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74화 (75/161)

< 광끼 -74 >

공항으로 가는 차 안.

성우는 옆에 앉은 주호민 PD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척 한정적이었다. 예전 시즌과 비교하면 지금 같은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끌려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 저한테 왜 이래요. 전 시즌과 다르잖아요. 그때는 뭐 유명한 쉐프님 불러서 요리 연습도 시키고 그러더니!”

“재미있잖아. 이번에 식당 이름도 바뀌며 컨셉도 조금 바뀐 거야.”

성우는 할 말이 없었다.

연출은 그의 몫이었고 자신은 출연진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어느 나라로 가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데요?”

“공항에서 알려줄게.”

“전에 갔던 곳이 동남아와 유럽인데... 혹시 아프리카로 가나요?”

“에~ 거기는 너무 멀어도 너무 멀지.”

호민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성우는 조금 부아가 치밀었다.

전혀 예상도 못 한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곧 집에 홀로 남아 있을 유부가 떠올랐다. 최소 7~10일 일정일 테니 걱정이 되었다.

이제 제법 자란 녀석이다.

그러나 아직 그의 눈에는 아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녀석을 혼자 두고 가려니 마음이 찜찜했다. 하지만 반려묘와 함께 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요한과 최정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을 감쪽같이 속인 그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했다. 이 모든 것의 최종 결정은 오만석 실장과 강훈 대표가 내렸을 것이다. 어쩐지 요즘 며칠 뭔가 느낌이 수상쩍다 싶었다.

“이거는 옷 가방이야. 안에 잘 구분해 놨으니 그대로 맞춰서 입어.”

“알겠어요.”

“그리고 이거는 가서 꼭 필요할 거야.”

“뭔데요?”

최정은 책 한 권을 꺼냈다.

그 제목을 본 성우는 뭔가 감이 왔다.

그가 건넨 책은 얇은 스페인어 회화책이었다. 하지만 바로 직전 시즌에 스페인을 다녀온 이후였다. 다시 그곳에 갈 가능성은 없었다. 성우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혹시?’

설마 싶었다.

그가 떠올린 나라는 너무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나 스페인어을 쓰는 나라는 모두 그쪽에 몰려 있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 요한이 슬쩍 다가오며 작은 가방 하나를 건냈다.

“여기는 여권이랑 비상금 들어있어요.”

“네 이놈!”

“살려만 주세요! 실장님이 절대 비밀로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에휴··· 알았다. 유부나 잘 부탁해.”

그 말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상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곧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 성우는 얼떨결에 스태프를 따라나섰다. 그나마 청춘 시리즈에 비해 자신의 짐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안심이었다.

발권을 위해 향한 항공사.

그곳을 보니 성우는 자신의 예감이 얼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그가 받은 항공권을 보자 성우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적지에 적힌 도시 이름은 상당히 생소했다.

인천(출발) - 댈러스(경유)

댈러스(경유) - 보고타(도착)

그러나 곧 어딘지 떠올릴 수 있었다.

멕시코나 중미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남미였다. 유식당의 이번 촬영지는 바로 콜롬비아였다. 그것을 보고 성우는 주호민 PD를 슬쩍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시들지 않고 있었다.

‘저 양반도 참 악취미야.’

-그래도 재미있잖아. 네 덕분에 해외는 처음 나가보네.

‘그래? 이번이 처음이야?’

-그 옛날에 외국에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인지 다른 녀석들도 난리 났어. 네 한 몸 희생해서 단체로 여행 한 번 가는구나.

무사귀 여행 셔틀이란 말이었다.

자신의 신세를 떠올린 성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다른 출연자들은 자신보다 조금 늦게 출발할 예정이라 들었다. 물론 아직 그들이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1시간 후.

성우는 무사히 비행기에 탔다.

생전 처음 타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이라 설렜다. 촬영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 생각이 들자 이번 촬영을 마치면 홀로 여행이나 다닐까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

한적한 그런 곳에서 멍 때리고 싶었다.

인기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는 이미 포기한 지 제법 된 성우였다. 집 앞의 편의점 정도나 편하게 다니지 그 이상은 혼자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자리는 누구 자리에요?”

성우는 뭐가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스태프들 모두 줄지어 앉았는데 자신의 옆자리만 비어 있었다. 적어도 누구라도 앉을지 알았는데 아니었다. 가볍게 액션캠을 설치하고 다들 모른척했다.

그 순간.

성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디선가 유부의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유부가 든 케이지를 가져오는 주호민 PD가 보였다.

“짜잔~ 서프라이즈.”

“엇! 유부도 같이 가요?”

“네 옆자리가 바로 이 친구 자리.”

“냐오옹~”

유부는 케이지에 달라붙어 발을 뻗었다.

녀석은 자신의 손끝을 가볍게 긁으며 째려봤다. 마치 자신을 두고 집사 혼자 어디를 갈 생각을 했냐고 꾸짖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성우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유부 태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주 PD는 온갖 생색을 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만 했다.

건강검진이며 예방접종 확인서 등 준비해야 하는 서류만 한가득하였다. 특히 미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자칫 잘못했으면 같이 못 탈뻔했다는 말도 했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낯선 나라에 이 녀석이 잘 적응하련지 의문이었다. 괜히 고생만 시키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문득 예전에 요한이 넌지시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예전에 요한이 그 녀석이 물어본 게 이거였어요?”

“맞아. 설마 우리가 네 의사도 확인 안 하고 임의로 데려왔겠어?”

“아··· 지독하다.”

성우는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그날따라 요한은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촬영 때문에 여행하게 되면 유부를 데리고 가고 싶냐는 것이었다.

그때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가능하면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다분했다.

더구나 당시 유부는 생후 3~4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언제나 보살펴야 할 때였다.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바로 옆에 앉은 유부는 바닥에 엎드려 뒹굴고 있었다. 마치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설레어 하는 여행자 같았다. 물론 여행하는 내내 케이지 속에 있어야 하니 좀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케이지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성우는 안대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나도 좀 자볼까?”

* * *

그로부터 36시간 후.

성우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경로를 생각하면 참 멀고 먼 땅이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살렌토’였다. 그 작은 마을의 소방서 앞에 차를 멈춘 스태프는 모두 짐을 풀 준비를 했다.

“와 오지게 멀다.”

성우는 한탄했다.

멋모르고 올 때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멀어도 너무 먼 곳으로 온 것이었다.

동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우리나라로 따지면 강원도쯤 되는 분위기였다. 이거는 사실 유식당이 아니라 정글의 게임이라는 생존 버라이어티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식은땀이 났다. 주호민 PD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홀로 산속의 별장 같은 집에서 은거하기

-맨몸으로 납치해 해외로 여행 보내기

-오지 마을에 남자 세 명만 보내서 자급자족하기

그가 그간 저질렀던 일들.

그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성우는 지금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그러자 바로 떠 오르는 것은 그 혼자 버려두고 알아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속내가 있다면 유부까지 데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뭔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아니에요.”

“짐만 내려놓고 식당 구경부터 할래?”

“좋죠. 여기서 가까워요?”

“물론이지.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20분도 안 걸리는데.”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름 도시 남자인 성우였다.

그에게 이 정도의 작은 마을은 처음이었다. 과연 식당에 손님이 있을까 의심이 되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마을은 제법 활기찼다.

성수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거대한 배낭을 메고 걷는 여행자는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론 마을 주민보다 여행자가 더 많이 보일 때도 있었다.

“여긴 마을도 작은데 왜 이렇게 여행자들이 많아요?”

“국립공원 트레킹도 있고 커피 농장도 유명해.”

“아하···”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곳일걸. 현지인도 힐링하러 찾는 곳이야.”

주호민의 설명은 막힘 없었다.

확실히 이 장소를 촬영지로 선택하기 전에 공부한 티가 팍팍 났다. 물론 그 역시 이곳은 처음이기에 현지 코디네이터의 안내를 따라야 했다. 어차피 그도 글로 공부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저 따라 오세요.”

성우 또래로 보이는 ‘다나’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매우 뛰어났다.

한국의 어학당에서 긴 시간 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슬쩍 물어보니 그녀가 한국에 온 이유는 K-POP 때문이라 했다. 성우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격자로 놓인 마을의 길은 소담했다. 성우는 짐은 그대로 놔두고 유부만 껴안고 길을 나섰다.

“부에노스 타르데.”

성우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제작진이 준비한 이번에 촬영할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여니 제법 분위기 좋은 내부가 보였다.

하얀 원목 테이블.

그리고 푸른색의 포인트.

전체적으로 지중해 느낌이 조금 나는 그런 톤이었다. 하지만 마을 분위기와도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소품이 이 나라의 것들을 사용했는지 색다른 것들이 제법 보였다.

하얀 모자 ‘토키야(Toquilla)’.

그것은 바로 옆 나라인 에콰도르의 특산물이었다. 현지 코디인 다나의 설명의 따르면 파나마 모자라 불리는 그것의 원산지가 바로 그곳이라 했다.

그리고 프론트 앞에 놓인 토끼.

그 네 마리의 크고 작은 것들은 의미심장했다.

이번 시즌에도 유식당은 네 명으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아직 그 멤버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원로 배우 아닐까?

두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시즌을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딱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이는 없었다. 그때 잠자코 뒤에서 기다리던 주호민이 말을 걸었다.

“어때 맘에 들어?”

“네. 이 정도면 너무 훌륭한데요. 식탁은 이렇게 5개만 쓰나요?”

“아니. 외부에 놓을 것까지 합치면 8개.”

“허얼! 너무 많아요.”

“윤자옥 선생님도 그 정도는 커버했어. 그리고 손님이 가득 찰 거란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 말에 다들 웃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우는 이왕에 할 거라면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챘는지 주호민 PD는 그에게 넌지시 내기를 제안했다.

“만약 단 한 번도 만석이 안 되면?”

“에~ 제가 또 넘어갈 거 같아요?”

“원래 내 스타일 알잖아. 아예 출연하지 않으면 모를까 한 번만 출연하는 예는 없다.”

참 끈질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또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에는 정말 생존 버라이어티에 끌고 갈 것 같았다. 그 곰 같은 남자처럼 애벌레를 날 것으로 씹어 먹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 꾀려고 하지 마세요. 저도 좀 쉬어야죠.”

“에~ 다음 작품도 없으면서 내가 말이지 아주 죽이는 포맷 하나를 구상 중인데.”

“됐어요.”

한동안 둘은 그렇게 옥신각신했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워낙 그런 격식은 안 따지는 주 PD라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 넉살이 그 미친 섭외력의 비밀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성우는 마지막으로 주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내가 일할 곳이군!”

< 광끼 -74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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