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20 >
‘작은 행복’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매일 같이 신문이며 방송을 통해 그날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작두의 입장에서는 본의 아니게 간접 홍보가 되고 있었다. 그들이 연기하는 소소한 행복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트렌드의 방점을 찍었다. 서점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담긴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양지가 있다면 음지도 있는 법.
그런 인기는 작두에 좋은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가 생긴 곳은 바로 티켓이었다. 75석의 작은 극단이기에 표는 언제나 부족했다. 이미 성우가 출연하는 일정은 그의 팬에 의해 매진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암표의 가격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계속 치솟고 있었다.
### : 와~ 온라인에서 ‘작은 행복’ 티켓 가격이 20만 원을 넘어갔어요.
### : 작은 행복을 찾다 우울해질 각이에요.
### : 썩을 암표 판매! 유성우는 각성하고 출연 기간을 더 늘려달라!
### : 갓성우! 저 얼마 전에 ‘작은 행복’ 봤는데 짱 멋져요.
### : 나도 심장 마사지가 필요해! 별님 때문에 심장이 쿵해쪄!
성우는 그게 걱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극단 차원에서 경찰에게 요청을 하긴 했다. 하지만 이 지역이 워낙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이라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근 파출소는 언제나 인력이 부족했고 암표상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그를 찾는 곳은 너무 많았고 하나씩 거절하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다. 특히 온갖 매체의 기자들이 부나비처럼 모여들었다. 하지만 실제 인터뷰를 따낸 곳은 전혀 없었다. 한 곳을 해주면 불공평하다며 들이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참다못해 요한에게 한탄했다.
“아니 나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매체가 많은 지 몰랐네.”
“정기 간행물 등록된 곳이 올해 2만이 넘어갔어요.”
“허! 엄청나네.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아냐?”
“그 정도는 상식 아닌가요?”
뭔가 밉상이었다.
성우는 뭐라고 하려다 참았다.
그리고는 시계를 슬쩍 보며 말했다.
최근 일정은 꽤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서둘러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연극은 물론이고 광고 촬영까지 해야 하기에 뭔가 정신이 없었다.
그가 현재 있는 곳은 광고 촬영 현장이었다.
새벽부터 시작한 촬영은 어느덧 끝이 보였다. 오늘 촬영하는 광고는 미루고 미루던 동활 제약의 광고였다. 그곳에서 성우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바로 박형권이었다.
과거 독립 자금을 찾아서 준 이후에 종종 보았지만, 미국에 간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그를 가장 반기는 것은 역시 요한이었다. 형권의 근황을 듣다 마케팅팀의 막내 딱지를 벗어나 대리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성우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성우는 촬영 현장에서 형권과 내내 어울렸다.
그것을 보는 제약 회사 쪽의 사람들은 당연히 눈이 동그랗게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성우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동활 제약의 광고를 수락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형권이 다니는 회사라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이토록 챙겨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진짜 동생은 아니지만,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가 건네준 돈은 월급쟁이가 상상하지 못할 그런 금액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돈을 받고 얼씨구나 하며 회사를 그만뒀을 법도 했다. 그러나 형권은 딱히 내색하지 않고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광고 촬영은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성우의 스케줄이 워낙 빡빡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순식간에 촬영을 마친 성우는 형권에게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평소라면 점심도 같이 먹고 했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요한이 모는 차는 촬영 현장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다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소방서에도 가야 한다고?”
“며칠 전에 가기로 결정하셨던 거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왜 나만 가야 해?”
“인공호흡을 도와주었던 혜연 씨도 같이 불렀다고 들었어요.”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처음에 붙잡지 않았다면 계단을 굴러 더 크게 다쳤을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쏠려 있지만, 그녀의 도움이 적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성우는 그나마 혼자가 아닌 것에 다행이라 여겼다.
소방서에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성우에게 ‘의인’이라며 상을 주려 했기 때문이다.
요한과 회사를 통해 몇 번이나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뉴스에서 계속 그 장면을 틀어대는 통에 서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인터넷 뉴스를 보면 댓글을 통해 왜 상을 안 주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괜히 자신이 튕기면 튕길수록 소방재난본부와 관할 소방서만 난감해지고 있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는 거야?”
“네. 정이 형이 챙겨준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또 엄청 요란한 거로 챙긴 거는 아니겠지?”
“글쎄요.”
최정의 센스는 분명 뛰어났다.
하지만 간혹 성우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그의 패션 감각이 때론 오류가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할 정도였다. 뒷좌석에서 옷 가방을 열자 재킷과 신발이 나왔다. 수상하는 자리라 그런지 꽤 신경을 써준 것 같았다.
“이상해요?”
“아니 생각보다 괜찮아.”
“형도 이럴 때는 좀 고지식한 거 같아요. 요즘 아이돌 보면 정말 특이하게 입고 나오는 애들도 엄청 많아요.”
“내가 아이돌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성우는 묵묵히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는 달리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도 이골이 났다. 차의 커튼을 치고 갈아입기 시작하자 두부가 말을 걸어왔다.
-이게 얼마 만에 받는 상이냐?
‘무슨 소리야. 올봄에도 상 받았잖아.’
-엄청 오래된 거 같은데 그게 올해였어?
올봄에 받은 ‘TV 남자 최우수연기상’
그것은 저승에서 온 차사 덕분에 받은 것이었다.
왈우를 통해 신인상을 받은 이후에 두 번째 상이었다. 더구나 지난번과 달리 백상예술대상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 상을 받기 위해 정말 어렵게 스케줄을 정리해서 한국에 왔던 그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했다.
자칫 한국에 오지 못할 뻔했었던 상황이었다.
할리우드의 그 빡빡한 스케줄은 배우를 고려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주연이라도 맘대로 미룰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 모든 것이 각 파트 별로 꾸려진 강력한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단 1분만 예정된 촬영 시간을 넘겨도 벌금이 나오는 곳이 할리우드였다.
그때 요한이 차를 멈추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왔어요. 준비 다 끝나셨나요?”
“응. 방금 다 입었어.”
“기자들 제법 많은데요? 입구에 방송 차량이 몇 개 보여요.”
“이따 끝날 때 도망갈 준비 잘 해. 바로 튈 거야.”
성우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후에 성우는 차에서 내려 소방서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제법 많은 기자가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성우의 앞길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틈을 잽싸게 빠져나가자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 성우 앞에 소방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오늘 행사를 진행하는 행정팀장 진성욱 소방위 입니다.”
“안녕하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그는 안으로 성우를 안내했다.
성우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매번 소방서를 지나쳐가도 그 안이 어떻게 생긴 지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행사장으로 가면서 진성욱은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했다.
“이쪽은 구급과 구조가 대기하는 사무실입니다.”
“구분이 어떻게 되는 거죠?”
“불을 끄는 대원을 경방, 사람을 구하는 구조와 그리고 구급차를 운용하는 구급대원으로 나뉘죠.”
“그럼 화재가 나면 경방 대원만 나가나요?”
“아니요. 화재가 나면 보통 다 같이 가죠. 안에 사람이 있으면 구해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성우가 아주 어릴 적.
그때는 소방관이 되길 꿈꿨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옛 생각이 부쩍 많이 났다.
그의 장난감 가운데 붉게 칠해져 있던 소방차는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성냥과 물총을 가지고 소방관 놀이를 종종 해주고는 했다.
당시에 성우는 그 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소방관 흉내를 내겠다며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물총을 쏘는 그 모습은 어머니가 사진으로 찍어 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그 꿈은 희석되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있었다. 성우는 진성욱 소방위를 바라보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제가 어릴 때 꿈이 소방관이었어요.”
“정말요? 성우 씨가 소방관을 했으면 정말 잘하셨을 거예요.”
“그럴 리가요.”
“오늘 행사 끝나면 장비 한 번 착용해 보실래요?”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 말에 성우는 잠시 들떴다.
이후에 행사장에서 ‘의인’ 상을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어찌되었든 그 장면은 여러 기자들에 의해 촬영되었다. 이것으로 제발 그 호기심이 충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해진 일정이 마무리되자 기자들은 소방대원에 의해 정리되었다. 내부가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성우는 아까의 이야기를 꺼내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소방위님. 아까 하신 약속 기억하시죠?”
“기자분들 없는 게 편하시죠?”
“당연하죠.”
“그럼 셔터 내려져 있는 차고 쪽으로 가시죠. 이미 소방서장님의 허락은 받아놨어요.”
“감사합니다.”
둘은 차고로 내려왔다.
그러자 덩치가 우람한 펌프차가 보였다.
어떤 곳이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듯한 그런 듬직한 느낌이었다. 성우는 그 차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한번 타보고 싶다.’
-지금이라도 연예인 때려치우고 소방관이나 하던지.
‘그럴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네 성격이면 얼마 못 버틸 거 같은데. 괜히 엉뚱한 생각하지 마.
성우는 슬쩍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기는 했다.
이제는 회사 같은데 취직한다는 상상도 좀처럼 하기 힘들었다. 어딘가 소속되어 그렇게 매일을 똑같이 사는 것은 서툴렀다. 그래도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군대에서 겪어본 경험이 있기에 아예 불가능하다 여기지도 않았다. 그 나름의 장점도 있기는 했다. 그 사이 진성욱은 두 벌의 방화복을 꺼내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방화복인가요?”
“네. 산소통까지 합치면 18kg 정도 되죠.”
“엄청난 무게네요. 그걸 메고 다니면 금방 지칠 것 같아요.”
“맞아요. 여름에는 그냥 서 있어도 찜질방이 따로 없죠. 하하.”
그는 그렇게 웃더니 한 명의 대원을 불렀다.
둘에게 다가오는 그는 근육질의 덩치 큰 남자였다. 진성욱은 간단하게 그의 이름을 소개했다.
“이쪽은 구조팀의 기현우 대원입니다. 시범을 보여줄 거니까 일단 한 번 보세요.”
“팀장님. 천천히 할까요?”
“그래.”
기현우는 천천히 방화복을 입었다.
진성욱은 그의 옆에서 성우에게 하나씩 입는 방법을 안내해줬다. 성우는 그 모든 것은 눈에 담았다. 얼핏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은 알만했다. 방염 소재라 딱 봐도 뻣뻣함이 느껴졌다.
“직접 해보시겠어요?”
다음은 성우 차례였다.
성우는 하나씩 방화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소방서의 대원들은 어느덧 차고 안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그가 방화복을 입고 있다는 소문이 난 것이었다. 성우도 그것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마침내 산소통과 헬멧까지 쓰니 무게감이 제법 크게 느껴졌다.
“잘 하셨어요. 이거 방화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저야 좋죠. 뭣들 해 사진 좀 찍어줘.”
“현우 씨도 같이 찍어요.”
성우는 기현우, 진성욱과 함께 나란히 섰다.
둘 다 덩치가 제법 좋았지만, 성우도 그에 못지않았다. 키 큰 그들 세 명이 나란히 서자 여자 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다. 성우는 사진을 찍고 난 이후에 기현우 대원에게 질문했다.
“실제 상황에서는 몇 초 만에 입어야 하죠?”
“음··· 2분이 커트 라인이죠.”
“그렇군요.”
2분이란 시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민폐인 거 같아 방화복을 벗었다.
이러다가도 응급 상황이 되면 뛰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괜히 쉬는 시간을 빼앗기는 싫었다. 성우는 마지막으로 소방관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 이후에야 소방서를 나올 수 있었다.
아마 다음에 이곳을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떠오를 것 같았다. 밖에 나오니 기자들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행사가 끝나고 벌써 1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SBC의 서문길 PD입니다.”
“어쩐 일이신지?”
“실례인지 알지만 잠시 시간 좀 부탁드릴게요. 혹시 ‘골든 타임’이라는 프로그램 아시나요?”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프로그램이라면 자신도 아는 것이었다.
연예인이 방화복을 입고 화재 현장에 직접 투입 되는 리얼 다큐가 바로 ‘골든 타임’이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얼마 전에 끝난 것으로 기억했다.
성우가 그걸 물어보려고 할 찰나.
가슴 속 저 깊은 곳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갑자기 느껴지는 격통에 당황할 틈도 없이 두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났어! 무주귀가 폭주하···!
< 광끼 -12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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