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94화 (95/161)

< 광끼 -94 >

마무리는 간단했다.

깊게 들어오는 발차기를 피한 후.

그의 옆으로 돌아서며 발바닥으로 무릎 안쪽을 눌렀다. 그러자 킬리안은 속수무책으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서둘러 회피하려 노력했지만, 이미 무릎이 바닥에 닳은 상태에서 딱히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성우는 그 자리에서 점프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딛고 등 뒤에서 정면으로 넘어갔다. 물론 그냥 자리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성우는 공중에서 몸을 180도 틀며 발차기로 2연타를 선물했다. 번개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타악~ 탁!

성우의 발차기는 깔끔했다.

그의 발등은 킬리안의 상체를 연달아 타격했다.

그 모습에 다들 놀랐지만, 정작 맞은 킬리안은 그다지 큰 타격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성우가 바닥에 떨어진 이후.

재빨리 킬리안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발바닥을 이용해 그를 뒤로 살짝 밀어냈다. 그러자 킬리안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졌다. 그런 그의 위에 올라타 성우가 마지막 타격을 가할 자세를 취하자 킬리안은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

“이런··· 내가 또 졌네.”

“인정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 발차기 네가 힘을 안 뺐으면 그냥 골로 갈 뻔했는데.”

“알긴 아는구나.”

성우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킬리안은 환하게 웃으며 성우의 손을 맞잡았다.

킬리안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확실하듯 성우도 킬리안이 좋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순수한 무도가에 가까웠다. 지지 않겠다는 투쟁심도 있지만, 더 높은 경지를 향한 향상심이 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등 뒤에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

그것을 들은 성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여자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과 정체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라우라! 진정하고 들어 봐.”

“닥치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 카메라!”

“네?”

“그 안에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 꺼내요. 당장!”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호통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그 자리의 있던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은 고등학교 다닐 때의 독사라 불리던 선생님이 기억나게 만들었다. 성우가 입을 벙긋거리며 누구냐 물었지만, 킬리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그의 상태는 처음인지라 무척 생소했다.

“둘 다 저 따라와요.”

“지금요?”

“당연하죠.”

그녀는 앞장서 걸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킬리안이 따라 걸었다.

성우는 그의 옆에 서서 그녀의 정체를 재차 물었다. 그러자 킬리안은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마벨 스튜디오의 대표 변호사 라우라 올슨.”

“커억!”

“성우야. 우리 완전 X 된 거야.”

성우는 한숨을 쉬었다.

촬영 첫날부터 버라이어티했다.

이 모든 것은 연속된 NG에 쌓인 울분 때문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자제력을 그렇게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잠깐의 대련 덕분에 머리가 맑게 갠 것 같았다. 역시 머릿속이 혼잡할 때는 땀을 흘려야 했다.

그녀는 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처들어온 그녀를 멀뚱히 보고 있던 직원은 금새 쫓겨났다. 그러자 그 작은 사무실 내부에는 냉기가 가득 찼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성우랑 저는 그저 대련만 했을 뿐이에요.”

“카메라 앞에서요?”

“시작할 때는 없었는데 언제부터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킬리안. 저번에 분명히 경고했죠. 또 대련하러 다니다가 사고 치면 절대 안 봐준다고 했어요.”

킬리안은 변명하기 시작했다.

대표 변호사인 그녀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최근 마벨 스튜디오에서 라우라는 대세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서른 중반에 불과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실력 덕분이었다.

“일단 영상부터 좀 볼까요?”

그녀는 커져 있는 컴퓨터에 메모리카드를 꽂았다.

폴더를 열어 재생 버튼을 누르자 무편집 상태의 촬영본이 모니터에 보였다. 처음에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 지나자 둘의 대련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참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게 대련이라고요?”

“맞아요.”

“제 눈에는 서로 죽이려고 안달이 난 것 같아 보이는 데요.”

“저 정도로 절대 이 인간은 안 죽어요.”

킬리안의 말에 성우는 끄덕였다.

자신의 맷집 역시 나쁜 편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아무리 그라도 대련을 하면서 단 한 대도 안 맞을 수는 없었다. 이번 대련에서도 최소 서너 대 정도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위험할 수준의 것은 없다. 모두 흘려내서 적절한 유효타라 볼 수 없었다. 물론 킬리안의 힘이 워낙 좋아 다소 벌겋게 부어오르기는 했다.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되신 것 같네요. 이 영상이 밖으로 흘러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글쎄요.”

“마벨의 내부에서 불화가 터지다. 영웅들의 길거리 싸움. 뭐 이런 기사가 쏟아져 나오겠죠.”

“그럴 리가요. 너무 과장하신 것 같은데요.”

성우는 그녀의 의견에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대련 중간에 과열된 양상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영상을 끝까지 보면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일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치지 않고 서로 만족하며 잘 마무리가 된 대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우에게 라우라가 소리쳤다.

“악의적인 편집이 충분히 가능한 거 모르세요?”

“저는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네?”

“어차피 이 녀석과 저는 나중에 영화에서 박터지게 싸워야 하는 거잖아요.”

성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한참 생각하던 킬리안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이미 예정되어 있는 스토리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었다. 더구나 만화책을 본 대부분의 독자는 알고 있었다. 레오파드와 아크로는 서로가 믿는 정의가 크게 달랐다. 필연적으로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면 둘이 평소에도 사이가 안 좋은 거로 보일 텐데요?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요.”

“아니죠. 현실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지만, 슈트를 입으면 달라지는 거죠.”

“그게 맘대로 되는지 알아요?”

“그렇게 만들어내는 것은 회사의 몫이죠.”

라우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연히 찍은 영상이지만, 활용도는 제법 컸다.

일단 와이어 없는 액션에 롱 테이크 샷이었다. 영화는 잘 모르는 그녀지만, 머리마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스토리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일단 알겠어요. 하지만 다음부터 노출된 장소에서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물론이죠!”

“만약 약속을 안 지키면 철저하게 손해 배상 청구 들어갑니다. 아시겠죠?”

맨 마지막에 한 말.

그것을 들은 킬리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벨 내에서 돌고 있는 그녀의 별명이 ‘냉혈 마녀’였다. 그녀라면 충분히 고액의 손해 배상을 받아내고 말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성우는 그저 이 위기를 잘 넘겼다는 생각에 웃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미스터 유는 연락받았어요?”

“뭘요?”

“나중에 촬영한 유니버스 개봉에 맞춰서 배우들이 한국 방문할 예정인데 참가해줄 수 있나 해서요.”

“저도 잠시나마 출연했으니 당연히 참가해야죠.”

“고마워요. 그럼 둘 다 나가보세요.”

둘은 곧장 자리를 떴다.

라우라는 그들이 나간 이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슈트를 입은 둘이 보여준 액션은 놀라웠다. 이게 합도 맞춰 보지 않은 실제 격투라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만화책 속의 캐릭터가 현실에 나타난 것 같았다.

라우라의 입은 살짝 벌어졌다.

그녀가 마벨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그들이 가진 캐릭터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랐다. 바비 인형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크로’나 ‘쥬피터’와 같은 마벨의 캐릭터 인형을 껴안고 자던 그녀였다.

“아쉽네... 이걸 써먹을 데가 없으려나?”

라우라는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마케팅에 있어서는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몇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모두 마벨에서 일하는 마케팅 전문가들이었다. 잠시 후 급하게 도착한 그들은 성우와 킬리안이 만든 그 문제의 영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 * *

탁탁.

도마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

성우는 모처럼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마치니 마음과 시간 모두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다만, 이 상황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야! 밥 먹어.”

“직접 밥도 해서 먹는구나.”

“그러면 너는 요리사라도 있어?”

“아니! 아예 집에서 밥을 안 먹지.”

거실에서 일어난 거구의 한 남자.

그는 성우를 쫓아 따라온 킬리안이었다.

원래는 집에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국의 평범한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계신 집에 데려가기는 조금 그랬다. 요즘 아들이 나간다고 하니 신혼 분위기 물씬 나는 두 분이었다. 그래서 결국 데려온 곳은 아직 살림살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서래마을의 집이었다.

“어떻게 집에 앉을 의자도 없어?”

“아직 이삿짐도 다 안 왔어. 큰 걸 바라지는 마.”

“그래도 바닥에서 꼭 이렇게 먹어야 해?”

“그러니까 나가서 먹자니까.”

둘은 바닥에 앉아야 했다.

가구는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침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성우는 바닥에 펼친 캠핑용 매트 위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요리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 몇 가지와 된장찌개 그리고 제육볶음이 전부였다.

“오~ 고기 좋아.”

킬리안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성우가 포크를 주려 했지만, 그가 사양했다.

“한국에 왔으면 배워야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인데.”

“한국에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사용처가 문제였다.

킬리안은 밥도 젓가락으로 힘겹게 먹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우는 숟가락을 쓰라고 조언을 해줬다.

“밥 먹을 때는 숟가락을 써.”

“그래도 돼?”

“당연하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

“그렇구나.”

그제야 킬리안 숟가락을 들었다.

음식을 맛본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제육 볶음이 그의 마음에 쏙 든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성우의 입맛에는 조금 심심했다.

“일부러 덜 맵게 한 거야.”

“그럼 원래는 얼마나 매운 거야?”

“지금의 두세 배?”

“웁쓰!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위장이 얼마나 두꺼운 거야?”

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리우드는 물론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킬리안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킬리안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웃겼는지 포즈를 취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이후에 성우는 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이삿짐이 들어오기도 전에 멀리서 찾아온 손님]

#킬리안 터커 #레오파드 #마벨 #친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원래 성우의 팬이었던 이들은 환호했다.

좀처럼 업데이트되지 않다가 오랜만에 올라온 사진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킬리안 터커였다. 아직 성우의 마벨 출연이 기사화되기 이전이었기에 당연히 다들 의아함을 표했다.

###: 이 의외의 미친 인맥은 도대체 뭐지?

###: 성우 오빠. 마벨에 출연해요?

###: 그런데 왜 바닥에 앉아서 궁상맞게 밥을 먹지.

###: 형이 왜 거기 있어? 킬리안 또 한국에 온 건가.

###: 킬리안 터커는 거의 한국에서 사는 듯한 느낌.

성우는 그 댓글을 읽어주었다.

그러자 킬리안은 엄청 좋아했다.

그에게도 팬의 반응을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식사 이후에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어느덧 눈꺼풀이 무거워진 것을 느낀 킬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서 자야겠다.”

“그래. 피곤할 텐데 가서 쉬어.”

“내일 같이 가준다고?”

“나도 거기에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그래도 처음 가는 건데 데리고 가줘야지.”

그 말에 킬리안은 고마움을 표했다.

내일 둘이 가기로 한 곳은 파주였다. 거리가 가깝지는 않기에 직접 데려다줘야 할 것 같았다. 킬리안이 따로 차를 렌트하거나 그 근처에 숙소를 잡기 전까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향할 곳은 홍문석 감독이 새로 오픈한 위례검의 도장이었다.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총 12단계 중에 대중에게 오픈되는 것은 4단계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일반인 수준에 가장 적당했다.

홍문석 감독은 7단계

그 외 액션 스쿨의 실장급은 5~6단계였다.

성우에게 직접 배운 그들은 각자의 단계에서 꽤 오래 머물고 있었다. 그 이상 오르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것을 봐주기 위해 성우가 직접 가는 것이었다.

성우는 아파트 입구까지 배웅을 나갔다.

그리고 길가에서 택시 한 대를 서둘러 잡았다. 그 안에 킬리안을 태운 이후에 기사님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며 택시비까지 쥐여줬다. 예전에 그의 집에서 파티에 초대받아 놀았던 것을 떠올리면 이 정도는 보답도 아니었다.

차가 출발하기 직전.

성우는 차창을 두드렸다.

킬리안이 슬쩍 창문을 내리자 성우는 웃으며 말했다.

“내일 진짜 무술이 뭔지 보여줄게.”

< 광끼 -94 > 끝

ⓒ l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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