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51
타닥타닥!
외진 골목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
그것은 단 하나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 달리며 갖가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소음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거친 숨을 내쉬며 길거리에 주저앉는 이들도 종종 보였다.
21살의 여대생 진설희.
그녀도 다른 추격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뛰어다니는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를 일이었다. 유성우가 아니라면 이런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그녀였다. 사실 그녀는 ‘왈우’도 보았지만, 그보다 U-Bro를 보고 입덕한 팬이었다. 특히 기타를 치는 성우를 보고 반했다. 그때의 그는 무척 섹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앞서가는 의지에 비해 몸이 따라오지 못했다.
그녀에게 마침내 한계가 온 것이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결국 그 자리에 멈춰야 했다.
“하악··· 언니 저는 더는 못 뛰어요.”
“나도 이제는 무리다.”
“그래요. 조금 쉬었다가 움직이죠.”
그 자리에 멈춘 여섯 남녀.
처음부터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오리엔테이션 현장에서 맺은 그룹이었다. 나이도 비슷하기에 금방 그룹은 만들어졌다.
이벤트 시작 1시간 전.
그들은 사전에 고지된 장소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아무래도 거리를 뛰어다니기 때문에 이번 추격전에서 주의할 점을 공지 받았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였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도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아니함만 못했다.
설희는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그와 동시에 레이저 포인터를 주머니에 넣었다. 팔찌와 함께 받은 물품이었다. 만약 추격자의 손이 도저히 닿지 않는 곳에 흑표가 있는 경우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맞으면 흑표는 무조건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추격자는 괜히 위험한 곳에 올라가지 말라는 의미였다. 설희는 입을 살짝 내밀며 한탄했다.
“아니 벌써 20분이 넘었는데 안 잡혔다는 게 말이 돼요?”
“시작하자마자 바로 잡힐줄 알았는데 말이죠.”
“와~ 나 백여 명이 우르르 뛰어가는 거 보고 소름 돋은 거 있죠. 그 뭐냐 막 뛰어다니는 좀비 같았어요.”
“그걸 어떻게 피했데요?”
“단톡을 보니 벽을 딛고 달렸다는데요.”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에요?”
흑표 추격전 단톡방.
그곳에는 여러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설희가 속한 그룹 역시 그 안에서 정보를 받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수백 명이 함께 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4분 전에 이 근처에서 놓쳤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딨지?”
“혹시 모르니 주변을 살펴봐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던 적도 있데요.”
“그래 봤자. 언젠가는 잡히겠죠.”
짧은 머리의 사내가 말했다.
그의 눈에는 불타는 의지가 가득했다.
이번의 추격전에서 꼭 흑표를 잡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참여한 것 같았다. 그는 첫 그룹을 결성할 때 체대에 다닌다고 은근히 자기 자랑을 했었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3분마다 갱신되는 흑표의 위치 정보였다.
“왔다!”
“어디에요?”
“이게··· 말이 되나?”
“왜요?”
“지도의 위치가 아무리 봐도 우리가 있는 이곳인데요.”
체대생의 말에 다들 의아했다.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차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지도를 잘못 찍은 거 아닐까요?”
“에이! 그럴 리가요.”
“아니 이 근처에 숨을 데도 없는데 안 보이니 그렇죠.”
“홍길동도 아니고 하늘로 솟았을...”
설희는 말을 하다 멈췄다.
별다른 의미 없이 고개를 들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검은 형체가 보였다.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흑표였다. 그는 건물 외벽의 난간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더구나 그 시선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좀처럼 레이저 포인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다른 일행 역시 고개를 들었다가 흑표를 발견했다.
“저기!”
“와~ 저런 데 있으니 당연히 못 찾지.”
“반칙 아닌가?”
“어서 레이저 쏴요!”
체대생의 말에 다들 포인터를 켰다.
그러자 흑표의 검은 옷 위에 붉은 점들이 생겨났다. 성우는 자신의 옷에 생긴 그 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휴식도 이제 끝인가?’
아직 체력은 남아돌았다.
그래도 후반부에 쓸 체력은 남겨야 했다.
적어도 오늘 전설 하나를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첫 10분 동안은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닌 성우였다.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보자 적어도 3~4m는 되는 것 같았다.
이곳은 사전 답사 때 눈여겨본 곳이었다. 계단식으로 화단이 설치된 외벽이 있어 순식간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 올라오면 적어도 한번은 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것은 적중했지만, 3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타악··· 탁!
아래로 뛰어내린 이후.
성우는 재차 다시 바닥을 향해 뛰었다.
마지막으로 점프할 때는 약간의 연출을 가미했다. 이 장소는 카메라가 설치된 곳이었다. 나중에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최대한 영상을 뽑아줘야 했다.
빙그르르.
성우는 몸을 비틀며 공중 제비를 돌았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는 동작까지 깔끔하게 성공했다. 완벽 그 자체였다. 체조 선수가 선보이는 것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9.4점!
두부가 소리쳤다.
지금 녀석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성우는 두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포위당할 때마다 귀신같이 탈출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 그와 별개로 아래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렇게 화려한 방식으로 내려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허억! 혹시 어릴 때 체조 선수였나?”
“와··· 장난 아니다. 저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뭐야?”
“꺄아아~! 사인 좀 해주세요.”
반응은 제각각 달랐다.
특히 두 여자는 정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 추격전이라는 것은 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체대생이었다.
“다들 뭐해요! 어서 잡아요.”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자세를 낮추며 두 손을 양옆으로 쫙 펼쳤다.
그 모습은 마치 유도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두꺼운 손목은 한번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은 것 같았다. 확실히 자신감을 보일 수준의 피지컬은 있었다. 성우는 그 모습에 오늘 처음으로 약간 긴장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움찔.
성우는 우측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마치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체대생 역시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빠른 반응이 독이 되었다.
처음 움직임은 페이크에 불과했다. 정작 성우는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체대생 역시 그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점프하며 거침없이 태클했다. 그것을 보며 성우는 혀를 찼다.
‘차라리 싸우는 게 더 편하겠다.’
딱 한 방이면 충분했다.
그거면 깔끔하게 잠재울 수 있었다.
다치지 않게 빠져나가는 것이 백 배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추격전을 하면서 폭력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성우는 그 자리에서 반 바퀴를 돌며 회피했다.
투우사와 성난 소.
모양새가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옆으로 스치며 지나는 그의 뒷덜미를 성우는 낚아챘다. 그대로 담벼락에 충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심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성우는 가볍게 제압했다.
바닥에 넘어진 그 청년은 어찌 된 일인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성우가 뭔가 한 것 같은데 딱히 증거는 없었다.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이미 길의 양쪽 끝에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수십 명 이상을 만나면 도망갈 틈도 없었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룹의 다른 남자들도 정신을 차리고 성우한테 달려들었다.
사사삭.
그의 몸놀림은 더 빨라졌다.
군더더기조차 없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장 효율적인 회피를 했다. 동시에 달려든 세 명의 남자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에게 성우는 웃으며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그럼 추격전 끝까지 즐겨주세요.”
“잠깐만요!”
그의 앞을 설희가 막아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여실히 묻어났다. 그것을 보고 성우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성우는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
그녀는 그런 성우에게 재차 울먹이며 말했다.
이대로 보내면 오늘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앨범 발표 후에 활동은 하지 않고 있는 U-Bro이기에 더 간절했다. 그녀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기타를 치던 그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악수 한 번만 해주세요.”
그걸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성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떨리는 설희의 두 손이 고스란히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왜 두 손을 모두 잡았냐고 묻는다면 다 이유가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길게 있을 수 없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체대생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동시에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성우는 그들 틈을 다시 헤쳐나가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설희는 그 뒷모습을 보며 감동에 빠져들었다. 이미 흑표를 잡냐 못 잡냐 그런 것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카카톡]
-꺄아아~~~ 저 성우님과 악수했어요!
-와! 대박!
-저는 오늘 그림자도 못 봤어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죠? 허탈(이모티콘)
-지금 어디 있어요?
-나도 잡는 거는 포기하고 프리 허그나 해달라고 할까?
-저는 악수해달라고 하면서 낚아채야겠네요.
-좋은 작전입니다! Good(이모티콘)
시간은 점차 흘렀다.
그리고 체력은 빠르게 줄었다. 아무리 성우라도 무한대의 체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두 시간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도 있었다.
500명의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악착같이 뒤쫓는 이들과 흩어져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었다. 그들 역시 체력이 무한대가 아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확실히 동시에 쫓는 추격자 숫자가 줄어드니 성우는 한시름 놓았다.
‘와아··· 아까는 정말 위험했어.’
특히 백여 명이 만든 첫 포위망.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찔했다.
자칫 손목에 감은 끈을 빼앗길 뻔했던 결정적인 순간도 있었다. 나비매듭으로 묶은 그것은 살짝만 당겨도 풀어지게 되어 있었다.
미리 준비했던 A지점.
그곳이 아니었다면 바로 끝장났을 것이다.
그 지점에 설치해 놓은 3개의 로프는 단숨에 그를 탈출시켜 주었다. 성우는 그 로프를 잡고 벽면을 타고 달렸다. 반쯤 타잔에 빙의한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귀에 꽂아 놓았던 이어셋을 눌렀다.
그러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촬영 및 감독하고 있는 주호민 PD였다.
-성우 씨 아직 안 잡혔죠?
“네. 아직입니다.”
-이제 2시간이 다 되었네요. 제법 거리가 멀던데 마지막 장소까지 오실 수 있겠어요?
“슬슬 가야죠. 준비는 다 됐죠?”
-물론이죠. 추격자에게 붙였던 카메라도 다 그쪽으로 보냈으니 마무리 잘 부탁드릴게요.
“넵!”
성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나왔다.
골목마다 가로등이 가득한 서울 시내에서 이런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 수차례 사전 답사를 통해 준비한 덕이 컸다.
추격자는 곧 성우를 발견했다.
하지만 초반처럼 열성적으로 쫓는 이는 없었다. 이미 그럴 체력은 없었다. 하지만 토끼몰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오히려 성우가 그들을 유인하며 모종의 장소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오늘 이 추격전을 마무리할 무대이자 엔딩 장소였다.
성우는 끝없이 달렸다.
곧 그는 카메라가 잔뜩 세워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모든 조명이 약속되어 있었다는 듯 한순간에 밝혀졌다. 주변이 갑자기 밝아지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흑표! 너를 기다렸다.”
십여 명의 남자들.
그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곧바로 왈우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환호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동그랗게 빈 공간을 만들어 놓고 퍼포먼스를 기다렸다. 모두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성우는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를 향해 검 하나를 던져줬다. 공중을 날아오는 그 검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그 순간 일본군의 수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저 흉악한 놈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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