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66 >
11%의 첫방 시청률.
그것은 모두의 예상보다 높은 수치였다.
전문적인 매체는 물론 당사자들 역시 많아야 5~6% 정도를 생각했다.
성우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수준만 넘겨도 최고의 성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참고로 최근에 경신된 기록은 5.3%였다. 하지만 그 기록의 두 배를 달성한 것이었다. 가히 역대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만약 그들의 드라마가 공중파였다면 아마 두세 배는 더 높았을 것이 분명했다.
쾌조의 스타트였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물론 배우들을 향한 고정 팬심도 한몫을 했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성우의 공약 때문이었다.
과거 옥식당이 올렸던 16.5%라는 엄청난 시청자들이 옮겨온 것이었다. 시청률만 15%를 넘는다면 새로운 시즌을 볼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시즌 1~2에서 주역이었던 윤자옥이 빠졌지만, 새로운 케미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성우는 요리에 더 매진했다.
시작부터 그가 공약했던 시청률과 겨우 4% 차이였다. 이미 공약으로 걸은 15%는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이제와 못하겠다고 물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요리 학원이라도 다닐래?”
오만석 실장.
그는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첫방 시청률이 나옴과 동시에 달려온 그였다.
촬영장에서 자신의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오 실장은 요한을 들먹이며 이야기했다.
“요한이 말로는 너 요리 실력 그리 좋지 않다고 하던데. 무슨 배짱이야?”
“일단 시간 없는 거 아시잖아요. 지금 잘 시간도 부족한데 그것까지는 무리에요.”
“제작진에서도 조금 편의를 봐주겠지.”
“됐어요. 집에서 조금씩 준비하면 되겠죠.”
성우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다 둘 다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요리까지 정식으로 배우다가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더구나 자신에게는 무사귀가 있었다.
그때 유부가 다가왔다.
녀석의 덩치는 전보다 조금 커졌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녀석이기에 아쉬웠다. 그래도 아직 그 귀여움은 여전했다. 유부는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성우는 유부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털이 보드랍게 느껴졌다. 그러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눈을 감았다.
“허허. 이 요물 같은 녀석.”
“요물 맞아요.”
“이 녀석은 자신의 인기를 알고나 있을까?”
확실히 유부는 인기가 많았다.
최근 시청률에서 1~2% 정도의 지분은 있을 것 같았다. 특히 혜리와 함께 나오는 장면의 순간 시청률은 엄청났다. 바이올렛 엔터는 그런 유부를 위해 따로 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줬을 정도였다. 회사에서 그 인기를 그냥 흘려보낼 리 없었다.
유부의 스타그램.
그 팬의 수만 벌써 10만이 넘었다.
성우의 스타그램이 얼마 전에 20만을 넘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거의 1~2일 만에 만 명씩 늘어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성우가 아닌 유부에게 벌써 광고 제안이 들어왔을 정도였다. 확실히 발 빠른 광고계였다.
“이런 거는 찍어야지.”
찰칵!
만석은 그 장면을 찍었다.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그 사진은 곧바로 스타그램에 올라갔다. 그곳에 걸린 태그는 꽤 많았다.
한글뿐만 아니라 영문도 필요했다.
최근에 해외에서도 성우의 팬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왈우가 해외에 배급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스태프 중의 한 명이 다가왔다.
“촬영 준비해주세요.”
“알겠어요.”
“아니요. 성우 씨 말고 유부요.”
그 말에 다들 폭소가 터졌다.
특히 최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 모습에 스태프마저 입꼬리를 씰룩이며 있었다. 툭 건드리면 빵 터질 것 같았다. 물론 부끄러움은 오롯이 성우의 몫이었다.
“데려가세요.”
성우는 유부를 들어서 건넸다.
녀석은 이제 촬영에 익숙해져 있었다.
예전과 달리 그가 없어도 다른 사람의 손길을 겁내지 않았다. 특히 여자에게는 끔뻑 죽는 유부였다. 누가 수컷이 아니랄까 봐 오히려 그 손길을 즐기는 것 같았다.
유부가 떠난 이후.
성우의 차례는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스태프가 그를 찾는 소리를 들으며 밴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살짝 감돌았다. 최근 들어 좀처럼 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번에는 중요한 장면이니 잘 해야지.’
그런 다짐이 가득했다.
어느덧 촬영도 종반을 향하고 있었다.
그간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바지런히 촬영한 덕분이었다. 보통의 상황보다 일정이 무척 짧았음에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주요 공신은 홍근석 작가라 할 수 있었다.
[저승에서 온 차사]의 대본.
그것은 따로 손을 댈 필요가 없었다.
이미 완결까지 다 써놓은 상태이기에 쪽대본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배우들은 미리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이 가진 의미는 상당했다.
“씬 83-1 갑니다.”
하 PD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성우는 잡생각을 떨쳐냈다.
한순간에 마법에 걸린 듯이 그는 강림으로 바뀌었다. 성우에게 그것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간단했다. 그 순간은 스태프며 주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상대 배우만 보였다.
[강림! 네 녀석에게 빚진 것이 있지.]
[네가 지은 업보를 두고 왜 나한테 탓을 하는 거지? 네 녀석이 탐욕에 눈이 멀어 삼 형제를 죽인 탓이다!]
[어찌 되었든 네 덕분에 지옥에서 천 년을 보냈어. 네가 어떤 상상을 하든지 그 이상으로 끔찍한 곳이지.]
[지옥? 그곳은 나도 잘 아는 곳이야.]
[네가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1초마다 한 번씩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
과양생이.
그의 눈동자는 붉어졌다.
마치 불꽃이 튀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림은 그 모습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두려워졌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보다 뒤에 쓰러져있는 설빈 때문이었다. 만약 그를 멈추지 못한다면 설빈은 오늘 생을 마감할 것이다.
강림은 허리춤의 붉은 포승줄을 풀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그것은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 그것은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뱀처럼 과양생이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끝내 과양생이를 포박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빈틈을 만들어 주었다.
[이 목숨은 내가 가져가지.]
어느 사이 등 뒤로 다가선 과양생이.
그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재빨리 설빈의 목을 찔렀다. 강림이 반응조차 하기 어려운 속도였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강림은 뒤로 돌려차기를 했다.
파아앙!
정확하게 얻어맞고 날아가는 과양생이.
그는 허공을 날아 쓰레기더미에 몸이 쳐박혔다. 쓰레기봉투를 찢고 나온 온갖 쓰레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 효과를 더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가까웠다.
설빈을 가운데 놓고 둘은 치열하게 싸웠다.
피가 튀고 살기가 흘러넘치는 처절함이 있었다. 결국 강림과 과양생이 모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특히 강림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등 뒤를 깊게 벤 상처.
피가 흘러 붉게 물든 턱선.
그 모든 것이 치열한 싸움을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 그의 왼팔은 축 늘어진 것이 무척 안 좋아 보였다. 물론 그보다 조금 덜할 뿐이지 과양생이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다.
[이 여자가 뭐라도 이렇게 감싸는 거지?]
[처음이자 끝. 나에게는 온기와 같은 여자가 그녀다.]
[우습군.]
하지웅은 손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연기하며 이처럼 격앙되던 경험은 없었다.
그 나름대로 20년 가까이 연기를 했었지만, 이처럼 액션씬이 재미있던 적은 없었다. 나름 몸을 쓰는 데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확실히 성우는 자신과 차원이 달랐다. 그것만이라면 모를까 성우에게는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특출난 연기력.
그런 것을 보여주는 배우는 종종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그런 배우를 하나둘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도 확실히 있었다.
바로 다른 배우의 연기력을 씹어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블랙홀 같았다. 뭘 연기해도 빛이 바래지게 만들었다. 그 절망감을 안고 상대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성우라는 배우는 그와 달랐다.
아예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씹어 먹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 배우까지 살려주는 맛이 있었다. 아예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 받는 그였다.
‘좋다! 이 느낌···”
조강철 선배가 했던 말.
하지웅은 그게 뭔지 다시 깨달았다.
귀신같은 녀석이라며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던 그였다. 어느 술자리에서 만난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믿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존경하는 선배라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역시 조강철 못지않게 유성우에게 매료되었다.
[끄아아아!!!]
자신만의 마지막 엔딩.
과양생이의 최후를 그려내며 하지웅은 사력을 다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강림을 향한 저주 섞인 눈빛은 매서웠다. 하지만 곧 그 빛은 꺼졌고 공허한 눈빛으로 바닥에 풀썩 쓰려졌다.
“컷!”
하태국 PD가 외쳤다.
그러자 다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보냈다.
그만큼 둘이 보여준 마지막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최후를 맞이한 하지웅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들을 막은 것은 성우였다.
“멈춰요! 다들 잠깐만 자리 좀 비켜줘요.”
그제야 하 PD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는 곧바로 스태프를 모두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성우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비켜줬다. 성우가 본 것은 쓰러진 채로 들썩이는 그의 등판이었다. 처음 봤을 때 엄청 늠름하게 느껴지던 그의 등은 생각보다 왜소해졌다.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며 엄청난 다이어트를 하던 그였다.
“형. 괜찮아요?”
성우가 슬그머니 다가서 옆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딱히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다들 물러선 것을 아는지 그 흐느낌은 더 심해져 갔다. 성우는 이 상황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 역시 한두 번은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극단 작두에 있을 무렵.
연극을 마친 이후에 겪었던 것이다.
덕분에 성우는 무대 인사를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너무 캐릭터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던 탓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위치가 따로 있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하지웅이 몸을 뒤척이다 바로 누웠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손바닥으로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성우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여기 손수건 있어요.”
“다들 나갔어?”
“뭐 덕분에 잠시 휴식하는 거죠.”
“에이씨. 창피하게 이게 뭐야.”
그는 손수건으로 코를 팽 풀었다.
그것을 보며 성우는 이제 저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여겼다. 빨아도 찜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지웅의 목소리에 그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내가 왜요?”
“너랑 연기하면 왜 이렇게 몰입이 되는지 모르겠어.”
“몰입이요?”
“이번에 마치 내가 죽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 원한과 분노가 막 쏟아져 나오는데 주체하기 어렵더라.”
하지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찍다가는 자신이 먼저 망가질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성우는 그가 더 대단하다 여겼다. 지금까지 자신과 연기하며 이처럼 상승 작용을 일으킨 배우는 그가 처음이었다.
“역시 조강철 선배가 했던 말이 사실이네.”
“네?”
“너 때문에 작품 끝내고 엄청 힘들어했거든. 그 양반도 생각해보면 참 대단해.”
“선배님이요?”
그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강철은 그런 티를 하나도 내지 않았다.
작품을 끝내고 낚시만 다니기에 조금 수상했지만, 전에도 그렇게 휴식을 가지던 그였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던 성우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은 처음 들었다.
“너도 조심해. 과몰입해서 드라마 끝내고 우울증 걸리는 애들 수도 없이 많아.”
성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들은 소문이 적지 않게 있었다.
많은 연예인이 겪는 병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울증과 공황장애라 할 수 있었다. 모두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생기는 것이었다.
하늘에 반짝이던 별.
그 빛을 잃은 이후에 느껴지는 허무.
그 느낌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정도라 했다. 물론 성우는 자신이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그 단계가 오지 않았기에 확실히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멘탈에는 꽤 자신 있는 편이었다.
‘나처럼 피곤하게 사는 이는 확실히 없으니까.’
-이거 왠지 우리를 저격하는 느낌인데?
‘뭐 부정하진 않겠어.’
성우는 지웅을 부축했다.
마지막에 오케이 사인이 나서 다행이었다.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그에게서 연기에 대한 엄청난 집념이 느껴졌다. 연기를 위해 이처럼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성우였다.
잠시 후.
하지웅은 잠시 쉬다가 다시 나왔다.
이제 그가 이곳에서 할 일은 전혀 없었다. 아까의 촬영이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시원섭섭한 느낌에 그는 같이 고생한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하나하나 인사했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에 성우를 다시 찾아왔다.
“덕분에 좋은 경험 했다. 나중에 종방연 때나 보겠네.”
“제가 많이 배웠죠.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마무리 잘 해.”
“맡겨만 주세요!”
아직 성우는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
거의 2주의 촬영 기간이 남아있는 그였다.
그것은 오롯이 로맨스를 담는 기간이었고 가장 고생스러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밴으로 그가 돌아오자 유부는 그런 그를 위로하려는 듯 다가섰다. 그리고 작은 혓바닥으로 그의 손끝을 햝았다.
냐아옹!
< 광끼 -6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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