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89화 (90/161)

< 광끼 -89 >

그 대련이 있던 날 밤.

성우는 결국 호텔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디를 다쳐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킬리안의 집에서 펼쳐지는 축하 파티 덕분이었다. 킬리안의 거대한 저택은 늦은 밤까지 흥청거렸고 성우는 그곳에서 얼떨결에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 온 차세대 스타]

킬리안이 해준 소개였다.

다들 그런 그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마벨의 새로운 영웅이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성우는 모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한껏 즐겼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속 시원하게 논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러다 그는 수많은 빈방 가운데 한 곳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의 숙취는 대단했다.

그래도 성우는 후회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정말 수많은 이를 만났다.

누군가는 패션 업계에서 일했고 누군가는 영화계의 스태프였으며 또 배우나 가수도 보였다. 확실히 킬리안의 발은 꽤 넓어 보였다. 그런 그의 인맥은 고스란히 성우에게도 흡수되었다.

“하아암... 졸리네요.”

“어제 도대체 뭐한 거야?”

“킬리안이 마벨 계약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니까요.”

“치사하게 축하 파티를 나도 없이 해?”

“그러게 늦게라도 오시라니까.”

강훈의 말에 오히려 성우가 타박했다.

그리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창밖을 봤다. 이미 비행기는 날아올라 LA 시내가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는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깨어나자마자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며칠 더 쉬면서 시내며 할리우드 거리를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공항에 내리면 회사에서 잠깐 쉬었다가 저녁에 인터뷰 준비해.”

“어휴. 저를 아주 잡아 드세요.”

“갑자기 미국 오느라 스케줄을 다 미뤄놔서 어쩔 수 없잖아. 약속은 지켜야지.”

“뉘에~뉘에~”

성우는 알겠다며 답하고 눈을 붙였다.

하지만 그마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두부가 연신 쫑알거렸기 때문이었다.

‘아··· 너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왜 또 갑자기 그러냐?’

-줄곧 꼬부랑말만 쓰니 그렇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있으면서.’

-아몰랑.

성우는 두부의 말이 핑계 같았다.

뭔가 목소리가 예전만큼 힘이 있지 않았다. 만약 살아있는 이라면 어디 아프냐 묻겠지만, 두부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딱히 이렇다 할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뭔가 숨기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걸 파고들 틈은 없었다.

성우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지난밤의 피로가 훅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이 짧지 않은 거리인데도 눈을 떠보니 인천 공항이 보였다.

“우와··· 벌써 한국이에요?”

“벌써? 10시간 내내 잠이 오냐? 기절한 줄 알았다.”

“오랜만에 노는 거라 이것도 피곤하네요.”

“우리도 축하 파티해야지?”

강 대표는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사실 성우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옆에 앉은 요한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적어도 녀석이나 코디를 봐주는 최정 형을 봐서라도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사내의 다른 직원들에게 콧대를 세워줄 찬스였다.

“일단 알겠어요. 대표님이 날짜 잡아서 알려주세요.”

“그걸 왜 나한테 말해? 오 실장한테 하라고 해.”

“제가 어떻게 실장님한테 일을 시켜요?”

“지금 대표한테 일 시키는 거는 신경도 안 쓰냐?”

그 순간 요한은 둘을 외면했다.

괜히 중간에 끼면 손해만 볼 것이 분명했다. 오만석 실장 덕분에 몸으로 배운 처세술이었다. 때마침 비행기는 멈췄고 요한은 서둘러 내릴 준비를 했다. 그러다 그는 성우의 옷차림을 보았다.

“형! 그거 입고 그냥 나가시려고요?”

“이 옷이 왜?”

“그 꼴을 보면 정이 형이 머리끄덩이 잡고 난리 치실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그런데 정말 그 정도야?”

성우는 고개 숙여 내려다봤다.

그리고 곧 스스로 인정해야 했다. 공항 패션이라 치기에는 너무 구질구질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 대표도 옆에서 요한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출국 게이트에 기자들 많다고 오 실장이 방금 연락해줬어.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려서 옷 갈아입어.”

“알겠어요. 그놈의 공항 패션이 뭔지 엄청 귀찮네요.”

“다 그 관심 덕분에 먹고 사는 거야. 찾아줄 때 충분히 즐겨.”

“이번 미국행 기사는 바로 나가나요?”

성우는 그게 궁금했다.

더는 그 계약이 비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 대표는 딱히 어떻게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점을 성우는 물은 것이었다.

“아니 조금 기다리려고.”

“왜요?”

“어차피 마벨에서 조만간 기사 내놓을 거야. 우리는 그거 나오면 후속으로 갈려고.”

뭐 큰 차이는 없었다.

소속사에서 먼저 터트리는 것보다 모양새는 그게 좋아 보이기는 했다.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이미 앞열에 앉은 이들은 꽤 많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

성우는 재빨리 가방을 찾았다.

그리고 최정이 떠나기 전에 세팅해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발까지 바꿔 신으니 이제야 연예인 티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출국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가 얼굴을 나타내자 그곳은 난리가 벌어졌다.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OO 일보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신 이유가 있나요?”

“혹시 마벨 스튜디오에 다녀온 것이 사실입니까? 킬리안 터커와 어떤 사이인가요?”

“꺄아아~ 성우 오빠!”

“성우 씨. 잠시만 멈춰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여기 사인 좀 부탁할게요!”

성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적당히 그들의 요구를 따라주었다.

그러다 요한을 비롯한 지원을 나온 바이올렛 직원들이 길을 트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우는 못 이기는 척 그 뒤를 따랐다. 물론 팬들의 요청은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했지만, 워낙 수가 많아 어쩔 수 없었다. 그 하나 때문에 공항 일부분이 마비될 정도였다. 서둘러

빠져줘야 다른 이들에게 덜 민폐였다.

일행은 간신히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운전석에 앉은 오만석이 그를 반겼다.

이미 마벨 스튜디오와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을 아는 그였다. 당연히 축하 인사는 오갔고 요한이 뒤늦게 타자 서둘러 차는 출발했다.

“요한아. 대표님은?”

“공항에 주차해 놓은 차 타고 따로 회사로 들어오신다고 했어요.”

“최정 그 친구는 오늘 못 나왔어. 유부 때문에 아주 죽겠다고 하던데?”

“그래요?”

성우는 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미국에 가 있을 동안 유부를 맡아준 것은 바로 그였다. 긴 시간 집에 혼자 두기 어려웠기에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오 실장님에게 부탁하려 했다. 그러나 형수님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것은 불가능했다.

“여보세요?”

-공항에 도착한 거 기사로 봤어.

“벌써 기사가 떴어요?”

-사진 한 장 올렸던데 얼마나 걸리겠어. 옷 제대로 입었더라?

성우는 땀이 찔끔 났다.

만약 안 갈아입고 그냥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요한의 경고대로 최정의 징벌이 떨어졌을 것이 뻔했다.

-회사로 바로 갈 거지?

“네. 지금 회사로 가고 있어요.”

-사무실에 한 벌 세팅해놨으니 갈아입어.

“알겠어요. 유부는 잘 지내요?”

-하아···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녁 먹고 들어올 거야?

“아니요. 바로 갈게요.”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이상 신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신호를 무시하면 다음에도 또 유부를 맡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성우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이제 해외 촬영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유부는 함께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실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었다. 성우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 * *

2주 후.

봄꽃도 져 갈 무렵.

성우는 겨우 휴식이라는 것을 가졌다.

딱히 뭘 촬영하는 것도 없는데 뭐 이리 바쁜지 모를 일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유식당의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직 2회차에 불과했지만, 전작의 시청률은 넘은 상태였다. 잘하면 TCN의 예능 시청률도 기록을 깰 것으로 보였다. 특히 혜정 누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누나는 그 상황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올라갈지 몰랐던 탓이었다. 혜정은 정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 바이올렛 엔터의 강 대표는 엄청 좋아했다. 유식당이 방영되기 직전에 그녀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쏟아지는 광고에 강 대표는 아

주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이번꺼 하나는 찍어야 하나?”

요즘 성우는 그게 고민이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한 식품 회사에서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 만약 성우 자신에게만 온 것이라면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광고는 성우와 함께 혜정이 나온다. 둘이 함께 묶여 있기에 자신이 거절하면 혜정도 못 찍게 되는 구조였다.

그녀의 형편은 뻔히 알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된 광고 하나만 찍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성우는 내심 마음을 굳혔다. 콘티는 그리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작두 단원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때 배에서 신호가 왔다.

“으갸갸갸~ 오늘은 뭘 먹을까?”

-어제 비빔밥이 정말 맛있었는데. 네가 만든 거랑 차이가 크더라.

“당연하지! 아마추어랑 프로랑 같으면 그게 이상한 거야.”

두부가 말한 비빔밥.

그것은 전주에서 먹은 것이었다.

어제는 전주의 한 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온 그였다. 지금 현재 그에게는 온갖 초대가 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홍보 대사와 같은 명예직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은 회사에서 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할 자리도 있었다.

전주의 영화제.

그곳은 강 대표의 부탁 때문에 다녀온 곳이었다.

영화제의 위원장과 막연한 사이라던데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았다. 대신 강 대표는 어제만 다섯 끼를 사주며 꽤 신경을 써줬다. 사실 성우는 그런 홍보대사와 같은 일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름뿐인 홍보 대

사는 자신은 물론 그 단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겼다.

“귀찮은데 중국집에서 시켜먹자.”

성우는 핸드폰을 집었다.

오늘도 그냥 시켜먹을 생각이었다.

배달 앱 하나면 온갖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이게 얼마나 편한 것인지 예전에는 몰랐던 그였다. 하긴 삼시 세끼 시켜먹기에는 그 비용이 부담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짜장면 먹을까?”

-아니 오늘은 얼큰한 짬뽕.

“그러지 뭐.”

-아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삼선 짬뽕.

“하여간 변덕은.”

성우는 웃으며 주문 버튼을 눌렀다.

녀석의 입맛을 고려해서 그는 탕수육 작은 것도 시켰다. 물론 성우가 그것을 남김없이 다 먹을 수는 없는 양이었다. 지금은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먹어도 되었다.

그 이유는 하루에 쓰는 열량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하루 중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바로 몸만들기였다. 그와 더불어 최근에는 팔자에도 없던 피부과까지 요즘 매일 다니고 있었다. 마벨 영화에 출연하는 그를 위한 회사의 특별 관리였다.

“탕수육도 시켰어.”

-아싸! 역시 음식은 기름기가 있어야 맛있지.

“옛날에는 그런 거 없었나?”

-끽해야 전이나 부치는 거지. 그 당시 기름이 얼마나 비쌌는데. 그런 의미에서 탕수육 이건 완전히 사치스러운 음식이야.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과 같이 오일이 풍부하지 않을 시대였다.

성우와 두부는 그런 의견을 나누며 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성우는 그 소리를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화를 끊고 바로 달려와도 지금 오기 어려웠다.

“배달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딱히 올 사람은 없었다.

오늘은 그뿐만 아니라 요한과 최정도 쉬는 날이었다. 아무리 매니저와 코디라지만, 매일 성우를 따라다닐 수는 없었다. 그들도 사람인데 당연히 쉬는 날이 필요했다.

성우는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기 전에 그는 유부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녀석은 눈을 감고 캣타워 위에 늘어져 있었다. 매번 문을 열 때마다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상황은 좋아지고 있었다. 봄이 거의 다 지나간 탓이라 여겼다.

손을 뻗어 문을 살짝 열었다.

그러자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성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정체를 알아차린 성우는 잠시 그대로 얼어버렸다. 전혀 예상도 못 한 이였다.

“어···”

< 광끼 -8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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