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77 >
시작은 모두 의욕 찼다.
문만 열면 손님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유식당이 개업을 한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손님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파리만 날리는 그 상황에 성우는 점차 지쳐갔다.
“오히려 바쁜 게 낫지 기다리는 것은 정말 힘드네요.”
“막상 또 바쁘면 반대로 생각할걸?”
“그래도 심심한 것보다는 그게 좋죠. 촬영 분량도 뽑고요.”
“조금만 더 기다려 봐.”
혜정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것 밖에 지금 딱히 방법은 없었다.
아니 다른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호객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꼬실까요?”
“키키킥. 모양 빠지게 그러지 마.”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 뭐라도 좀 먹을까?”
성우는 잠시 고민했다.
남들을 먹이기 위해 시작한 식당이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자기부터 먹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때 음식이 나가는 작은 창으로 하지웅이 머리를 들이밀고 말했다.
“성우야. 나 배고파.”
둘이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았다.
성우가 슬쩍 보니 둘이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촬영이라 티는 안 내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눈빛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둘이 아주 잘 어울려요.”
“난데없이 왜?”
“방금 누나도 배고프다고 했거든요.”
“밥 시간대니 당연한 거지. 그렇게 따지면 5천만 국민 모두 천생연분이게?”
그 말에 다들 웃었다.
어느 사이에 다가온 희선까지 한 몫을 거들었다. 성우는 제작진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하지만 별다른 사인은 없었다. 마치 네 맘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제가 가볍게 김밥 말까요?”
“그것도 좋긴 한데 저희 고기를 굽죠.”
“점심부터 조금 헤비하지 않아?”
“전혀요. 그리고 고기 굽는 냄새가 조금 퍼져야 손님도 들어올 거 같아서요.”
“조금 더 만들어서 시식용으로 써보자.”
희선의 의견은 참신했다.
성우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도 일단 자신이 먹을 것부터 하기로 했다. 시식용은 그 이후에 해도 될 일이었다. 모두의 의견을 확인한 성우는 홀 멤버를 밖으로 밀어냈다. 네 명이 있기에는 주방이 비좁았다.
“나는 뭐 도와줄까?”
“글쎄요. 재료도 모두 손질되어 있어서 딱히 없을 거 같은데요.”
“치! 그래도 내가 할 역할은 있어야지. 혼자 다 해 먹으려고?”
“그렇기는 하네요. 그럼 일단 제가 스타트 할 테니 누나는 일단 보고 익혀요.”
음식의 맛은 같아야 했다.
특히 같은 식당에서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다를 수는 없었다. 그것을 맞추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과정부터 일치시켜야 했다. 함께 요리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 있었다면 모를까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라 난감했다. 그래서 연습도 할 겸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이익!
파 기름을 내 김치를 볶는다.
그 위에 쌀 뜬 물과 어제 만들어 놓은 채소 육수를 부었다. 이게 성우가 만드는 김치찌개의 가장 기본 베이스였다. 하지만 이걸 그대로 메뉴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매운 맛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판매용 김치는 조금 덜 매운 거로 따로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것은 직원용이었다.
평소대로 성우는 고춧가루를 팍팍 쳤다. 매운 내음이 주방을 감돌기 시작하자 성우는 그걸 혜정에게 맡겼다. 이제는 그저 끓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짜잔~ 석쇠 첫 개시!”
“그걸 정말 가져왔네?”
“필요하니까 챙겨 온 거죠.”
“그런데 떡갈비 종류도 많은데 왜 하필 석쇠야? 쉽지 않은데.”
확실히 혜정의 말이 맞기는 했다.
석쇠로 구워서 여러 테이블에 요리를 내놓기 어려웠다. 굽는데 시간도 걸릴뿐더러 쉽게 태워 먹을 가능성도 컸다. 그래도 불 맛이 있어야 떡갈비가 제맛이 난다고 믿었다.
“시작해 볼까요?”
성우는 고기를 불 위에 올렸다.
그러자 곧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코로 훅 밀려오는 그 냄새는 언제 맡아도 기분 좋았다. 그래서인지 배 안에서도 꼬르륵거리며 난리가 났다.
“와우 냄새 정말 좋다.”
“누나 이거 뭔지 기억 안 나?”
“글쎄?”
“왜 우리 극단 앞의 고깃집 백 사장님이 가끔 해주셨잖아요.”
“맞다! 그거랑 똑같네.”
성우는 웃으며 설명했다.
바로 그의 레시피는 바로 백병일 사장님의 것이었다. 지금은 생삼겹살을 주력 메뉴로 하는 고깃집을 하고 있지만, 전에 했던 음식점이 바로 연탄으로 굽는 석쇠 떡갈비 집이라 했다. 그는 성우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해줬다. 그리고 그의 가게에서 충분히 실습할 기회도 얻었다. 물론 아예 공짜는 아니었다.
-단골 식당 인증이라.
‘뭐 어려운 거는 아니었으니까.’
-하긴 거짓말은 아니지. 전에는 툭하면 가던 곳이니.
그러는 사이 고기는 익어갔다.
그 냄새를 맡았는지 조금 전에 쫓겨났던 둘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마치 모이를 기다리는 새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우는 그런 그들을 볼 여유가 없었다. 첫 개시이니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 그의 옆에서 혜정은 콧노래를 불렀다.
“띡똑~ 띡똑~ 맛있어져라!”
“하하하. 누나 그 이상한 주문은 또 뭐예요.”
“이상해?”
“아뇨 정말 맛있어질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거는 어디서 배운 거예요?”
“옛날에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나오던 거. 내가 그거 보고 한때 요리사를 꿈꿨지.”
혜정은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에 반론을 제시한 것은 바로 희선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가사가 아닌 것 같은데. ‘틱톡 틱톡 흘러가라 흘러가라’ 아닌가?”
“저는 ‘맛있어져라’로 들렸는데. 민망하네요.”
“뭐 자기가 맞고 내가 틀릴 수도 있지.”
뭐가 맞는 건지 당장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성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가사가 어떤 것이든 그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성우의 마음에 드는 것은 혜정이 불렀던 버전이었다. 처음 듣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 중독성은 상당했다.
“띡똑~ 띡똑~ 따라 라라라”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
그러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띡똑 할 때 고개를 좌우로 기우뚱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특히 제작진 가운데서 작가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성우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니 당연했다.
왈우에서 보인 흑표.
저승에서 온 차사에서 보인 강림.
둘의 캐릭터는 상당히 달랐지만, 또 같은 점도 있었다.
바로 남다자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성우의 이미지는 제법 강한 편이었다. 특히 그가 보여주는 고난이도 무술 씬들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런 귀여운 모습도 있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특히 성우보다 연상인 작가들이 가장 폭발적이었다.
“자~ 식사할 준비 해주세요.”
성우는 놋그릇을 꺼냈다.
떡갈비 전용으로 쓰려고 준비한 것이다.
그 위에 가지런히 음식을 놓자 제법 태가 예뻐 보였다. 그릇 때문인지 어지간한 식당의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게 없었다. 성우가 그것을 들고 홀로 나가자 혜정이 김치찌개를 들었다.
하얀 테이블 위에 깔린 테이블보.
그 위에 성우가 음식을 놓자 하지웅과 최희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정도로 퀄리티 좋은 음식이 나올지 전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웅의 반응은 엄청났다. 역시 리액션 장인다운 모습이었다.
“이건 뭐 진짜 식당에서 먹는 거랑 차이가 없네.”
“아직 맛도 안 보셨으면서요.”
“일단 겉모습이 그렇다는 거지.”
“어서 드세요.”
다들 수저를 들 무렵.
입구에서 누군가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지웅이 형이 벌떡 일어서려는 것을 성우가 막았다. 식기 전에 맛을 보라고 말한 뒤에 성우는 입구로 향했다.
자신이야 주방에서 따로 먹어도 되었다.
하지만 홀은 한 번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다. 그러니 적어도 지웅이 형과 희선이 누나는 제때 챙겨줘야 했다. 더구나 둘 다 자신보다 연장자였다.
입구에서 마주친 남자.
그는 한눈에 봐도 이마에 ‘나는 여행자’라고 쓰여 있는 그는 중년의 백인이었다. 반쯤 벗겨진 이마 때문인지 인상이 무척 넉넉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영업하시나요? 브레이크 타임인 것 같은데요.”
“영업하고 있습니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멈춘 것 있죠. 도대체 저 음식 정체가 뭐죠?”
그 말에 성우는 웃었다.
자신의 전략이 통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성우는 떡갈비를 간단하게 설명하며 메뉴를 펼쳤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워낙 유창한 영어에 오히려 그 남자가 놀란 표정이었다.
“영어 정말 잘하시네요.”
“별말씀을요. 사실 저보단 당신이 더 잘하는걸요.”
“하하. 고맙습니다. 저 혼자인데 어디 앉으면 될까요?”
“이쪽으로 오시죠.”
성우는 볕 좋은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물과 메뉴를 서빙해줬다.
그의 눈치를 보며 희선 누나가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를 막은 것은 하지웅이었다. 왠지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떡갈비와 후식으로 음료와 과일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맥주도 하나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성우는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가 주방으로 향하자 혜정이 뒤를 따라왔다.
그 혼자 요리를 하러 보낼 수 없다는 핑계였다. 그런 그녀의 말에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전에 사용한 석쇠를 닦기 시작했다.
“오! 역시 누나가 짱이야.”
“이 정도 센스는 기본 장착하고 있어야지.”
“고마워요.”
성우는 다른 석쇠를 꺼냈다.
그리고 고기를 굽는데 집중했다.
한참 가만히 지켜보던 성우는 아까의 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게 효과가 있을 거라 믿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거는 최면 같은 것이었다.
마수걸이 손님이었다.
가능하면 만족하고 나갔으면 했다.
그런 그의 절실함을 느껴서인지 혜정 역시 그걸 따라 하기 시작했다. 둘이 함께하니 확실히 덜 창피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우는 더 간절해졌다. 과연 이 음식을 먹고 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일단 떡갈비 완성이요.”
“빠르다.”
“얇게 펴놓은 거라 그렇죠. 아마 두꺼웠으면 온종일 걸렸을걸요. 마무리 좀 부탁할게요.”
“오케이!”
“저는 이제 후식 준비할게요.”
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된 떡갈비가 올라간 접시를 노려봤다.
그리고 김이 나는 그 위에 참깨 약간과 율무 몇 알 그리고 가늘게 썰어 그녀가 직접 볶은 양파를 그 옆에 얹었다. 그렇게만 해도 떡갈비만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 훨씬 풍성해 보였다.
그녀가 벨을 울리는 사이.
성우는 냉장고에서 귤을 꺼냈다.
그리고 손바닥보다 짧은 과도를 집었다. 이제부터는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섬세함이었다. 일단 몸통부터 만들기로 한 그는 귤의 옆구리의 껍질을 쨌다. 몇 번의 손짓이 있자 바로 고양이의 등 무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꼬리와 발을 만들어주고 마지막으로 다른 귤을 하나 쪼개 머리를 만들 무렵에 혜정 누나의 감탄사가 들렸다.
“우와 이걸 이렇게 만드네.”
말도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혜정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우가 전문적인 요리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칼을 이렇게 잘 쓰다니 놀랄 일이었다. 누가 보면 수년간 솜씨를 가다듬은 그런 요리사 같았다.
마침내 수정과와 과일마저 나간 이후.
성우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밖의 분위기를 살폈다. 일단 나갔던 떡갈비의 접시가 텅텅 비어 돌아온 것을 보니 입맛에 괜찮았던 것 같았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
“그 손님 또 왔어.”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온 희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성우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는 바로 유식당의 첫 손님이자 첫 단골인 알렉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찾아와 언제나 똑같은 메뉴를 시키는 그였다.
그가 다녀간 직후.
그 이후부터 유식당의 장사는 거침없었다.
벌써 3일이 지났지만, 살렌토에서 그들은 제법 유명해졌다. 특히 성우가 마지막에 내놓은 귤로 만든 고양이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인지 가족 손님도 제법 많았다.
"오늘도 똑같은 거죠?"
성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석쇠를 꺼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알렉스는 언제나 똑같은 메뉴를 시켰다.
하지만 희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성우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마 카메라에 들리지 않게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은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마이크까지 차고 있는데 여기서 비밀이란 없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
“뭐라고 했는데요?”
“널 캐스팅하고 싶데.”
성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요리사로 오라고 제의하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완벽한 오해였다. 성우에게 밝힌 그의 정체는 [마벨 스튜디오]의 캐스팅 디렉터였다.
< 광끼 -7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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