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친 재능의 탑스타-48화 (49/161)

광끼 -48

두 남자의 목소리.

그것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가볍게 부르는 것 같아도 꽤 어려운 것이 ‘U’였다.

진수는 무대 아래 어두운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성우와 일한이 보여주는 무대를 보며 씁쓸했다. 둘이 보여주는 브로맨스는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슬쩍 질투가 날 정도였다.

‘저 녀석 노래는 그렇게 하기 싫다더니.’

중고등학교 다닐 때.

노래방 근처는 얼씬도 안 하던 성우였다.

그 덕분에 진수 역시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무대 위에서 성우는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옛날의 친구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와아아~!

그 순간 터진 환호성.

그것을 듣고서야 진수는 정신을 차렸다.

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노래를 부른 것 같았다.

몰아지경이라고 할까?

자신이 무대에 있다는 것도 잊었다. 그정도로 노래에 몰입한 것이었다. 사실 무대를 어떻게 꾸몄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도 반응을 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4분여의 불과한 시간.

그것은 생각보다 짧은 시각이었다.

첫 무대가 주는 여운을 음미할 틈도 없었다. 조명이 밝아지자 옆에 서 있던 일한이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그제야 긴장감이 확 풀어지는 것 같았다.

‘민폐는 안 끼쳤구나.’

마침내 정돈된 무대.

어느 사이에 그 중앙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둘이 서로 격려하며 그곳에 앉자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유희인이 들어왔다.

그는 간단하게 U-Bro를 소개했다.

특히 유일한의 이름을 말할 때 들리는 환호가 적지 않았다. 확실히 녀석의 인기는 성우의 것보다 훨씬 높았다. 그 이후에 둘을 향해 그의 질문이 쏟아졌다.

“요즘 브로맨스라는 말 아시나요? 오늘 무대에서 두 분 브로맨스가 장난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같이 음반을 내실 생각을 했나요?

“저희 둘이 같은 소속사이거든요. 어느 날 우연히 성우 이 친구의 연주를 듣게 됐는데 그 연주에 홀딱 반해버렸어요.”

“연주요?”

“기타를 정말 기가 막히게 치거든요.”

일한의 말에 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였다. 둘은 처음 만났던 당시를 짧게 말했다. 그리고 곧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던 둘의 합주 영상이 나왔다.

“저게 즉흥 연주라고요?”

“네. 맞습니다.”

“저 못지않게 천재인데요?”

그 말에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희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왜 믿지 못하냐 책망하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성우 역시 웃음이 터졌다. 그런 그의 모습 때문인지 TV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유브로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둘 다 성이 유 씨이고 친구라 그렇게 되었어요.”

“원래는 You 아니었나요?”

“처음에는 You Bro였죠. 그때는 제 동생이 반쯤 장난으로 만들 거였는데 나중에 U로 바뀌었어요.”

“아~ 그렇구나.

유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를 대신해 물어봐 주는 것이 사회자인 그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는 곧 앨범 마지막에 담긴 연주곡을 언급했다.

“항간에 이상한 소문이 있어요.”

“뭔가요?”

“이번 앨범 마지막에 수록된 연주곡 있잖아요. 그걸 다른 전문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는 거 아세요?”

“그런가요? 그런데 제가 연주한 게 맞습니다.”

“물론 저도 믿습니다. 그럴 줄 알고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유희인이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한쪽 편을 바라보자 일렉 기타 하나가 보였다. 방청객들 역시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깨닫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성우는 적당한 겸손과 사양을 내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연기에 불과했다.

이미 모든 것들은 연출진과 합의된 것들이었다. 쓸데없는 논란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양측의 판단이었다.

성우가 연주를 마친 이후.

방청객은 더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옛날 록 밴드에 추억을 가진 30~40대 연령층이 가장 좋아했다. 그것은 유희인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제대로 된 연주였고 또 곡의 수준 역시 상당했다.

“와! 대단하네요. 정말 배우 맞으세요?”

“네. 2주 후에 제가 출연한 영화 ‘왈우’가 개봉합니다.”

“어~ 이거 혹시 영화 홍보하러 나오신 건가요?”

“허허 너무 티가 났나요?”

성우는 겸연쩍게 웃었다.

공중파를 타는 첫 방송 출연이었다.

그런데 영화 홍보를 해야 하다니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그것을 부드럽게 받아준 것은 일한이었다.

“OST에 저희 곡을 넣어주진 않더라고요. 하하. 혹시나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요.”

“하하. 아쉽겠네요.”

“사실 시기가 안 맞았어요. 그래도 ‘왈우’ 시사회에 초대해주더군요. 덕분에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생겼어요.”

“아~ 저도 좀 불러주시지.”

유희인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 인터뷰의 중심은 유일한 쪽으로 옮겨졌다. 확실히 음악 프로그램이라 어쩔 수 없었다. 공개 오디션 우승부터 근황 이야기까지 그 질문의 내용은 다양했다. 특히 유희인이 관심을 가진 것은 유일한의 첫 프로듀싱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런 질문에 대해 일한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확실히 방송국의 물을 많이 먹은 티가 났다.

때론 익살스럽게

때론 진지한 표정으로

녀석은 익숙하게 이야기했다.

성우 역시 그 옆에 앉아 맞장구를 쳐줬지만, 뭔가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오늘의 방송이 흑역사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브로에게 허락된 시간은 끝나고 말았다. 제법 긴 녹화였음에도 성우한테는 순식간인 것 같았다.

“자! 그럼 마지막 곡을 들어볼까요? 어떤 곡을 준비하셨나요?”

“이번에는 Feel You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희인이 떠난 무대.

그 위에서 성우는 썬버스트를 집었다.

일한의 솔로 무대였고 그의 역할은 옆에 앉아 연주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까보다 부담감은 훨씬 덜했다.

따라랑~

대형 스피커를 통해 청량하게 울리는 소리.

그 느낌은 아무래도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리허설을 하면 느꼈던 것이지만, 연주할 맛이 난다고 할까? 그것은 바로 관객들의 반응이 바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몽롱하게 울리는 일한의 목소리.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자신의 기타 소리가 만든 효과였다. 그런 객석의 반응을 보면서 성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현을 뜯는 그의 모습은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

스케치박스 촬영 열흘 후.

밤늦은 시각이 된 성우의 집은 오랜만에 시끌벅적해졌다. 아니 오랜만이라 표현하기에 너무 긴 시간이었다. 거의 몇 년 만에 2층 단독주택 안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정확하게는 온갖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성우야. 치킨은 언제 오냐?”

“여기 족발하고 피자 있잖아. 이미 시킨 것도 많은데 욕심내지 마.”

“오빠! 광고 시작한다. 어서 화장실에서 안 나와?”

그 소음에 성우는 복잡 미묘했다.

같이 녹화한 일한은 그러려니 했다. 진수는 매니저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일한의 동생 유하나는 왜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 방송 모니터를 하러 성우의 집에 간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일한에게 껌딱지처럼 붙어서 따라왔다.

그래도 멤버의 구성은 좋았다.

셋 다 동갑내기였기에 마음은 편했다.

진수와 일한 역시 유브로를 준비하던 지난 여름에 제법 친해졌다.

“맥주 모자라겠다.”

“집주인 어서 비장의 양주를 꺼내 와라!”

“어휴··· 기다려.”

“비~싸고 맛있는 거로 꺼내. 오늘은 축하해야지.”

결국, 성우는 두 손 들고 항복했다.

아버지의 서재로 향한 그는 잠시 고민했다. 진열된 양주 중에 어떤 게 싼지 비싼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잠시 턱을 괸 채로 가만히 서 있자 두부가 그중의 하나를 지목했다.

- 저 왕관 씌워진 거로 먹자.

‘저거 딱 봐도 비싸 보이는데?’

-원래 축하하는 자리에서 가격 따위는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첫 방송 출연인데 충분히 자격 있어.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무슨 조선 시대 사람이 막걸리보다 양주를 좋아해?’

-나만 입이냐? 다른 녀석들도 취향이 있다고. 다 자유민주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성우는 길게 들을 필요가 없었다.

두부는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애를 쓸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집 나간 부모님이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성우는 뚜껑이 왕관처럼 생긴 그 병을 집었다.

38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그것을 보자 은근히 속이 쓰려 왔다.

적어도 숫자가 높을수록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미련은 버리고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와~ 38년산!”

“이거 로얄 XXX 아니야. 정말 먹어도 되는 거야?”

“비싼 거냐? 다시 갖다 놓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번개처럼 다가온 일한은 그것을 강탈했다. 이럴 때는 정말 행동이 빠른 녀석이었다. 그들 세 명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술을 꽤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 무렵에 스케치 박스는 시작되었다.

“어서 와. 방송 출연은 처음이지?”

“하하하. 쟤 얼굴 언 것 봐.”

“성우 오빠는 역시 카메라로 봐야 잘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것은 성우 역시 인정했다.

현실보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얼굴이 더 괜찮았다.

남들은 화면보다 현실이 더 예쁘고 잘생겼다고 칭찬을 받는 데 성우는 반대였다. 그렇다고 사기당했다고 원성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어! 실시간 검색어에 둘 다 올라왔다.”

“오빠! 음원 차트도 역주행한다.”

“대박!”

그 말에 성우는 얼떨떨했다.

확실히 방송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본의 아니게 실시간에 두 번 정도 오른 경험이 있었지만, 이건 또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러는 사이에도 순위는 점차 오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역주행해서 1위 찍는 거 아냐?”

“에이 설마.”

“희망찬 미래를 꿈꿔야지. 1위 가즈아~”

일한은 역시 낙천적이었다.

그런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유브로의 곡들은 음원차트의 실시간 순위에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원래 중위권에 있던 것을 생각하면 대폭 상승한 것이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그 절정에 달하자 검색어 순위 1위를 탈환했다.

물론 그 이하의 검색어도 거의 도배하다시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브로의 흔하지 않은 무대라는 기대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였다.

1위 유성우

2위 U-Bro

4위 유일한

5위 유브로

7위 왈우

8위 강우규 의사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성우가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영화와 더불어 강우규 의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고사 현장에서 그분의 영혼을 직접 본 성우였다. 영화의 성공도 바랐지만, 가장 큰 바람은 많은 이들이 그분을 기억해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전화는 쉴 틈 없이 울렸다.

그나마 직접 전화하는 이보다 문자나 카카톡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왈우의 스태프가 잔뜩 있는 단체방은 난리가 났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축하해요 - 바이올렛 강훈 대표>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열심히 달려보자. 다음 주에 무대에서 할 멘트 잘 준비하고! -오만석 실장>

<다음에도 제 작품에 출연한다는 약속 잊지 마요. 열심히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서윤희 작가>

<잘 봤다. 무대 인사 끝나고 한잔하자 -조강철 선배>

<오~ 우리 막내가 노래도 잘하네! 작두의 무대는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어 - 작두 혜정>

다들 방송을 본 것 같았다.

가장 심금을 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추 감독이 보낸 장문의 문자였다. 그의 글에는 개봉을 앞둔 감독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바로 옆에 있다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개봉이 코 앞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대중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추석을 앞두고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중의 하나는 성우가 평소에 좋아하던 마벨의 영웅들이 떼로 나오는 것이었다. 대진표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평론가들의 예상 수치.

그들은 왈우의 누적 관객수가 600만이 한계라 여겼다. 그 이상은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그렇게 보수적인 수치를 내놓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직전에 상영한 행주산성.

그 영화가 설 연휴에 개박살이 난 탓이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무난하게 800만 정도는 돌파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자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손익분기점이라 여기는 500만은 물론 400만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난공불락이라 여기던 권율 장군의 행주산성은 역사와 전혀 다르게 함락되고 말았다.

실시간에 올랐던 덕분일까?

그에 대한 기사는 전과 달리 쏟아져 나왔다.

물론 바이올렛과 왈우의 홍보팀이 들인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기사의 대부분은 다음 주에 개봉되는 영화에 포커스를 맞췄다.

[꿀 보이스 유성우의 ‘왈우’ 개봉 예정]

[유브로의 유성우. 왈우에서 맡은 역할을?]

[조강철, 유성우의 ‘왈우’ 무대 인사... 오는 8일]

[왈우 강우규 의사의 노장투혼. 과연 추석 극장에서 먹힐까?]

‘이제 기다림도 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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