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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재능의 탑스타-102화 (103/161)

< 광끼 -102 >

날은 하루가 다르게 더워졌다.

두부가 다시 나타난 것은 1주일 후였다.

그러나 녀석은 전과 분위기가 제법 달라졌다. 뭔가 기운이 쫙 빠진 느낌이었다. 두부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성우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기운 좀 내. 왜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나 피곤한데 그냥 좀 놔둬 줄래?

“걱정되니까 그렇지.”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녀석이 기운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것을 한참 궁리해 봤지만, 딱히 찾은 것은 없었다. 부적의 부작용이 아닐까 고민도 되었다. 그래서 김민과 상의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뻔했다. 그래서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녀석이 귀신 따위를 걱정한다며

격노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어찌 보면 무주귀보다 그녀가 더 무서웠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뭐든지?

“뭐.든.지. 알겠지?”

두부는 알겠다며 답을 했다.

그리고는 곧 침묵에 빠져버렸다.

요즘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성우는 녀석을 다시 불러보려다 참았다. 어차피 이야기는 언제나 겉만 맴돌다 끝나고는 했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요한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는 우현과 함께 어제저녁 미국으로 떠난 상태였다.

영어 능한 매니저가 갑자기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성우는 요한을 내주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쁜 시기도 아니었고 그에게는 오만석 실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셨어요?”

“요한이 그 녀석에게 연락 온 거 있어?”

“아직 이요. 이제 겨우 미국에 도착했을 텐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네가 미국 갔을 때는 걱정도 안 했어. 우현이는 완전 풋내기잖아. 당연히 걱정되지.”

성우는 오 실장의 말에 웃었다.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우현의 연기는 생각보다 좋았지만, 언어가 문제였다. 확실히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운이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액션 실력 하나만큼은 그가 보장하는 바였다.

“그런데 오늘 여기 꼭 가야 해?”

“이야기 다 끝났는데 왜 또 그러세요.”

“갑자기 네가 이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오 실장은 살짝 꺼림칙했다.

성우가 오늘 가는 곳은 무료 급식소였다.

갑자기 왜 그런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봉사하는 내용만 살짝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기부는 물론이고 급식소에서 직접 음식도 만들 예정이었다.

자신이 아는 한.

그 정도로 하는 배우는 없었다.

대부분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얼굴만 비추는 정도였다. 그 정도만 되어도 언론은 좋다며 그의 선행을 기사화할 것이다. 하지만 성우는 그런 것을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번잡하니 기자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성우도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김민의 조언대로 여러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닌 자신이 어딘가 맘대로 돌아다니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타인에게 섣불리 선행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출발하실까요?”

*

타다다다닥!

도마 위를 두드리는 소리.

그것은 거의 난타 공연에 가까웠다.

성우의 칼질은 빨랐고 또 정확했다. 도마 위의 채소는 순식간에 동강이 났다.

“저 잘생긴 친구는 배우라고 하지 않았어?”

“맞는데.”

“그런데 무슨 칼질을 저렇게 잘해?”

“그러게요. 저 정도는 솜씨 좋은 주방장 수준이잖아요.”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이들.

오늘 하루 무료 급식소를 도울 자원봉사자들은 성우의 도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 역시 나름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어디 식당을 내서 일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족의 식사를 나름 십여 년 이상을 책임져온 주부였다.

그런데 웬걸!

배우라는 잘생긴 청년이 그들보다 칼질을 훨씬 더 잘하고 있었다. 저런 칼 놀림은 일반인이 아니라 주방에서 일해본 이들이 보여줄 그런 것이었다.

성우는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만들어야 할 음식은 무려 300인분이나 되었다. 그 혼자 음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손질해야 할 재료가 엄청났다. 더구나 요리 도구마저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다.

“양파 50개만 더 잘라줘요.”

“파도 부탁해요.”

“이러다 식사 시간에 못 맞출 거 같아요. 다들 서두르죠!”

성우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밖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줄을 지어 서 있는 그들은 임시 천막이 시작되는 곳부터 공원 밖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본 성우는 착잡했다.

자신이 살던 세상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에게 이런 모습은 무척 생소했다. 나름 중산층에서 태어나 가난의 서러움을 모르고 자랐다.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 정도는 되었던 것 같았다. 물론 지금에야 부모님이 일을 쉬면서 조금 가계가 기울었지만, 언제든 재기가 가능하리라 믿고 있

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그 긴 줄 사이에 서 있는 아이들이었다.

학교에 갈 시간인데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달관한 것 같은 그런 표정이 짙었다.

-정신 차려.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알았어. 지금 몇 분이야?’

-11시 21분.

성우는 다시 칼을 잡았다.

재료를 다듬는 것도 거의 끝이었다.

어서 이것을 끝내고 웍을 잡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밥은 거의 다 완성되었는지 뜸을 들이고 있었고 국도 거의 다 된 것 같았다. 이제는 반찬만 완성하면 되었다.

그로부터 30분 후.

모든 음식은 준비가 끝났다.

확실히 매주 자원봉사를 나오는 분들이 도움이 컸다. 그분들이 쌓은 노하우 덕분에 시간에 늦지 않게 배식이 시작되었다. 성우 역시 마스크를 쓰고 손을 보탰다. 거기에 오만석 실장은 덤이었다.

“마스크 벗고 배식하지.”

“괜히 티 내고 싶지 않아요.”

“이미 여기 있는 사람은 네가 누군지 다 아는 거 같은데.”

“같이 봉사하시는 분이나 그렇죠. 받으시는 분은 모르잖아요.”

괜히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우는 식판에 자신이 만든 반찬을 얹어주며 미소지었다. 그 환한 미소가 마스크에 가려져도 상관없었다. 그저 마음이 전해지면 그만이었다. 대부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벅찬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뚱이 하나 누울 곳이 없는 사

람들이었다. 당연히 자신이 출연한 TV 드라마나 영화를 봤을 리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

성우는 차분하게 인사했다.

점점 더 음식은 줄어들고 있었지만, 마음의 따뜻함은 점차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봉사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 했다.

순수하게 타인을 돕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마음공부의 최고 수준이 아닐까?

성우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이제 시작인데 처음부터 봉사의 참뜻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아프리카에서 한 봉사는 어떤 것인지도 궁금했다.

어느덧 배식을 마친 이후.

성우가 뒷정리하고 있을 때.

두부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성우는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봉사자들의 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았다.

-천 명에게 식사 대접하기 완료!

‘와~ 징그럽게 오래 걸렸네. 그래도 오늘 봉사 활동도 쳐줘서 다행이네.’

-당연하지. 그동안 수고했어.

‘이 숙제를 내준 무사귀는 성불하는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고 며칠 이내에 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두부가 말끝을 흐렸다.

또 어떤 숙제를 던지려는 건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성불을 위해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성우는 어서 말하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두부는 그 무사귀의 부탁을 전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데.

‘누구 엄마?’

-그냥 너희 집에서 만든 집밥이면 될 것 같아.

‘너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 알면서 그러고 싶냐?’

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집밥이란 의미에 적합하지 않았다.

평소 그는 집밥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집에서 먹는 밥이 맛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성우의 엄마 공윤혜가 해주는 밥은 최악이었다. 밥을 먹다가 구토가 난 적도 상당히 많았다.

-상관없어. 그냥 정성만 들어가면 돼.

‘나는 분명 경고했다.’

-어차피 먹는 것도 너고 탈이 나도 네가 나는 건데. 나는 상관없지.

성우는 얄미운 마음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내심 두부가 점차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한차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올해 처음으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매~~앰! 맴~

그 소리가 무척 청량했다.

아니 어쩌면 모처럼 기분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성우는 남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도 기분이 좋다 여겼다.

* * *

그로부터 1년 후.

성우는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방금 두부가 해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방방 뛰면서 이 순간을 만끽했다. 그 이유는 지난 1년 동안의 고생이 단숨에 보상받았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아직 믿기지 않는지 재차 두부에게 물어보았다.

“무주귀의 반이 사라졌다는 그 말 정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봉사 활동을 한 덕분이겠지?”

-그런 거 같아. 하지만 전에 만들 위령비의 덕을 좀 본 것 같기도 해.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어.

“다행이다.”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몸 안에 있던 무주귀의 반이 사라졌다 알려왔다. 아직 얼마나 더 남은 건지 확인할 수 없지만, 드디어 희망과 그 끝이 어설프게나마 보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성우의 1년은 무척 치열했다.

안 해 본 자선 단체 활동이 없었다.

겨울에는 연탄을 기부하고 직접 나르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가서 모금 활동도 해봤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종소리를 울리며 거리에 나섰을 때. 성우의 붉은 냄비는 전국 최고의 모금액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그를 칭하는 호칭은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마벨의 차세대 영웅이 현실에 나타나다. 숨겨진 유성우의 진면목]

[기부 천사 유성우의 총 기부액은 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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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액션 스타에서 기부 천사까지

성우의 이미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향해 손을 내미는 이들이 워낙 많아졌다. 때로는 사기꾼들까지 득실거렸다. 대부분 그런 이들은 소속사와 두부에 의해 차단되었지만, 끝도 없이 나타났다.

특히 아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복지시설의 원장.

그 인간을 생각하면 성우는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약 두부의 조언을 받아 불시에 가보지 않았으면 그 실체를 몰랐을 것이었다. 두부는 그의 얼굴을 보자 사기꾼이라 곧장 단정했다. 워낙 관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우는 몰래 그 복지시설에 가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의 시설은 노후했고 아이들에게 구타하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성우는 그 자리에서 대노해 그 원장을 응징하고 말았다. 물론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을 영상으로 찍어 경찰에 고발했고 오한근의 도움으로 아예 쑥대밭을 만들

었다. 그 원장의 죄는 캐도 캐도 끝없이 나왔고 결국 10년 형의 징역이 내려졌다.

“앞으로 1년이면 남은 무주귀도 다 없앨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힘이 난다.”

안 그래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버는 돈은 거의 없었고 통장은 벌써 텅 비었다.

그래도 종종 찍는 광고 덕분에 숨통이 트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최근 그를 불러주는 곳도 점차 줄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1년 동안 활동이 거의 없었다.

소속사에서도 그걸 염려했지만, 그래도 마벨 스튜디오의 촬영이 있기에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 성우의 네임 벨류는 탑 수준에 해당했다.

“이제 정리할 거는 정리해야지.”

성우는 핸드폰을 집었다.

한동안 미뤄 오던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마침 시기도 적적한 것이 바이올렛과 계약이 종료되기 직전이었다. 그 때문에 오 실장은 물론이고 강 대표까지 최근에 뻔질나게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아직 성우는 도장을 찍지 않았다.

무주귀 때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돈이 문제는 아니었다. 목숨 앞에서는 그것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저 연예계에 전해지는 악몽과도 같은 [27세 클럽]에 포함되기 싫었을 뿐이었다.

만 27세에 요절한 스타.

그들의 리스트가 바로 27세 클럽이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나이에 죽은 아티스트는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이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슨 등이 있었다. 국내 가수도 얼마 전에 우울증으로 인해 요절하고 말았다. 성우도 올해 스물일곱이 되며 내심 불안했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니 더는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성우는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오만석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자 성우는 외쳤다.

“재계약 하시죠.”

< 광끼 -102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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