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끼 -65 >
포털 사이트의 라이브 방송.
그것을 통해 제작 발표회를 보는 이들은 무척 많았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 만 명 단위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 방송 아래에는 댓글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반응 대부분은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우려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고 적은 수지만, 안티도 분명 있었다. 국내에서 안티 없는 배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시간 댓글]
-상반기 최대 기대작. 유성우라면 믿고 본다.
-글쎄. 이번에는 로맨스라 과연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
-남자 배우는 그저 거들뿐. 믿고 보는 혜리 여신!
-로맨스는 역시 여주가 주인공이지.
-혜리. 로맨스. 성공적!
특히 이번 드라마는 로맨스였다.
제작자들도 염려했던 것은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다. 특히 성우 하면 액션이라는 공식이 저절로 성립되었다. 왈우는 물론이고 예전에 했던 추격전 특집 방송도 그런 인식에 한몫했다.
기자들의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시청자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주는 데 집중했다.
“로맨스는 처음입니다. 혹시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옆에 있는 혜리 씨가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두 분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나요?”
“그렇게 보인다니 고맙네요. 그만큼 이번 드라마에 기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석에서도 두 분이 종종 같이 만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둘만 따로 본 적은 없습니다.”
질문의 상당수는 그런 식이었다.
혹시 연애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성우는 당당하게 아니라 말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는 것은 유일한이지 자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꼽사리에 불과한 처지였다. 그러나 그것을 필터 없이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확! 터트려.
‘그랬다가 드라마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한다.’
-뭐 젊은 애들이 연애도 하고 그런 거지. 그게 무슨 죄라도 되나? 쯧쯧!
‘아마 팬이 우르르 떨어져 나갈걸.’
그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남자 쪽은 타격이 적었다.
둘 중에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여자 쪽이었다.
팬들이 우르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본 연예인들 가운데 공개연애를 하고 후회를 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낙인이라는 말이 안 어울리지만, 그만큼 잘 설명하는 단어도 딱히 없었다.
질문은 다른 주제로 바뀌었다.
하지웅에 대한 궁금증도 상당히 많았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맡는 악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외모로는 약삭빠른 과양생이의 역을 어떻게 연기했을지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성우가 본 그는 과양생이라는 캐릭터를 무척 잘 살리고 있었다. 드라마 중반이 넘어서며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때마다 성우는 하지웅이란 배우에게 놀라고 있었다. 물론 하지웅이 반대로 그의 연기를 보고 느끼는 경악에 비해 비교할 수 없겠지만, 확실히 그는 제대로 된 배우 중의 하나였다.
그는 야비했다.
그리고 악마 그 자체였다.
과양생이가 품고 나온 독기는 평범치 않았다. 강림의 이승 생활은 그로 인해 파탄이 났고 설빈은 매회마다 고비를 맞았다. 특히 그녀가 저승의 문턱에 한 발 걸치는 장면은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모든 질문이 끝나갈 무렵.
마스크를 쓰고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제아무리 겨울이지만, 엄청나게 수상쩍은 모습이었다. 더구나 모자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혹시 시청률 공약은 안 하시나요?”
다들 웅성거렸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공약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난 왈우의 공약으로 보여준 추격전은 대박이었다. 그때의 그 활약은 재방송을 통해 아직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더구나 질문을 던진 사람.
그가 누군지는 성우는 바로 알아차렸다.
목소리도 익숙했고 성우의 눈썰미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성우는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을 할 뻔했다.
“주호민 PD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성우가 한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마스크를 벗으며 멋쩍게 웃었다. 역시 성우의 예상대로 주호민 PD였다. 다들 그의 깜짝 등장에 수군거렸다. 하지만 같은 성우의 드라마를 올리는 같은 방송사의 PD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하. 이거 바로 들켰네요.”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알겠던데요.”
“정말 공약 안 거실 거예요? 우리랑 또 함께하셔야죠.”
능구렁이 같은 말에 폭소가 터졌다.
기자들은 이것마저 기사로 쓸 건지 타이핑 속도가 제법 빨라졌다. 아마 이 발표회가 끝나면 이런 제목의 기사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전설의 된 추격전의 2탄? 유성우의 이번 공약은?]
[추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천 명?]
[나 잡아 봐라~ 이색 공약의 후속편이 나올 가능성은?]
하지만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의 고생은 생각보다 심했다.
심장이 쫀듯한 것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오백 명에게 쫓기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추격자들이 방심한 덕분이었고 운도 제법 따랐다. 그걸 또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글쎄요. 저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네요.”
성우는 하지웅을 바라봤다.
이 상황에서 믿을 거는 그밖에 없었다.
혜리는 시한폭탄 같았기에 공약을 맡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지웅 역시 먼 산을 볼 뿐 좀처럼 해답을 내지 못했다. 그때 주호민 피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마시고 15% 넘으면 저랑 특집 방송 하나 하시죠.”
“또 뭐를 시키시려고요. 오지로 끌고 가시려는 거는 아니겠죠?”
“흠··· 그것도 괜찮은데요.”
그 말에 성우는 질렸다.
더구나 자신의 섭외권도 한 장 보유한 그였다.
성우가 직접 뱉은 말을 안 지킬리도 없는데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주호민 PD 역시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유성우가 출연한 추격극 이후.
그가 기획한 것들은 연거푸 시청률이 저조했다.
기존 포맷을 이용한 새로운 시즌을 내놓았지만, 딱히 시선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에 성우를 넣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개편해야 했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마지막 패를 꺼내기 직전. 성우가 그보다 빨리 말을 꺼냈다.
“만약 15% 넘으면 그 식당 프로그램 제가 찍을 수 있나요?”
모처럼 머리를 쓴 성우였다.
아직 음식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메뉴가 몇 가지 안 된다는 가정하에 연습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오늘 먹은 삼계탕 덕분이었다. 만약 그마저 망쳤다면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주 잔머리가!
‘나도 머리라는 게 있단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 요리는 자신 있고?
‘뭐 연습하다 보면 늘겠지.’
물론 한계는 분명 있었다.
천 명의 식사를 다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시즌을 봤을 때 하루에 빼는 주문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주호민은 환호를 지르려다 참았다.
자신이 그를 넣고 싶어 하던 곳이 바로 그 프로그램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호민은 곧바로 대답했다.
“콜!!!”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갑자기 제작 발표회에서 이뤄진 캐스팅.
그것은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쨌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그는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역시 그다운 신출귀몰한 모습이었다.
[실시간 댓글]
-와! 대박. 옥식당 시즌2로 그냥 영업 종료인지 알았는데 유식당으로 바뀌네.
-시즌 3 가즈아~!
-설마 유성우가 주방장이겠어? 알바로 가는 거겠지.
-그럴 리 없어. 주방을 지켜온 것은 자옥 선생님이란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건강 때문에 하차를 먼저 밝힌 것이 본인이니.
윤자옥.
70대가 넘은 여배우.
그녀가 만든 음식을 파는 프로그램이 바로 옥식당이었다. 그 촬영장도 해외였기에 더 화제가 되었다. 한식을 먹는 외국인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였고 그 지역의 풍경은 덤이었다. 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시즌 3를 무리라고 선언한 상태였다.
“이상으로 제작 발표회는 마칩니다.”
MC의 말을 끝으로 발표회는 끝났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3일 후에 잡혀있는 첫 방송이 어떤 성적이 나올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찌 되었든 성우의 공약 덕분에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
탁! 탁!
도마 위에 떨어지는 칼소리.
성우는 집에 돌아오자 바로 음식을 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왔건만 쉴 틈도 없었다. 최근 촬영의 강도는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의 드라마가 첫 방영되는 날이기에 이런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요한은 그런 그를 보며 핀잔을 주었다.
“형 그냥 치킨에 맥주 먹죠.”
“에~ 그건 그거고 국물이 땡기잖아.”
“라면이면 되죠.”
“난 싫거든.”
성우는 냄비에 무를 넣었다.
조금 전에 썬 그것은 큼직하게 깍둑썰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표고버섯과 멸치 티백을 꺼냈다. 모두 국물을 내기 위한 재료였다. 그리고 메인 재료인 어묵을 꺼냈다.
오늘 그가 만드는 음식.
그것은 얼큰한 어묵탕이었다. 그것만큼 겨울에 어울리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더구나 사케가 따끈하게 데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야 했다.
벌써 드라마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그래도 광고를 제법 팔았는지 기다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성우가 찍은 면도기 광고도 한 편 포함되어 있었다.
성우는 어묵과 채소를 마저 넣었다.
그리고 후추와 소금을 뿌려 간을 맞췄다. 한번 맛을 본 그는 뚜껑을 덮게 졸여내기 시작했다. 역시 어묵탕의 완성은 뽀얀 국물이라 여기는 그였다.
“아직 시작 안 했지?”
“광고 거의 끝나가요. 이제 1분 남았어요!”
“알았어.”
성우는 거실로 서둘러 향했다.
그가 소파에 앉자마자 드라마는 시작되었다. 첫 장면은 굉장히 강렬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연출이 무척 신경 쓰더니 제대로 나온 것 같았다.
지옥도.
그곳의 풍경은 살벌했다.
이번 드라마의 상당 금액이 CG로 들어갔다.
비현실적인 장면이 워낙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CG의 수준에 따라 드라마의 운명이 많이 바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우려를 날려 보낼 만큼 퀄리티는 상당했다.
“CG 오지네!”
“그러게요. 거의 영화급인데요.”
“이 정도는 상상도 못 했는데 대박이야.”
하지만 둘의 대화는 뚝 끊겼다
마침내 성우가 나오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TV에서 보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지금까지 몇 곳의 예능에 나간 경험이 있지만, 직접 모니터한 적은 없었다.
계면쩍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했다. 성우는 수능을 본 직후에 첫 과목의 정답을 맞춰 보는 기분이었다. 아마 이 순간 그와 같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각자 서로 다른 곳에서 출연자를 비롯해 스태프들까지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거야.
‘그래야지. 이걸 나 혼자 찍은 것도 아닌데.’
-드라마 찍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 손이 필요한지 몰랐네
‘동감! 제발 잘 돼야 하는데.’
사실 성우가 가진 중압감.
그것은 무척이나 무거운 것이었다.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주연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그였다. 아마 이 한 편의 드라마가 그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잣대는 시청률이 절대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보글거리는 소리.
그것조차 성우를 방해하지 못했다.
결국, 어묵탕의 불을 끄러 간 것은 요한의 몫이었다. 성우는 그가 일어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요한은 뚜껑을 열어 그 맛을 살짝 보았다.
“오~ 맛 좋은데?”
성우의 요리 실력.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더는 실험실의 모르모트처럼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안심이 되는 요한이었다.
한 입 더 맛을 본 그는 뚜껑을 덮었다.
배는 고팠지만, 지금 당장은 이걸 먹을 정신이 없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는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확실히 기대작이 아니랄까 봐 벌써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바로 다음 날.
모두가 기다려온 첫방 시청률이 발표되었다.
[‘저승에서 온 차사’ 첫방 시청률은...]
< 광끼 -6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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