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64화 (65/161)

< 광끼 -64 >

제작 발표회 당일.

성우는 굉장히 긴장했다.

하지만 그것이 발표회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현재 주방에 있었고 그 시선은 뭔가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보글거리며 이제 막 끓어오르고 있는 냄비였다.

‘이렇게 들어가는 거 맞아?’

-맞다니까. 잘하고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해.

‘에이··· 맛없어 보이는데.’

그가 보고 있는 그것은 삼계탕이었다.

벌써 이걸 만들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은 되는 것 같았다. 그 냄비 안에는 벌거벗은 닭 한 마리가 퐁당 빠져 있었다. 물론 그 닭이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그가 들인 노력은 상당했다.

배를 가르고 찹쌀을 넣었다.

그리고 대추며 황기와 헛개나무 약간도 들어갔다. 마트에서 요즘은 삼계탕 재료까지 모아서 파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맛까지 보장할 수는 없었다. 성우는 삼계탕 하나를 끓이는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처음 알았다.

‘그냥 사 먹는 게 더 저렴할 거 같은데.’

-손맛이 중요한 거야. 그리고 사 먹는 거는 너한테 도움이 안 돼.

‘그놈의 성불이 뭐라고.’

며칠 전이었다.

두부는 갑자기 또 뭔가를 요구했다.

그것은 직접 요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쑥 들이대는 것은 여전했다. 그것은 아직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았다.

저주받은 손.

그는 요리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특히 라면조차 자주 실패하는 그였다. 물 조절만 하고 시간만 잘 맞추면 평균은 나올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불이라는 단어는 그를 움직이게 했다.

“형. 또 뭘 만들어요?”

새로 들어온 매니저 신요한.

녀석은 짐짓 두려운 표정으로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냄비 안을 보더니 서서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성우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였다.

바로 어제도 그랬다.

그때의 메뉴는 덜 익은 알리 올리오 스파게티였다. 뭔가 심폐소생술을 해주고 싶어도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더구나 양 조절도 실패해 과식을 해야 했다.

“너 주려고 삼계탕 끓이고 있지.”

“저는 괜찮으니 먼저 드세요.”

“어허! 딱 거기서 10분... 아니 20분만 기다려. 금방 만들어 줄게.”

“오늘은 제가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요한은 철통 방어를 했다.

사실 그게 거짓말은 아니기는 했다.

어제 먹은 것 때문에 아직도 속이 더부룩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 해외에서 자라난 그였다. 스파게티는 수도 없이 먹었지만, 그처럼 지독히 맛없는 요리는 처음이었다.

“슬슬 나갈 준비 하셔야 해요.”

“뭐 아직 6시간이나 남았는데 뭘 벌써 준비해? 시간도 조금 남으니 이거 다 먹고 같이 마트나 잠깐 다녀오자.”

“또요?”

이틀 전에 직접 장을 봐 온 그였다.

하지만 그의 냉장고는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었다. 워낙 텅텅 비어있던 곳이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같이 간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성우 역시 갑갑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부가 요리에 넣자고 하는 재료들은 집에 하나도 없었다.

-들깻가루, 치즈, 새우젓, 밀떡, 조청, 감자...

‘이따가 마트에 가서 말해줘. 말해줘도 기억 못해.’

-그리고 만두!

‘아주 그냥 신이 났구먼?’

그러는 사이.

삼계탕은 뽀얗게 국물이 나기 시작했다.

주방은 그 열기 덕분에 후끈 달아올랐다. 집이 꽤 오래되어 한기가 가득했었는데 다행이었다.

레시피는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이 모자랐다.

옆에서 알려준다고 요리 실력이 확 늘어날 리 없었다. 그게 한계인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칼질은 능하다는 것이었다.

타다 다다닥!

양념장에 넣을 쪽파.

그것은 도마 위에서 순식간에 토막 났다.

오늘은 왠지 소금보다 이게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성우는 TV에서 보았던 기억대로 조합을 해봤다. 제발 음식을 버리는 일만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더 필요했다.

“정이 형은 언제 온대?”

“식사 끝날 정도에 온다고 하던데요.”

“일부터 밖에서 기다리는 거는 아니고?”

“흠! 그런 거는 아니고요.”

성우는 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거짓말에 정말 재능이 없었다.

딱 봐도 얼굴에 티가 나는 스타일이었다. 분명히 저 반응은 근처에 그가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집 부근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전화해서 바로 오라고 해.”

“정말 압구정에 있는 샵에 들려서 옷 가져온다고 조금 늦는다고 했어요.”

“15분 이내로 안 오면 집에 있는 아무거나 입는다고 하면 올 거야.”

“알겠어요.”

요한이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성우는 수저를 찾았다.

투명한 뚜껑을 열자 수증기가 하얗게 올라왔다. 수저로 약간의 국물을 떠낸 성우는 호호 불며 식혔다. 그리고 살짝 맛을 보았다. 맑은 국물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제대로였다.

“오~ 나쁘지 않아!”

-약간 밍밍한 거 같지 않아?

“양념장이 있으니 괜찮을 거 같아. 뭐 간은 알아서 맞추라고 하면 되지.”

-이제 997인분 남았어.

절망이었다.

500권의 책은 양반이었다.

천 명에게 음식을 대접하라니 말도 안 됐다.

그나마 그 방식도 무척이나 고달팠다.

자신이 먹는 것은 쳐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정 시간 이상의 정성이 들어간 것만 포함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라면 따위는 쳐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다른 사람이어야 했다.

혼자 사는 그에게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려면 아직 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드라마가 끝날 무렵은 될 것 같았다. 결국, 그의 선택은 그나마 만만한 매니저 요한밖에 없었다. 만약 그 혼자 대상으로 한다면 삼시 세끼를 다 먹여도 1년은 걸릴 것 같았다.

“너무 빡빡한 거 아냐?”

-다음 것은 더 장난 아니야. 이거는 우습지.

“도대체 또 뭘 시키려고 벌써 겁을 주는 거야?”

두부는 희미하게 웃었다.

말을 해주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녀석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을 느낀 성우는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차라리 목록을 쭉 적어서 주면 안 되냐? 그러면 틈날 때마다 해결할 수도 있잖아.”

-성불이란 게 그렇게 쉽지 않아. 때와 장소 그리고 시기가 맞물려야 겨우 될까 말까 하다고.

“그거 듣기에 따라 뭔가 안 좋게 해석될 여지가 있네? 결국 그런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성불이 안 될 수 있다는 거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있어.

“뭔데?”

두부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뗐다.

녀석은 최근 무사귀의 분위기를 말해줬다.

이제 이승을 떠도는 것을 그만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우가 해낸 세 차례의 성불 덕분이라고 했다.

-하나 힌트를 주면 뜨개질도 있어.

“뜨개질! 설마 그것도 나한테 시키려고?”

-소원이라는데 어쩌겠냐.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 일단 요리부터 해결하련다.”

뜨개질이란다.

그걸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뜨개질을 하는 것은 전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뜨개질하면 마치 나이 많은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우가 잠시 멘붕에 빠져있을 무렵에 요한이 다시 돌아왔다.

“올라온데요.”

“그럴 줄 알았어. 식사할 준비 하자.”

“네.”

식탁 위는 금방 정리되었다.

그리고 곧 세 명의 식기가 놓였다.

성우가 마침내 불을 끄고 삼계탕이 든 냄비를 식탁 위에 올리는 순간. 현관문을 열고 최정이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성우가 오늘 입을 옷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어서 와서 삼계탕 잡숴요.”

“내가 어지간하면 음식은 안 가리는데. 너는 정말 그냥 연기만 해라.”

“에~ 이번에는 조금 달라요.”

“그게 하루아침에 달라지겠냐? 요리하는 것도 다 재능이야.”

최정은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래도 아예 무시하기는 어려웠는지 소파 위에 옷을 고이 놔두고 주방으로 걸어왔다. 주방 안에는 삼계탕의 진득한 냄새가 가득했다. 한동안 킁킁거리던 그는 예상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냄새는 제대로인데.”

“국물도 제법 괜찮아요.”

“네 말을 어떻게 믿어. 그 쉬운 스파게티도 그따위로 만드는 녀석인데.”

성우는 그 말을 무시했다.

그저 양념장을 내려놓고 곧바로 닭을 해체했다. 그리고 각자의 접시에 다리 한 개씩을 올려놓았다. 성우의 몫은 닭봉 2개였다.

“저거 또 날개는 혼자 챙겨가네.”

“제가 형하고 요한이 다리 주려고 양보하는 거죠.”

“웃겨~ 너랑 먹은 닭이 몇 마리인데. 닭봉 좋아하는 거는 백만 년 전에 간파했거든?”

“일단 드시죠. 국물이 싱거우면 알아서 간 맞추고 고기는 양념장 찍어 드세요.”

성우는 닭봉을 들었다.

하얀 육질에서 윤기가 흘렀다.

그리고 양념장에 콕 찍어서 그것은 입으로 직행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최정과 요한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과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지 확인할 셈인 것 같았다.

쩝쩌업.

성우는 닭 날개를 뜯었다.

야들야들한 닭 특유의 육질이 느껴졌다.

요한은 그런 성우의 눈치를 보다 재차 입을 대자 그제야 닭 다리를 들었다.

과연 오늘은 제대로일까?

큰 기대는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제발 먹을 수 있는 수준이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고기는 사르르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맛은 생각보다 상당히 좋았다.

고기 자체의 간은 밍밍한 느낌이었지만, 양념장이 신의 한 수였다. 과연 이게 자신의 앞에 있는 성우가 직접 만든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것은 최정도 마찬가지였다.

“구웃~ 이거 제대로 만들었는데?”

“한 마리라 아쉽네요.”

“또 만들 생각은 없으니 일단 요기만 해. 그리고 나가서 제대로 식사하죠.”

성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생각보다 좋았지만,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남자 셋이 닭 하나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불과 얼마도 되지 않아 식탁 위에는 닭 뼈만 보였다.

“꺼어어~ 이 정도면 매일 먹어줄 수 있어.”

최정이 배를 두드렸다.

끝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밥까지 한 그릇 해치운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땃땃한 햇살을 받으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들 나갈 준비 하자.”

시계를 보고 최정이 말했다.

오늘 그는 의욕 과다인 상태였다.

지난 시상식에서 그가 만들어낸 그의 패션은 확실히 대단했다. 모든 이들은 성우가 입은 것들이 뭔지 온라인에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협찬을 해줬던 브랜드는 대박이 나기도 했다.

‘오늘은 달달한 패션이지.’

최정은 이 순간이 가장 기분 좋았다.

성우가 자신이 연출하는 패션의 100% 아니 그 이상의 멋을 완성해주기 때문이었다.

***

몇 시간 후.

[저승에서 온 차사] 제작 발표회.

성우는 그 장소에 다른 배우와 함께 들어섰다.

그 자리에는 하태국 PD를 비롯해 중요한 배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도 함께했다. 그러나 심연빈이 낄 자리는 없었다.

“현재까지 1위는 너네.”

하지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팬들이 보낸 쌀 화환이었다.

아직 다 도착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성우의 쌀이 가장 많았다. 특히 그의 팬카페인 페르세우스가 압도적이었다.

그곳에서는 거의 1,000kg을 보내왔다.

물론 그 많은 양을 다 옮겨오진 않았는지, 팻말에만 그렇게 적혀 있었다. 어차피 공간도 없었고 괜히 서로 힘만 빼기 때문이었다. 말이 천 키로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것을 본 혜리는 엄두가 안 난다는 느낌으로 말했다.

“너 팬한테 정말정말 잘 해야겠네.”

“뭘 어떻게 하면 잘 해주는 건데?”

“그걸 몰라서 물어?”

혜리의 말에 성우는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마움이 제대로 전달될지 감이 안 왔다. 그때 하지웅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냥 연기만 잘 해도 반은 보답하는 거야.”

“나머지 반은요?”

“요즘 얘들 잘 하는 SNS에 감사를 표하든지 아니면 팬카페에 글을 써도 되잖아.”

“그것도 아니면 나중에 팬 미팅 자리를 만들어도 되고.”

혜리가 말을 보탰다.

그 말에 성우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팬 미팅은 자신이 건의 할 수는 있지만, 즉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장 하기에는 아직 촬영이 많이 남아 있어 시기가 좋지 않았다. 더구나 며칠 동안은 드라마 홍보를 위해 온갖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했다. 내일은 무슨 토크쇼에도 그 혼자 나가야 했다.

“팬 카페에 글을 쓰는 게 좋겠네요.”

하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성우는 금방 대기실에서 일어나야 했다. 바로 [저승에서 온 차사]의 발표회가 시작된다는 신호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행사의 MC를 맡은 이의 신호에 따라 홀 안으로 들어섰다.

“강림 역을 맡은 유성우 씨 모시겠습니다.”

그가 들어온 이후.

셔터는 아낌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온라인으로 퍼져나갔다.

< 광끼 -6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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