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26 >
슬픔에 젖은 눈동자.
그것을 보자 울컥해졌다.
성우는 그 자리에 못을 박은 듯 멈췄다.
하지만 그런 그를 향해 등 뒤에서 기현우가 소리쳤다.
“빨리 안 와? 지금 1초가 다급한 상황이야.”
자신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목을 잡은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자신마저 매정하게 돌아서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임무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성우는 그 손을 맞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따님 이름이 어떻게 되죠?”
“홍지연이요.”
“안에 있는 게 확실한가요?”
그게 중요했다.
안에 없다면 찾는다는 것도 무의미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며 성우에게 답했다.
“여기 출연하는 배우인데 아직 안 나왔어요.”
“알겠어요. 제가 어서 들어가야 구할 수 있으니 기다려주시겠어요?”
“꼭 좀 부탁드려요. 오늘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나갔어요.”
그제야 아주머니는 손을 놔주었다.
성우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고 등을 돌렸다. 그때 스태프 가운데 한 명이 다가왔다. 수염이 그득한 산적 같은 인상의 그는 촬영 감독이었다.
“캠 하나만 더 달고 들어가요.”
“이미 하나 달려 있잖아요?”
“안에 조명이 없으면 그걸로는 못 찍어요.”
“이거는 뭐 달라요?”
“연기 때문에 어차피 잘 안 보이겠지만 이거는 적외선 카메라에요. 10초면 되니 잠시만요.”
촬영 감독은 캠을 부착했다.
마운트하는 과정은 빠르고 단순했다.
그가 파워까지 킨 것을 확인한 성우는 다급하게 기현우한테 뛰어갔다. 그런 그에게 기현우는 늦다며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표정에 드러난 각오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이 할 일을 챙겼다.
“산소 잔량 체크.”
“65% 남았습니다.”
“조금 아슬아슬한데 일단 들어가자. 마스크 착용해.”
기현우의 신호에 성우는 마스크를 썼다.
밸브를 풀자 산소가 밀려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저 안에서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안전장치가 이것이었다. 그리고 한 줌의 산소조차 아쉬워할 누군가의 생명줄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향해 기현우가 소리쳤다.
“입구 쪽으로도 다른 구조팀이 돌입 시작했어. 그러니까 객석은 그쪽에 맡기고 우리는 무대 뒤를 체크할 거야.”
“알겠습니다.”
“가자!”
이번에도 선두는 기현우였다.
그가 다시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성우 역시 따라갔다. 철문을 뚫고 들어갔던 아까와 달리 속도가 제법 났다. 하지만 안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니 시야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연기마저 바닥까지 꽉 차 있었다.
-이거 살아있기를 바라기 어렵겠는데.
두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미 이 정도라면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살펴야 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포기할 수 없었다. 앞장선 기현우 역시 성우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벽을 짚으며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배우들의 대기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지점이었다. 화재가 나면 그런 곳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 때문이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는 더 심했다.
침대밑이나 장롱 속에 숨는 경향도 짙다. 물론 이곳에 아이들은 없겠지만, 모든 공간은 다 살펴야 했다. 악마의 검은 손길 같은 연기를 피해 어디 갇혀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굳게 닫힌 문 하나와 마주했다.
“대기실인 거 같다. 내가 오른쪽 갈 테니 네가 왼쪽 맡아.”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놓치지 않게 잘 봐.”
기현우는 그렇게 말한 이후.
문을 크게 두드리며 안에 사람이 있는지 체크했다. 혹시라도 아직 정신이 있는 이가 있다면 주의를 줘야 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유독 가스가 훅 밀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에서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둘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공간.
그곳에서 성우는 촉감에 의지해야 했다.
소방용 플래시가 비춰주고 있지만, 진한 연기마저 뚫지는 못했다.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성우는 혹시 쓰러져 있을지 모르는 요구조자를 찾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었다.
-근처에 살아있는 인간은 없어.
귀신은 귀신이었다.
두부의 감지력은 제법 효과가 좋았다.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감지는 녀석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녀석에게 이런 연기쯤은 큰 방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성우는 그런 두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오리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문 하나를 더 찾았다. 아마도 대기실에 딸린 화
장실인 것 같았다.
“문 하나가 더 있습니다.”
“벌써 다 수색한 거야? 제대로 한 거 맞아?”
“확실히 체크했어요.”
“잠깐 기다려.”
기현우의 목소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대기실의 규모상 몇 m 이내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성우는 그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문을 두드리며 안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체크했다. 두어 차례 두드리던 성우는 곧 실망했다. 안에서 어떤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부의 반응은 달랐
다.
-한 명··· 아니 두 명이다.
‘안에 있어?’
-있기는 한데 간당간당해. 어떻게 아직도 버틸 수 있었지? 그런데 빨리 산소를 안 주면 숨 막혀 죽을 거...
녀석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한가하게 두부의 말을 다 들을 수 없었다.
성우는 기현우를 급하게 찾았다. 당장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혼자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두 사람의 산소통 모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대답이 튀어나감과 동시에.
시야에 기현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를 뚫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은 무척 반가웠다. 확실히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화르르륵.
천정을 타고 들어오는 화염.
벌써 불길은 그들이 있는 대기실 밖까지 거의 다가왔다.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는 퇴로가 막혀 이곳에 갇힐 것 같았다. 기현우도 그걸 아는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구조에 집중해. 그냥 두고 나갈 수는 없잖아.”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문을 젖혔다.
하지만 그것은 시도에 불과했고 겨우 1~2cm만 열리다 멈췄다. 이내 그는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고 성우를 불렀다.
“문 아래의 틈을 물수건으로 막은 것 같아. 힘으로 밀어.”
“알겠어요.”
“하나~ 둘 셋!”
두 건장한 남자의 힘은 확실히 대단했다.
문은 느리지만, 천천히 앞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물을 머금은 수건이 문 아래에 끼어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한계를 넘어서자 문은 쉽게 열렸다. 그 안으로 둘이 들어서자 물이 흥건한 바닥에 한 남자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기현우는
재빨리 보조 마스크를 꺼내 그에게 씌웠다.
“성우야. 퇴로 막히기 전에 어서 데리고 나가자.”
“안에 한 명 더 있어요.”
“더 있다고?”
“네. 분명히 더 있어요. 믿어주세요.”
기현우는 잠시 고민했다.
더는 지체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스크 너머에서 바라보는 성우의 눈빛은 익숙했다. 전에도 많이 보던 것이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강현. 그 녀석도 종종 이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신기하게도 사람을 구해냈다. 그것을 떠올리자 솜털이 바짝 서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 없으니 빨리 찾아!”
성우는 그 말을 기다렸다.
더 안으로 들어가니 한 칸짜리 화장실 문이 보였다. 손으로 밀어 열어보려고 했으나 안에서 잠겨 있었다. 다급히 바닥에 엎드려 좁은 틈으로 안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 노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위로 넘어갈 공간은 없었다.
도끼는 있지만, 하필 문에 기대어 있었다. 문을 차서 부숴버리기도 그대로 도끼로 내리찍기도 어려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현우는 어서 나가자며 소리치고 있었다. 잠깐 고개를 돌리니 어느덧 대기실 입구까지 화염이 들어오고 있었다.
‘제길··· 방법이 없는데.’
-내가 도와줄까?
‘뭘 어떻게 하려고?’
-문만 열면 되는 거지? 정신 바짝 차리고 잠깐만 기다려.
성우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금장치만 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부는 알겠다며 답을 하고는 더는 말이 없었다. 그때 몸속의 뭔가 꿈틀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격렬했고 또 악의적이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집어 삼켜질 것 같았다.
그때 화장실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서서히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쓰러져 있던 여자가 서 있었다. 그 눈동자는 공허한 것이 섬뜩할 정도였다. 그제야 성우는 이 여자가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두부가 그 원인일 것이다.
녀석인지 아니면 다른 무사귀인지 모르지만, 빙의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녀는 어렵게 입술을 떼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어···서 잡···아.”
“뭐?”
“한···계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성우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걸 붙잡으려 했지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터어엉!
성우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산소통이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자가 성우 방향으로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슴 위로 쓰러지며 충격을 주자 성우는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치 잠깐 가위에 눌린 기분이었다. 하여튼 그녀를 가슴으로 받아낸 성우는 기현우의 고함에 정신을 차렸다.
“야! 무슨 일이야? 대답 안 해?”
“찾았습니다. 지금 나갈게요.”
“당장 뛰어나와!”
보조 마스크를 씌운 이후.
성우는 그 여성을 품에 안고 달렸다.
대기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온갖 물품에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기현우는 이미 대기실 밖으로 나가 성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우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와 자신 사이의 공간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천장이 무너지기 전에 어서 나와.”
“네?”
“방화복 입고 있잖아. 그거 믿고 그냥 뛰어!”
4m의 거리.
많아야 6~7걸음 정도면 된다.
하지만 불이 허벅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저 안으로 뛰어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었다. 머리 위에서 타닥이며 타오르는 천정은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성우는 품에 안은 여인을 어깨에 걸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방화복 너머의 느껴지는 열기.
그것은 지옥 불처럼 성우의 몸을 탐했다.
그 뜨거운 열기에 방화복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랫도리마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워낙 빨리 달린 덕분일까? 생각보다 쉽게 그 불지옥 같은 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예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방화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바지 밑단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기현우는 재빨리 손으로 두들기며 그것을 꺼줬다. 그리고는 성우의 헬멧을 두어 번 내리치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 꼴통 새끼 같으니. 어서 나가자.”
“앞장서시죠.”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말고 잘 따라와.”
위급한 상황은 넘겼다.
하지만 요구조자는 아직 위험했다.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상태라면 전에 구했던 그 학생처럼 될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밖으로 나가는 길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꽤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아직도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전에 받은 경험이 있었다. 과거 환상을 통해 다른 무사귀의 과거를 봤을 때와 비슷했다. 두부가 잠시 비운 탓에 무주귀가 날뛴 대가로 여겨졌다.
성우의 다리는 부들거렸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마지막 힘을 끌어내며 걷자 드디어 밖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그곳에는 다른 동료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로 물의 장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쏴아아아.
물줄기를 통과하자 마침내 밖이었다.
긴장감이 탁 풀리는 것을 느낀 성우는 휘청였다. 그런 그를 다른 소방관이 붙잡고는 크게 고함쳤다.
“여기 요구조자 둘! 구급차 어딨어?”
“구급 어서!”
“들 것 가져와!”
잠시 후.
성우는 구급 대원에게 여자를 인계했다.
그런 이후에 거의 좀비처럼 걸어 소방차로 향했다. 그 붉은 차체에 등을 기대며 털썩 주저앉았다. 더는 서 있을 그럴 힘도 없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방금 나온 문을 통해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자 몸서리가 쳐졌다.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기현우 대원이 다가왔다.
“너 좀 하던데.”
“선배님 덕분이죠.”
“그냥 배우 때려치우고 소방관이나 해. 왜 재능을 낭비해?”
“강현 교관님도 똑같은 소리를 하셨는데 말이죠.”
“너 보면 강현 그 인간이 떠올라서 짜증 나. 거기 안에 한 명 더 있는 거는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기현우의 질문에 성우는 머뭇거렸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는 답은 필요 없다는 듯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물이나 마셔. 우리 임무는 이걸로 끝이야.”
“안에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요?”
“벌써 10분 넘었어. 살아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그리고 소방관이 우리만 있냐? 저기 다른 팀이 들어갈 차례니 그냥 쉬어.”
“수고하셨습니다.”
성우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당황해서 거길 건널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내 뭔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왕창 녹아내린 자신의 신발 밑창이었다. 그것을 보고 웃음이 실실 나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확
실했다.
‘어쨌든 목표 완료!’
< 광끼 -126 > 끝
ⓒ l살별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