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81 >
칼이 들어간다.
내부를 가로지르며 관통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 동강이 날 무렵.
무정한 녀석은 다시 또 다른 곳을 노린다. 성우의 칼은 평소보다 느렸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한 번의 칼질이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김밥을 다 썰자 성우는 혜정에게 부탁했다.
“누나 이것 좀 담아줘요.”
“네! 쉐프.”
성우는 주위를 살폈다.
주방은 평소보다 난잡했다.
무슨 폭탄이라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은 수제비의 반죽을 하며 벌어진 것이었다. 성우는 펄펄 끓고 있는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그가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훅하고 밀려 올라왔다. 그리고 새로 꺼낸 수저로 자신이 만든 수제비의 맛을 보았다. 반응은 두부가 빨랐다.
-오~! 맛 좋다.
‘당연하지. 이걸 얼마나 쳐댔는지 너도 봤잖아.’
-역시 수제비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 중요하지.
국물의 맛도 일품이었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성우는 지난 며칠 동안 고민했던 보람을 느꼈다. 이 맛의 일등 공신은 역시 반죽에 들어간 감자 전분 약간과 정성 가득 들어간 육수 덕분이었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인 노력은 제법 컸다.
파 뿌리, 다시마 그리고 사골.
그리고 온갖 잡다한 재료까지 더해졌다.
그가 이 먼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촬영 때문에 식당의 주방에서 할 수 없어 숙소에 있는 주방을 이용해야 했다. 무려 반나절 가까이 뭉근히 끓여냈다. 그래서인지 국물은 색부터 뽀얀 것이 군침이 흐르게 했다. 그 특유의 향이 있었지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때?”
“누나도 한 번 맛볼래요?”
성우는 새로 수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수제비 하나를 떠서 그녀에게 건넸다. 혜정은 입을 모아 호호 불더니 그대로 받아먹었다. 한동안 오물거리며 맛을 보던 그녀는 단번에 웃음 지었다.
“맛있어! 이야~ 너 정말 대단하다.”
“겨우 수제비가지고 뭘 그래요.”
“쉬워 보여도 그런 음식이 더 어려운 거야.”
혜정은 정말 놀랐다.
연기도 수준급인데 요리마저 잘하다니!
이건 반칙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땡!
경쾌하게 울리는 벨 소리.
성우가 가볍게 그것을 누르자 지웅과 희선이 다가왔다.
그들은 성우가 내놓은 음식을 조심스레 테이블로 나르기 시작했다. 우선 식사의 시작은 김밥과 수제비가 그 주역이었다.
7인의 식탁.
그 위는 음식으로 얼추 찼다.
하지만 그걸로 만찬이 끝은 아니었다. 아직 혜정이 만들 수육과 성우의 석쇠 떡갈비 등의 메인 메뉴는 아직이었다. 그것은 지금 만든 음식을 다 먹으면 만들 예정이었다. 그들이 그릇을 내려놓자 오늘의 주인공은 눈이 동그래졌다.
다니엘 디아즈 옹.
그는 오늘을 무척 기다렸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이지만, 한국인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던 그였다. 더구나 식사까지 초대해줬다. 지금 그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이거 너무 고맙군요.”
그는 다나를 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 이였다. 그런 그의 말에 다나는 싱긋 웃을 뿐 통역을 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말은 다들 알아 들은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장사하며 거의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성우 씨도 어서 앉아요.”
주호민 PD.
그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카메라 앵글 끝에 앉은 그는 일종의 사회자였다. 오늘 이 자리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정해진 대본도 없었고 누군가 자리를 주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촬영 분량을 제대로 뽑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이 장면이 새로 시작한 유식당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 분명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가 외치자 다들 웃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수저를 먼저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디아즈 옹 역시 쉽게 첫술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다나가 그에게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가장 연장자가 먹기 시작해야 먹어요.”
“맞아. 그랬었어. 내가 까먹고 있었네.”
“어서 드세요.”
디아즈는 수저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보는 젓가락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의 첫 선택은 수제비였다.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하얀 눈과 같은 수제비 국물을 떴다.
이제는 나이가 먹어 저절로 손이 바르르 떨렸지만, 그는 끝내 입안에 그 따뜻하고 진한 국물을 넣을 수 있었다. 그 맛을 음미한 그는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이 요리는 저기 성우 씨가 직접 만든 거예요.”
“이렇게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인사 좀 해주시겠어요?”
디아즈의 말에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성우가 답했다. 그의 입에서는 유창한 스페인어가 나왔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오늘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부디 맛있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다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가 조금 전에 구사한 스페인어는 꽤 수준급이었다. 적어도 십여 년 이상은 현지에서 산 사람 같았다. 다른 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이런 실력을 왜 숨기고 있었냐며 따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디아즈 옹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눈을 닮았네요. 이 음식은...”
“여기도 눈이 오나요?”
“아니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을 본 것은 한국이었어요.”
디아즈는 추억에 잠겼다.
한참 더울 여름에 도착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이내 서늘해지더니 겨울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황홀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하늘 위에서 사뿐히 떨어지는 눈송이. 고결해 보이는 그것을 보고 모든 전우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더랬다. 다들 생전 처음 보는 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다들 엄청 좋아했죠.”
“콜롬비아는 눈이 오지 않는가 봐요?”
혜정은 그게 궁금했다.
그 질문에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한국에서 눈을 처음 보았다. 적도 부근에 있는 콜롬비아에서 눈은 무척 귀한 존재였다.
아예 없다 할 수는 없었다.
아주 높은 고지대에 가면 설산이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일상이 이뤄지는 곳에서는 내리는 눈을 직접 보는 것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달콤한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왜요?”
“추위 때문이죠. 그 아름답던 눈이 온 이후에 들이닥칠 추위의 무서움을 그때는 잘 몰랐죠.”
그들의 겪은 한파.
그것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특히 콜롬비아 부대가 주로 작전을 펼치던 지역이 철원 부근이라 더 그랬을지 몰랐다. 그와 동료들은 밤이 지날 때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땀이 차는 발은 동상으로 썩어갔고 손가락은 갈라지고 찢어지기 일쑤였다.
특히 콜롬비아의 온난한 기후.
그것에 적응되어 있는 그들이기에 더욱 심했을 것이다. 매일 밤이 지옥 같았고 그럴 때마다 집이 그리웠던 나날이었다. 한참 이야기하던 디아즈는 주변을 살폈다.
“이거 제 이야기 때문에 식사를 못 하는 군요. 일단 먹을까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 때문에 음식이 식어갔다.
그의 말을 다나가 옮기자 다들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약간 식었지만, 그래도 그 맛은 여전했다. 특히 그의 요리를 처음 먹어 보는 다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짱! 이거 정말 맛나요.”
“감사합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식당에는 그 소리만 가득했다.
하지만 내놓은 음식을 다 먹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웅과 희선이 그 접시를 치우자 성우가 일어서려 했다. 다음 음식을 내올 차례였다. 하지만 그를 붙잡은 것은 주 PD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음식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예 먹고 이야기하든지 아니면 끝나고 먹는 것을 좋을 것 같았다. 주제가 무거운 것으로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중에 그는 먼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옳았다.
디아즈가 말한 한국 전쟁의 기억들.
그것은 밥을 먹으며 듣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특히 한국인의 시선이 아닌 외국의 시선은 독특한 면모도 있었다. 어떤 마을에서 벌어진 그가 목격한 참상을 이야기할 때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떨려왔다.
“세상에···”
다들 말을 잃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전쟁은 군인만 죽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죽음이 맴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쉽게 와닿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전쟁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디아즈는 분위기를 전화했다.
확실히 연륜은 어디 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자신과 동료들이 겪었던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그의 입담은 굉장히 재기 넘쳤다. 다나의 통역이 있어야 했지만, 얼굴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성우는 그 틈을 타 주방으로 향했다.
디아즈가 목이 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생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수정과를 찻잔에 담았다. 그가 말없이 있자 두부가 말을 걸어왔다.
-저 친구는 어릴 때도 저랬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부대에서 가장 입담이 좋은 친구라 기억한대. 성대모사도 잘 하고 노래도 꽤 했다고.
성우는 그 말을 인정했다.
아마 예전에도 인기가 참 좋았을 것 같았다.
키도 제법 크고 나이가 들었지만, 그의 풍채는 아직도 하지웅 못지않았다. 성우가 수정과를 들고 돌아갈 무렵. 디아즈는 오래된 가죽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사진 여러 장이 쥐어져 있었다.
“당시에 찍은 사진이에요.”
그는 그것을 보여줬다.
사진은 오래되어 색이 바래져 있었다.
그 속에서 찾은 그의 젊은 시절은 무척 훤칠했다. 그러나 그 배경은 20세기 말에 태어난 성우에게 무척 낯설었다. 초가집도 종종 보였고 아이들은 헐벗고 있었다. 그러나 성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디아즈가 전우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왠지 그 가운데 한
명이 묘하게 시선에 걸렸다.
-그놈이 네 안에 있는 녀석이다.
두부가 알려줬다.
그의 말을 들으니 더 관심이 갔다.
사진 안에 보인 그의 첫인상은 무척 어려 보인다는 것이었다. 성우가 한 사진에 유독 관심을 보이자 디아즈가 그 사진을 들고 유심히 봤다.
“이 친구는···”
디아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랜만에 보는 전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다나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답하지 못했다.
왜인지 오늘따라 가슴이 먹먹한 그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치 어제 겪은 것처럼 느껴졌다.
“헤수스... 이 친구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은인이요?”
“이 친구 덕분에 내가 무사히 살아왔거든.”
디아즈가 밝힌 헤수스의 최후.
그것은 한 편의 영화나 다름없었다.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의 격전 중에 날아온 수류탄을 껴안고 동료를 살렸다고 그는 밝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았지만, 실제 그 당사자가 말하니 또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성우는 골치가 아팠다.
할아버지가 옛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환상을 통해 그 순간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세월 때문인지 꽤 각색되어 있었다. 성우가 본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겠다. 헤수스 그 자식 소원은 안 들어줘도 문제없지?’
-네 마음대로 해. 이번 거는 나도 비추.
’아니 나보고 그 말을 어떻게 하라고?’
수류탄이 날아오던 순간.
헤수스는 동료를 위해 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도망치려다 발을 헛디뎌 잘못 쓰러진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의 억울함을 이 자리에서 풀고자 했다. 하지만 그걸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꽤 고약한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것이었다.
성우가 거부한 순간.
두통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헤수스가 날뛰며 항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몰래 성우가 인상을 쓰고 있을 무렵에 유부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집에 있어야 할 녀석이었다.
유부는 번개같이 뛰어 그의 품에 안겼다. 평소에 보기 힘든 엄청난 점프력이었다. 그러자 그를 괴롭히던 두통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지?’
-유부 저 녀석...
‘유부가 왜?’
-아···아냐. 나 왠지 갑자기 저게 무서워졌어.
두부는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성우는 갑자기 허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안에서 뭔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무사귀가 성불을 할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그때 두부가 소리쳤다.
-아씨! 이 자식 도망쳤어.
‘뭐?’
-성불 안 하고 네 몸에서 탈주했다고. 어디로 갔지?
‘그럴 수도 있는 거였어?’
이론상으로 가능한 일이라 했다.
대부분 자신에게 깃든 것들의 공통점은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탐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포기한다면? 조금 전처럼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했다.
일단 그릇이 달랐다.
성우의 몸은 일종의 워너비였다.
무사귀들에게 이런 몸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 굳이 옮겨갈 필요가 지금껏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 성우는 난감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탈주한 무사귀가 어디로 갔는지 걱정되었다. 만약 사람에게 옮겨간 것이면 큰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기다!
두부가 지적한 곳.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바로 자신이 찍힌 그 사진에 무주귀가 옮겨간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의 헤수스는 전보다 더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소름 돋는 일이었다.
‘저걸 어떻게 해?’
-그냥 냅둬.
‘왜? 디아즈 할아버지한테 해코지하면 어쩌려고?’
-그럴 녀석은 아니야. 조금 장난기가 많을 뿐이지. 너한테 요구했던 것도 그런 종류였잖아.
성우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두부의 말에 따르면 사진을 태워버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애매했다. 디아즈 할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진이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그저 헤수스라는 그 친구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캬아~옹!”
어느 사이에 들어온 유부.
녀석은 앙칼지게 한 차례 울은 후.
테이블 위로 올라 그 위에 올려져 있던 그 문제의 사진을 발로 쳐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지는 그걸 그대로 낚아채 밖으로 쏜살같이 내뺐다. 그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허얼···”
“나 지금 뭘 본 거야? 저게 가능해?”
“유부가 갑자기 왜 저러죠?”
“사진! 사진 물어 갔어요. 어쩌면 좋아.”
다들 발을 동동 굴렀다.
성우는 급하게 가게 밖으로 나섰다.
사진을 물고 간 것도 문제지만, 귀신 붙은 것이었다. 유부가 괜찮을지 그것부터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성우가 아무리 불러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성우는 다시 돌아와 일단 디아즈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전적으로 자신의 탓
이 컸다.
“죄송합니다.”
“아냐··· 이제 내려놓으라는 뜻이겠지.”
“네?”
“한동안 참 힘들었거든. 잠을 잘 때마다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어.”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서 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덕분에 그 고통은 모조리 가족들이 짊어졌다.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작진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성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였다.
“미안할 뿐이야.”
디아즈는 후련하다는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딸인 그녀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이후에 성우를 향해 말했다. 마치 너라면 답을 알지 않냐는 듯한 늬앙스였다.
“이제 악몽도 끝나는 걸까?”
*
그날 저녁.
유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성우는 급하게 촬영을 마치고 온 동네를 헤맸다.
스태프와 지웅이 형 그리고 누나들까지 모두 나섰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성우는 해가 밝아진 후에 찾기로 했다.
녀석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유부를 찾기 전까지 한국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더는 무리할 수 없었다. 자신이 돌아다니면 스태프가 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성우는 혜정의 엄청난 비명소리에 깼다.
“꺄아아!!!”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안 그래도 선잠을 자던 지난밤이었다. 혹시 몰라 문 앞에 간식을 놓고 열어 놓고 잤기 때문이었다. 모기 때문에 고생은 조금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부!”
녀석이 보였다.
어느 사이에 돌아왔는지 곤히 자고 있었다.
유부는 그 하이톤의 비명과 성우의 목소리에도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었다. 밤새 뭘 했는지 털은 꼬질꼬질한 상태였다. 성우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문밖으로 나가다 멈췄다. 그의 시야에 검은 뭔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그것 좀 치워줘.”
“이게 왜 여기에?’
성우는 범인을 짐작했다.
녀석이 물어다 놓은 것으로 보였다.
딴에는 잘못했다고 선물을 가져온 것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아침부터 죽은 쥐를 보는 것은 고약한 일이었다. 성우는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하아. 이건... 선물인가?”
< 광끼 -8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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