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103화 (104/161)

< 광끼 -103 >

며칠 후.

바이올렛 엔터의 4층.

성우는 강 대표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대표실에 들어서자 강훈과 오만석이 반겨주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번 계약은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성우는 어느덧 바이올렛을 대표하는 그런 배우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계약할 맘이 들었냐?”

“너 때문에 내가 10년쯤 늙은 것 같다.”

“그러게 평소에 잘해 주셨어야죠.”

“어쭈! 우리가 뭘 어떻게 더 잘해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인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니 당연했다.

그들이 지금까진 본 성우는 사인을 코앞에 두고 변심할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계약이 그러하듯 사인을 하기 전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강 대표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성우의 눈치를 보았다.

“대표님.”

“왜? 마실 거라도 준비해줄까?”

“그건 됐고요. 사인은 할 테니 그렇게 눈치 보지 마세요.”

“그럼 계약서 바로 가져올까?”

오만석 실장을 성우가 만류했다.

그전에 짚고 넘어갈 사항이 몇 개가 있었다. 그런 성우를 보며 두 사람은 안색을 굳혔다. 계약금을 얼마나 달라고 할지부터 걱정되었다. 사실 성우는 지난 1년 동안 계륵과 같았다.

돈이 안 되는 활동.

그런 것들만 잔뜩 했던 녀석이다.

대표 배우이기는 해도 가장 돈을 많이 벌어다 준 존재는 아니었다. 만약 거액의 계약금을 원한다면 서로 난감할 그런 상황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성우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제안했다.

5년 계약에 10% 수수료.

그것까지는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성우는 그것을 국내에 한정 지어 선을 그었다. 해외 활동은 별도의 계약을 원했다. 대신 별도의 계약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들은 오만석 실장은 다소 난감을 표정을 지었다.

“에이전시를 구한다고?”

“킬리안의 말을 들으니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려면 에이전시가 무척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나도 알기는 하는데. 당장 그게 필요할까?”

“어떤 의미죠.”

“5~6년은 ‘아크로’만 찍어도 금방 지나가.”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욕심이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활동에 굶주린 탓도 있었다. 아무리 봉사 활동이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 해도 근본적인 연기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지금의 성우는 어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달 후부터 ‘아크로’의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래도 SAG에 가입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SAG?”

“연예인 노조요.”

“지난번에는 그냥 했잖아?”

“아닐걸요. 아마 스티브가 임시로 가입해준 것 같아요.”

할리우드에서 연예인 노조는 의무였다.

그곳에 가입하지 않은 배우는 아예 활동할 수 없었다. 그때는 스티브 덕분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들 때문에라도 현지 에이전시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쪽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성우와 바이올렛 입장에서는 생소한 것이 무척 많았다. 더구나 홍보 및 언론도 담당해주니 티켓 파워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중요했다.

“해외 활동은 5%로 하시죠.”

“이번 작품부터?”

“아뇨. 이번에 촬영하는 거는 대표님과 함께 계약한 건데 당연히 기존 계약대로 해야죠.”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냐?”

강 대표는 싱긋 웃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이올렛은 고맙다고 여겨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의 그라면 아예 국내 활동은 몇 년 접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성우가 굳이 바이올렛과 계약하는 것은 일종의 의리였다. 그것을 강 대표가 모를 리는 없었다.

더구나 성우가 가는 곳은 할리우드였다.

루이스 Jr 처럼 대박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게 현실이 되면 바이올렛 엔터는 그냥 앉아서 40억 정도의 이익을 얻는 것이었다. 그 대신 성우는 자신의 매니저 요한과 코디 최정을 바랐다.

“해외에 나가서 체류하려면 그 친구들 연봉도 많이 올려줘야 하는데.”

“충분히 챙겨주세요.”

“그게 말이 쉽지. 다른 직원이랑 형평성 문제도 있어.”

“비밀로 하면 되죠. 제가 종종 들어와서 광고 찍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우리야 좋지만, 가능하겠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성우의 스태프이자 일종의 크루였다.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맡는 것은 싫었다. 더구나 두 사람 모두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을 충분한 역량이 되었다.

요한은 일단 언어가 원활했다.

어린 시절에 해외에서 살았던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예상외의 짓을 벌이지만, 감당할 수준 이내였다. 코디인 최정도 가끔 불편할 때가 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성우뿐만 아니라 패션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위클리 코디 베스트 연속 7연속 1위]

[디자이너가 뽑은 센스 넘치는 코디 1위]

[유성우, 베스트 드레서 수상]

[스타일리스트가 뽑은 공항패션 1위]

바로 최정의 성과였다.

평소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우였다.

그런 자신에게 최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줬다. 덕분에 베스트 드레서라는 호칭도 받을 수 있었다. 워스트에 가까운 패션 센스인 그에게 있어서 그의 손길은 무척 중요했다. 그래서인지 최정은 패션 잡지 등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계약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바이올렛의 강 대표가 양보를 제법 해준 탓이다.

물론 그 대가로 성우 역시 몇 가지를 약속했지만, 손해를 볼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아마 회사의 입장에서는 끈만 놓지 않아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사사사삭!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펜.

성우는 제법 비싸 보이는 만년필을 손에 쥐고 사인했다. 그의 사인은 거침이 없었고 상대방인 강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계약을 마친 이후에 그는 성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배우님.”

“잠깐 떠나지만, 곧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예 안 돌아와도 좋으니 성공해!”

오만석의 두툼한 손이 성우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 그의 말에 강 대표는 울컥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아예 안 돌아오면 오늘 계약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종종 들어와서 국내 활동에 신경 쓰겠다는 언약만 믿고 있는 그였다.

그래도 따로 믿고 있는 구석은 있었다.

할리우드에서는 광고를 찍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쪽에서 광고를 바라보는 관념은 국내와 달랐다. 국내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이들이 광고에 출연하지만, 미국은 더는 떨어질 곳이 없는 그런 배우나 광고를 찍는다. 광고 한 편에 나오면 얼마나 돈이 궁하면 찍겠냐는 조소도 받기도 했다.

그 차이는 무척 컸다.

덕분에 성우의 광고는 국내 위주가 될 것이다.

일단 광고만 잘 잡아도 회사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손이 많이 가는 그런 배우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강훈은 환하게 웃는 성우를 보며 그사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른이 다 됐네.’

감회가 새로웠다.

군대를 막 제대한 그를 본 것이 4년 전이다.

짧은 머리에 제대로 태닝 된 피부가 돋보이던 풋내기 배우가 성우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그 어떤 배우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떠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갈지 몰랐다.

한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했다.

과연 이 녀석이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도 집어삼킬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미 그 답은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마벨 스튜디오라면 충분히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행보에 강훈은 거름이 되어주기로 했다. 성우라면 그가 평생 바라던 그 불가능해 보이던 소망을 이뤄줄 것 같았다. 이번 작품은 힘들겠지만, 좋은 작품만 손에 쥔다면 가능성은 충분히 보였다.

“가서 오스카(Oscar) 꼭 따와!”

*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성우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혜정이 누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있었다. 성우는 그것을 서둘러 받아들면서 타박했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와요.”

그 말에 혜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성우는 손에 쥔 봉투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 안에 든 것은 과일과 반찬 등의 먹거리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냉장고에 그것을 차곡차곡 넣을 때쯤 누나가 그의 옆에 섰다.

“그냥 놔둬 내가 넣을게.”

“제가 할게요.”

“에이 그래도 내가 해야지. 네가 먹을 것도 아닌데.”

“그렇기는 하네요.”

성우는 봉투를 내려놓았다.

냉장고에 넣더라도 직접 먹을 사람이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어디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냉장고를 닫고 물러선 이후에 혜정에게 미리 써놓은 쪽지를 건넸다.

“여기 비밀번호는 9***. 건물 입구는 #32*****이요. ”

“꽤 기네. 적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터치 키는 여기.”

성우는 키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혜정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는 조금 염치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오늘 이 집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한동안 할리우드로 떠내며 비워야 하는 집 때문이었다.

집이란 것이 묘했다.

사람이 살지 않은 티는 분명히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우는 이 빈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단기 임대를 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것은 포기했다.

부모님이 해주시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성우의 인생에 있어 처음 산 집이 망가지는 것은 싫었다. 더구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집이었다. 그래서 성우의 선택은 아는 지인에게 집을 맡기는 것이었다. 마침 누나가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어 타이밍이 딱 맞았다.

“이쪽은 화장실이고요.”

“뭐야. 지난번에 집들이할 때 봤잖아.”

“아하 제가 까먹고 있었네요.”

“그런데 관리비 내가 내도 되는데. 나 요즘에 꽤 잘 벌어.”

하긴 누나가 요즘 그보다 잘 나가고 있었다.

지난해 출연한 일일드라마는 성공리에 끝났다. 대타로 들어간 거 치고는 시청률도 제법 나왔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주말드라마에 곧바로 출연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동안 발산하지 못했던 매력을 맘껏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반반 하죠.”

“그게 뭐야. 내려면 내가 다 내는 거지. 집도 공짜로 쓰는데 그 정도는 하게 해주라.”

“누나가 정 원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 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아도 보고 좋네!”

성우는 그쯤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그 기간에 낼 관리비를 계산해서 누나 이름으로 기부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다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때 혜정이 물었다.

“한국에 종종 들어올 텐데 너는 어쩌려고?”

“그럴 틈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원래 살던 부모님 집도 있는 걸요.”

“그냥 여기 와서 자. 방도 남아도는데.”

“그러다가 사진 찍히면 저희 난리 나요. 강 대표님이 완전 열 받을 걸요.”

“내가? 너랑? 웃기지도 않는다. 솜털 뽀송뽀송한 너랑 무슨 연애설이야.”

혜정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성우도 그럴 가능성은 제로로 봤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은 모를 일이었다. 괜히 입방정에 오를 일은 피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관리실에도 그녀가 잠시 임대했다고 알려놓은 상태였다. 누군가 뒤를 팔 때 가장 처음 타깃이 되는 곳이 관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 성우는 고개 숙여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럼 잘 부탁해요.”

“깨끗이 잘 사용하다가 돌려줄게.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아! 제가 까먹고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요.”

“뭔데?”

성우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 그를 보며 혜정이 다그쳤다.

안 어울리게 망설이는 성우의 모습에 답답한 듯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며 성우는 침착하게 말했다.

“제 침대에서는...”

“거기서 스톱!”

“네?”

“네 침대에서 저~~얼대! 19금은 안 벌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 하려고 했던 거지?”

“그럼 부탁할게요.”

이런 말까지는 하기 싫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사하며 새로 산 침대인데 성우 역시 개시도 못한 곳이었다. 이 집에 들어온 여성은 지난 1년여 동안 혜정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킬리안, 요한 그리고 유부와 같은 수컷이 전부였다.

“그럼 가볼게요.”

“어디 가게? 저녁이나 먹고 가지.”

“부모님 댁에도 인사 가야죠.”

“짐은 다 챙겼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짐은 요한이 이미 차에 실어 놓은 상태였다. 지금쯤이면 녀석도 유부와 함께 부모님 댁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둘이 따로 움직이는 이유는 유부 때문이었다.

녀석도 이번에 함께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서류를 이번에는 직접 떼야 했고 그 일을 요한이 봐주고 있었다. 성우가 집을 나서자 혜정이 큰소리로 외쳤다.

“영화 잘 찍고 건강히 돌아와! 파이팅!”

< 광끼 -10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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