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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115화 (116/161)

< 광끼 -115 >

손소연.

그녀는 성우의 첫사랑이었다.

풋풋하던 성우의 대학 시절은 모두 그녀와 함께했다. 둘이 함께 만든 추억은 상당히 많았고 또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인연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내 말 안 들려?”

신경질적인 목소리.

성우는 소연의 목소리에 깨어났다.

살다 보면 언젠가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생각보다 감회가 새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애써 지웠던 상처가 벌어지는 기분이라 껄끄러웠다.

“오랜만이네.”

“전에 전화했을 때는 바빠서 그러려니 했어. 그런데 설마 그렇게 끊어버릴 줄은 몰랐네?”

“우리가 서로 정답게 이야기할 사이던가? 내 생각에는 아닌 거 같은데.”

“아직도 화났어? 그날은 내가 미안했어...”

“이미 잊은 지 오래야.”

성우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확실히 옛말대로 시간은 약이었다.

한때는 너무 아파 죽을 것 같다 생각했다. 그 단계를 넘어서니 자신의 자존감을 챙겨야 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또 매달릴 것 같아 애써 피했었다. 덕분에 복학도 한참 고민하던 성우였다.

“얼굴 보고 인사했으면 가라.”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단번에 들이켰다.

남들이 보면 무척 냉정한 모습이지만, 성우는 그다지 찔릴 것이 없었다. 휴가를 나온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하던 날과 완벽히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당시에는 자신이 애원해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철벽 방어를 하던 그녀였다. 그때 냉정하게 말하며 돌아서던 뒷모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제야 요한과 만석이 정신 차렸다.

여자 문제는 언제나 깨끗하던 성우였다.

당연히 이런 경험은 전무했기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만석은 요한보다 발 빠르게 일어나 소연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녀는 나가면서도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광분했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몇 명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제야 요한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 저 여자 누구예요?”

“옛날에 사귀던 사람.”

“제가 형이랑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말이죠. 그 옛날이 도대체 얼마나 먼 일인 건가요?”

“대학교 1학년 때 C.C였어.”

그 말에 요한은 쉽게 수긍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만석이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들이켰다. 성우는 그런 그에게 말없이 소주를 따라줬다.

“어휴~ 성질이 아주 불 같네.”

“어떻게 하셨어요?”

“괜히 헛물켜지 말고 가라고 타일러서 돌려보냈지. 상관없지?”

“저 때문에 수고하셨네요. 고마워요.”

“하하하! 나는 유성우라는 인간이 누구 앞에서 쪼는 거 첨 봤다. 아주 고양이 앞에 서 있는 생쥐 같던데?”

“옛날에도 만만치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헤어지길 잘 했죠.”

성우의 말에 둘 다 동감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인사를 하지 못할망정. 이렇게 남의 술자리에 잿물을 끼얹고 가는 것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뭐 가장 첫 발단은 성우가 전화를 안 받은 것이지만 말이다.

“헤어진 연인이 잘됐다고 뒤늦게 찾아오는 거는 받아주지 마. 결과가 좋았던 녀석 하나 없더라.”

“가장 추접스러운 거죠.”

“그 이야기는 그만 하죠. 오늘 술이 확 땡기는데 집에서 이번에 귀국하며 사 온 양주 마실래요?”

“그래. 여기는 이만 접고 모자란 술은 너희 집에서 마시자.”

세 사람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이곳에 오래 있다가 못 볼 꼴을 더 볼 수 있었다. 혹시라도 소연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가게를 나서며 이 곱창 가게에는 다시 못 올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음식의 맛은 마음에 쏙 들었지만, 또 마주치기는 싫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성우는 오랜만에 술을 제법 마셨다.

술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지자 옛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사실 소연과의 기억은 이제 대부분 나쁜 것들만 가득했다. 언제나 그녀는 자기 위주였고 남자친구를 하인쯤으로 여겼다. 어쩌면 헤어진 이유도 하인이 옆에 없어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푸념에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요. 그냥 앞으로 좋은 여자 만나면 되죠.”

“이 지구에 반이 여자야. 어디 톱스타 유성우가 여자가 없어서 안 만나냐.”

“그렇죠. 저 유성우랍니다!”

“나 너 연애하는 거 안 말린다. 정말 괜찮다고 여겨지면 주저하지 말고 확 잡아. 내가 회사랑 강 대표 책임질게.”

“저도 지지합니다. 담당하는 배우가 열애설도 없고 엄청 심심합니다!”

둘의 이야기에 성우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과연 내일 술을 깨고도 그런 말을 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상하게 확 꽂히는 그런 여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에 뭔가 망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되었다.

-모름지기 안지기는 외모를 보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인성을 봐야지.

‘그러는 너는 살아있을 때 상투는 올려 봤냐?’

-흠흠! 나는 자유연애를 신봉했기에 나름 바빴지.

‘개뿔 어느 집 아낙네 홀려서 몹쓸 짓만 안 했으면 다행이지.’

-나를 뭐로 보고!

술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냉장고에 먹을만한 안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 온 안주가 떨어지자 오만석 실장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 술 잘 마셨다. 쉰다고 방심하지 말고 관리 잘 해. 몸 망가지는 거는 순식간이다.”

“제 평소 생활 패턴 아시면서 뭘 그러세요.”

“그래 너니까 걱정이 없다. 회사는 언제 올 거야?”

“딱히 할 것도 없는데 내일 오후 늦게 갈게요.”

오만석을 알겠다며 요한과 함께 나갔다.

요한도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집에 보내야 했다. 아무리 월급을 그 또래에 비해 많이 준다고 해도 부모님의 얼굴을 볼 시간은 줘야 했다.

그들이 나가자 집 안은 적막해졌다.

성우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을 둘러봤다. 거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술자리의 흔적이 가득했다. 언제 다 치워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일 수는 없었다. 취기가 올라와 그럴 정신머리는 없었다.

“내일 하지 뭐.”

성우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눈을 감자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어둠 속에서 유부가 다가왔다.

녀석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침대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리고 조용히 성우의 품 안을 파고 들어왔다. 하지만 성우는 이미 잠들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다음 날.

성우는 바이올렛 엔터로 향했다.

시간의 여유가 상당하다고 할 일을 미루고 싶진 않았던 탓이었다. 그가 곧장 대표실에 들어서자 강 대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성우의 얼굴부터 살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뚫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흉터는 안 지겠네.”

“매일 약 잘 바르고 있어요.”

“한국에 와서 병원은 다녀왔어? 아무래도 성형외과는 국내가 더 좋을 텐데.”

“여기 오기 전에 잠깐 들렸어요.”

그제야 강 대표는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가져왔다.

한눈에 봐도 제법 두툼한 것이 보기만 해도 거북할 정도였다. 저게 다 광고 촬영에 대한 것이라면 한 달 내내 촬영해도 못 끝낼 것 같았다. 그것을 눈치챈 강 대표가 미리 변명을 했다.

“일단 보고 아니다 싶은 거는 말해.”

“정말요?”

“이걸 다 하라고 할 생각은 없어.”

“알겠어요.”

성우는 광고 제안서를 하나씩 살폈다.

전과 다르게 광고에 출연하는 비용은 엄청났다. 그곳에 적힌 평균 출연료는 5억 원 수준이었다. 사실 그 이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우는 그것을 지적했다.

“너무 비싸서 오히려 제가 부담되는데요.”

“이것도 굉장히 싸게 해주는 거야. 원래는 7억쯤 하려다 참았다니까.”

“어! 이거는 15억인데 뭐에요?”

“중국 쪽의 게임 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온 건데. 훌륭하지 않아?”

“해외 쪽은 ACA와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지적에 강 대표는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과거 그의 계약을 할 때 아시아권에 나가는 광고는 바이올렛 쪽이 관리하는 것으로 떼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ACA와 계약을 진행할 때 도움을 주었던 스티브가 아무래도 손을 써 놓은 것 같았다. 물론 나머지 유럽과 미주 지역은 ACA에게 양도했지만, 그쪽은 사실상 광고를 찍을 일이 거의 없었다.

성우도 계약서에서 그걸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와닿지 않는 거라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확실히 돈과 사업에 관련된 것에 있어서는 강 대표가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당시 계약할 때 이런 상황을 아예 염두에 두었던 것 같았다.

“이게 다 ‘저승에서 온 차사’ 덕분이야. 그게 중국에서 히트쳤잖아.”

“그게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는데요.?”

“광고 들어온 게 꽤 되었거든. 늦어도 괜찮으니 꼭 찍고 싶다고 하더라.”

“그게 아직도 유효할까요?”

“당연하지. 건물 앞에 외국 애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 못 봤어?

“그게 저 때문인가요?”

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의 사옥은 요즘 전쟁을 방불케 했다.

거의 유커의 필수 방문지처럼 되고 있는 탓이었다. 미국에 있는 성우가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얼마 전부터 그래왔다. 그 이야기에 성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그 정도일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던 탓이었다.

“하여튼 너 이제는 정말 사생활 조심해야해.”

“어제 이야기 들으셨나 보네.”

“뭐 잘 마무리한 것 같은데. 괜히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면 너만 손해야.”

“그 정도로 정신 나간 아이는 아니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전화번호도 차단한 상황이었다.

어제 얼굴을 보고 나니 두 번 다시는 통화하기 싫었다. 그제야 성우는 묵은 감정이 완벽히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남들이 바보 같다 할 수 있겠지만, 처음이란 것은 언제나 특별하다 여기는 그였다.

그래서 첫 무대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작두에서 얻은 그 기회가 이제 생각해 보니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약 자신이 그때의 주이호 단장이었으면 그런 도박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성우는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혹시 제가 우정 출연하는 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거야 네가 원하면 하는 건데 누가 해달래?”

“아니요.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예요.”

“짧게 나오는 거면 상관없어. 그런데 우정 출연이면 출연료 없는 거 알지?”

우정 출연은 특별 출연과 달랐다.

성우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강 대표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쩌면 잔소리로 여길 수 있는 것이지만, 성우는 그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결정은 네가 하는 거지만, 여기저기 다 받아주면 안 된다.”

“물론이죠.”

“뭔가 좀 찝찝하면 내 핑계라도 대서라도 빠져나와.”

“하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광고는 어떻게 할 거야?”

그 말에 성우는 서류를 쭉 펼쳤다.

그것을 놓고 성우는 세 가지 분류로 나눴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그리고 확인이 필요한 보류였다. 그렇게 나누자 진행은 2개, 보류는 4개가 되었다. 하지만 강훈이 미간을 찡그렸다. 거부로 놔둔 상당히 많은 수의 광고건 때문이었다.

“왜 하필 재계 순위권에 있는 대기업의 광고는 다 거절이야?”

“굳이 광고해줄 필요를 못 느껴서요. 특히 여기는 싫어요.”

성우는 한 회사를 짚었다.

강 대표가 그 서류를 보니 오성 그룹이었다.

사실 가장 그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광고이기도 했다. 강 대표는 뭔가 이유가 있나 싶었다.

“이유가 있어?”

“얼마 전에 뉴스를 봤거든요.”

“무슨 뉴스를 봤길래?”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꼽기도 힘드네요. 가장 최근에 터진 게 분식 회계죠.”

“그게 너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강 대표의 말에 성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괜히 이 자리가 토론의 현장으로 바뀌는 것은 싫었다. 다만 성우는 앞으로 그 회사의 광고는 얼마를 주더라도 출연하지 않을 거라 강조했다. 아예 광고를 검토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강 대표는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췌··· 알겠어.”

“다른 광고들은 검토해보고 며칠 이내에 답을 드릴게요.”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건지 모르겠네. 그럼 동활 제약 광고는 둘 다 승낙하는 거로 알고 있을 게.”

“그래요.”

성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바이올렛 엔터를 곧장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그를 향해 수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강 대표의 말처럼 외국인이 제법 많이 보였다. 먼 길을 왔는데 얼굴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창문을 살짝 내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때 성우의 시야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주 단장님?”

< 광끼 -11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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