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11화 (112/161)

< 광끼 -111 >

ACA의 렉스 사무실.

그곳에 앉아 렉스는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새로운 아티스트와 계약을 한 것은 물론이고 즐거운 소식도 많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하나의 시나리오 덕분이었다.

[버스커(Busker)]

2개월쯤 전에 봤던 서전트 감독의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가 전문 작가를 거쳐 완성된 것이었다. 그 작가의 이름은 표지에 이라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쓴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렉스는 그 시나리오를 읽고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전문 작가의 손을 거쳐 완성도가 대폭 높아졌다. 여기에 음악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지 심히 기대되었다.

“이거 정말 대박 나겠는데?”

그는 시나리오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은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비서가 들어오며 그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미스터 유가 참여하는 모금 행사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지금 출발해야 늦지 않을 거예요.”

“알겠어.”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이들을 위한 자선 모습, 행사 모두 좋았다.

하지만 왜 격투기를 거기에 끼워 놓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아마추어도 아니었다. 현존 최강의 챔피언과 붙겠다는 이 녀석이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딜은 이뤄졌고 이제 와 그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뭐 죽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하며 렉스는 사무실을 떠났다.

그는 가방에 방금 읽은 그 시나리오를 담았다. 오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성우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오늘 어떤 것을 볼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

LA의 한 대학교 실내 체육관

그곳에는 이미 링이 설치되었다.

오늘 이곳에서 펼쳐질 행사는 무척 다양했다.

바자회는 물론이고 여러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관심은 한쪽으로 쏠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이라이트는 그 링 위에서 펼쳐질 경기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격투가 가운데 하나인 황제 클라크 헤이우드가 나서는 경기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의문스러웠다.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의견은 분분했다. 한국에서 온 격투기 선수라는 추측부터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정확한 정체를 아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그런데 유성우가 도대체 누구야?”

“이번에 마벨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하던데 거기 출연하는 배우.”

“동양인으로 보이는데 그럼 설마 아크로?”

“맞아. 내년 초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들었어.”

“에이! 그럼 이 친구는 배우라는 이야기인데 이거 10초 만에 끝나는 거 아냐?”

“자선 경기인데 클라크가 설마 그러겠어?”

행사장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의견은 매우 분분했다.

하지만 클라크가 이길 거란 것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이 동양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입방정을 떨 무렵. 그것을 들으며 희미하게 웃는 청년이 있었다.

“형이 그렇게 쉽진 않을 텐데.”

그 청년은 우현이었다.

심부름을 위해 잠시 나온 그에게 부정적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흔들릴 수는 없었다. 적어도 같이 수련하던 그만은 성우를 믿어야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성우는 지금까지 그가 본 누구보다 강했다.

아무리 검을 놓고 맨손으로 싸운다고 해도 저들이 말한 것처럼 손쉽게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이기면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한 그였다. 그가 대기실 쪽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최정이 그를 반겨주었다.

“미안해. 배우한테 이런 심부름을 시켜서.”

“제가 심심해서 간 건데요. 여기요.”

“고마워.”

우현은 옷 가방을 그에게 건넸다.

그것 때문에 주차장까지 다녀온 그였다.

그 안에는 오늘 성우가 입을 트렁크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최정이 까먹고 두고 내린 것이었다. 둘은 그 가방을 들고 대기실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있는 성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한이는 어디 가고 혼자 있어?”

“강 대표님 오신다고 해서 나갔어요. 뭘 사 오셨는지 좀 날라야 할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나.”

“여기 오늘 네가 입을 트렁크.”

성우는 최정이 건넨 옷을 받았다.

노란색의 톤이 마치 아크로의 슈트를 연상시켰다. 아무래도 일부러 이 색을 택한 것 같았다. 자칫 황금색이나 구린 색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색감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돌린 이후에 성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거는 뭐죠?”

“꼭 넣어 달라고 하도 부탁해서.”

“그래도 이거는 좀...”

성우가 바라보는 곳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곳에는 렉스의 회사인 ACA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성우의 표정이 좋지 않자 최정이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이거 해주면 정말 마음에 드는 선물을 해줄 거라고 했단 말이야.”

“형한테요?”

“아니 너한테! 설마 내가 네 엉덩이 팔아서 그런 거 바라겠어?”

“엉덩이를 판다는 건 어감이 좀 좋지 않네.”

“미안. 하여간 렉스가 정말 호언장담했단 말이야.”

최정의 이런 모습은 사실 처음이었다.

성우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면서 지긋이 바라보다 난데없이 웃었다.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성우의 모습에 다들 의아한 눈치를 보였다.

“하하하! 렉스한테 저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야!”

“그러니까 왜 저한테 숨기고 그래요.”

“렉스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단 말이야. 이 사람 정말 못쓰겠네!”

최정은 씩씩거렸다.

제대로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우현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역시 최정 못지않게 긴장했던 탓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하며 성우가 화내는 일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현은 둘을 향해 물어봤다.

“그런데 뭘 주려고 이렇게 요란스럽게 군데요?”

“그건 나도 못 들었어.”

“설마 공수표 날리는 건 아니겠죠?”

“렉스가 그럴 사람인가?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성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최정 역시 그래서 지금껏 말을 아낀 것이기도 했다. 그때 강훈 대표가 요한과 함께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손에는 뭔가 가득 쥐어져 있었다.

“먹을 거는 먹고 해. 아직 점심 전이라며.”

“오랜만이에요. 대표님.”

“두 손 무겁게 왔으니 오늘 맞아 죽지만 마.”

“제가 이기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그럼 나야 좋지. 링 위의 황제를 이긴 한국의 배우. 이렇게 퐝! 찍혀서 내일 신문 1면에 나가는 거야.”

강훈은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성우는 그가 말한 내용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이 되기까지 그게 고민이었다. 아무리 자선 경기라지만 대충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챔피언이 쉽게 쓰러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에게도 자존심이 있으니 말이다.

“그거 좋네요. 기사 내보낼 준비 하세요.”

“하하! 일단 밥이나 먹어.”

“도대체 뭘 사 온 거예요?”

“이 근처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다고 해서 초밥 좀 사 왔어.”

강훈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두부였다.

녀석은 몸이라도 있으면 누구보다 빨리 뛰어가 먹부림을 부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성우를 재촉했다.

-초밥 좋지! 어서 먹자.

‘나 오늘 경기 있어서 공복으로 있고 싶은데.’

-아냐 그건 아주 나쁜 생각이야. 든든하게 먹어야 힘이 나지.

‘배부르면 움직이기 어려운데.’

-한국 사람이 말이야! 밥심도 몰라?

성우는 녀석을 놀리는 것을 그만했다.

그는 요한이 건네는 도시락 하나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공복에 뭔가 들어가자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친선 경기라 계량 따위는 없기 때문에 신경 쓸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3시간 후.

성우는 요란한 환호 속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에 앞에 펼쳐지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단 한 경기만 끝나면 자신의 차례였다. 그리고 불과 2분도 되지 않아 환호성이 대기실까지 들렸다. 아마 T.K.O로 순식간에 게임이 끝난 것 같았다. 그때 진행 스태프가 문을 살짝 열며 말했다.

“나갈 준비 해주세요.”

그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서서히 움직이며 다시 몸을 풀었다.

이미 그의 몸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껏 몸을 부단히 움직이며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온몸의 근육은 팽창과 수축을 번갈아 하며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스태프가 문을 열었다.

그는 앞장서서 성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리는 함성 소리에 성우의 심장도 반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하는 격투기 세계는 무척 마초적이었다. 그가 조명 아래에서 모습을 나타내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환호는 성우가 팔각 철장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갑자기 엄청난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조금 전의 환호의 십여 배 정도 더 큰 듯한 느낌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반대편에서 클라크가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오늘 자선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헥사곤 위의 제왕을 모두 열렬하게 환영해주었다.

“Blessed!”

“드디어 진짜가 나타났다!”

“오늘 멋진 경기 부탁해!”

그는 확실히 링 위의 스타였다.

클라크는 팬들의 성원을 말 그대로 즐겼다.

덕분에 철장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은 제법 걸렸지만,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오늘 자선 모금을 위한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우의 실력을 그 역시 알고 있지만, 일반 무예와 격투기 경기는 아예 다른 영역이었다.

공포감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까지 도장 같은 곳에서 가르쳐주진 않았다.

성우의 대련 장면도 보았지만, 그건 실전이 아니었다. 피가 튀는 저 철장 안에서는 자비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그게 가능한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클라크는 링 위에 들어와 곧장 성우를 향해 다가섰다.

“오늘 이렇게 경기를 함께해서 고마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그런데 말이야. 정말 헤드기어를 안 해도 되겠어?”

클라크는 다시 한번 헤드기어를 권했다.

상대방이 배우라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성우는 단호하게 그것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위례검을 배운 이후에 그런 보호장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해 낭심 보호대를 하기는 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오늘 즐겨보자.”

“좋아!”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하며 격려했다.

그리고 경기를 시작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이게 정식 경기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모금을 위한 행사였다. 그러니 이 모습이 유별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이곳에 보인 3천 명의 사람들.

그들은 입구에서 티켓 구매를 대신해 기부했다.

한 사람당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 달러는 내야 했다. 특히 철장 바로 앞에서 보는 특별 초대한 이들이 중요했다. 그곳에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와 스포츠 스타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그들이 모금을 얼마나 해주냐에 이번 행사의 성과가 달려 있었다.

마침내 울리는 종소리.

그것을 들으며 성우는 중앙으로 나섰다.

클라크는 그런 그를 반기며 오른손을 슬쩍 내밀었다. 성우는 그런 그의 손을 주먹으로 가볍게 밀며 인사를 나눴다. 오늘 경기의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그런 의식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 성우의 모습에 클라크는 환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탐색전으로 올 거야. 가드 올려.

차분한 성우 대신.

오히려 두부가 난리가 났다.

마치 자신이 코너 밖 트레이너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성우는 하도 시끄러워 볼륨을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버튼이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윽고 클라크의 주먹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성우는 잡다한 생각을 버려야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펀치는 생각보다 위력적이었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잽이 가볍게 들어온다고 무게가 실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드를 기묘하게 뚫고 들어오는 주먹 몇 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몸을 풀듯이 펀치 몇 방을 날린 클라크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어깨를 풀는 제스쳐를 취했다.

마치 상대가 이 무대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았다. 관중은 그런 클라크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황제의 아량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성우는 솔직히 기분은 상했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방심하지 말라니까!

‘그러게. 역시 쉽게 볼 상대는 아니야.’

-좋아! 악으로 깡으로 가즈아~!

‘이제 슬슬 실력 발휘 좀 해볼까?’

< 광끼 -111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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