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70화 (71/161)

< 광끼 -70 >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들의 시선은 성우에게 향했다.

이곳에 유부가 아닌 그를 보러 온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특히 애란은 멍하니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하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마사지!’

연예계에 전해지는 속설.

그것은 성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었다.

하윤이 그를 처음 보았을 데뷔 당시의 모습을 생각하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물론 성우가 과학의 힘 도움을 받았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윤 씨?”

성우는 곧바로 그녀를 알아봤다.

왈우를 촬영하며 반년 이상 함께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못 알아 볼 리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바로 자신의 팬카페를 만든 사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하윤은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놀랬죠? 뭐 그렇게 됐어요.”

“진작에 말씀해주시죠.”

“목캔디 값은 해야죠.”

성우는 그 말에 웃었다.

예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첫 영화 촬영이기에 모르는 것이 참 많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먼저 다가와 여러 팁을 알려주던 그녀였다. 성우는 감사함의 표시로 종종 목캔디를 사다 준 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고마웠다.

“어서 들어오세요.”

성우는 안으로 안내했다.

그제야 둘은 안으로 들어오며 인사했다. 확실히 남자들만 가득하던 우중충한 펜션에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성우는 둘에게 자신의 일을 봐주는 이들을 소개해줬다.

“이쪽은 코디를 봐주는 정이 형. 그리고 여기는 내 매니저 요한이.”

“저희에게 연락주셨던 실장님은요?”

“안에서 잠깐 자고 계셔요.”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누군가 안 보이는 것을 깨닫고 잠시 고민하다 질문했다.

“어! 진수 씨는요?”

“일이 있어서 두 달 전에 그만뒀어요.”

“아~ 그렇구나. 두 분이 친구 사이셔서 오래갈 줄 알았는데.”

성우는 뭔가 말하려다 말았다.

둘 다 영화 관련 일을 꿈꾸니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유일한과 손혜리 커플에 이어서 또 뚜쟁이 역할을 하기는 싫었다. 왠지 자기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 좋게 헤어진 거는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오늘 묵으실 방부터 보여드릴까요?”

성우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밤에 머물 장소부터 확인하는 것이 편했다. 성우는 자신이 안내하겠다는 요한을 뿌리쳤다. 오늘은 그가 손님 대접을 하는 날이었다. 적어도 오늘 초대받은 둘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여기 2층의 침대방은 두 분이 쓰시는 곳이고요. 아래층은 남자들이 쓸 거예요.”

“저희만 너무 편하게 자는 것 같은데요?”

“남자들 걱정은 마세요. 뭐 하윤 씨도 잘 알겠지만, 저희가 은근히 노숙에 능해요.”

그 말에 그녀는 웃음이 터졌다.

예전에 촬영 현장에서 아무데나 쓰러져 자던 그가 기억이 난 것이었다. 애란은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쨌든 침실은 레이스로 꾸며진 공주풍이었고 애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긴 아래층에서 유성우가 자는데 어딘들 나쁠 리가 없었다. 아마 오늘 밤은 잠자기 글러 먹은 것 같았다.

“아직 저녁 식사는 준비해야 하니 쉬다가 내려오세요.”

“아래 내려가서 구경해도 돼요?”

“물론이죠. 편한 대로 하세요.”

성우는 먼저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오늘 저녁에 먹을 것들을 슬슬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딱히 준비하기 어려운 것은 없었다.

메인 메뉴는 고기!

그건 변함없는 진리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웠다. 지금 그가 할 일은 곁들일 사이드 디쉬를 만드는 것이었다.

타다다닥!

신들린 듯한 칼솜씨.

역시 성우는 요리할 때 이 순간이 가장 좋았다.

경쾌하게 울리는 나무 도마의 울림은 난타 공연과 흡사했다. 물론 그의 비트는 과하게 빠른 수준이었다. 채소를 거의 다 다질 무렵. 그의 등 뒤에서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오~ 멋져요!”

“다들 잘 찍었죠?”

성우는 칼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네 명의 남녀가 구경하며 서 있었다. 요한은 그렇다고 쳐도 언제 다들 내려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칼질을 그렇게 전투적으로 해요?”

하윤의 말에 성우는 멋쩍었다.

이걸 딱히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이 많아 마음이 급했던 탓이었다.

“다들 가서 볼일 봐요. 그렇게 서 있으면 부담되잖아요.”

“다 연습이라 생각해요. 얼마 후면 수많은 스태프 앞에서 요리하셔야 하잖아요.”

“하윤 씨 말이 맞네. 연습한다고 생각해.”

“저도 언니 말에 한 표!”

다들 한통속이었다.

성우는 알겠다며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는 계속 수다가 멈추지 않았다. 물론 때로 그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성우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애란은 쉴 틈 없이 적고 있었다.

가장 주요 포인트는 ‘요리하는 성우는 섹시하다’는 것이었다. 슬쩍 그것을 보려는 성우는 애란의 완강한 저지에 포기했다.

“뭘 그렇게 적어? 취재 나온 기자 같네.”

“오늘은 기자 맞아요.”

“응?”

“오늘 여기 온다고 하니까 다들 평소 궁금한 것들을 물어봐 달라고 난리 난 거 있죠.”

“뭐 그럼 열심히 해.”

“그래서 오빠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성우는 잠시 고민했다.

딱히 바로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 답은 옆에서 멍하니 서 있던 요한이 답했다.

“묵은지 갈비찜이랑 전복, 낙지 같은 해산물.”

“오~ 저도 낙지 좋아하는데.”

“미 투!.”

애란은 그 모든 것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카메라도 무척 바빴다. 얼핏 봐도 무게가 제법 나가는 고가의 기종 같았다. 그녀는 요리하는 성우의 모습과 그런 그에게 기웃거리는 유부를 연신 찍었다. 자세만 봐도 대충 찍는 것은 아니었다.

“쟤 꿈이 연예부 기자래요.”

하윤이 먼저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 이야기에 성우는 다시 진지하게 애란을 바라봤다. 마치 진짜 인터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니는 학교도 신방과라더니 제법 진지했다.

“자! 다음 질문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마지막 연애는 언제 하셨나요?”

성우는 천장을 바라봤다.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되었다. 그제야 예전에 선생님들에게 했던 얄궂은 질문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자신은 과연 무슨 대답을 바라고 있었을까? 아니 그냥 그 반응을 즐겼던 것 같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도 될 듯.

‘넌 어디 갔다가 지금 나타나냐?’

-그 독립군 꼬맹이들 때문에 문제가 조금 있어서.’

‘문제?’

성우는 움찔했다.

두부가 이 정도로 말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심각한 것이라 봐도 되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진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것을 본 애란은 서둘러 자신의 질문을 바꿨다.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패스하셔도 돼요.”

“아··· 아냐.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거의 3~4년은 된 거 같은데.”

“우와~ 엄청 오래됐네요.”

“그렇게 깜짝 놀랄 정도로 오래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성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애란은 다른 질문을 다시 꺼냈다. 분위기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유부는 어떻게 키우게 되셨나요?”

“비 오는 어느 날. 녀석에게 내가 간택 당했지.”

“호호. 진짜요?”

“응 비 오던 날에 혼자 울고 있는 거를 내가 구조했거든.”

그날의 이야기.

그것을 들은 애란의 눈빛은 빛났다.

충분히 한 편의 이야기가 될 그런 인연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서둘러 2층으로 뛰어갔다. 유부 역시 그녀의 뒤를 쫓다가 계단을 보고는 곧 포기했다. 아직 녀석에게 수많은 계단은 쉽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뭘 하려고 저렇게 뛰어가요?”

“아마 노트북으로 팬카페에 바로 글 올릴걸요.”

“부지런하네요.”

“애란이의 장점이죠.”

하윤의 말은 들어맞았다.

1시간도 되지 않아 페르세우스에는 르포 형식의 글이 등록되었다. 애란이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바로 오늘 그녀와 성우가 나눈 이야기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우리 성우님!]

[유부는 오늘도 귀여워~ 언니네 집에서 살 생각 없어?]

[부럽다!!! 나도 운영자 할걸.]

[그러게요. 일반 회원에게도 기회를 달라~]

[나도 울 별님이 해준 밥을 먹고 싶다.]

그 글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오늘은 ‘저승에서 온 차사’의 9회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본방 사수를 하기 앞서 카페에 들어온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것을 본 성우는 안 그래도 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사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자리를 가지고 싶은데.”

“정말요?”

“그래서 말인데 도와줄 수 있어?”

성우는 그동안 해왔던 생각을 말했다.

그녀들이 해줄 일은 카페에서 팬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이 직접 그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다. 원래는 따로 뭔가를 하려다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안 그래도 성우 씨의 음식 맛이 궁금하다고 난리였는데 잘됐네요.”

“완전 좋아요!”

둘은 그의 말에 쌍수를 들고 반겼다.

안 그래도 다른 회원들에게 미안했던 찰나였다. 애란이 다시 글을 쓰려고 뛰어나갈 찰나에 성우가 그녀를 붙잡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강조해야 했다.

“촬영 때문에 스케줄이 안 나오면 2~3달에 한 번이 될 수도 있어.”

“물론이죠. 좋아하는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는 걸 말릴 팬은 없어요.”

“그리고 인원은 5명 내외.”

애란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마치 강아지가 어서 공을 던져달라고 간절하게 보는 표정과 비슷했다. 마침내 성우가 오케이 승인을 하자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물론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하윤도 올라가야 했다. 중요한 공지이기에 그녀가 최종 검토를 해야하는 일이었다. 둘이 사라지자 그제야 잠에서 깬 오만석 실장이 다가왔다.

“너 정말 그래도 되겠어?”

“뭐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반나절인데요.”

“어이구. 한창 활동할 때는 그 하루가 귀하다는 거 이제는 잘 알잖아.”

“설마 다른 작품에 바로 밀어 넣으실 건가요?”

“내가 하라고 민다고 네가 할 놈이냐?”

오만석의 말에 성우는 웃었다.

계약의 조건 때문에 작품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다. 이럴 때는 그때 그 조건을 넣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 여겨졌다. 아마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어디론가 끌려가 광고를 찍고 있었을 것이었다. 잠시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던 성우는 뭔가를 떠올렸다.

“아! 실장님.”

“왜 또?”

“아는 분 중에 혹시 사람 찾는 거 잘 하시는 분 있나요?”

“너 돈 떼인 거 있냐? 사기 치는 녀석들 조심해라. 연예인을 아예 봉으로 보는 녀석들 엄청 많아.”

“아뇨. 그런 거는 아닌데. 찾고 싶은 분이 있어요.”

만석은 잠시 고민했다.

최근에 연락한 적은 없지만, 바로 생각난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만남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일단 한번 알아볼게. 급한 일이야?”

“아뇨.”

“확실히 돈 떼인 거는 아닌 것 같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누굴 바보로 아시나.”

“누군 바보라 사기당하냐?”

만석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밖으로 나갔다. 통화하는 내용을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본 성우는 지갑에서 메모 한 장을 꺼냈다. 아까 기절에서 깨어난 직후에 써 놓은 것이었다.

황해도 출신 김원려.

광주 출신 김재명.

출신지 미상 박윤군.

그들의 후손을 찾고 싶었다.

이건 무사귀의 부탁이 아니었다.

왠지 느낌이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그렇듯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사실 집안의 몰락은 정해진 절차라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것이 그 가족에게는 형벌과 같았다.

집안의 기둥이 부서져 내린다.

그걸 홀로 안사람이 지탱하기는 어려웠다. 반면에 친일파는 그 당시 쌓아 올린 부로 인해 아직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핏줄은 당장 오늘 하루 먹고 살 걱정을 할 동안에 그들은 맘 편하게 공부하고 유학을 다녀와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초단기 코

스를 밟으니 점차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 정도는 성우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알기는 알지만, 딱히 어찌할 방법이 없는 사회 현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직접 본 자신이었다. 이제는 도저히 그냥 남의 일처럼 여기기 힘들었다.

막상 찾았을 때.

자신이 뭘 해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일단 찾아보자.’

< 광끼 -70 > 끝

ⓒ l살별l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