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82 >
이른 아침.
공항에 밀려든 인파.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바로 오늘 입국 예정인 어떤 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무색하게 그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늘 오는 거 맞아요?”
“이상하네. 다들 나온 거 같은데요.”
“아이참... 일부러 큰맘 먹고 연차 내고 왔는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평일에 이렇게 공항에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식당의 다른 출연진과 스태프는 모두 나왔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유성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소 지친 표정이 드러날 무렵.
수많은 이들 가운데 몇 명이 탄성을 질렀다.
그들은 핸드폰으로 성우의 팬카페에 접속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 올라온 뭔가를 읽은 것이었다.
“어!”
“왜요?”
“성우 씨는 오늘 안 온대요.”
“어디 봐요.”
새벽에 올라온 짧은 글 하나.
그것은 성우가 직접 쓴 글이었다.
카페에 유일한 최상위 등급이기에 구분은 쉽게 가능했다.
그가 써놓은 짧은 글.
그 글에는 유식당의 촬영이 잘 끝났다는 인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직 그는 콜롬비아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하루의 휴식 후에 돌아간다고 적어둔 것이었다. 성우는 그 글과 함께 서비스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바로 그가 첫 밤을 보낸
그 아침에 스태프가 찍은 것이었다.
[사진 : 유부와 함께 해먹 위에 있는 모습]
다들 실망할 법도 했다.
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봄날 눈 녹듯 녹아들었다. 싱긋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화를 낼 마음도 없어졌다. 더구나 유부도 한몫을 했다.
“유부도 같이 갔구나. 그건 몰랐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봐요.”
“힝··· 저는 내일 못 오는데.”
“지우 맘! 내일도 오게요?”
“당연하죠.”
혹자는 극성맞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우의 팬들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그를 직접 보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광고에서도 그리고 여타 예능에서도 보기 힘든 존재가 성우였다. 드문드문 인터뷰를 통해 얼굴을 비추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팬서비스는 확실했다.
지금까지 여러 덕질을 했던 팬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성우가 직접 음식을 대접하는 그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정말 극소수의 당첨자만 혜택을 받을 뿐이었다. 거의 로또 당첨에 가까웠기에 그것만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내일 못 오더라도 본방 사수 아시죠?”
“물론이죠! 25% 가즈아~!”
“호호. 다음에 봐요.”
종방이 다가오고 있는 드라마.
‘저승에서 온 차사’는 요즘 한국을 휩쓸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팬들 사이 곳곳에서 보이는 외국인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지난 14회 순간 시청률.
그것은 거의 25%에 근접했다.
평균 22~23%인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막방인 다음 주의 15, 16회에서 25%를 넘을 거란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열풍이 아니라 가히 광풍이라 할 수 있었다.
[공중파를 뛰어넘는 TCN의 드라마 ‘저승에서 온 차사’]
[드라마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간 전설. 그 주역은 역시 유성우]
[여주인공의 연애설이란 악재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그 인기의 이유는?]
혜리의 연애설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높았을 거란 말도 종종 나왔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대중의 관심은 한쪽으로 쏠렸다. 그것은 두 주연 가운데 당연히 성우 쪽이었다. 아마 혜리의 소속사에서는 이 상황에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연애설은 남배우보다 여배우에게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굉장히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 것은 변함없었다.
그렇게 다들 흩어진 이후. 몇 시간이 지난 후 입국 게이트는 술렁거렸다. 그곳을 통해 성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곧바로 요한이 다가와 그의 짐을 받아줬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하루 쉬고 온다더니 왜 벌써 와요?”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어서 가자.”
요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우는 그저 물끄러미 케이지를 바라봤다. 그가 하루의 휴가를 포기하고 서둘러 입국한 이유는 바로 유부 때문이었다. 원래는 예정대로 하루 더 있으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깨어나지 못했다.
혼수상태는 아니지만, 비몽사몽 하는 것 같았다.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기에 성우의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밤의 녀석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을 눈치를 챘는지 요한은 그가 손에 쥔 케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유부가 아파요?”
“그래.”
“왜요?”
“나도 몰라. 현지에 있는 동물병원에도 갔는데 거기서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병명은 알 수 없었다.
딱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활력 지수가 현저히 낮았다.
성우는 설마 무사귀 때문에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두부조차 그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설마 녀석에게 빙의한 것 아닌가 싶었다.
성우는 유부에게 남몰래 소금을 뿌려 보기도 했다. 물론 그랬다가 두부한테 호되게 혼났지만, 그곳에서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귀국했다.
덕분에 꽤 비싸게 비행기 표를 다시 구해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적어도 유부는 그 정도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럼 바로 동물 병원으로 갈게요.”
역시 눈치 빠른 녀석이었다.
요한은 서둘러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평소 유부가 다니던 동네의 병원이었다. 1시간 정도 말없이 차는 달리기만 했다. 성우는 무릎 위에 올린 유부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은 보이지는 않았다.
‘너 도대체 왜 이러니?’
*
1시간 후.
성우는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유부는 도착과 동시에 온갖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녀석이 탈진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먹이를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 녀석.
그것을 보니 성우는 무척 안쓰러웠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던 그였다. 유부의 옆에 앉아 성우는 두부와 대화를 했다.
‘그때 그거는 도대체 뭘까?’
-나도 모르지. 그런데 엄청 무서웠어.
‘무서워?’
-응. 잘못하면 나도 황천길 갈 것 같은 분위기랄까? 유부 저 녀석 뭔가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야.
두부는 그렇게 단언했다.
확실히 그날의 유부는 평소와 달랐다.
그것은 성우도 인정하는 바였다. 녀석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는 것은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 덕분에 녀석이 이렇게 아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유부한테 귀신을 잡는 능력이라도 있나?’
물론 추측에 불과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었다.
성우는 유부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꽤 긴 시간 성우는 유부 곁을 지켰다. 그래도 주사를 맞은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은 오랜만에 눈을 제대로 떴다.
“이제 기운 좀 차린 것 같아요.”
수의사 송채린.
삼십 대 초반의 그녀는 실력파였다.
실제 얼굴은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나이에 비해 실력이 제법 좋다는 평이 많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들었는데 그걸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것도 요한이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덕분에 살았네요.”
“별말씀을요. 혹시라도 더 안 좋아지면 바로 오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유부 팬이라 오히려 영광이죠. 요즘 이 친구가 TV에 나올 때마다 심쿵한다니까요.”
채린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유부는 대활약을 했다.
방영된 드라마에서 녀석의 비중은 작지 않았다. 바로 혜리와 그를 이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낸 녀석이었다. 갑작스러운 유부의 출연 결정에도 멋지게 스토리를 써준 홍근석 작가 덕분이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
“또요?”
성우는 그 말에 웃었다.
병원에서 다시 오라니 재미있는 선생님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채린은 서둘러 변명했다.
“아차! 실수했네요. 지나가다 심심하면 놀러 오세요.”
성우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녀석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열흘 만에 돌아오는 그의 집은 아늑했다. 역시 집만큼 편한 곳은 없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유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밥 먹을래?”
성우는 사료를 꺼냈다.
유부가 성큼 그의 곁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녀석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요한이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누군지 감이 왔다. 이미 날이 어둑해지는 시간이었다. 지금 올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한과 같이 들어오는 것은 오만석 실장이었다.
“마벨! 너 정말 거기 캐스팅되는 거야?”
그가 이처럼 허겁지겁 온 이유.
그것은 역시 마벨 스튜디오와의 일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그와 통화하며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한 성우였다. 당연히 그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바이올렛 엔터를 들썩이게 했다.
“어휴. 저도 이제 막 왔어요. 숨 좀 쉬고 말하죠.”
“미안하다. 저녁은?”
“아직이죠.”
성우는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재료를 한 번 스캔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가볍게 된장국을 끓이기로 했다. 하지만 두부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두부는 먹을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요한아. 심부름 하나만 해줄래?”
“뭐요?”
“두부 한 모만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저도 먹을 건데요.”
성우는 고맙다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아무리 매니저라도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기 혼자 먹을 거는 아니기에 조금 떳떳한 면도 있었다.
요한이 나간 이후.
오만석 실장은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쌀을 씻어 밥솥에 앉히고 있는 성우를 향해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을 재차 물었다. 자신의 배우가 월드 스타가 될 기회였다. 당연히 그가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은 그뿐만 아니라 강 대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역할이야?”
“검색해 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 만화는 아직 안 봐서.”
“그래? 구해볼까?”
하지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알렉스한테 연락이 따로 왔던 탓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올 때 자신의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 일부분을 따로 챙겨오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걸 보는 것이 이해가 가장 빠를 것 같다는 그의 판단 덕분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올 때 챙겨서 온대요.”
“오~ 좋네. 이러다 너 월드 스타 되는 거는 순식간이겠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세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뻔히 아시는 분이...”
“그렇기는 하지.”
“그저 알렉스라는 캐스팅 디렉터가 그런 의사를 내비쳤을 뿐이에요.”
“내가 듣기로는 그 디렉터라는 사람들 끗발이 죽여준다던데.”
성우는 그걸 부정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할리우드는 국내 영화 제작과 그 시스템의 궤가 달랐다. 각 작업의 스태프마다 전문화되어 있었다.
캐스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안목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고 나름 강한 파워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주연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이야기 달랐다. 그건 그가 아닌 마벨 스튜디오에 있었다.
“그냥 1차 오디션 정도라 생각하세요.”
“그래서 그 알렉스인가 그 디렉터는 언제 온대?”
“대충 열흘 정도 후에요.”
“종방연 이후네?”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렇게 요청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대단하다며 만석은 혀를 내둘렀다. 그 소식을 듣고 흥분되지도 않냐는 것이었다. 자신이라면 미국으로 곧장 날아갔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혹시나 모를 실패.
그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다 된 것처럼 여기다 훗날 이불킥 하기는 싫은 그였다. 물론 성우도 그의 말처럼 설렜다. 다른 곳도 아닌 할리우드의 그것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마벨의 영웅이었다.
“그럼 새로 시나리오 들어온 거는 일단 킵해놔야겠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왜?”
“이야기 들어보니 올여름에는 단역으로 잠깐 얼굴만 비칠 뿐이에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영화 제작 일정은 빡빡했다.
거의 2년 후의 작품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에 성우에게 캐스팅이 들어온 ‘아크로’가 엄청 독특한 케이스였다. 성우는 알렉스가 해줬던 말을 그대로 오만석 실장에게 전해주었다.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
그것은 적어도 1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만석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현재의 이 기세를 몰아붙여 출연료를 올릴 찬스였다.
연예계 불변의 법칙.
한 번 올라간 몸값은 내려가지 않는다.
폭망하는 작품만 계속하지 않는 한 그의 몸값은 탑 클래스를 유지할 것이다. 앞서 드라마를 찍기 전에 3천도 안 되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회차당 1억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만큼 이번 ‘저승에서 온 차사’의 성공은 성우에게 의미가 컸다.
“그럼 시나리오는 계속 받아?”
“당분간은 그래야죠. 계약서에 사인하고 고민하자고요.”
“아니 괜히 엉뚱한 계약을 했다가 엉킬까 싶어서 그렇지.”
“고작 열흘 남았어요.”
그 말에 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열흘이니 참을만 했다. 그러나 그 열흘이 엄청 길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그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 광끼 -8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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