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24화 (125/161)

< 광끼 -124 >

비 내리는 아침.

성우는 차창 밖을 내다봤다.

나름 아침 일찍 출발한다고 했지만, 도로에는 차가 제법 많았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물이 달리는 속도에 따라 뒤로 밀려났다. 그 모습을 보며 성우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6개월이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한 달 후면 이제 겨우 28살이 되는 성우였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음을 논하고 있는 자신이 처량했다. 물론 무주귀가 풀려난다고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니었다.

육체는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사망이 맞았다.

주체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운명이 자신을 멱살 잡고 억지로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아직 기회가 있잖아. 너답지 않게 왜 이래.

‘너 같으면 시한부 선고받고 헤헤거리며 웃고 즐길 수 있어?’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게 죽는 거랑 뭐가 달라.’

-나는 일단 한 번 죽어 봤잖아. 내 경우에는 마지막 그날까지 웃고 즐겼는데?

아주 밉상이었다.

마빡이라도 한 대 쿵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두부가 하는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은 지웠다. 두부는 처음으로 자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 풀어 놓았다. 꽤 긴 시간 함께 했던 녀석이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도 사약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입장이었어.

‘사약을 받았어?’

-웃긴 게 뭔지 알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내 동무는 두 사발을 먹어도 죽지 않았어. 그런 거를 보면 목숨이란 것이 참 질겨.

‘그런 경우도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

-입안에 상처를 내고 두 사발을 더 원샷 시키더라. 그런 이후에 뜨거운 방에 갇혀서 독이 퍼지는 고통을 받다 죽었어. 그게 바로 사약이야.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약이라 함은 보통 즉사 아닌가 싶었다. 한 사발만 마셔도 피를 토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봐온 사극에서는 보통 그랬다. 하지만 두부는 그게 아니라며 혀를 찼다.

-그렇게 순식간에 안 죽는다니까. 기록에 의하면 열여덟 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고.

‘그렇구나. 그런데 너는 왜 그런 벌을 받은 거야?’

-그거는 노 코멘트!

‘나 죽기 전에 어서 털어놔 봐.’

성우는 슬슬 꼬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부는 그것까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녀석은 언제나 애용하는 묵묵부답을 초지일관 유지하며 빠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성우는 말이 되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사약을 먹고 죽었으면 도대체 어떻게 무사귀가 된 거야?’

-에이씨! 죽기 싫어서 야밤에 탈주하다가 객사했다. 이제 만족하냐?

‘아~ 그렇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낯선 공간에서 객사하는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자신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건지 궁금해졌다. 지금 바라는 것은 오래 사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게 언제인지 모를 일이지만, 인격적인 존중을 받으며 평안하게 숨을 거두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이제 계절도 겨울로 접어들었다.

겨울비라 그런지 느낌도 처량 맞았다.

성우는 말없이 차창 너머를 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어느 사이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느낌상으로는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성우는 앞에서 운전하는 요한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왔어요. 10분 정도 더 걸려요.”

“생각보다 엄청 머네. 이걸 어떻게 매일 와.”

“그러게요.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다행이에요.”

거의 90분 거리였다.

그 거리를 매일 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예 근처에 임시로 보금자리를 잡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유부는 아쉽지만, 최정에게 잠시 맡겨야 했다. 한동안 두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차가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창문 너머는 벌써 분주했다.

방송국 차량이 몇 대 서 있었고 카메라도 보였다.

그들 역시 성우의 차를 발견했는지 렌즈가 이쪽을 향하고 했었다. 요한이 그 옆에 차를 멈추자 성우는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 곧장 서문길 PD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를 PD는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비도 오는 데 오느라 고생했어.”

“일찍 오셨네요.”

“우리는 촬영 준비해야 하잖아.”

“그럼 앞으로 촬영 끝날 때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성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꾸밈없는 진심이었다.

목숨이 걸려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만큼의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런 성우의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서 PD도 얼굴을 굳히며 손을 내밀었다.

“오히려 내가 부탁할 말이야.”

이번 촬영은 마지막 기회였다.

서 PD 역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현직 소방관들의 목소리를 꾸밈없이 내보내고 싶었다. 매번 정치인들은 처우 개선을 말했지만, 실제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그걸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했다. 이미 그것은 출연자인 성우와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그는 잠시 손목시계를 보더니 손짓했다.

“어서 들어가자.”

“이거 군대 다시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겨우 3주인데 너 설마 방위였어?”

“요즘 방위가 어딨어요. 저 엄연히 육군 수색 중대 출신이에요.”

성우는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서 PD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가 방금 성우가 말한 전설의 방위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74년생 마지막 방위였다. 서문길은 멋쩍게 웃으며 성우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향하는 곳.

그곳은 소방관을 육성하는 학교였다.

입구를 통과하자 훈련을 받는 미래의 소방관들이 보였다. 성우는 이곳에서 앞으로 3주 동안 출퇴근하며 집중 훈련을 받을 예정이었다. 기존에 2주로 잡았던 교육 일정은 3주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교관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이거 첫날부터 비가 오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쪽은 이번에 출연하는 유성우.”

“반갑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모든 훈련을 교육 시켜줄 강현 소방교님.”

성우는 강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상이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두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관상 죽여준다.

‘관상이 뭐 어쨌길래?’

-초년에 일복이 터지는 그런 상이랄까? 아주 사고를 몰고 다닐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성우는 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 입구에는 뭔가 명언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성우는 그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누가 쓴 건지 모르지만, 마음속 깊숙한 곳에 와닿았다. 성우는 그걸 되뇌며 마음속 깊숙한 곳에 새겨넣었다.

[살려서 돌아오라, 살아서 돌아오라!]

* * *

3주 동안의 훈련.

그 기간은 무척 치열했다.

신임 소방관의 교육 기간은 3개월이 넘는다.

그걸 짧은 기간 내에 습득해야 하는 성우였다. 그러니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과정을 그냥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우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방화복을 입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온갖 도구의 사용과 구조 시 주의점까지 배워야 했다. 그가 배우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또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

서 PD가 걱정이 되어서 어느 날은 만류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우는 인생을 걸고 있었다.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성우의 습득력은 최고였다. 기존에 교육을 받고 있던 예비 소방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간혹 그들과 어우러져 받는 교육.

그곳에서도 성우는 빛이 났다. 그 모든 것은 무예를 수련하며 만든 엄청난 신체 능력과 뛰어난 암기력 덕분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큰 도움을 받던 두 가지의 덕을 여기서도 보았다.

또 하나 덕을 본 것이 있었다.

그건 군대에서 쌓은 경험이었다.

특공대는 아니지만, 수색 중대 출신인 성우였다. 레펠 정도의 기본 요령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이곳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구조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레펠이었다. 그것을 본 담당 교관인 강현은 종종 성우한테 이런 농담을 했다.

“만약 인기 떨어져서 할 거 없으면 그냥 소방관 시험 봐서 이쪽에서 일해요. 이게 천직이네.”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소방관이 고귀한 직업인 것은 알기는 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딱딱하고 건조한 조직에 속해 일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모처럼 두부와도 의견이 일치하는 바였다.

3주라는 시간.

그것은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교육 과정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끝에 도달했다.

그 마지막 날에 성우는 교정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이곳에서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보낸 3주라는 기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성우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등을 돌렸다.

-이제 여기도 끝이네.

‘3달 같은 길고 긴 3주였어.’

-어서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이곳에서 빠진 살만 4kg였다.

덕분에 얼굴이 퀭해 보이기까지 했다.

성우는 마지막으로 함께 동고동락한 제작진과 강현 교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요한이 대기 중인 차에 올라탔다.

지금부터 휴식할 예정이었다.

본격적으로 소방서에 배치되기 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물론 그 기간이 긴 것은 아니었다. 겨우 3일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라 여기는 성우였다. 그런 그에게 요한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수고하셨어요. 집으로 바로 가실 거죠?”

“아니. 저녁 먹고 들어가자.”

“뭐 드실 건데요?”

그 틈을 타 두부가 나섰다.

녀석은 3주 동안 잠재웠던 식탐을 드러냈다.

온갖 메뉴를 계속 읊었지만, 성우가 선택한 것은 그 가운데 들깨가 듬뿍 들어간 삼계탕이었다. 역시 몸보신에 그것만 한 것이 없었다. 더구나 날도 추워지고 있어 딱 적당했다.

“그럼 신길동으로 가야겠네요.”

“너도 삼계탕 괜찮지?”

“저야 좋지요.”

요한은 그렇게 말하며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어느새 정든 소방 학교가 서서히 멀어졌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던 성우는 긴장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교육이 아닌 실전이었다.

‘만약 2주 내내 사고가 안 나면 어떡하지?’

그에게 주어진 2주라는 시간.

그사이에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렇다고 다른 이의 사고를 바랄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는 그런 두 가지의 마음이 충돌했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라 욕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내 목숨부터 걱정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큰 사고 없이 지날 수도 있었다.

그 상황을 대비해 성우는 안전책을 마련해야 했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개념의 것이 필요했다. 성우는 모처럼 삼계탕을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조용해진 두부를 찾았다.

‘지금 내가 기부를 하면 효과가 있을까?’

-전과 같이 효과가 크게 나진 않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좋겠지. 얼마나 하게?

‘우선은 10억에서 15억 정도 생각하는데.’

-헉··· 그 돈이면 죽을 때까지 고기 사 먹을 수 있겠다.

일말의 가능성만 있다면?

더한 돈도 들일 마음이 있었다.

얼마 후면 광고비가 밀려 들어올 예정이었다. 대충 계산해 봐도 35억이나 되는 큰돈이었다.

그걸 다 써도 괜찮았다.

목숨은 하나지만, 돈은 벌면 되는 것이다.

그가 거절한 광고만 찍어도 당장 해결될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스타가 된 이후에 크게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성우의 말을 듣고 두부가 내린 결론은 해볼 만 하다는 것이었다.

“요한아. 만약에 말이야.”

“말씀하세요.”

“10억으로 사람을 가장 많이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또 기부하시게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요한은 잠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한참 말없이 있던 그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을 제시했다.

“난민 구호가 가장 효과가 좋지 않을까요?”

“난민?”

“요즘 기아보다는 그 뉴스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요. 몇 해 전에 해변에서 죽은 아이 사진 못 봤어요?”

“쿠르디··· 그 아이 말하는 거구나.”

성우는 그 사진을 잊을 수 없었다.

해변에 쓰러진 3살 아이의 주검은 충격적이었다.

무심한 파도가 머리를 흠뻑 적셔도 아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 사진은 국제 사회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추모는 끝없이 이어졌지만, 정작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못했다. 특히 지리적인 거리가 먼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성우는 에티오피아에 의료 봉사를 떠난 부모님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차라리 두 분에게 맡길까?”

< 광끼 -124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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