

‘뭘 봤는데?’

-이 근처에 간장게장을 그렇게 맛있게 하는 곳이...

‘그러면 그렇지.’

요한에게 저녁을 먹고 가자 했다.

녀석도 게장 이야기에 무척 반기는 눈치였다. 성우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뒤져 그곳을 찾아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주소를 넘기자 요한은 신이 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외국 생활도 길게 했다면서 그게 그렇게 맛있어?”

“태생이 어딜 가나요?”

“너는 캐나다 영주권도 따냈으면서 한국은 왜 돌아온 거야?”

성우는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이렇게 터놓고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럴 생각을 못 했던 것이 컸다. 언젠가는 직접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벌써 4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간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이 정도는 물어도 될 것 같았다. 정작 요한은 별거 아닌 듯 대답했다.

“[버스커] 시나리오 있죠.”

“그건 갑자기 왜?”

“그게 제 이야기랑 조금 비슷해요. 저는 어딜 가나 이방인일 뿐이었죠.”

“회사에는 네가 대표의 친척쯤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소문이 있던데?”

“하하. 전혀 잘못 짚었네요.”

요한은 크게 웃었다.

그건 확실히 아니라며 못을 박았다.

하긴 그게 맞다고 하더라도 성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친인척이라 해도 자신에게 별 차이 없었다.

그때 그들이 찾던 음식점이 나타났다.

둘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시켰다. 잠시 기다리니 양념에 버무려진 음식이 산더미처럼 나왔다. 요한은 그걸 보더니 기겁을 했다.

“둘이 이걸 다 먹을 수 있어요?”

“다 못 먹어도 되니 걱정하지 마.”

“아까우니까 그렇죠. 음식 남기면 안 되는데.”

“오늘 하루는 괜찮아. 남으면 싸가면 되지.”

요한은 그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이내 성우가 수저 한 세트를 더 놓자 눈이 동그랗게 바뀌었다. 종종 보던 행위였지만, 오늘따라 성우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경건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놓는 것 같았다. 요한은 왠지 소름 돋는 기분이 들었다.

“그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죠?”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

“형 이럴 때마다 정말 무서운 거 알아요? 종종 무당집도 드나드시고.”

“이제 그런 곳에 갈 이유가 없어.”

두부와 소수의 무사귀만 남았다.

앞으로는 마음 졸이며 살던 과거와 달라질 것이다.

그제야 성우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굴레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릴 시기였다. 성우는 주인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수저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꽃길만 걷자.”

< 광끼 -127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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