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67화 (68/161)

< 광끼 -67 >

2주라는 촬영 기간.

그것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결국, 최종 촬영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 상황에 성우는 섭섭함과 동시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찍는 것도 매력이 있지만, 확실히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 씬 준비합시다.”

스태프의 외침.

그 소리가 그처럼 달콤할 수 없었다.

확실히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분량부터 차이가 엄청났다. 거의 과거 촬영했던 왈우에 비해 8~10배는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 맡은 역이 전과 달리 주연이기에 그러려니 해도 그 기간마저 반절에 불과했다.

덕분에 그가 겪은 강행군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너무 열악한 환경에 성우는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그는 주연이기에 다행이지 외주 제작업체의 스태프 막내들은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갔다. 특히 그와 함께 고생한 요한은 코피를 쏟는 것이 허다했다.

‘드디어 끝이구나.’

-이거 끝내면 조금 쉬어. 요즘 수련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너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할 게 많네.’

-광고 촬영이 있다고 했었나?

‘응. 주유소랑 소화제 광고.’

성우는 광고 촬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찍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누군가는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떼돈을 벌 수 있는데 벌써 배가 불렀다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성우의 몸값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가격을 제시해도 성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벌써 단기(6개월) 4억에 장기(1년) 7억까지 나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아예 찍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바이올렛 엔터에 미안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버는 수익의 상당수가 광고에서 나오는데 모른 척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두 곳이었다. 더구나 그곳은 차마 거절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두 기업의 단 하나의 공통점.

그것은 과거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기에 억압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곳이다. 그런 곳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부두의 말도 한몫을 했다.

‘뜬금없이 광고를 찍으면 성불한다는 건 도대체 뭐야.’

-그 회사에 살아생전 빚진 것이 있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이번에는 3분이 함께 간다고?’

-맞아.

처음 겪는 성불 세트였다.

이처럼 한 번에 떠나는 경우는 없었다.

돈도 벌고 성불도 시키는 일거양득의 상황이라 성우로서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더구나 두부의 말에 의하면 그 세 분 모두 독립운동을 하던 분이라 했다.

대한의 독립이 오기 직전.

그들 세 분은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일본군의 총칼에 쓰러진 그들은 암매장을 당했다고 두부는 전했다. 결국, 광복의 새해를 보지 못하고 원귀가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라도 해주고 싶은 성우였다.

-끔찍한 일이었지.

‘혹시나 또 뭐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해줘. 뭘 해드려도 아깝지 않아.’

-췌! 나한테 좀 그렇게 해 줘보지.

‘너는 나라를 위해 뭘 희생했는데?”

두부는 말이 없었다.

그가 뭔가 궁시렁거리려 할 때 누군가 성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하태국 PD였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방송국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나쁜 소식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공표하기 전에 당사자를 불러서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성우 씨. 잠깐 시간 있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태국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리고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물었다.

“방금 국장님한테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뭔데요?”

“정말 스태프들 모두 4박 5일로 해외여행을 보내줄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하태국은 성우를 바라봤다.

마치 이게 진짜냐며 볼을 꼬집어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팩트는 정확하게 짚어줘야 했다.

“정확하게는 혜리네 회사와 바이올렛 엔터 그리고 방송국이 삼 분의 일 씩 나눠서 내는 거죠.”

“오 실장 말로는 너희는 회사가 아니라 네가 내는 거라며.”

“에이 얼마 되지 않아요.”

“2천만 원이 얼마 되지 않는 거야?”

정확하게는 2천 5백만 원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모른체 하기로 했다. 그건 그가 해줄 수 있는 스태프들을 위한 작은 선물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패딩을 하나씩 맞추려 했다. 그러나 이미 겨울은 거의 지난 상황이라 마땅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고마워.”

“감사의 인사는 시청률이 20% 넘은 이후에 하세요. 그거 못 넘기면 파투나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도 마음 씀씀이가 고맙잖아.”

하태국의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예전에 이런 케이스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TCN에서 대박이 난 케이스에 한해서 방송국 차원에서 보내준 적도 있었고 지금처럼 주연 배우가 해외에서 뒤풀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천만 원이라는 진행비.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드라마로 대박이 난다고 쳐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특히 혜리에 비해 아직 몸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성우였다.

그가 계약서에 사인할 때 같이 있던 그였다.

당연히 그 계약 내용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혜리와 그의 회차당 몸값은 몇 배의 차이가 있었다. 물론 성우는 시청률에 따라 변동 폭이 있지만, 그래도 거의 두 배는 되었다.

‘그게 정상적이진 않지.’

차라리 반대로 바꾸고 싶었다.

더 높은 몸값을 받을 만한 배우는 당연히 성우였다. 그렇다고 혜리가 연기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그녀는 역대 출연작 가운데 가장 절정의 연기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건 하 PD도 인정하는 바였다.

때론 진한 키스씬에서 다소 소극적이기는 했으나 그 정도는 괜찮았다. 문제는 성우의 연기가 그녀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마지막 촬영을 마친 이후.

촬영장에는 환호성이 가득했다.

마침내 그 치열하던 촬영이 모두 끝난 것이었다.

성우는 그런 그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인사를 한 명씩 나누었다. 그동안 자신보다 더 고생한 것이 그들인 것을 잘 아는 그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때 하태국 PD가 소리쳤다.

다들 자신을 향해 주목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의 그런 행동에 다들 소감을 말하려나 싶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20% 달성시 필리핀 여행.

그 내용을 말하자 다시 환호성이 들끓었다.

어느 누구든 공짜 여행을 싫어할 리 없었다. 하지만 몇 곳의 외주 제작업체 소속 스태프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다. 곧바로 들어갈 다음 작품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있었다.

이제까지 4회가 방영된 ‘저승에서 온 차사’의 시청률은 17% 가까이 되었다. 지금 이 기세라면 곧 20%를 돌파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그대로 방송국의 기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역사상 TCN에서 올렸던 최고 기록이 20.5%였다.

전설과 같은 이야기.

그것을 통해 ‘저승에서 온 차사’는 말 그대로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들의 방송이 있을 무렵에는 술집이 한산하게 보일 정도였다. 과거 50%를 찍던 드라마의 황금기를 보는 것 같았다.

[저승에서 온 차사의 시청률은 승승장구]

[문화계의 주요 코드는 전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시청률 대박 행진]

[마침내 15%를 넘은 ‘저차사’. 그 유식당의 방송 시기는 언제쯤?]

[설빈과 강림의 애틋한 사랑이 한국을 넘어 세계를 강타하다! 동남아와 중국 그리고 미주에서 연달아 판권 계약 성사]

***

조연출 이하윤.

그녀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침대에 몸을 던지듯 쓰러져 있다가 곧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리를 주무르며 한탄했다.

“아이고 다리야.”

오늘처럼 힘든 날은 오랜만이었다.

온종일 단 1분도 어딘가에 앉지도 못했다. 그만큼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먹고 사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박봉의 조연출 생활.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었다.

또 촬영이 1년 내내 연달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통장이 빈곤한 그녀로서는 그 틈에 뭐라도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만큼 힘들게 느껴지는 일은 처음이었다.

쉐에에엑.

가스 불 위에 올린 물이 끓었다.

주전자가 비명을 지르며 어서 끄라고 재촉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윤은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뚜껑을 뜯어 놓았던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그러자 차가웠던 방안에 온기가 조금이나마 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왈우 찍었을 때가 좋았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흥행에서도 성공하면서 약간의 보너스도 받은 그녀였다. 모든 영화가 그렇게만 된다면 바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새로운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문제였다.

4분의 기다림.

그것은 생각보다 길었다.

하윤은 바로 컴퓨터를 켜고 웹브라우저를 열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어느 웹사이트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어느 연예인의 팬카페였다.

[배우 유성우의 팬카페 ‘페르세우스’]

그녀의 유일한 활력소.

그곳이 가진 의미는 적지 않았다

그녀가 성우의 오디션을 본 이후에 곧바로 만든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 이후에 성우가 출연했던 연극 무대도 수차례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카페의 시작부터 흥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민망할 수준이었지만, 금방 팬의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왈우의 개봉을 시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이번에 드라마 이후에도 반응은 뜨거웠다. 오늘도 하윤은 회원들의 글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앗싸! 오늘도 상승세!”

얼마나 지났을까?

게시글을 정리하던 하윤은 뭔가 느낌이 싸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물을 부은 컵라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에잇! 다 불었네.”

이미 그녀의 컵라면은 탱탱 불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라면 하나도 아쉬운 현재였다. 꾸역꾸역 먹으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하나의 글을 발견했다.

평범한 제목이었는데 그 반응은 상당했다. 이미 댓글은 수십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올린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신기한 일이었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제목과 달리 어그로를 끄는 내용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글은 서둘러 정리를 해줘야 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드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특히 아이디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ID : Holyrain]

[제목 :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것을 클릭한 순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글은 바로 유성우가 직접 쓴 글이었다.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자신을 응원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지난번에 보낸 쌀화환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글과 함께 올린 사진이며 그 상황이 매니저가 아닌 본인이 직접 쓴 것 같았다.

“일단 최고 등급으로 업을 시켜야지.”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는 등급.

그것은 바로 이 팬카페의 존재 이유이자, 그 주인을 위한 등급이었다. 즉시 그것을 처리한 이후에 그녀는 그 글을 공지로 끌어 올렸다. 이곳에 오는 모두를 위해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야 했다.

그 이후 하윤은 메일을 열어 보았다.

일단 카페를 한 번 훑은 이후에 습관처럼 하는 일이었다. 혹시 다음 작품에 대한 소식이 없는지 봐야 했다. 보통은 전화로 직접 연락이 오지만, 때때로 메일로 스케줄을 묻는 제작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메일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다 스팸 메일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바로 바이올릿 엔터에서 보내온 하나의 메일이었다. 그것은 오만석 실장이 보낸 팬카페 운영진에 대한 초대 메일이었다.

“하아··· 이걸 어쩌지?”

하필 일하는 날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어쨌든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왠지 유성우가 직접 나올 것 같았다.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 광끼 -67 > 끝

ⓒ l살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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