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04화 (105/161)

< 광끼 -104 >

다음날 오전.

성우는 인천으로 향했다.

요한이 운전하는 차는 짐과 사람으로 꽉 찼다.

그 때문에 에어컨을 최대한 틀어도 다소 숨이 막혀왔다. 창문을 슬쩍 연 이후에 성우는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항까지 안 오셔도 된다니까요.”

“아들아. 너 군대 가는 것도 못 봤는데 한번 기분 좀 내보자.”

“아빠도 참.”

“그런데 언제까지 아버지와 아빠를 번갈아 가며 쓸 거니. 나이도 이제 적지 않은데 통일하지.”

“입에 잘 안 붙는데 어떻게 해요.”

엄마의 지적에 성우는 변명해야 했다.

어쩌면 과도기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언제나 엄마, 아빠라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도 종종 사용했다. 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지 두 분은 그 이상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차는 벌써 영종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공항에 점점 더 다가올수록 성우는 묘한 감정에 빠졌다. 전에 할리우드를 갔을 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두 분은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에요?”

“어머! 아들이 이제는 우리 걱정도 다 해주네.”

“글쎄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것도 이제는 지겨워.”

“제가 병원 차려드린다니까요.”

“너희 엄마는 몰라도 나는 엄청 큰 병원이 필요한데. 미국에서 은행이라도 털어오게?”

철호의 말에 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는 응급의학과이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그의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그걸 생각하니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성우를 향해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슬슬 나가보려고.”

“또 어딜 가시게요?”

“이제는 국내에 있는 게 더 불편해. 안 그래 여보?”

“맞아요. 너도 이제 독립했는데 굳이 아등바등 살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이제 좀 편하게 사세요.”

윤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막상 해외의 그 처참한 곳을 보고 나면 그러기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아와 질병으로 숨지는 이들이 허다했다. 그 죽음의 이유가 대단한 질환이면 그나마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영양실조와 굶주림 그리고 전염병 등이 그 원인이었다.

특히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

자신의 품안에서 죽어간 돌도 안 된 아이가 선명했다. 불과 5달러에 불과한 약을 제때 먹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그걸 아들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주려 했다.

“그래도 그게 마음은 더 편해. 우리 착한 아들이 지난 1년 동안 활동하는 거 잘 봤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죠.”

“그 이유가 뭔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가르는 위기에서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라.”

“맞아.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작은 노력부터 시작되지.”

두 분의 말에 성우는 뭉클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면 부모님의 뒤를 따라 의과에 진학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선택을 두 분 모두 반대했겠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성우의 성격으로는 피를 보는 의사의 숙명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기던 두 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나요?”

“에티오피아! 멋지지 않아?”

“거기는 왜요?”

“커피 마시러 가는 거는 아냐. 남수단 사람들이 있는 난민 캠프에 가려고.”

“아··· 예전에 뉴스는 봤어요. 아직 난민이 남아 있는 거예요?”

“오히려 더 늘고 있다고 하더라. 어찌 되었든 의사회에서 그쪽에 증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어.”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번 촬영이 끝나기 전에 부모님은 떠나실 것 같았다. 성우는 두 분을 향해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성우가 부모님을 공항에 바래다주는 느낌이었다.

“너나 조심해.”

“저는 할리우드를 가는 거고 두 분은 아프리카잖아요.”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느낌상으로는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은 미국이 더 높을 거 같은데.”

“왜 불길한 소리를 하고 그래요?

윤혜의 타박에 철호는 절절맸다.

두 분의 그런 모습에 성우가 미소지을 무렵.

마침내 공항에 도착했다고 요한이 운전석에서 알려왔다. 마침내 떠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이내 차가 멈추고 요한과 최정이 짐을 빼기 시작하자 성우는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또 4~5년 후에 돌아오시나요?”

“아들이 그사이 결혼한다고 청첩장이라도 보내주면 더 빨리 오고.”

“저 아직 서른도 안 됐어요.”

“나는 결혼 소식보다 예쁜 손녀가 더 좋아! 확 속도 위반해버려.”

성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 자웅동체가 아닌 이상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누굴 만나야 결혼을 하든지 속도위반이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성우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가볼게요.”

“촬영 끝나고 심심하면 아프리카로 놀러 와.”

“가능하면 해볼게요.”

“그래. 다들 기다리는 거 같은데 어서 가.”

성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사이에 짐을 모두 내린 요한과 최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점점 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거대한 카메라를 든 기자들도 그 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더는 이곳에서 넋 놓고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부모님에게 차분하게 인사할 틈도 없었다.

성우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런 이후에 서둘러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유부가 든 케이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최정과 요한이 그의 양옆에 섰다. 성우는 수많은 팬과 기자를 이끌고 공항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철호와 윤혜는 그저 즐거운 듯 웃었다.

“호호호! 우리 아들 아직 인기 좋네.”

* * *

캘리포니아의 6월.

그곳 날씨는 무척 좋았다.

공항에 내린 성우는 저절로 손이 이마 위로 향했다. 덥지는 않았지만, 쨍한 햇살 덕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요한은 선글라스를 건넸다.

“고마워.”

“바로 호텔로 가실 거죠?”

“그래야지. 오후에 스티브 강 변호사님과 미팅 갈 때까지 좀 쉬자.”

“알겠어요. 렌트한 차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요한은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성우는 공항 내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그런 그의 옆으로 최정이 앉았다. 오늘도 그의 패션은 무척 난해한 편이었다. 옷차림만 보면 그가 연예인을 해도 될 것 같았다.

“호텔에서 그냥 쉴 거면 나는 조금 나가봐도 될까?”

“어디 가시게요?”

“샵 좀 둘러보고 오게.”

“샵이요?”

성우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들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성우는 피곤할 텐데 내일부터 하라고 해도 최정은 거절했다. 역시 패션에 있어서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그가 미팅에서 할 일은 없기에 성우는 아예 따로 움직여도 된다고 했다.

“고마워. 내가 예쁜 옷들 찾아볼게.”

“그런데 여기도 협찬이 되나요?”

“시상식 때는 그런 것도 있다고는 하던데. 복잡한 게 싫으면 직접 사서 입는 것이 가장 좋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협찬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최정은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권하지 않았다. 괜히 서로 얼굴 붉히거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워낙 옷걸이가 좋으니 중저가 브랜드나 SPA 만으로도 충분히 꾸밀 수 있다고 여기는 최정이었다.

“카드 드릴까요?”

“됐어. 오늘은 그냥 아이 쇼핑만 할 거야.”

“이왕에 가는 길에 사시죠.”

“사는 거는 나중에 같이 가서 사자.”

성우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카드를 맡기는 것이 편했다.

그와 함께 다니면 쇼핑하러 온종일 다닐 사람이었다. 이미 한국에서도 당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간곡히 사절했다. 이럴 때는 여자친구와 쇼핑이 힘들다던 친구들의 넋두리가 이해가 되었다.

“내가 카드 잡으면 무섭지 않니? 나 명품 엄청 좋아해.”

“어차피 한도가 얼마 되지 않아요. 사고 싶어도 못 사실걸요.”

“쩝··· 아깝네.”

“사야 하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카드는 요한이 한테나 줘. 생필품도 사 오고 그래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줬으니.”

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를 향해 최정은 빠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남들이 보면 카드를 맡긴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최정에게 말했듯이 한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만약 그 몇백만 원 때문에 이상한 생각을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앞으로 성우가 그들에게 펼쳐 보여줄 미래를 생각하면 그 돈은 푼돈에 불과했다. 그때 요한이 차를 끌고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 앞으로 우리가 쓸 차가 이거야?”

“멋지죠?”

“할리우드인데 스포츠카를 타야 하는 거 아냐?”

“형이 돈 내주시면 탈게요. 그리고 효율성이 떨어지잖아요.”

최정은 수긍해야 했다.

그들 앞에 세워진 차는 엄청난 덩치를 가졌다.

그 차의 이름은 캐딜락의 에스컬레이드였다. 성우가 문을 열어보자 내부 공간은 넓었고 덩치에서 풍겨지는 압도감이 엄청났다. 그 덕분에 그들의 짐은 손쉽게 차에 넣을 수 있었다.

“엄청 열심히 벌어야겠네.”

“아차. 이거 촬영 기간 동안에 렌트하는 비용은 강 대표님이 내주신다고 하던데요.”

“이걸 왜?”

“촬영 잘하라고 선물해주신 거예요. 나중에 인사라도 하세요.”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 대표도 며칠 후에 잠시 올 예정이었다.

그들은 차에 짐을 싣고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차가 바뀌어서 그런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뭔가 미드 시리즈에 나오는 특수 요원이 된 것 같았다. 그것은 최정이나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얼굴에도 들뜬 표정이 역력히 보였다.

최정을 번화가에 내려준 이후.

그들은 곧바로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이곳에서는 잠시 머물 예정이었다. 하루 머무는 비용도 적지 않았다. 성우에게도 은근히 부담될 수준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알아봐야 했다.

-여기는 도대체 얼마나 비싼 거야?

‘묻지 마. 속 쓰려.’

-벌써 돈을 펑펑 쓰는 거야?

‘겨우 며칠 묶는 건데 잔소리 좀 하지 마라.’

성우는 두부를 타박했다.

그리고는 유부를 살펴보았다.

긴 여행을 해서인지 녀석은 힘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낯선 공간에 들어와서 그런지 좀처럼 케이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성우는 그런 유부를 쓰다듬고 그 역시 잠시 쉬기로 했다.

어느 정도 잤을까?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깬 성우는 요한을 찾았다.

그러자 나갈 준비를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볍게 세수만 하고 둘은 호텔을 나섰다.

“스티브 선생님이랑 어디서 만나는 거야?”

“호텔 근처에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거기서 보자고 했어요.”

“소개해주실 에이전트는 같이 온대?”

“그럴 거라고 강 대표님한테 들었어요. 어서 가죠.”

둘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잠시 후 요한이 모는 차는 어느 레스토랑 앞에 멈췄다. 한눈에 봐도 빈자리가 거의 안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발레 파킹을 하는 직원에게 키를 맡기고 둘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둘의 앞에 한 직원이 나타났다.

“예약하셨나요?”

“네. 스티브 강으로 했습니다.”

“아! 안으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성우는 그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넓은 홀을 지나 약간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서니 스티브 강이 보였다. 1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정정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이야?”

“그동안 잘 계셨어요?”

“뭐 덕분에 잘 지냈지. 촬영 준비는 잘 했어?”

“물론이죠. 지금이라도 바로 촬영하고 싶네요.”

“허허. 젊은 친구답게 열정이 가득하네. 좋아 보여.”

스티브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리를 권하며 그 역시 앉았다.

아직 에이전트가 오지 않았냐는 성우의 질문에 그는 아직 시간이 덜 되었다고 답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조금 일찍 불렀는데 괜찮지?”

“물론이죠.”

“나이가 들어가니 이야기 나눌 상대가 점점 더 귀해져.”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그럼 나중에 한 번 저녁 식사에 초대함세.”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 먼 타지에서 누군가 식사를 초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스티브와 요한 그리고 성우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주제는 할리우드의 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는 꼼꼼히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여러 지식을 전해주었다. 특히 집에 관련된 조언이 꽤 중요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능력 좋고 믿을 수 있는 중개사가 가장 중요하지.”

“성우 형. 저번에 공항에서 만난 그 여자도 중개사라고 하지 않았어?”

“벌써 그런 인맥도 쌓은 건가?”

“그럴 일이 있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며 성우는 웃었다.

벌써 1년이 넘게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그녀가 아직 자신을 기억해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인연이라고 가능하면 그녀에게 일을 맡기고 싶었다. 그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스티브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저기 오늘 소개할 친구가 오는군.”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

그곳으로 성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제법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민머리가 인상적인 그런 남자였다. 그는 스티브와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성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알렉산더 카메론입니다.”

“유성우라고 합니다.”

일명 렉스(Lex)라 불리는 남자.

할리우드의 공룡과 한국의 호랑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스티브는 먼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날을 떠올리며 회상을 하고는 했다.

'야수는 야수를 알아보지.'

< 광끼 -104 > 끝

ⓒ l살별l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