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25 >
따라라라랑!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
그것을 들은 성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숨 쉴 틈도 없이 1층으로 달려 차에 올라탔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그를 태운 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지금 그가 타고 있는 차는 보통의 그런 승용차가 아니었다.
위애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
붉은색의 거대한 차체.
성우가 탄 차는 소방차였다. 응급 상황에서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가는 차. 그곳에 탄 성우는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상황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그였다.
-긴장하지 마.
‘그게 말처럼 쉽냐.’
-사람이 죽은 거는 처음 봤지?
성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출동을 하기 직전에 성우는 시신을 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처참한 장면은 처음이었다. 그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차량과 오토바이의 충돌.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생긴 사고였다. 당연히 사망자는 오토바이를 탄 쪽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그는 성우와 다른 대원이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눈이 내린 하얀 도로 위.
그곳을 흐르는 핏줄기는 비현실적이었다.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성우는 그 장면이 상당 기간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았다. 확실히 ‘죽음’이란 단어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해졌다.
멘탈이 얼마나 단단해야 버틸까.
그런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다시 또 출동할 용기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화재 현장에서 동료를 잃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일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까 사고 현장은 빨리 지워. 한 번에 하나씩 생각해야 해.”
성우의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남자.
그는 성우의 사수인 기현우 대원이었다.
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성우에게 방화복 시연을 보여준 것이 바로 그였다. 그때의 인연 덕분인지 이번 촬영도 그 소방서에서 하고 있었다.
“이번 현장은 고드름 제거가 임무야. 전에 전기톱 써 봤어?”
“전기톱이요?”
“잘라내서 떨어뜨려야 해. 안 그러면 날이 따뜻한 날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보행자를 덮치니까.”
“그런 일도 하나요?”
“여름에는 말벌, 가을에는 멧돼지, 겨울에는 고드름. 하는 일이 참 다양하지?”
성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방관이라 하면 불을 끄는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고정관념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기현우는 그건 약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잠근 문을 열어달라고 신고가 들어오면 난감할 뿐이었다.
“그런 것도 해줘요?”
“요즘에는 잘 안 해주는데. 안에 사람이 갇혀 있으면 해야지.”
“그렇군요.”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응급 상황이라 말은 하면서 문을 강제로 열어 파손되면 우리한테 배상 책임을 물어.”
“말도 안 돼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현우는 그게 현실이라 꼬집었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대원이 그를 만류할 정도였다. 그 모든 이야기가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진급 안 할 거야?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면 찍혀.”
“제가 없는 말 하는 건가요.”
“그래도 그렇지. 적당히 하고 나가서 쓸 장비나 교육해.”
“알겠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갑자기 들려온 무전 때문이었다.
그것을 들은 모두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관할 지역 내에서 큰불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무전으로 잠시 조율하던 끝에 차량은 그대로 유턴해 화재 현장으로 곧장 향했다. 지금 고드름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손발이 꽁꽁 어는 추운 날씨라 그곳은 몇 시간 후에 가도 될 것이다.
“화재 상황이다. 방화복 챙겨!”
“서둘러!”
성우도 재빨리 방화복을 입었다.
그 역시 귀가 있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거의 열흘 동안 소방서에서 촬영했지만, 생사를 가르는 그런 순간은 없었다. 아직 두 명의 목숨값을 채워야 하는 성우로서는 점점 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얼마나 큰 불이길래 다들 표정이 굳은 걸까?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도착한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학로 부근의 소극장에서 연기가 뭉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곳은 성우도 한두 번 관람을 하기 위해 갔었던 곳이었다.
문제는 시간대였다.
지금이라면 한참 공연을 하고 있을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건물에서는 계단을 통해 사람들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검은 연기를 뚫고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그 뒤편으로는 점차 커지는 화마가 붉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기현우! 너는 성우랑 입구에서 대피 유도해.”
“싫습니다. 지금 구조에도 손이 모자란 상황인 게 뻔하잖아요. 소극장 안이 얼마나 복잡한데요.”
“야 이 새끼야. 그럼 저 친구 데리고 안으로 투입할 거야? 만약 그랬다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그 정도 각오도 없었으면 이런 촬영 하면 안 되죠!”
구조대장과 기현우는 치열하게 다퉜다.
하지만 한가하게 그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1분 1초가 귀중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나온 결론은 성우를 화재 진압하는 경방에 맡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두고만 보고 있을 성우가 아니었다. 밖에서 대충 불을 끄는 시늉만 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성우는 뛰어나가려는 구조팀장의 소매를 붙잡았다.
“저도 들어가게 해주세요!”
“안돼요.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여요? 밖에서 지원하는 거로 만족하세요.”
“지금 카메라로 찍고 있죠?”
성우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자 서 PD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렌즈를 보며 성우는 단호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 의사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불상사가 있더라도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PD님도 들으셨죠?”
서문길 PD의 안색은 굳었다.
저 뜨거운 불길 속으로 출연자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성우는 구조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런 성우의 뒷모습을 보고 서 PD는 대장을 찾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미 소방차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구조를 책임질 그가 이 문제로 입씨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강현 이 녀석!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물건을 보냈구나.”
기현우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서둘러 성우의 뒤를 따랐다.
구조 대원들이 돌입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경방에서도 화재를 잡기 위한 방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불은 1층을 집어삼키고 2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지하의 소극장이었다. 입구가 불에 막혀 있어 나오고 싶어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 때문에 성우는 더 조급했다.
소극장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대부분의 소극장은 출구를 1개만 사용하는 편이다. 나머지 비상구는 검은 천으로 가려놓는 경우도 많았다.
완벽한 암전을 위한 조치였다.
따라서 비상구를 찾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부 소극장은 예전에 비해 안전시설이 개선되었지만, 이곳은 아닌 것 같았다. 스프링클러만 작동했다면 이 정도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성우는 안으로 진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혼자 안으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성우는 자신의 옆에 선 기현우를 바라봤다. 지시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비상구로 간다.”
“입구로 안 가고요?”
“어차피 불길 뚫는데 시간 좀 걸릴 거야. 그쪽에 사람이 몰려 있을 수 있으니 가자. 혹시 모르니까 빠루(쇠 지렛대)랑 도끼 챙겼지?”
“물론이죠.”
장비라고는 별거 없었다.
방화복과 산소통 그리고 도끼와 쇠막대가 전부였다.
그 이상의 장비는 불필요했다. 모든 것들을 다 들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우는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그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저 들어가도 된다고 허락받은 건가요?”
“그렇다고 쳐. 나중에 징계받더라도 지금은 현장에만 집중해.”
“넵!”
구조팀의 골통.
기현우다운 모습이었다.
같이 근무한 지 며칠 안 됐지만, 성우는 볼 때마다 신기했다. 기현우라는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못해 신기할 정도였다. 때때로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보이지만, 그 결과는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앞서 나가는 그의 넓은 등을 보니 듬직할 뿐이었다.
둘은 건물 옆으로 돌아갔다.
추측만으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면을 직접 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선으로 해당 건물의 정보를 받은 덕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비상구로 추정되는 문이 보였다. 기현우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제길! 또 잠겨 있잖아.”
“어떻게 할까요?”
“부숴야지 뭐 방법이 있겠어?”
기현우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그 말에 성우는 도끼를 집어 들어 내리쳤다. 머리 위로 한껏 치켜 올려졌던 도끼는 그 무게에 가속도까지 더해 손잡이를 내려쳤다. 단 한 차례의 가격에 손잡이는 볼품없이 부서져 떨어져 나갔다.
-나이스 샷!
두부가 환호했다.
하지만 그게 들릴 틈이 없었다.
성우는 기현우가 문틈에 쇠 지렛대를 넣고 제끼는 것에 힘을 보탰다. 그제야 철문이 삐그덕 거리며 간신히 틈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지하에도 불이 번진 것 같다.”
“어서 가시죠.”
“따로 행동하지 말고 무조건 내 옆에 붙어.”
기현우는 마지막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그 뒤를 성우가 따랐다. 마스크 너머의 어두컴컴한 그곳은 미로나 다름없었다. 온갖 잡다한 물건이 쌓여 있어 둘의 진입 속도는 무척이나 더뎠다.
“왜 이런 거를 여기다 쌓아놓고 지랄이야!”
기현우의 욕설이 들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라이프 라인을 풀어가며 전진했다. 성우는 그 빛을 따라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갈 때도 이 선을 따라가야 하니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약한 생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둘은 발길을 멈춰야 했다. 문은 보였지만, 그 앞이 박스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거 옆으로 다 치워. 지나갈 통로만 만들면 돼.”
“알겠습니다.”
“서둘러 시간이 없어!”
성우는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시야는 좁았고 점차 숨이 가빠졌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점차 그들이 서 있는 통로가 연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점점 더 조바심이 났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이제 됐으니 지나가자.”
마침내 다시 앞으로 기현우가 나섰다.
그리고 무대 뒤편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비상구 표시는 마치 도와달라며 S.O.S 모스 부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곳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가로막혀 있던 연기가 밀려왔다.
기현우는 자세를 낮추며 안을 살폈다.
성우도 그의 뒤에 앉아 청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리고 몸의 근육은 미약한 신호라도 들리면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생존을 알리는 신호는 전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안 되겠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서두르시죠.”
“오케이. 시원시원하니 좋다!”
둘은 안으로 더 진입했다.
대기실로 추정되는 곳을 지나 무대 근처로 향했다.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두 여성을 발견했다. 다가가니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였다. 연기 때문에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보조 마스크 씌우고 한 명씩 안고 나가자.”
“비상구 쪽은 안고 지나가기 어려울 거 같은데요.”
“그건 가서 생각하고 일단 이동!”
성우는 서둘러 마스크를 씌웠다.
그리고 둘 중의 한 명을 품에 안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생각보다 느껴지는 무게가 가벼웠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명의 무게라 생각하니 마음은 무거워졌다. 성우는 서둘러 미리 깔아놓은 라이프 라인을 따라 움직였다. 그의 뒤를 따라 기현우가 나머지 한 명을 안고 뒤쫓았다.
그로부터 2분 후.
성우는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서 PD는 성우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메라맨도 따라가지 못한 안의 상황이 너무 궁금하고 불안했던 그였다. 만약 성우가 잘못되면 평생 후회할 뻔한 그였다.
덕분에 10년쯤 늙은 것 같았다.
그런 성우가 품에 한 여성을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서 PD는 본능적으로 뭔가를 감지했다. 이 장면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1분이 될 것이란 그런 예감이었다.
-일단 한 명! 딱 한 명만 더 구하자.
성우가 구조한 여성은 구급대원이 살폈다.
상태가 위중한 것이 금방이라도 생명이 꺼질 것 같았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성우는 몸을 돌렸다. 더는 자신이 해줄 것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구급대원과 의사들이 그녀를 돌볼 것이다.
그때 기현우가 재돌입하자며 성우를 불렀다.
그를 향해 뛰어가려던 성우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붙잡는 것을 느낀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제발. 제 딸 좀 살려주세요!”
< 광끼 -125 > 끝
ⓒ l살별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