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끼 -50
무대 인사를 마친 이후.
성우는 바로 회사로 향해야 했다.
오만석 실장의 다급한 호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 그가 했던 말의 반응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오전에 했던 그의 말은 이미 널리 퍼진지 오래였다. 그래서인지 진수는 무척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했어?”
“나도 이런 반응이 나올지 몰랐지.”
“에효··· 일단 내려. 실장님이 바로 4층으로 오래.”
바이올렛 엔터의 주차장.
그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성우는 4층으로 향했다. 그러자 오만석 실장과 회사의 홍보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우가 들어서자 만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
그렇게 말하며 오 실장은 앞장섰다.
회의실에 들어간 성우는 만석을 마주 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만석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먼저 좀 해주면 안 될까?”
“갑자기 물어봐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천만 찍으면 그 공약 지킬 거야?”
“할 수 있다면 해야겠죠.”
오만석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 모든 게 성우가 꺼낸 단 한 마디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자들은 그가 꺼낸 공약을 기사로 끊임없이 내놓고 있었다. 도저히 막는다고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왈우의 이색 천만 공약. 배우 유성우는 과연 강남 추격전을 찍을 수 있을까?]
[예능에서 보던 추격전을 전 국민에게 제안한 신인 배우 유성우]
[신인 배우의 패기일까? 아니면 기획사가 꾸민 고도의 전략일까?]
[강남 구청장 우려를 제기하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성우가 내놓은 제안은 간단했다.
천만을 찍으면 강남 한복판에서 흑표 의상을 입고 쫓고 쫓기는 추격 씬을 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쫓는 이들은 시민이었고 쫓기는 이는 성우였다. 더구나 그를 처음으로 잡는 이에게는 보상을 주기로 했다. 최고급 식당에서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였다.
“그런데 그거 보고 방송사에서 방금 연락 왔다.”
“방송사에서요?”
“공중파는 아니고 종합 편성 쪽이야.”
“거기서 왜요?”
“네 추격전을 특집으로 편성하고 싶다고 그쪽에서 대표님한테 직접 전화를 했더라.”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시작과 동시에 잡히면 분량이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만석은 그것을 지적했고 성우 역시 동감했다. 그 순간 옛날 무제한 도전에서 했던 좀비 특집 ‘28년 후’가 떠올랐다.
당시 쏟은 인력만 400여 명이었다.
그리고 평균 2회 촬영분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실패였다. 대대적인 예고를 했던 것과 달리 너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출연진 가운데 한 명의 이기심이 결국 최악의 특집으로 결말 지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그 특집은 아직도 최악의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였다.
“정말 안 잡힐 자신 있어?”
“완벽하게 포위당하지만 않으면 가능할 거 같아요. 물론 한계는 분명 있겠죠.”
“10분?”
“방식에 따라 다르죠. 참여 인원에 따라 또 다르고요. 그건 기획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른 거 아닐까요?”
성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제한적인 요소를 넣을 때마다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참여할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당장 인터넷만 열어도 알 수 있었다. 이미 그곳은 열기로 가득한 상태였다.
### : 오랜만에 승부욕 돋는다! 나 달리기 11초! 무조건 잡는다.
### : 거성으로 한 번 빙의해 볼까요? 5분 만에 잡혀서 게임 끝낸다에 한 표.
### :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 : 강남에 유동 인구가 한두 명이 아닌데 이거는 불가능한 도전이죠?
### : 분명 예쁜 여자한테 잡힐 거야. 왜냐고? 나라도 그럴 거니까.
### : 대박! 무척 재미있을 거 같다. 혹시 참여하는데 제한이 있으려나?
*
2주 후.
성우는 몸을 만드는데 사력을 다했다.
조만간 있을 이벤트를 생각하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들 수 없었다.
왈우의 성적은 대단했다.
벌써 천만 관객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덕분에 추정만 감독을 비롯해 영화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다들 지난 1년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특히 천만 보증수표의 전설을 이어가는 조강철은 대단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두 번째 천만 영화를 찍은 추 감독과 서 작가 역시 몸값이 폭등할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맺은 런닝 개런티 때문이었다.
천만을 돌파하면 그가 받을 돈이 1억 3천만 원이었다. 처음에 추 감독이 2~3억을 이야기했지만, 제작진과 합의 끝에 도달한 것이 거기까지였다.
신인 배우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 왈우의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었다. 더 많은 관객이 들어올수록 성우가 받는 돈도 더 커질 예정이었다.
[영화 ‘왈우’ 개봉 17일 만에 천만 돌파 예상! 역대 3위의 속도]
[과연 어디까지 관객몰이가 가능할 것인가? 아직도 끝나지 않는 ‘왈우’의 돌풍]
[U-Bro의 지원 사격! 천만 번째 관객에게 사인 CD 선물 예정?]
[유성우의 이색 공약 과연 지켜질 것인가?]
[강남 추격전 과연 그 시기는?]
성우의 스타그램.
이번에 새로 만든 SNS 계정도 난리가 났다.
추격전은 언제 하냐며 일정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참여하고 싶다고 신청하는 댓글도 상당했다. 마치 유성우를 잡는 것이 국민적인 놀이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방송국과의 조율도 끝났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카메라가 붙어 다니면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컨셉은 은신과 탈출이었다. 시간대 역시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간대로 잡혔다. 왈우에서 흑표가 주로 밤에 활동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A 지점의 로프 잘 설치되었죠? 튼튼하게 해주셔야 해요.”
“물론이죠. 다섯 지점 모두 문제없이 끝냈어요. 시작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할 예정이고요.”
“감사합니다.”
성우는 꼼꼼하게 살폈다.
그 다섯 개의 지점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은 그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줄 비장의 무기였다.
“그런데 성우 씨. 500 명은 너무 많지 않아요?”
“어차피 다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금방 끝날까 봐 걱정돼요.”
TCN의 주호민 PD.
그의 걱정은 그것이었다.
제아무리 유성우라도 금방 잡힐 것 같았다.
더구나 그가 준비해 달라고 한 것은 실제 사용이 가능할지도 의심이 되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도도 못 할 것들이었다.
“룰만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3분마다 위치 발송 맞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제가 요구한 지점마다 설치되는 거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주 PD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미 둘은 사전 답사를 다니며 주요 촬영 포인트를 잡아 놓았다. 대부분 그가 숨거나 탈출할 지점들 위주였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주호민은 그것은 벌써 포기한 상태였다.
‘카메라 감독들이 체력이 안 되니...’
리허설 개념으로 이미 시도해봤다.
예능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성우의 체력과 맞먹을 수 있는 이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맨몸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무거운 카메라까지 메고 따라다니는 것은 누구도 해내지 못했다. 그저 각 카메라맨이 특정 구역을 커버하며 추격자를 찍기로 했고 성우는 액션 캠 등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저를 잡는 500명은 모두 야광 팔찌를 차는 거죠?”
“그렇죠. 팔찌를 숨기고 잡는 것은 무효 처리될 예정이에요.”
“그런데 정말 항공 티켓도 주나요?”
“물론이죠. 베트남 왕복 티켓으로 결정 났어요.”
이번에 추가로 보상이 늘었다.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대신에 베트남 왕복 항공권이 붙었다. 협찬사가 제법 많이 붙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성우는 달리는 중간에 PPL을 해야 했다. 제발 이상한 것만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나마 음료수면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공지가 올라왔다.
그것을 본 대중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할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더구나 방송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좋아했다. 무제한 도전에서 한참 인기를 끌었던 추격전을 강남에서 직접 펼쳐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느낌이었다.
[특명! 흑표(유성우)를 잡아라]
유성우의 ‘왈우’ 천만 관객 돌파 공약! 강남 추격전에 참여하실 500분을 찾습니다.
일시 : oooo년 oo월 oo일 오후 7~9시
위치 : 국기원 주변 한 블록 이내
인원 : 추첨이 된 500명 한정
보상 : 흑표와 함께하는 식사 + 베트남 왕복 항공권
잡는 법 : 흑표의 손목에 매단 끈 습득
추격 도우미 : 3분마다 흑표의 위치 정보 발송
*이번 추격전은 TCN을 통해 방영될 예정입니다.
*흑표는 실내(주차장 포함)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유지 침입은 본 방송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와 미쳤나 봐.”
진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신청자의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었다.
공지를 올린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벌써 1만 명을 돌파했다. 과연 몇 명이나 신청할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자들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기사를 내놓고 있었다.
“너 정말 뭐 빠지게 뛰어다녀야 겠다.”
성우는 진수가 하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쉽게 잡혀 줬다가는 온갖 원망을 들을 것이 뻔했다. 적어도 TCN과는 영원히 척을 질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목숨 걸고 도망 다녀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여자한테 잡혀줘.”
“그게 맘처럼 되냐?”
“그쪽이 보기 좋은 결말이잖아. 그리고 남자랑 밥 먹는 것보다는 그게 편하지 않겠어?”
“나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그 말에 두부는 혀를 찼다.
하지만 성우는 그마저도 무시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참가 신청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만...
2만...
그리고 5만이 넘어서야 멈췄다.
53,210명의 신청자.
그 가운데서 500명이 추첨 되었다.
거의 100대 1일의 경쟁이 넘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만큼 당첨의 기쁨은 클 수밖에 없었다.
### : 아싸! 당첨이다. 흑표 잡아서 통구이를 해 먹겠어!
ㄴ### : 와~ 부럽습니다. 저는 탈락. ㅜㅜ
ㄴ### : 저 대신 꼭 잡아주세요.
ㄴ### : 레이드 나가는 기분이네요.
### : 난 식사 필요 없다. 항공권만 줘라.
ㄴ### : 일단 잡고 그런 요구를 하세요.
ㄴ### : 프로필 보니 오히려 잡혀갈 몽타주. 힘내세요.
### : 운동 좀 평소에 해놓을걸...
마침내 추격전이 시작되는 날.
해가 저물어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골목이 어두워지자 밴 하나가 골목길을 달리다 멈췄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재빨리 뛰어나왔다.
그것의 정체는 성우였다.
그는 촬영 당시에 입었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복면까지 할 수는 없었다. 방송인데 얼굴을 비춰야 했다. 잠시 후 성우는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지금 현재 그를 보고 있는 것은 미리 설치된 카메라 한 대밖에 없었다.
띠링!
핸드폰에 울리는 문자.
그 소리에 5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반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문자를 열자 짧은 문장 하나와 함께 지도가 첨부되어 있었다. 한쪽 손목에 야광 팔찌를 감은 그들은 서둘러 거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흑표 추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위치는 ###동 ##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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