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61화 (62/161)

< 광끼 -61 >

냐아옹~!

유부의 울음소리.

녀석은 차창 너머를 보며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에 떠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어디냥~?’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에메랄드빛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차 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도 곧 성우에게 손 아래 돌아왔다. 쓰다듬어달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코디인 최정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거 고양이 맞아? 정체성에 혼란이 있는 거 아냐?”

“그걸 개냥이라고 해요.”

“보통 고양이는 집밖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

“그렇다고는 하는데 ‘캣바캣’이라 하더군요. 다들 성격이 다르니까요.”

“캣바캣?”

“Cat by Cat.”

성우는 유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살짝 발버둥을 치며 장난을 쳤다.

목에 걸린 인식표가 짤랑거렸다. 집에서 멀리 나오는 것이라 꼭 해야 했다. 이미 유부는 성우에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었다. 녀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그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달렸을까?

진수가 운전하는 차는 곧 촬영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서울 인근에서 촬영이 잡혀 있었다. 덕분에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유부를 데리고 나올 생각도 한 것이었다.

“오늘은 유부가 있으니 문 열 때 조심해요.”

“그냥 케이지에 넣어 놓지?”

“답답할 거 같아서요.”

“진수 네가 챙겨라. 오늘은 성우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 관리가 네 임무 같다.”

“그럴 것 같아서 비장의 카드도 챙겼죠.”

진수는 장난감 낚싯대를 꺼냈다.

그러자 유부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평소 낚싯대처럼 움직이는 장난감을 워낙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벌써 자신의 눈앞에 알짱거리는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 한껏 움츠렸다. 하지만 그 짧은 다리로 도약하는 거리는 무척 짧았다.

그 모습을 보며 성우는 밖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고양이와 더 놀고 싶지만, 사룟값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성우가 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진수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밤새 잘 주무셨어요?”

“성우 씨도 안녕~”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성우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왈우 때부터 습관처럼 되어버린 행동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성우는 리허설에 들어갔다. 오늘 찍을 분량은 현대로 넘어온 직후의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인사를 마치고 돌아온 성우를 향한 최정의 손길 역시 무척 바빴다.

“이거 고양이 발톱으로 한 번만 찍어도 어떻게 되는지 알지?”

“협찬이에요?”

“상의는 협찬이라 조심해.”

“뭐라고 하면 그냥 제가 사면 되죠. 얼마인데요?”

“120만 원.”

성우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뭐를 어떻게 만들면 그 가격이 나올까?

5만 원짜리와 별로 차이도 없어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아직은 이런 비싼 것들은 부담되었다. 어린 시절 제법 유복하게 자랐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의사 집안의 아들에 불과한 그였다. 재벌 집의 막내아들처럼 호사스럽게 살 수준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할 판인데.’

그래도 얼마 전의 좋은 소식이 있었다.

마침내 부모님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구 귀국은 아니고 잠시 재정비 기간이었다. 아무래도 비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잠시 오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멀리서 누군가 격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냥이 데리고 왔어?”

혜리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온 것 같았다.

그녀의 뺨에는 울퉁불퉁하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 아마 여기까지 오면서 꽤 숙면을 취한 것 같았다. 로코퀸의 그런 모습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언제나 단정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였다. 하지만 혜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차 안을 기웃거렸다.

“문 확 열지 마. 유부 그 녀석 튀어 나가면 찾기 어려워.”

“목줄 안 했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빼놨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소리를 빽 치는 혜리.

그것과 달리 차 문을 여는 그녀의 손길은 꽤 조심스러웠다. 문을 살짝 연 그녀는 좁은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유부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순간. 혜리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멋! 어떡해~ 너무 귀여워!”

3단 고음이었다.

노래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소리에 유부는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좌석 아래로 숨어 상황을 살폈다. 그 모습에 혜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스스로 막았다. 물론 그 소리 덕분에 놀란 것은 유부뿐만은 아니었다.

“야! 깜짝 놀랐잖아.”

“미안. 나 조금만 안아 봐도 될까?”

“발톱 때문에 힘들 텐데.”

성우는 그녀의 옷을 살짝 바라봤다.

노란색의 두툼한 스웨터는 제법 비싸 보였다. 잘못 안았다가는 올이 나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 뻔했다. 낯선 이를 보면 은연중에 발톱을 세우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초롱이는 눈망울로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안 들어줄 수 없었다. 사람의 눈이 그렇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성우였다. 도대체 누가 누구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는 성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

르고 손을 뻗어 유부를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유부~ 일루 나와 봐.”

“그렇게 하면 잘도 나오겠다.”

“그럼 어떡해?”

“이게 도와줄 거야.”

성우는 진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녀석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스틱이었는데 딱 봐도 고양이 간식이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혜리는 망설임 없이 뜯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잠시 간을 보던 유부가 슬며시 나왔다. 그리고 곧 유부는 혜리에게 포획당했다. 그것은 고난(?)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유부는 촬영장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워낙 아기였기에 남자들 역시 귀여워했다.

특히 여자 스태프는 물론이고 출연진의 코디까지 다들 어찌할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혜리의 손에 들어갔고 좀처럼 그녀의 품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남자들은 그런 유부를 부러워했다.

특히 혜리의 풍성한 품에서 부비고 있을 때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저 녀석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요?”

“간접 포옹이라도 한 번...”

“단 하루만 저 고양이로 살고 싶다.”

그것은 성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감정을 느꼈는지 두부가 비아냥거렸다. 왜 망설이고 있냐고 타박을 거듭했다.

-대쉬해. 미녀는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쟁취할 수 있는 거야.

‘그럴 맘은 없다.’

-왜? 예쁘잖아. 네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있는걸.

‘예쁘다고 다 사랑하는 거는 아니잖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차이가 크지.’

-더럽게 복잡하게 사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촬영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이 정도가 딱 좋았다. 호감 이상으로 마음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괜히 관계가 잘못 어긋나면 촬영까지 망할 가능성이 컸다. 그 점은 오만석 실장도 누누이 강조했던 점이었다. 아무래도 여배우와의 멜로가 들어가는 첫 드라마라

걱정되었던 것 같았다.

연기와 현실.

그사이에 잘 자리 잡아야 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은 연인이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컷이 외쳐지는 순간 그 감정을 잊어야 했다. 그것이 연기였고 또 프로가 할 일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선을 긋기는 어렵다. 그래서 함께 촬영하다 연인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 준비 다 끝냈으면 촬영 들어갈게요.”

조연출이 외치자 다들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예정된 분량을 쳐내려면 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영화만 했던 성우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특히 이번 드라마는 다른 때보다 더 촉박한 편이었다. 적어도 첫 방영 전까지 60% 정도를 찍어야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50~55%가 한계였다.

“컷!”

“커엇!!”

“다음 장면 갑니다.”

숨 가쁘게 움직여야 했다.

특히 주연인 그와 혜리는 숨 쉴 틈도 없었다.

모든 촬영은 둘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촬영 B팀이 있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촬영팀은 서로 장면을 나눠 촬영하고 있었다. 특히 B팀은 허지웅을 비롯한 심연빈 등의 촬영을 거의 도맡고 있었다.

‘그 선배 자식은 잘 찍고 있으려나?’

*

저벅...저벅...

좁은 골목을 걷는 혜리.

그녀의 등 뒤로 낯선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기척을 느낀 혜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으슥하고 외진 곳이라 더 두려운 그녀였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괜히 아무도 없는 집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엄마! 나 왔어.”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골목에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이 된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야 성우는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누구냐··· 넌?”

무척 익숙한 느낌이었다.

모조리 지워진 기억을 찾을 단서였다.

왠지 그 기억 속에 저 여자가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 단 하나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였다. 물론 그녀에게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할 뿐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진한 허기짐이 밀려왔다.

주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나왔다.

정신이 든 이후에 어렵게 번 돈이 그게 전부였다. 아니 벌었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이상한 옷을 입고 쓰러져 있던 그에게 행인들이 던져준 것이었다.

반면... 혜리는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요며칠 계속 느껴지는 느낌 때문에 무척 날카로워진 그녀였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울먹였다. 그런 그녀에게 뭔가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것의 정체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었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유부야...”

세상에서 녀석만 자신의 편인 것 같았다.

적어도 이 녀석이 있기에 살아나갈 힘을 얻는 그녀였다. 그렇게 그녀는 유부를 껴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때마침 하 PD의 외침이 들렸다.

“컷!”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은 오전 7시에 스튜디오 촬영입니다.”

“유부야~ 수고했어~”

성우는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갑자기 유부를 출연하게 만든 주범은 혜리였다. 그녀는 갑자기 뭐에 꽂혔는지 감독님과 작가님 모두를 설득시켰다. 도대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걸 받아준 하태국 PD도 PD지만, 더 대단한 것은 바로 대본을 수정한 홍근석 작가였다. 그는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아 쪽대본을 완성해 보내줬다. 그리고 수정한 이후의 느낌은 전보다 더 좋았다. 확실히 유부의 출연으로 인해 조금 어두워 보일 수 있는 초반부

의 무거움이 상쇄되는 기분이었다.

촬영을 마친 이후.

유부는 꼬리를 세우며 성우에게 다가왔다.

마치 잘했냐며 묻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유부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성우를 보며 스태프들은 한마디씩 던졌다.

“성우 씨 연기를 보고 배운 건가? 생각보다 쉽게 갔네요.”

“배우님이 기르는 고양이라 그런가 연기에 능훅한 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유부 아빠.”

“다음 촬영에도 유부 모셔오는 거 잊지 마요. 씬 9-1에도 출연해야 합니다.”

유부 아빠.

성우는 그 말에 겸연쩍었다.

이제 24살인 그가 들을 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그래도 유부가 잘 하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유치원에 보낸 딸내미의 장기자랑을 보는 기분과 비슷할 것 같았다.

반면에 진수는 골치가 아팠다.

성우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그였다. 이제는 고양이도 스케줄에 맞춰 데리고 다녀야할 판이었다.

‘내 팔자야···’

촬영을 마친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잠시 단잠에 빠졌던 성우는 눈도 뜨지 못하고 바로 끊었다. 중요한 전화면 다시 올 것이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벨이 울렸고 성우는 마지못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왜 전화가 바로 끊어져? 자고 있었어?

오만석 실장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잠이 덜 깬 성우는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네. 자고 있었어요.”

-좋은 소식이 있는데 지금 들을래? 아니면 나중에 말해줄까?

“좋은 소식이요?”

그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 세웠다.

기척을 느낀 유부도 케이지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녀석도 촬영 때문에 꽤 피곤했는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말해주세요. 일어났어요.”

-너 말이야... 이야기 들을 준비 됐어?

“뜸 들이지 마시고요.”

-재미없는 녀석.

오만석은 투덜거렸다.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깜짝 놀래켜 줄려고 했지만, 성우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하지만 그 말을 다 듣고 난 이후에도 그럴지는 두고 봐야 했다. 한두 번 헛기침을 한 그는 마침내 외쳤다.

“성우야! 영화제 가즈아~”

< 광끼 -61 > 끝

ⓒ l살별l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