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88화 (89/161)

< 광끼 -88 >

마벨과의 계약은 평행선을 그렸다.

서로 계약서에서 바라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성우 쪽에서는 더 높은 출연료를 원했고 마벨은 더 낮추기를 바랐다.

“아니 출연료가 너무 하잖아요.”

“더 이상의 흥정은 불가능합니다.”

“광고 하나만 찍어도 그 정도는 법니다. 요즘 아시아권에서 이 친구 인기가 어느 정도인데 이렇게 박대합니까?”

스티브는 열정적이었다.

성우에 대해 조사도 많이 해온 티가 났다.

그에게 그리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능력은 있어 보였다. 특히 그는 최근 해외에서 반응이 오고 있는 드라마의 인기를 핵심으로 삼았다. 이른바 아시아 티켓 파워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주는 의미는 매우 컸다.

무명의 배우는 결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스티브의 활약을 보며 강훈과 성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물만 마셨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저 잠자코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둘은 이 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에 둘이 합의했던 사항 때문이었다.

1억과 5억.

그것이 그들이 출발 전에 정한 몸값의 마지노선이었다. 1억은 현재 촬영 중인 유니버스 시리즈에 잠깐 출연하는 비용이었고, 5억은 단독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아크로’의 출연료였다. 사실 이 마지노선을 정하는 데에는 성우의 입김이 컸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워낙 마벨 스튜디오가 첫 영화 출연료에 인색했다.

그것은 성우가 알 정도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단독 영화에 출연했던 기존의 영웅 가운데 한 명은 단돈 30만 달러(약 3.2억)에 계약하기도 했다.

물론 더 낮아도 상관없었다.

성우는 이번에도 또 출연료를 놓고 도박(?)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변호사인 스티브 강에 의해 저지되었다. 괜히 역대 최저 출연료를 갱신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아시아권 배우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편견이 있었다.

같은 비중의 주연이라도 백인 배우가 더 많이 받는다.

그것을 지탄하기 위해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한 아시아 배우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모를까 할리우드에서 괜히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 스티브의 주장이었다. 자신의 능력에 맞춰 몸값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35만 달러와 80만 달러로 정리하죠.”

“그게 불가능하다니까요. 특히 이번에 출연하는 거는 갑자기 잡힌 거라 여유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오디션 보셨죠?”

스티브는 담당자들을 둘러봤다.

그러자 다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는 오디션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나왔다. 특히 그의 무술 실력은 다들 깜짝 놀랄 그런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스티브는 강조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미스터 유보다 그 캐릭터에 맞는 배우가 있을까요?”

“솔직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아시면서 겨우 몇 십만 차이인데 이럽니까?”

스티브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그는 좀처럼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상황을 풀었다. 그 결과 출연료는 30만 달러와 70만 달러로 조정되었다. 현재 환율로 두 영화를 합쳐 약 10억 5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사실 이것도 마벨이 처음 제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상향된 것이었다.

“이게 최선인 것 같은데 괜찮아?”

“좋죠.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적을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다음에 왕창 받아내자고. 아무리 첫 출연이지만, 얘네 너무 짜.”

“뭐 이미 그럴 거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어요.”

성우의 말에 스티브는 미소지었다.

젊은 친구가 생각보다 말귀가 좋았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 녀석들이라면 벌써 생각보다 출연료가 적다며 방방 뛰었을 것이다. 사실 스티브는 이 자리에서 대박 계약이 나올 거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첫 영화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래에는 다를 것이다.

첫 작품만 제대로 자리 잡으면 되는 일이다. 그 이후에 성우의 몸값은 천문학적으로 뻥튀기될 것이다. 사실 이미 그런 전적을 가진 배우는 마벨의 출연진 중에도 있었다.

바로 루이스 Jr.가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그가 처음 마벨에 출연했을 때 몸값은 성우보다 적은 50만 달러였다. 하지만 정확하게 7년 후에 그의 출연료는 러닝개런티까지 합쳐서 8천만 달러(약 950억)가 되었다. 오죽하면 몸값 때문에 캐릭터를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내부와 언론 사이에서 나올 정도였

다.

“다음 계약 때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거는 나중에 상황 봐서. 그리고 이거는 마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

“몸 관리는 이 친구가 워낙 철저하게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가 할 걱정을 왜 내가 해?”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스티브는 친절했다.

특히 조항을 어길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주의시켜주기도 했다. 전에 할리우드 쪽의 계약 관련 일도 종종 했다고 하더니 여러모로 그의 조언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특히 노예 계약을 방지하는 조항은 가장 꼼꼼하게 살펴준 그였다.

계약서의 사인 이후.

성우는 다음을 기약하며 마벨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당장 다음 달에도 유니버스 시리즈의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분량은 2~3분 남짓이지만, 내년 이후에 개봉할 그의 영화에 대한 일종의 프리뷰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이봐! 계약은 잘했어?”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들을 앞에 킬리안 터커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출연에 다들 환영과 걱정을 동시에 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킬리안은 예측불허의 모습이 다분했다.

그것도 그럴 만 했다.

킬리안은 서울에서 꽤 종횡무진했다.

서울 시내에 나타난 ‘레오파드’의 주인공.

그를 못 알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수백만 명이 그의 영화를 본 이후의 일이었다. 이내 그의 한국 방문은 SNS를 통해 확산되었고, 곧 기사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태원에서 발견된 킬리안 터커. 왜 형이 거기서 나와?]

[레오파드 킬리안 터커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단독취재 : 마벨의 차세대 영웅은 한국인으로 밝혀져]

[마벨 덕후 기자가 밝히는 ‘아크로’. 그가 밝히는 가상 캐스트에 유성우 꼽혀]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배우.

그것은 바로 성우가 단언컨대 많았다. 얼마 전에 드라마를 끝낸 영향도 가장 컸다. 그만큼 성우는 대중의 인식 속에 ‘액션을 잘 하는 배우’라 각인되어 있었다.

“와썹맨~!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지금이요?”

“촬영 때문에 오늘 밖에 시간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어. 시간 괜찮지? 차 준비시켜 놨으니 바로 가자.”

그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했던 대련 약속은 아무도 몰랐다. 성우는 가장 먼저 강 대표의 의중을 물어봤다.

“대표님도 같이 가시겠어요?”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아. 여기 변호사님 집에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

“아··· 그러시구나. 그럼 이따 밤에 뵐게요.”

성우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런 그를 잡고 싶었지만 강 대표는 방법이 없었다. 스티브 강의 집에서 고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데 그 자리를 펑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왠지 느낌이 싸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요한이라도 있으면 붙여서 보낼 텐데 오늘은 같이 오지 않았다. 결국, 강훈은 성우의 등 뒤를 향해 조심하라고 외치고는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면서도 그는 성우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같이 갈 걸 그랬나?”

*

“허억···”

“후읍··· 다시 한번만 더 안 될까?”

거친 숨소리.

그리고 애절한 목소리.

킬리안 터커는 성우를 붙잡고 사정했다. 하지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두 판이나 내리 이긴 그였다. 더 겨루는 것은 미련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성우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킬리안의 집이었다.

무술광인 그의 집답게 운동하기 좋은 공간이 있었다. 매트는 물론이고 주변에는 운동 기구도 제법 마련되어 있었다. 킬리안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한국말 중에 삼세판이란 게 있다며?”

“그런 거는 누가 알려주는 거야?”

“우리 크루 중에 한국 얘가 있거든. 혹시 모르니 필요할 때 써먹으라고 하던데.”

“크루? 추종자 뭐 그런 건가?”

“뭐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해. 그냥 친구 사이지. 한 판 더 하자니까.”

킬리안은 도복을 다시 갖추며 말했다.

성우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런 모습에 킬리안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성우가 봤을 때 그는 확실히 무술에 빠진 바보였다. 그것도 변태적인 수준이었다.

왈칵!

도복의 옷깃을 잡는 킬리안의 악력.

그것은 쉽게 볼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첫판에서 성우는 그의 힘을 간과해서 자칫 질 뻔 하기도 했다. 확실히 다른 것은 몰라도 힘에 있어서는 킬리안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잡히지 않으면 될 일이다.

속도에서는 성우가 확실히 월등하게 앞섰다. 그리고 그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때론 얍삽하다며 킬리안이 야유를 보냈지만, 그가 그럴 여유는 없었다. 성우의 타격 범위는 생각 이상으로 넓었기 때문이었다.

종아리. 허벅지. 옆구리.

어깻죽지와 머리까지.

모든 곳이 성우의 타격 범위에 들어 있었다. 특히 번개같이 내지르는 성우의 발차기에 킬리안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매번 그의 발을 붙잡아 매트 위에 쓰러뜨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상단?’

킬리안이 손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성우의 공격은 발목 후리기였다.

세차게 들어오는 공격에 킬리안은 저절로 몸이 떠올랐다.

파아앙!

다시 한번 쓰러진 칼리안.

그 커다란 덩치가 바닥에 내팽개치는 광경은 확실히 다이내믹했다. 그런 그를 향해 성우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일어서길 기다렸다. 매번 당하는 것은 킬리안이었지만, 볼 때마다 밉상이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누워서 성우에게 손짓했다.

“드루와.”

“내가 왜. 괜히 그라운드 기술 걸리면 손해지.”

“우리 포옹 한 번만 하면 안 될까?”

“아까 충분히 했잖아. 질식사할 뻔한 사람한테 말이야.”

“뭐 결국 잘 빠져 나가더구만.”

킬리안은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발목에 느껴지는 통증 때문이었다. 이내 그는 아쉬운 표정을 하고 드러누웠다. 더는 무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그라도 몸의 한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성우 역시 끝인 것을 깨닫고 자리에 앉았다. 성우가 정좌하는 모습을 본 그는 물

었다.

“그거 따라하면 조금 더 무술을 잘 할 수 있을까?”

“전혀.”

“매정한 녀석 같으니!”

말은 그래도 킬리안은 만족한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웃음꽃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말도 안 되게 졌지만, 그래도 더 높은 경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애써서 한국까지 날아갔다가 온 보람이 있었다. 그만큼 성우는 강했고 또 본받을 만 했다.

“나도 너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그건 힘들 거야.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뭔가 길이 보이겠지.”

“그러지 말고 나한테도 네가 배운 무술 좀 전수해줘.”

“싫은데.”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위례검은 모두 전수되었다.

괜히 더 이상 누군가에게 시간을 뺏기는 것은 싫었다. 위례검이 비밀이거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사택천의 바람은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랐다.

킥복싱, 검도, 가라데.

뭐 이런 것들처럼 한국에 위례검이란 무예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소명은 자신이 아닌 홍문석에게 넘긴 지 오래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들린 소식에 의하면 도장 개설에 대한 준비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성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금 상황을 봤을 때 홍보를 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자신도 그런 역할에 한 몫 거들겠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킬리안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배운 무술은 위례검이라는 건데. 너도 배우고 싶어?”

“어!”

“그럼 한국에 가서 홍문석 사범을 찾아.”

“미스터 홍? 그 사람한테 나도 배울 수 있어?”

“물론이지.”

성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지금 영업 마인드가 가득한 상태였다.

< 광끼 -8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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