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54화 (55/161)

< 광끼 -54 (여기부터 유료) >

성우의 다급한 외침.

그것을 듣고 두부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귀청 떨어지겠다.

‘촬영 중이잖아!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

-너도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현실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그냥 답만 말해주면 안 되냐?’

그 말에 두부는 억울해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참 이어지던 두부의 변명을 듣고 성우는 어떤 존재가 떠올랐다.

‘지식에 목마른 녀석.’

아마 그 녀석일 것 같았다.

어쨌든 어서 이 상황을 돌파해야 했다.

성우는 재빨리 두부에게 답을 물어봤다. 환상 속에서 답을 찾아 헤매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당연히 두부 역시 그 문제에 관련된 답을 알고 있었다.

‘3번 접이 정답이라고?’

-쾌는 북어 스무 마리, 축은 오징어 스무 마리를 묶는 단위를 뜻해. 접은 마늘이나 배추 같은 것들의 100개 단위고.”

‘일단 알았어.’

-하여간 요즘 것들은 상식이 모자라.

잠시 후.

성우는 눈을 떴다.

그 눈에는 침착함이 가득했다.

아까의 그 급박했던 외침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 순간 한석현 아나운서가 말을 걸었다.

“답이 생각나셨나요?”

“네. 방금 생각났습니다.”

“다행이네요. 버튼을 눌러주세요.”

성우는 곧바로 3번을 눌렀다.

그리고 정답을 확인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화면에 보이던 3개의 답 가운데 ‘접’에 불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성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300명의 도전자 중에 꽤 많은 이들이 절망한 표정이었다.

‘많이 틀린 건가?’

느낌이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답을 낸 이는 적지 않았다. 다들 생소한 단위에 헷갈린 것이 분명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층에서 꽤 많은 이들이 떨어졌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전광판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현재 남은 도전자의 수가 표시되어 있었다.

[1대 228]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 순간 한석현이 말을 걸었다.

미소 띤 그의 얼굴은 조금 얄밉게 느껴졌다. 아마 그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 상황을 제법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이번에 정말 많이 탈락했습니다. 이번 문제가 젊은 분에게는 조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네. 많이 생소한 단위네요.”

“그래도 중장년층에게는 쉬웠을 것 같습니다. 한 접은 마늘이나 배추 등의 백 개 단위를 뜻하죠.”

그 이후.

성우는 파죽지세로 문제를 풀었다.

솔직히 프로그램 자체가 출연자에게 무척 불리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조금 달랐다. 두부가 집단 지성이라고 말했던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무사귀가 가진 지식.

그것은 범위가 무척 넓었다.

특히 지식에 목말라하던 무사귀 덕을 꽤 보았다. 워낙 많은 책을 읽게 한 덕분이었다. 이제 몇 권만 더 읽으면 500권에 도달하니 엄청난 독서량이었다.

하지만 고비도 있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에 관련된 문제였다.

그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탄식했다. 특히 중장년층에 쥐약인 문제였다. 성우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여자 아이돌이라면 좋았을 뻔했다.

결국 찬스를 사용해야 했다.

최대한 아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떨어지고 찬스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더 미련했다. 성우는 다수의 답을 보고 정답을 제출했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6번째 문제를 통과했습니다. 이제 도전자는 총 144분이 남아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믿어지지 않네요. 일단 오늘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포기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아직 멀었다.

오늘 여기 나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우승하기 위해 나왔고 그때까지 포기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144명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성우의 뇌는 오랜만에 열일을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너무 과한 노동에 두통까지 밀려왔다.

[퀴즈]

19세기 중반 주세페 도나티에 의해 발명된 관악기<오카리나>는 이탈리아 언어로 <작은(이 새)>를 뜻한다. 이 새는?

1. 펠리컨,. 2. 종달새,  3. 거위

“정답은 거위입니다.”

“정답입니다! 1대 96!”

[퀴즈]

모처럼 데이트를 하며 스파게티 카르보나라를 먹었다. 카르보나라의 어원은?

1. 숯,  2. 크림,  3. 달걀 노른자

“정답은 1번 숯입니다.”

“정답입니다. 이건 어떻게 아셨나요?”

“제가 카르보나라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보통 좋아한다고 어원까지 아는 것은 아니죠.”

“옛 친구한테 들은 거예요. 제가 영문학과라 그런 어원에 관심도 조금 있고요.”

그 말을 하면서 성우는 잠시 망설였다.

혹시 소연이가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가 카르보나라의 어원을 아는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처음 데이트하던 날 그녀가 말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잊히지 않는 만큼.

그날의 있었던 일들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한석현 아나운서는 그 이상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점차 길어지는 녹화 시간 때문일 수도 있었다.

벌써 10번째 문제였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인원은 서른 명이나 되었다.

보통 이 정도면 거의 소수의 인원만 남는데 오늘따라 쟁쟁한 사람들이 도전자로 온 것 같았다. 한석현은 틈틈이 그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직업은 무척 다양했다. 아직 학생도 있었고 중간에는 의사와 기자도 보였다.

다들 무척 똑똑해 보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두부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안 되지. 아직 100년쯤 멀었어!

*

한편 1대 300의 연출진.

그곳은 조용히 술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우승자가 탄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때문일까?

담당인 노지영 PD는 붉게 상기되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희열이었다.

전임자에 이어 그녀가 이 프로그램을 맡은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출 아래 아직 우승자를 단 한 번도 배출하지 못했다.

덕분에 퀴즈쇼를 두고 말이 많았다.

2억이 아까워 그런다는 루머도 상당히 돌았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매번 우승자가 나와도 시말서를 써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아예 우승자가 없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둘 사이의 간격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했다.

물론 지금은 어서 우승자가 나오길 바라는 시기였다. 그녀는 옆에 앉아있는 메인 작가인 오서경에게 말을 걸었다.

“오 작가님. 이번에 너무 쉽게 출제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난이도 체크해서 랜덤 박스에서 뽑은 건데요. 남은 사람 수를 보세요. 쉬운 게 아니라니까요.”

“혹시 모르니까 예비 문제도 꺼내오죠.”

“벌써요?”

오서경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노지영 PD가 하는 말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적어도 촉에 있어서 그녀만큼 잘 들어맞는 이는 없었다. 그녀가 막내 작가에게 오더를 내릴 무렵. 성우는 벌써 14번째 문제를 풀고 있었다.

[퀴즈]

레스토랑에서 샤토브리앙을 시켰다. 이 부위는 어딘가?

1.등심 2.갈비 3.안심

잠시 고민되었다.

무사귀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내용이 나온 것이었다. 아까 남자 아이돌 문제 이후에 두 번째 겪는 고비였다. 이번에도 찬스를 쓰고 싶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도전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생소한 이름이 나온 퀴즈에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이는 겨우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만약 이 퀴즈만 잘 넘기면 우승이 눈앞에 보일 것 같았다.

“자! 5초 이내에 정답을 선택해주세요.”

한석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더는 꾸물거리지 말라고 은근한 경고였다. 성우는 예라 모르겠다며 3번을 찍었다.

복불복이었다.

자신이 운이 좋다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방송 분량은 충분했다. 그렇게 자기 위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아마 오늘 방송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부분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정답의 발표 역시 굉장히 뜸을 들였다.

“혹시 바꾸실 생각 없으신가요?”

“바꿀 수도 있나요?”

“아니요. 그냥 한 번 여쭤봤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정답을 바꿔서 맞춘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성우가 한 말에 다들 웃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한석현이 발표한 정답은 성우가 찍은 3번 안심이었다. 그것을 듣고 성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뭔가 되는 날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고작 다섯 명만 남았다. 대부분 의외의 답이 나올 거라며 2번 갈비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찍.신.강.림!

‘와··· 간 떨려 죽는지 알았네.’

-다음 문제 가즈아~

1 vs 5

두부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미 치킨 다섯 마리를 적립해 놓은 상태였다. 녀석은 벌써 저녁에 펼쳐질 만찬 덕분에 완벽하게 몰입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문제가 나오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퀴즈]

조선 시대 최악의 대기근은?

1. 경신 대기근 2.정유 대기근 3. 기사 대기근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답이 뭔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운이 좋다고 펄쩍 뛰어도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기근으로 인해 발생한 역병에 죽어 나간 이들을 환상을 통해 직접 본 성우였다. 현대의 아프리카에서 겪는 기근과 비교도 안 되는 처참함이었다. 그 재앙 가운데 최악이었던 경신 대기근의 이름을 보고 도저히 기뻐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또 다시 환상이 보였다.

오늘만 두 번째로 보는 것이었다.

진득한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성우는 서둘러 두부를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녀석의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조선 시대의 한 마을이 보였다.

전에 보았던 그 역병이 돌던 마을은 아니었다. 거리에는 앙상하게 말라 쓰러진 이들이 보였다.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는 것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처참했다.

성우는 그 비참함을 견디지 못했다.

악몽을 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생생한 그 모습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제정신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제길 나보고 뭐 어쩌라고!’

성우는 울부짖었다.

임금도 구휼치 못한 대흉년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이 시대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옛일을 환상을 통해 보는 것에 불과했다. 직접 뛰어들어 뭘 어떻게 해줄 수도 없었다. 그때 그의 앞으로 깡마른 한 사람이 다가왔다. 두부는 확실히 아니었다.

“처참한 상황이지...”

“누구신가요?”

“나? 돌팔이 의사. 자네 덕분에 좋은 책들 잘 봤네.”

그제야 성우는 그가 누군지 깨달았다.

바로 자신에게 책을 500권이나 읽으라며 종용했던 존재였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저 돌팔이라 불러도 된다 했다.

“이때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알았으면 참 좋았을 것을...”

“···”

“그러면 적어도 아이들이라도 구할 수 있었을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워.”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온갖 원망을 다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화살의 끝은 그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책.

원망.

슬픔.

공포.

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 눈을 감으며 말을 이어갔다.

“정답은 알지?”

“물론이죠. 저번에 보여주신 것 때문에 꽤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 나도 이제 슬슬 가야 할 때가 왔네.”

“성불하실 건가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를 끝없이 갈증 나게 만들던 지식의 샘이 모두 채워진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성우에게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말했다.

“두부 그 녀석한테 잘해줘.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도 무척 불쌍한 녀석이야.”

“혹시 두부가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도통 말을 안 해주네요.”

“자신이 말하기 전에 말해줄 수는 없지. 그런데 말이야. 나와 거래할 건가?”

“거래요?”

“왜··· 먼저 떠나간 이들처럼.”

원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해달라는 건지 몰라도 일단 들어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이었다.

“덕을 베풀고 복을 쌓아. 내가 바라는 것은 그거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사는 세상에도 아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잖아. 빛이 있으면 분명 어둠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러면 다 너한테 다시 돌아올 거야.”

“기부하라는 뜻인가요?”

성우는 뭘 하라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번 퀴즈쇼의 상금을 타게 되면 그걸 기부하라는 건가 싶었다. 그런 그를 향해 자칭 돌팔이라 말한 그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어린 제자를 보는 눈빛이었다.

“무재칠시 (無材七施)라 하는 말이 있지. 재물이 없더라도 행할 방법은 많아.”

“무재칠시?”

“그리고 그 덕이 쌓이면 아주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뭔가 의미가 있는 웃음을 보였다.

그것을 보며 성우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을 헤치는 일도 아니고 바르게 살라는 건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제야 두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니 이 양반이 나를 왜 쫓아내고 난리야!

“네 녀석이 있으면 시끄러우니 그렇지.”

-어! 벌써 가시게요?

“허허. 이제 미련이 없으니 떠나야지. 자네도 어서 성불하시게나!

다시 나타난 환한 빛.

그 속으로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성우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뭔가 자신의 상황을 타개할 힌트를 주고 떠난 것 같았다. 혹시 무주귀를 없앨 수 있는 힌트가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때 다시 환상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그 순간 성우는 휘청거렸다.

연달아 두 번째의 환상을 보았다. 당연히 그의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강인하던 그의 몸이지만 정신력의 소모마저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위례검을 수련했기에 이 정도지 아니었다면 바로 혼절했을 것이었다. 그런 그를 다급하게 한석현 아

나운서가 부축했다.

“성우 씨. 괜찮아요?”

“죄송해요. 잠깐 어지러워서...”

“조금 쉬었다가 할까요?”

“아니요. 쉴 때 쉬더라도 답은 맞춰야죠.”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몸을 추슬렸다.

이 공간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이들만 수백 명에 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엄살을 피울 수 없었다. 성우는 몸을 다시 꼿꼿이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정답은 1번 경신 대기근입니다!”

< 광끼 -54 (여기부터 유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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