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119 >
구급차는 금방 오지 않았다.
성우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1분도 지나지 않았으니 날아오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직도 그의 손바닥 아래의 심장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 그를 둘러싸고 작두의 단원들과 한 여인이 조바심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반응이 없는데...
‘나도 알아! 그런데 그냥 손 놓을 수 없잖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이러다 무사귀 하나 더 늘어나겠다.
성우는 그것만은 거부 하고 싶었다.
무사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무사귀가 탄생하는지 모를 일이다. 객사했다고 다들 그런 존재가 된다면 세상은 무사귀 천지일 것이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 그런 존재가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은 막아야 했다.
어떻게든 살려내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과 달리 현실은 참담했다.
심장은 성우의 맘도 모르고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체감상 벌써 3~4분은 흐른 것 같았다. 더 늦춰지면 깨어나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조금 더 압박 강하게 할게요. 갈비뼈 나가도 상관없겠죠?”
“상관있죠!”
“죽는 것보다는 괜찮은 거 아니에요?”
혜연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갈비뼈야 치료해서 붙으면 될 일이지만, 심장이 멈추면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그것을 본 성우는 좀 더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렇게 몇 분을 더 사력을 다해 눌렀다. 그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기묘한 느낌이 왔다.
-돌아왔다!
그제야 성우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혜연은 그 의미가 무언지 바로 깨달았다.
곧장 허리를 숙여 호흡과 심박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미약하지만, 호흡이 귓가에 느껴졌다. 그때 마침 구급대원이 극단의 안으로 들어섰다. 119에 신고한 지 6분 만의 일이었다.
“환자를 살피게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방금 심정지에서 돌아왔어요. 잘 부탁합니다.”
“혹시 보호자인가요?”
구급대원의 질문에 혜연은 고개를 저었다.
막상 함께 가도 수술 동의서에 사인해줄 수는 없기는 했다. 응급 상황이라 사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유미 혼자 태워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보호자는 아니지만, 일행이라며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구급대원은 어서 따라오라며 재촉했다.
“그럼 같이 타고 가시죠.”
“저도 갈게요.”
그 말을 꺼낸 것은 성우였다.
어찌 되었든 극단에서 쓰러졌다.
그래서 성우는 병원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또 이 학생의 갈비뼈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다. 손바닥에 전해진 느낌이 안 좋았다. 왠지 갈비뼈에 금이 조금 간 것 같았다.
구급대원은 그제야 성우를 알아봤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지만, 자신의 임무까지 잊은 것은 아닌듯했다. 그는 다급히 길 건너 병원으로 간다며 앞장서 환자를 이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성우는 나갈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핸드폰이며 지갑 등은 모두 무대 뒤의 대기실에 있었다.
“어서 출발하세요. 저는 옷 좀 챙겨서 따로 차 타고 뒤따라 갈게요.”
“그럼 응급실로 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두 명의 구급대원은 서둘러 극단을 빠져나갔다. 성우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단원들은 술렁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초연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니 그럴 만했다. 주이호도 그걸 눈치챘는지 그제야 한 소리했다.
“다들 뭐해! 정리 안 할 거야?”
“저는 요한이랑 지금 병원으로 갈게요.”
“나랑 상준이는 정리 끝내면 바로 갈게. 연락해줘.”
“알겠어요.”
성우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요한이 필요했다.
그에게 다급히 전화하며 성우는 짐을 챙겨 극단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와중에 아직 극단에 남아있던 몇 명의 관객이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틈은 없었다.
성우가 나간 직후.
촬영하고 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실 취재를 위해 나온 기자였다.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마친 유성우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소식통을 통해 들은 몇 안 되는 기자였다. 무대를 기사로 쓰기 위해 나왔는데 예상외의 전개에 놀란 상태였다.
리얼패치의 조형권 수습 기자.
그는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사람이 죽다 살아나는 장면을 보았다. 카메라를 잡은 손바닥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서 자신이 찍은 이 모습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것은 혼자 커버하기 어려운 그런 내용이었다. 더구나 주변을 살펴봐도 기자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생애 처음 단독이 될 것으로 보였다.
조 기자는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한동안 말없이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던 그는 마침내 연결되었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배님! 특종이에요.”
*
다음 날 아침.
성우는 모처럼 피곤함을 느꼈다.
병원에서 보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린 그였다. 덕분에 거의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자정 무렵에 보호자와 통화가 된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늦게나마 보호자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계속 병원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수술을 마칠 때까지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보호자와 주이호, 요한 등의 만류로 이뤄질 수 없었다. 당장 오늘 또 공연이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성우도 더는 고집을 부리기 어려웠다.
-이제 일어났어?
‘개피곤해. 이럴 때는 네가 모닝커피 좀 달달하게 타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몸을 나한테 맡겨.
‘그게 네가 하는 거냐? 내가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싫으면 네가 그토록 애정하는 유부한테 시키던지!
유부한테 시키라니.
참 좋은 생각이라 여겨졌다.
만약 녀석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지 유부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녀석은 평소처럼 성우의 겨드랑이에 몸을 파묻고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하루였다.
초연이나 연극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누군가 살리는 일을 한 것이었다.
사그라지는 생명의 불꽃을 다시 살려내는 일.
그 순간의 희열은 지금껏 느끼지 못한 강렬한 것이었다. 그 기분은 곱씹다 든 생각은 의대에 가지 않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였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그는 부모님을 따라 의료 봉사를 같이 갔을 것이다.
-웃기지 마. 의대 갔으면 이제 졸업해서 초짜에 불과한데.
‘그런가? 그런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메디컬 드라마를 좀 봐서 잘 알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말을 말자.’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밖에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요한도 아직 잠을 자는 것으로 보였다. 문득 어제의 그 친구는 괜찮나 궁금해졌다. 핸드폰을 쥔 성우는 잠시 망설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번호는 병원에 남겠다고 했던 혜연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유성우입니다.”
-엇! 안녕하세요.
“유미 그 친구는 좀 괜찮나요?”
-수술 잘 끝나서 방금 중환자실에 들어갔어요. 원래 심장이 안 좋았다고 하던데 다행이에요.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대 위에서 죽는 것은 배우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관객이 그래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작두에게 있어 악재나 다름없었다. 괜히 그런 소문이 나서 좋을 일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었다. 그제야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배고픔이 느껴졌다.
어제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든 그였다.
거의 12시간 이상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몸이 배고프다 아우성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우는 요한이 깰까 싶어서 조용히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가볍게 먹을만한 것이 없을까 싶어 냉장고를 여는 순간. 손님방에서 잠자고 있는 줄 알았던 요한이 갑자기 우당탕거리며 뛰어나왔다.
“형!”
“깜짝 놀랐잖아!”
“뉴스 보셨어요?”
“무슨 뉴스?”
“어제 극단에서 있었던 일이요. 대표님한테 방금 연락이 왔는데 지금 난리 났어요.”
요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우의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가장 첫 전화는 오만석 실장의 것이었다. 성우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 실장이 하는 이야기는 간단했다. 어제 작두에서 있었던 일을 어느 기자가 기사로 썼다는 것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하여간 오늘은 집 밖에 나가지 말고 대기해.
“무슨 소리에요. 오후에 작두에서 공연해야 하는데.”
-아차. 거기도 가야 하는 구나. 너는 어떻게 하루도 조용히 살지를 못하냐.
성우는 그게 내 탓이냐며 따졌다.
자신은 그저 응급 상황에 맞춰 대처한 것밖에 없었다. 사람이 쓰러진 것을 그럼 보고만 있어야 하냐는 말에 오 실장은 할 말을 잃었다. 결국, 그는 오후에 극단에 갈 때 자신도 따라가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난 이후에 성우는 뉴스를 검색했다.
“기사를 뭐 어떻게 썼길래 그래?”
“현실 속의 영웅, 유성우... 뭐 그런 타이틀이던데요.”
“제목 센스하고는! 낯 간지럽게 그게 뭐야.”
“하여간 검색어 순위에도 벌써 올라갔어요. 오튜브에 올라간 영상도 조회 수 장난 아니고요.”
“영상까지 올렸어?”
성우의 질문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들으니 슬슬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뉴스 기사 몇 줄과 달리 영상의 파급력이 확실히 달랐다. 그가 관심을 보이자 요한은 서둘러 오튜브의 영상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보여주었다.
“여기 쓰러지는 장면이요.”
“이걸 어떻게 찍었대? 혹시 연극하는 내내 몰래 찍은 거 아냐?”
“그건 저도 모르죠. 설마 기자가 그런 짓까지 했겠어요? 커튼콜을 찍으려고 한 거 같은데요.”
“그래도 모자이크는 성실하게 했네.”
그 영상에 나오는 장면들.
그곳에는 다들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다.
초상권 침해를 우려해서 꽤 정성 들인 것 같았다. 문제는 자신만 모자이크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 자신만 빼놓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 얼굴은 무슨 공공재야? 왜 나만 모자이크도 안 해주고 그대로 나와?”
“형은 주인공이니까요.”
“주인공은 인권도 없냐?”
“그런 거 생각하면 연예인 못하죠. 연예인이 초상권이 있긴 하나요?”
요한의 말은 반박할 수 없었다.
있다면 있는 거지만,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초상권을 보호하기 참 힘든 것이 연예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요한은 영상을 보느라 정신없었다.
하긴 이해는 되었다.
요한은 그 현장에 없었기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성우는 그 화면은 무심히 바라봤다. 그러다 쓰러지는 두 여인을 성우가 잡아주는 장면이 나왔다.
-오우! 저건 내가 봐도 멋있다.
성우는 더는 볼 엄두가 안 났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서 슬쩍 냉장고로 향했다. 그곳을 열어 보니 딱히 먹을 만한 식재료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성우는 요한에게 라면을 먹겠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요한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저는 계란 넣어서요.”
“달걀 다 떨어졌어. 그냥 대충 먹어.”
“그럼 나가서 먹죠.”
“실장님이 입구에 기자들 와 있을 거라고 섣불리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나 지금 감금 상태야.”
“알았어요. 그냥 주는 대로 먹을게요.”
그 말에 성우는 냄비를 인덕션 위에 올렸다.
라면은 어차피 국물용에 불과했고 볶음밥을 할 재료를 찾았다. 계란이 없는 관계로 오늘은 김치볶음밥을 할 생각이었다. 파 기름을 낸 이후에 김치부터 송송 썰어 볶으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어느 정도 요리를 마칠 무렵.
요한이 식탁 위에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축하합니다.”
“저리 치우고 밥이나 먹어.
“의인이라고 아주 난리도 아니에요. 그 의사 선생님이랑 구급 대원도 벌써 인터뷰했던데요. 형도 어서 인터뷰에서 할 말들 정리해 놔요.”
한숨이 나왔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성우는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묵묵히 수저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은 한껏 복잡해진 상태였다. 말없이 밥을 먹다가 성우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한 달만 채우고 곧바로 미국으로 가자.’
< 광끼 -119 > 끝
ⓒ l살별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