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93화 (94/161)

< 광끼 -93 >

성우는 망설였다.

옷은 집어 들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입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심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옷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라면 비슷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경험이 군대에 있을 당시에 입었던 내복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맥락이 달랐다. 내복은 속 안에 입는 보온용이었다. 그와 달리 지금 손에 쥔 이 ‘아크로’의 노란 슈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눈 딱 감고 입어 봐.

‘네가 입는 거 아니라고 참 쉽게 말한다?’

-내가 살았던 당시에 이런 옷은 있지도 않았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히어로라면 응당 입는 그런 것이다.

이번 계약을 하며 충분히 예상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성우는 눈을 딱 감고 그 옷을 입기로 했다. 일단 한 번 마음을 먹으니 입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마스크까지 쓴 이후.

성우는 실내에 설치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곳에 서 있는 남자는 무척 낯설고 기묘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건너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인형 탈을 쓰면 뭔가 새로운 인격이 나온다는 말은 들었다. 그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아뵤오~”

성우는 끝내 참지 못했다.

코끝이 간지러워 어쩔 수 없었다.

결코, 두부 때문은 아니라 스스로 변명했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제법 멋있었다. 마벨 스튜디오에서 꽤 신경 써서 만든 것 같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각보다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엉덩이는 어쩔 수 없었다.

한껏 힙업이 되어 볼록 튀어나온 그 부분은 몸매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하체였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성우는 그 때문에 생길 앞으로의 반응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에이~ 모르겠다.”

성우는 복면을 벗었다.

슈트는 잠시 고민하다 일단 벗기로 했다.

재빨리 입으면 2~3분이면 입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콜이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다. 괜히 몇 시간씩 입고 있기는 조금 그랬다. 슈트가 생각보다 통풍이 잘되었지만, 그래도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 동안.

성우는 멍하니 대기만 계속했다.

그 시간이 조금 지루했지만, 조금 일찍 도착한 탓도 있었다. 성우는 두부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트레일러 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몇 명의 사람이 보였다.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는 ‘쥬피터’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도플갱어’

뇌신이라 불리는 ‘인드라’

그 외 기타 등등.

그리고 킬리안도 그 사이에서 보였다.

이미 복장을 다 갖춰 입은 그들은 화려했다.

나란히 걸어가는 그들은 마치 화보나 다름없었다. 하나같이 빵빵한 근육의 훈남들이라 더 그렇게 보였다. 성우도 남자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이야~ 다들 근육이 대단하네.

“완전 인정.”

-너도 만만치 않아. 자신감을 가져.

“그것도 인정.”

성우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전과 달리 그의 근육은 벌크업에 힘을 쓴 상태였다.

잔 근육으로 교정했던 몸에서 바꾸느라 적지 않게 애를 쓴 그였다. 덕분에 그의 몸도 그들 못지않았다. 더구나 성우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손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운동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아직은 완성이라 할 수 없었다. 계약한 이후에 한 달 동안 만들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있었다. 그래도 전에 출연했던 작품과 달리 슈트를 입기 때문에 벌크업은 꼭 필요했다.

똑똑!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성우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마침내 촬영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 같아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벤이 아니라 킬리안이었다.

“Yo~ Bro!”

그는 안으로 들어서며 덥석 성우를 안았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레오파드 복장을 한 그는 영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구구 피곤하다.”

“언제부터 촬영한 거야?”

“일곱 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렇게 길게 촬영해?”

“아니. 중간중간 촬영하고 기다린 시간이 대부분이지. 너는 아직이지?”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킬리안은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힘내라는 의미가 담긴 그만의 격려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얏! 너 전에 진 것 때문에 화풀이하는 거지.”

“어떻게 알았지? 아직도 발목이 시큰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대련이나 할까?”

“촬영 전에 그러는 거 아니다.”

“누가 지금 하자고 했어? 촬영 끝나고 딱 한 판 붙자.”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킬리안은 하소연을 했다.

자신과 대련이 가능한 이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오죽하면 격투기 체육관도 찾아다녔다니까.”

“거기가 딱 좋네.”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올랐어.”

“왜?”

“내가 힘 조절에 실수해서 데뷔 직전의 선수가 다쳤거든.”

성우는 혀를 쯧쯧 찼다.

그 모습에 킬리안은 멋쩍게 웃었다.

의도치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실수는 맞았다. 어쨌든 성우는 킬리안의 실력을 인정하는 바였다. 성우가 이제까지 본 사람 가운데 그보다 강한 이는 홍문석 무술 감독밖에 없었다. 그가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육체적인 우월을 뛰어넘는 경험 때문이었

다. 더구나 그는 성우에게 위례검까지 배운 상태였다.

“그래서 이거 촬영이 끝내면 바로 한국으로 갈 거야.”

“야! 날 또 얼마나 괴롭힐려고?”

“너한테 볼 일 없어. 전에 네가 말해줬던 홍 감독을 찾아가려고.”

“오호~! 그렇구나.”

“나중에 술친구나 해줘.”

당연히 그럴 마음은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일 것이 분명했다.

성우가 흔쾌히 그 말을 받아들이자 킬리안은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촬영 후에 대련을 재차 요구했고 성우는 마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전에 대련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아! 내가 이래서 너를 좋아하는 거야.”

“나 남자 싫어한다.”

“뭐래. 나도 그런 취향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차갑게 보관해 놓은 탄산수를 꺼냈다.

킬리안이 뚜껑을 열자 그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 성우도 갑자기 목이 말랐다. 둘은 한동안 온갖 농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성우가 기다리던 벤이 돌아왔다.

“어! 킬리안도 여기 있었네요?”

“혼자 있기에 심심하잖아.”

“안 그래도 아담이 찾던데 잘됐네요. 두 분 모두 촬영 준비해주세요. 15분 후에 D섹션에서 촬영합니다.”

킬리안과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킬리안은 촬영 준비를 위해 성우의 트레일러를 떠났다. 그가 나간 이후에 성우는 슈트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슈트를 입고 밖으로 나오자 벤이 그를 안내해줬다. 아무래도 이 스튜디오는 처음이라 배려하는 것 같았다.

“슈트는 마음에 드세요?”

“조금 타이트한 게 부담되네요.”

“다들 처음에는 그래요.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실 거예요.”

“그런가요?”

성우는 과연 적응될까 의문스러웠다.

그것은 두부도 의견이 비슷했다. 벤을 따라 한참 걷자 마침내 D섹션이 나왔다. 거대한 철제문을 밀자 그 내부가 성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성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온통 초록색이 가득했다.

이른바 그린 스크린이라 하는 것이었다.

특수 촬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언제나 녹색은 아니었다. 때로는 블루 스크린이라 하여 파란색을 쓰는 때도 있었다. 어쨌든 그곳 안에는 무척 휑했지만, 그 열기만큼은 뜨거웠다. 그때 그를 향해 여러 배우가 다가섰다. 다들 이번 유니버스에 출연하

는 이들이었다.

“반가워요.”

“어! 이번에 새로 계약한 분이죠?”

“드디어 아크로 슈트를 볼 수 있게 되었네요. 기대가 커요.”

“반갑습니다. 유성우입니다.”

다들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촬영의 막바지라 그런지 분위기는 무척 훈훈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몇 개월 동안의 대장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촬영이 끝나면 이들은 어딘가 햇살 좋은 휴양지에서 휴식을 즐길 것이 분명했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스태프가 무전을 통해 알려왔다.

그 소리가 들리자 다들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웃고 즐기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장 세상에 종말이 올 것 같은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에 성우 역시 얼굴색을 바꿨다.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두부 역시 그런 그를 향해 소리쳤다.

-정신 차려! 한국인의 저력을 한 번 보여 줘야지!

*

2시간 후.

성우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연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전혀 몰랐다.

오늘 그는 그간 모르고 살았던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한국에서 경험은 이제 불필요했다.

두 나라의 촬영 여건과 방식이 너무나 차이가 났다. 아직 긴 경력은 없었지만, 성우는 한국의 촬영 방식에 물들어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 CG가 많이 들어가는 영상은 처음이었다.

온통 녹색의 세상 속.

그 안에서 성우는 다른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과 CG를 상상 속으로 그려내야 했다. 이런 크로마키 속에서 연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촬영 장소 내부에 있는 것은 겨우 부서진 차량 몇 대 수준에 불과했다.

덕분에 NG도 적지 않게 나왔다.

그 대부분은 성우가 내는 것이었다.

물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적응해서 무사하게 촬영은 마칠 수 있었다. 오늘 그에게 주어진 장면은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 성우는 부아가 치밀었다.

스스로 이런 추태를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전혀 없던 그였다. 그래도 그의 옆에서 킬리안이 조언을 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성우는 트레일러 앞으로 돌아와 거칠게 마스크를 던졌다.

“제길···”

“처음에는 다들 그렇지 뭐.”

“아! 열 받아. 안 되겠다. 킬리안 한 판 뜨자.”

성우는 어떻게든 이 울분을 풀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가장 적당한 인간이 바로 앞에 있었다. 안 그래도 대련에 목말라 하는 킬리안이니 미안할 것은 없었다.

“예쓰!!! 바로 하자.”

“슈트 입고? 이거 헤지면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나도 이제 촬영 끝이야. 새로 영화 들어가면 다시 만드니 상관없어.”

킬리안이 그렇게 답을 해줬다.

그리고 그는 곧장 마스크를 썼다.

순식간에 레오파드로 변한 그의 분위기는 단숨에 바뀌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우는 자신의 마스크를 집었다. 한차례 손바닥으로 털어낸 이후. 성우 역시 그것을 뒤집어썼다. 상대방이 레오파드가 되었다면 자신도 아크로가 되어야 했다.

“저건 또 뭐야?”

촬영 현장을 촬영하던 카메라 스태프.

어깨 위에 카메라를 얹고 곳곳을 찍던 필립 잭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촬영이 끝났는데 아직 슈트를 벗지 않은 둘이 있었다. 그리고 둘은 한 판 제대로 붙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싸움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막무가내의 싸움은 아니었다. 둘은 거리를 재며 탐색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은 영화 속의 영웅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본능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거는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뛰어가서 말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필립은 자동으로 그쪽에 앵글을 집중했다. 그 모습에 그의 뒤를 따라오면 다른 동료들도 반사적으로 따라 했다.

“저건 뭐야?”

“쉿!”

“일단 찍어.”

총 3대의 카메라.

그들은 각각 둘을 중앙에 놓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둘이 만들어낼 장면을 찍기로 했다. 그 순간 검은 레오파드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크로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발차기를 날렸다.

격투는 생각보다 길었다.

둘 다 서로의 장단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킬리안도 지난 패배를 통해 절치부심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 성우가 조금 봐주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주변에 깔린 카메라가 인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오늘 촬영에 도움을 준 킬리안을 처참하게 단번에 깔아뭉갤 수는 없었다.

“이봐. 조금 더 열심히 하라고!”

“내가 할 말이 그거다. 네 실력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거야?”

“좀 맞아라!”

거칠게 날아오는 주먹.

그것을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피했다.

그리고 성우는 언제 끝을 내야 할 지 고민했다. 그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킬리안의 숨이 거칠어 오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주먹질을 하고 있는데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한계는 찾아오고 말았다.

킬리안은 녹다운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우는 마무리를 만들 찬스를 찾아냈다. 기다란 다리로 앞발 차기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성우는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끝이다.’

< 광끼 -93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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